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둘 남았다.
지루하다.
정말 공명정대한 녀석들이다. 뇌물도 순서 지켜서 쓸 녀석들 같으니.
안에 기별을 넣으러 간 녀석들이 내성까지 아직 도착하지 못했나?
아니면 바쁜 일이 있는 걸까?
어째서 아직 연락이 안 오지?
지금쯤 연락이 와도 벌써 왔어야 했는데. 당위는 아니더라도 장로 정도는 뛰어나와서 인사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당지검이 몸소 찾아왔는데?
진무는 몇 번이나 엉덩이를 떼었다가 앉았다.
그래, 기다리지 뭐. 잠시 당가와 얽혔던 옛날 생각이나 하다 보면…….
밤……이 깊어지고 홰도 오르고…….
……씨발?
슬슬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극한의 인내심으로 감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와중에 당서광이 다가왔다.
그래, 이제 연락이 닿았구나.
진무가 웃으며 일어나는데.
“시간 끝났소.”
“……뭐?”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오.”
“…….”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멍해 있는데.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냥 가?
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함께 담소를 나누어 주던 상인이 당서광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 갔다. 그냥 갔다.
그리고 휙 뒤돌아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당서광.
“아니 저기!”
진무가 다급히 불러 봤지만.
그그긍.
활짝 열렸던 성문이 보란 듯이 닫혔다.
쾅.
무게만큼이나 요란스럽게 닫힌 성벽 위로도 홰가 오른다.
수문장인 당서광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야간조와 교대할 시간이기도 했고, 당가의 외성 정문을 찾아오는 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었다.
대부분이 당가에 어려운 부탁을 하러 오거나 연을 맺어 보기 위해 찾아오는 자들이었다.
이미 이름을 가진 자들은 당가의 외성 정문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을 위한 암문(暗門: 비밀 문)은 따로 있었다.
그걸 모르는 이들이 가끔 당가의 외성 정문으로 찾아와 이름 있는 자를 행세하며 거들먹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기꾼이거나 별 볼 일 없는 무지렁이에 불과했다.
당서광은 외성 정문으로 찾아와 태극패를 내밀고 무당지검 운운하는 진무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아니 무당 도사가 도포도 입지 않고 찾아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치도곤을 놓기도 아까운 사기꾼임이 틀림없었다.
태극패는 제법 정교하게 위장했겠지.
시간이 지나면 제풀에 지쳐 돌아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어디 엿이나 한번 먹어 보라는 심산으로 기다리게 한 것이다. 안에는 기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진무가 모처럼의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린 것뿐.
“…….”
진무는 닫힌 성문과 그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네.
기다리던 이들도 전부 돌아가 버렸고, 성문을 지키던 놈들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은 건.
‘나 혼자야?’
진무가 잠시 멀뚱멀뚱하게 앉아 있었다.
예전이라면 애초에 이렇게 멍청하게 있지도 않았겠지. 지금 이 순간 분명 당가의 성벽을 다 허물어 버리고 기다림에 대한 죄를 물었을 것이다.
정확히 세 시진.
철검단에 명해서 일각에 백오십 명씩 모가지를 딴다고 했을 때, 계산하면 한 삼천육백 명쯤 죽이고 당위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겠지.
그로서 당가는 멸문을 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은 너무 황망할 뿐이다.
어떻게 하지?
그냥 이깟 성문 확 허물고 당위를 부를까?
고민된다. 치밀어 오른 짜증이 화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당의 제자가 정무맹의 일원인 당가와 척을 질 수도 없고.
아직은 당가와 혼자 상대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지금의 실력에 당위의 성격이 바뀌지 않았다면 멱살 잡혀 흔들리는 건 진무가 될지도 모른다.
진무가 멀뚱하게 서서 닫힌 성문 위를 바라봤다.
크기야 진짜 더럽게 크지만, 이딴 거 주먹 한 방이면 박살 날 텐데.
“음.”
진무가 턱 언저리를 만지며 고민에 빠져 있는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세차게 달려온 말이 투레질하며 멈췄지만, 진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워어!”
녹의를 입은 무인들이 말고삐를 잡아 세우고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
뭐? 왜?
“당신!”
누군가 훌쩍 뛰어내려 진무를 향해 다가왔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
뭐,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어?
다가온 여인이 두 팔을 허리에 척 얹고 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까지밖에 안 오는 키의 여인이 상체를 살짝 굽혀 진무를 이리저리 올려다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는 모습이 암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까?
제갈산산과는 또 다른.
어느 모로 봐도 매우 드세 보이는.
“묻잖아!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냐고?”
“…….”
낮에 본 여인이다.
냉심독녀, 당세령.
그녀를 바라보는 진무의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엮이면 귀찮다.
그래. 사패천주도 아니고 무당의 도사가 아니던가?
굳이 지금 당가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소검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찾아와도 될 일이다.
좀 많이 화가 나긴 했지만, 도사가 된 이후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지 않던가?
진무는 한숨과 함께 몸을 돌리며 당세령을 지나쳤다.
“야! 사람 말이 말 같지……!”
진무의 어깨를 잡아채는 순간 당세령은 헛손질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어떻게 자신의 손을 피했지?
분명 그냥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보통 사람은 절대로 피할 수 없어야 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진무를 놓친 당세령은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이렇겐 절대로 못 가지. 막아!”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촤자작!
녹둔대의 무인들이 길게 늘어서며 진무의 앞을 막아섰다.
“뭐냐?”
진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얌전히 돌아가려 했지만 어쨌거나 짜증이 제법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미안하오. 우리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녹둔대의 무인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무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진무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을 바라보고 이어 그 손의 주인에게 시선을 옮긴다.
“비켜.”
진무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가라앉았다.
“양해를 부탁드리오.”
비켜설 생각을 안 한다.
그래, 오래 기다렸다.
세 시진이면 어? 박살 난 성문도 다시 달고, 성벽도 다시 올리고.
그러니까 그냥 꺼져 다오.
분명히 경고도 했다. 비키라고.
“이봐. 당신 누구야? 온종일 찾아다녔다는 것을 알기나……!”
당세령이 진무를 향해 걸음을 떼는 순간 녹둔대의 무인 하나가 크게 원을 그렸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
놀란 것은 당세령뿐만이 아니었다.
진무의 앞을 막은 녹둔대의 무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자세를 취하며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었다.
동시에.
삐이이익!
호각성이 울려 퍼지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성벽 위를 지키고 있던 당가의 무인들이 바깥의 소란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그 광경을 본 것이다.
그그긍!
성문이 열리고 수많은 무인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휴,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진무는 매우 언짢았다.
들어가려 했더니 기다리다 지치게 하지 않나, 돌아가려 했더니 앞을 막지 않나.
애써 눌러 참았던 화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 누구야?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이러는 거야?”
“당가라는 건 안다. 그래서?”
“뭐?”
“막은 건 니들이고, 칼을 뽑은 것도 니들인데?”
“…….”
당세령은 진무의 당당함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누가 감히 당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약관의 무인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자신을 꼬나보고 있었다.
녹둔대뿐 아니라 당가의 외성 무인 수십이 그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와! 대박!”
당세령은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도대체 누구야, 당신?”
그 질문만 세 번째였지만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는 데만도 한계였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자신을 막고 있는 모두를 죽여 버릴지도 모를 만큼.
“하아, 비켜. 험한 꼴 보기 전에.”
진무가 한숨을 쉬며 걸음을 떼려는 순간.
“이봐! 여긴 당가야. 그 어떤 누구도 당가의 규율에서 자유롭지 못해. 먼저 신분을 밝히고…….”
진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진다.
“비켜.”
“…….”
당세령은 자신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결국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잡아!”
파앙!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녹둔대의 무인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죽여’가 아닌 ‘잡아’였기에 무기는 꺼내지 않은 채였다.
“이것들이…… 참으려고 했더니 자꾸 열 받게 하네!”
옷깃을 잡아채려 날아드는 다섯 개의 손.
진무는 가볍게 발을 들었다.
빡!
첫 번째는 가볍게 턱을 올려 찼다.
빠바바박!
동시에 그의 발이 변화를 일으키며 넷으로 나누어졌고, 그에게 달려들었던 녹둔대의 무인들이 꽃잎이 퍼지듯 뒤로 날아갔다.
“……!”
당세령의 놀람은 더욱 커진다.
진무를 공격했던 무인 다섯은 모두 현기 이상이었다.
녹둔대에서도 제법 실력이 뛰어난 고수였다. 그런 자들을 고작 발길질 몇 번으로 쓰러뜨린 것이다.
놀람은 더욱 강한 호기심으로 변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적일지도 모르는 눈앞의 사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아닌가?
이런 건 당가에서 장로들과 비슷하다는 실력을 가진 다섯 명의 오빠들에게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 소란에 성문 위사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교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당서광이 그 모습에 눈을 끔벅거렸다.
“이게 지금…….”
쓰러진 녹둔대의 무인.
뛰어나가는 성문의 위사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러니까…… 사기꾼으로 취급했던 사내?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왜 녹둔대와 싸우고 있는 거지?
젠장, 설마 진짜로 무당의 도사였나?
모, 모른 척하자. 절대로 모른 척해야 한다.
당서광이 사색이 된 얼굴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는데.
“난 분명 비키라고 했어!”
진무의 몸에서 시퍼런 기운이 솟구친다.
직각으로 들어 올렸던 무릎이 거대한 기운을 머금고 단번에 뻗어졌다.
꾸우우우웅! 콰아앙!
푸른 빛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진무를 향해 뛰어들었던 무인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쿠우우우.
기운의 여파에 세상이 뒤흔들렸다.
지면이 폭발하듯 터져 오르고 거대한 당가의 외성벽이 지진을 마주한 것처럼 휘청거렸다.
깊은 족적을 남긴 진무의 진각.
그것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폭발해 버린 십여 장의 대지.
사방으로 튕겨 나가 뻗어 버린 정문 위사들.
겨우 버텨 낸 녹둔대의 무인들도 멀쩡하지 못했다.
입은 옷은 넝마가 되어 버렸고, 경지가 낮은 몇몇은 내상을 입은 것인지 주저앉아 피를 게워 내고 있었다.
땅, 땅, 땅!
적의 습격을 알리는 경계 종이 울려 퍼졌다.
“…….”
폭발의 범위에서 겨우 물러났던 당세령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작 진각 한 번에.
아무리 가문의 자랑인 암기나 독약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탄기의 무인들까지 섞여 있는 녹둔대와 수십 명의 정문 위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진무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대단해!”
당세령이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이게 지금 손뼉까지 쳐 가며 좋아할 일이냐?
“당신 정말 대단해! 나 완전히 반했어!”
“…….”
예상했던 대로 어마어마한 미친년이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똘끼 충만한 게 틀림없다.
“하아.”
왠지 피곤해진 진무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관둬라. 관둬. 내가 너 같은 어린애랑 뭔 말을 나누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당세령이 힘차게 손가락을 들어 진무를 가리켰다.
“좋아! 결정했어.”
뭘?
“한판 붙자!”
“…….”
아니 진짜 돌았나? 완전히 돌아 버린 건가?
진무가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쳐다보는데.
파앙!
이미 당세령이 두 주먹 불끈 쥐고 진무를 향해 쏘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너 나 잘 모르는구나?
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