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92)
“도련님, 그건 뭡니까?”
교황 비오 10세는 나를 따로 불러냈다.
괜히 교황 본인이 내게 다가오면 민폐라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별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처음엔 온갖 잡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회개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 받으십시요. 되도록이면 지니고 다니면 좋고요.
유리병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가톨릭 신자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려봤을때 이건 성수였다.
교황이 직접 축성을 내린 성수라니,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물건일지 가늠조차 안되었다.
다른 교황도 아니고 비오 10세의 성수였으니까.
‘그냥 수돗물틀어서 축성을 내리진 않았을거고.’
아니 유리병 자체도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부담스럽다. 누가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 아니랄까봐, 유리병의 세공이 섬세하다.
‘처음부터 준비해온 물건이었나?’
천주교의 성수라.
아마도 십중팔구 이스라엘의 갈릴레아 호수에서 떠온 물이리라. 워낙 호수가 넓어서 신약성경에는 갈릴레아 바다로 기술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흥미롭군.
“성수다.”
“….교황께서 친히 축성하고 하사하신 성수란 말입니까?”
“그렇지.”
“맙소사.”
제임스는 마치 손이라도 데면 퇴마라도 당할것처럼 조심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긴 고급세공이 된 유리명에 담긴 교황의 성수를 깨뜨리기라도 했다간 통장은 지옥불을 면치 못하리라.
무엇보다 역사적, 기술적, 종교적 가치가 싸그리 소멸한다.
내가 그꼴은 두눈뜨고 못보지.
“…..도련님은 성수를 보는 눈빛이 아니라 흡사 재물을 보는 눈빛이군요. 그러다 천국에서 입장거부 당하셔도 저는 모릅니다.”
“무슨 소리야. 우린 이미 천국행은 글렀어. 더 깊은 지옥에나 안빠지면 다행이지. 솔직히 월가에서 지옥보다 천국에 가까운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아….죽기전에 꼭 회개해야겠네요.”
제임스의 너스레에 피식 웃고는 유리병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졌다. 평소에 스마트폰 크기의 성수를 지니고 다니라니, 돌려까기라도 당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교황은 왜 내게 접근한걸까?
“엑소시즘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자각은 있으시군요? 양심까지 휘발되어버린게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요즘 제임스 너 입에서 딜량이 폭주한다?”
“딜량? 그게 뭡니까?”
알고 있는거 같은데.
“입으로 나를 담군다고.”
“하…하하, 기분탓입니다.”
말은 여유로웠지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제임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손으로 그의 등을 퍽 쳐줬다.
“뭐, 교황은 교황이고. 나는 나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다만, 성수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교황이 직접 하사한 물건이기도 하고, 왠지 잃어버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성물같잖아.
성유물은 당연히 아닐테고.
‘묘하게 해탈한 느낌이었지. 비오 10세.’
교황은 내게 왜그랬을까.
조금 궁금해졌다.
“근데 성수는 왜 준거야?”
***
“내각불신임결의를 표결하겠습니다.”
대영제국은 뒤집혔다.
교황이 영국총리가 벌인 국가헌병대의 과잉진압 사건에 대해 이정도로 본격적으로 개입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영국인들에겐 벨푸어가 마치 사탄의 자식처럼 보였으며, 누구도 내각불신임을 반대하지 않았다.
내각불신임결의를 반대했다가 지옥이라도 갈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종교는 이게 무서운 것이다. 사후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으니 괜히 찔릴만한 일은 되도록 하지 못한다.
땅땅땅-!
“만장일치로 결의되었습니다.”
결국 보수당 내각은 총사퇴했다.
교황까지 직접 왕림해 피해자를 위한 장례미사를 치뤄준 상황에서 더 반발하면, 보수당의 존폐가 위험했다. 하지만 이미 잃을 것 다 잃은 벨푸어 총리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애초에 총리는 참석조차 대리인을 시켰다. 병원에서 골골대고 있었으니까.
“당장 의회해산시켜!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억울하단 말이다! 당장!”
벨푸어는 추하게 발악했다.
최후의 수단으로서 ‘관례적으로’ 총리의 권한이라고 여겨졌던 의회해산권을 발동시켰다.
“의회해산? 우리야 좋지 않나. 보수당이 싸그리 물빠지면 자유당으로 채워질테니.”
자유당 의원들은 오히려 의회해산권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의회해산권은 의외의 곳에서 막혀버렸다.
[에드워드 7세, 국왕대권인 의회해산권 발동하지 않겠다고 일축. ‘국가가 공황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의회해산은 불가하다.’] [18세기 앤 여왕이후 한번도 이뤄진 적 없던 국왕의 자의적 개입.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관례를 부순 에드워드 7세에 열광하는 시민들.]“의회해산권은 발동하지 않겠다.”
국왕은 의회해산을 씹어버렸다.
애초에 의회해산권은 국왕대권이자 국왕의 권리였다.
–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권한들은 대개 국왕에게 쥐어져있었다. 영국국왕은 기본적으로 왕권이 굉장히 강력한 국가였고, 이는 법으로 명분화된 살아있는 권력들이다.
다만, 영국국왕 본인들이 스스로 행사하지 않고 그저 군림할 뿐이었다.
에드워드 7세는 자유당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의회를 엎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국왕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로서 막아낸 것이다.
이후 국왕은 희생자의 추도식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할데인, 신임총리로 임명.] [추도식에 칩거했던 국왕, 할데인 총리임명식에 참석. 총리임명또한 국왕의 권리였다.] [몇달전 벨푸어총리에게 힐난받았던 할데인, 벨푸어를 몰아내고 총리가 되다.] [키치너 야전원수, ‘숨통이 트일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식민지 문제부터 해결해야할 것.’ 당부.]새로운 총리가 임명돠었다.
대영제국에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할데인은 이미 권력에는 미련이 없는 상황이었고, 영국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새로운 영국을 건설하겠습니다.”
할데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며칠뒤, 할데인은 정부수반으로서 식민총독들에게 친서를 날렸다.
편지한통을 드레드노트에 실어서 말이다.
***
“캐나다 총독으로부터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뉴욕금융서비스국.
나는 성수를 만지작거리며 제임스의 보고를 들었다. 캐나다 자치령은 경제위기가 온 곳들 중 구제금융을 받지 못한 아메리카대륙 거의 유일한 곳이었고, 캐나다총독은 간쓸개 다 내어줄 기세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할데인의 총리서한이군. 캐나다총독도 다급하긴 한가봐?”
이번에 드레드노트에 실려온 영국총리의 서한을 사본으로 떠 미국으로 곧바로 전송할 정도로.
그들은 다급했다.
하지만 캐나다 자치령은 다른식민지들과는 달리 자치령인만큼 외교권, 군사권 등 몇가지 권리들을 제외하곤 다 보유하고 있는 자치정부였다.
“자치정부라서 본토에 대한 반발심도 가장 클 것입니다. 공황이 닥치자, 전 벨푸어총리는 본토의 부담을 식민지로 떠넘기려했으니까요.”
“자치령이면 억울하긴 하겠군.”
동시에 생각하겠지.
자신들이 자치령으로 머무는 한 언제고 영국본토의 위기를 또다시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캐나다자치정부는 열받은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총독은 기본적으로 국가수반의 대리인이었고, 자신의 정치적 뿌리 일부를 이지역에 깊게 내린 것이다.
한번 총독직을 맡으면 오래가기도 하고, 영국정치권에서 자신이 총독을 맡은 지역에 대한 소임을 다 해내야 한명의 정치인으로서 인정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총독이긴 하지만, 캐나다가 몰락하면 본인의 무능함을 질타받고, 정치인생도 끝장날 각오를 해야할테니.”
함부로 총독이 식민지를 대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토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정치적 입지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벨푸어총리는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
“벨푸어총리가 파산할 은행들을 매각하려고 생지랄을 하지 않았나. 캐나다 총독 입장에선 자신의 커리어를 작살낼 개자식으로 보였겠지.”
애초에 총독으로 부임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왕실방계, 공작가문 등으로 작위가 높거나, 정치적, 군사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배정된다.
영국총리라 할지라도, 총독들은 기본적으로 대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미친개마냥 날뛰는건 아니고 조용히 한마디 찔러넣는 수준이지만.
이번엔 선 넘었지. 미친놈들아.
“일단 읽어보시죠.”
탁.
나는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영국총리가 보낸 서한을 내게 보낼 정도면, 무언가 파격적인 내용이 적혀있다는 반증이었다.
캐나다 총독은 줄도 잘서지.
현재 그들이 살수있는 동앗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미국과 영국의 지위가 바뀔 것이다.
캐나다총리는 황금동앗줄을 잡은 셈이지. 내가 놓으면 다 끝장나지만 말이다.
성수를 만지작거렸다.
“…..!”
오랜만이다.
내가 이정도로 놀란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서한을 읽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정독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진짜인가?”
“캐나다총독이나 할데인총리나 거짓말할 성격은 아닙니다.”
“미치겠네.”
미치겠다.
너무 좋아서.
“대영제국 해체 및 영연방 구성을 위한 정치적, 사법적 거래인가. 할데인총리, 이사람 진짜 화끈한데?”
할데인총리.
그는 말하고 있었다.
영연방으로 너희들 자치권을 더욱 강화시켜 보장해주면, 너희들은 이번 대전쟁과 공황을 이겨낼 전폭적인 지지를 하라는 성명서이자 제안서였다.
“이제 대영제국은 해체되겠군. 이건 영국정부와 식민지정부 둘다 만족할만한 제안이다.”
할데인총리.
에드워드 7세를 섭외할때부터 알았지만, 조용하게 앞뒤가리지 않는 성격이 마음에 든다.
해군성의 드레드노트로 이 서한을 실어나른 의도는 거절하기 힘들게 만들 장치였던 셈이다.
“영국은 이걸로 기사회생하고, 식민지는 자치권을 대폭 얻을 수 있어서 좋고. 호주나 캐나다 등은 독립국이나 다름없어지겠네?”
영연방의 시대로군.
이는 영국이 살아날 유일한 탈출구였고.
영연방으로 새롭게 시장을 재구성함으로서 스털링권역으로 재정의한다. 파운드권의 패권을 놓치 않겠다는 의지였다.
“나름 한수 하는군.”
“이대로 두고보실 겁니까?”
“두고보다니?”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언제.”
나는 성수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펜대를 손가락에 얹어 휘릭휘릭 휘저었다.
그야 벨푸어총리가 이런 결정을 했다면 위협적이겠지만, 할데인이 하면 영 글쎄올시다였다.
“이미 명분은 우리가 쥐었잖아.”
국가헌병대는 정규군 소속 군인의 신분이다.
한마디로 영국국적의 군인이 미국국적자를 방패로 후려쳐 죽여버린 사건이란 의미다. 한창 제국주의 시절에 민간인이 타국군인에게 살해당한다?
이건 볼것도 없이 전쟁명분이었다.
“채권매도 프로그램은 이미 돌아가고 있어. 게다가 베어링스은행이 터지는 바람에 달러외채가 점점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달러외채가 늘어났다.
당장의 만기는 금괴를 통래 거래한 외환으로 해결했겠지만, 만기는 주기적으로 두드릴 것이다. 외환이 부족해도 어쩔 수 없다.
달러를 찍어내는 기관은 연방준비제도가 유일했으니까.
우리가 달러조폐권을 독점했다.
꼬우면 너네도 한번 달러 뽑아내 보던가.
“달러로 주물러주자고.”
“예!”
아참.
제임스는 잊어버린 사안이 있었는지, 내게 다가왔다.
“도련님, 베어링스 은행이 지금 한창 핫하지 않습니까. 파산신청했고, 부채규모가 50억파운드를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분식회계까지 들춰내면 적어도 60억 파운드는 훌쩍 넘길 거라고합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예,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란은행이 금융규제부서를 신설해 회계감사를 진행했는데, 내부적으로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뒤집어져? 왜?”
“그게 말이죠…..”
제임스가 실실 웃었다.
요즘따라 살맛나는 모양이다.
영국금융가 출신은 역시 인성이 남달라. 아주 얼굴이 벌모세수라도 했는지, 확 살아나네.
“베어링스은행의 빚 중 10억 파운드가 오리무중이랍니다. 대외적으로.”
“뭐?”
10억파운드.
현대한화로 160조원. 어지간한 국가하나는 파산시킬 수 있는 규모의 부채였다.
그게 오리무중이라고?
“잠깐, ‘대외적으로는’?”
“예, 정보국장이 좀 바빠서 제게 대신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까봐.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10억파운드면 예삿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부채가 증발했다면, 이 업보는 반드시 어디선가에서 터진다. 애초에 대외비라면, 영국정치권은 이미 알고있단 소리였다.
“벨푸어총리가 시온주의자들과 만나고 있단 사실은 알고계셨죠?”
“어, 팔레스타인 지방에 국가를 설립한다던 그거? 로버트 재무장관에게도 들어본 적이 있군.”
“예, 최근 시온주의자들과 한가지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벨푸어총리가 사임하기 몇달전에 말입니다.”
“거래?”
10억파운드의 실종.
그리고 시온주의자들과의 거래. 유대인들은 금융권을 장악한만큼, 10억파운드의 행방은 그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설마.
나는 표정을 굳혔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예, 시온주의자들과 유대금융계, 베어링스은행, 빅4회계법인, 다 달려들어서 10억파운드를 팔아치울 ‘작전’을 세웠고 성공했다고 합니다.”
미친스케일보소.
국가하나를 파산시킬 부채를 팔아치우기 위해 유대금융인들이 떼거지로 붙어서 작업했다고? 빅4회계법인과?
타겟은 너무도 명백했다.
애초에 시온주의자들이 공격할 상대가 한곳밖에 더 있나.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스만제국을 파산시키기 위해 베어링스 증권을 따로 물적분할로 계열분리해 자회사를 팔아치웠다고, 정보국장에게 전해들었습니다.”
“정보국장이 바쁠만하네. 하지만 벨푸어총리잖아. 그것뿐이 아닐텐데.”
나는 눈치챘다.
벨푸어총리답다고 해야할까.
지독한 외교적 수싸움이 물밑아래서 칼날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예, 독일에 전선을 하나 더 열어버릴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거봐.
피튀긴다니까.
“하여간 지독해. 괜히 혐성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