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청성파의 산 아래 입구에 도착한 진무는 곧바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접객당으로 안내되었다.
이미 그가 표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당에서 알렸음인지 태극패를 확인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절차는 없었다.
무당 도사의 표주.
그의 행로상에서는 반드시 오대도문이 있어야만 했다.
애초에 오대도문 모두가 도맥을 따르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알고 배운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해서 각 파의 장문인이 될 대제자들은 오대도문을 거쳐 인사하고 그 주인들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했다.
그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야, 너 사고 치지 말고 여기 있어라.”
“누굴 바보로 아나? 나도 그쯤은 알아.”
당세령의 대답에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수차례 다짐을 받았지만,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왜 이런 게 따라와서 자신을 심란하게 만든단 말인가?
청성과의 첫 만남이라 어엿한 도인의 한 사람으로 행동하려던 맹세가 시작도 전에 자꾸만 깨어지는 것 같았다.
“걱정 마. 너보다도 청성에 훨씬 자주 와 봤으니까. 너나 잘해.”
뭘 잘하라는 건지.
진무가 자신 넘치게 웃는 당세령을 보며 다시 한숨을 푹 쉬는데.
“진무 도장이십니까?”
예복을 갖추어 입은 청성파의 일대제자가 접객당으로 찾아왔다.
서른이 넘어 보이는 그가 약관의 진무에게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무량수불, 무당의 진무입니다.”
“청성의 상천입니다. 당대의 무당지검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례십니다. 그저 이름 없는 소졸에 불과합니다.”
서로 거추장스러운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 당세령이 피식 웃었다.
[오오? 의외로 도사 같은데?] [닥쳐!]귓가로 파고드는 전음에 진무가 당세령을 슬쩍 째려보았다.
“예?”
상천이 의아해하자 진무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 무언가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그냥 기분이. 자, 모두 기다리십니다. 가시죠.”
“예. 상천 도장.”
상천을 뒤따르며 진무가 당세령을 힐끗 쳐다본다.
잘 다녀와. 얌전히 기다릴게.
대충 그런 입 모양이었으나 영 안심이 되지 않았던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천을 뒤따랐다.
청성파의 산문이 자리한 월성호(月城湖).
무당의 해검지처럼 청성을 찾아온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다.
무기를 풀어야 한다거나 하는 규율은 없었으나 청성을 찾은 자가 월성호에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불의한 방문으로 치부되어 입산을 거부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진무 또한 곧바로 산을 오르지 않고 월성호에 자신의 이름을 고한 것이다.
상천을 따라 청성의 산문을 지나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좌측입니다.”
“예.”
상천이 말했듯 진무는 무인의 길을 걷고 있으니 좌측을 향해 올라야 했다.
한참을 올라 중턱의 자운각에서 잠시 쉬고 상청에 오르자 청성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진무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둥글게 솟은 봉우리들이 따로이 자락을 짓지 않고 자연스레 늘어선 모습들은 가히 장관이었다.
청성의 도관들은 무당과는 달리 거대한 봉우리 하나를 터 삼아 오밀조밀하게 뭉쳐 있었다.
“무당만 못하지요?”
상천이 빙긋 웃으며 겸손히 말을 건넸지만, 그 말투에 자부심이 가득하게 묻어 있었다.
“겸양이십니다. 감탄이 절로 난 것을요.”
예의가 한껏 묻어난 진무의 말이 싫지 않았던 상천은 더욱 환히 웃으며 입구를 지키는 도인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그그긍.
오래되고 낡은 도관이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향해 문을 열었다.
예복을 입고 연무장을 가득 채운 청성의 도사들을 지나,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을 간직한 상청관이 보이고, 그 뒤의 봉우리에 팔 층짜리 노군각(老君閣)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진무는 상천을 따라 청성 제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채 연무장의 중앙을 따라 걸었다.
참 많기도 하다.
무당에 비하면 제자들의 수가 배는 넘어 보이는 것 같았고, 그중에는 진무가 바라 마지않는 여제자들도 더러 있었다.
쟤가 무당지검이래.
너무 어리잖아?
무풍개 어른이 직접 무당을 찾아가셨다던데?
여기저기서 청성의 어린 제자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저 어린 녀석들의 멱살을 잡고 ‘쟤’ 아니고 ‘저분’이라는 가르침을 내려 주고 싶지만, 일단은 무당의 도사 행세 중이니 어쩔 수 없지.
진무는 매우 가식적인 웃음을 머금고 청성 제자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시게.”
미리 나와 있던 나이 지긋한 여도사가 진무를 향해 인사를 하자 상천이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나는 청성의 자운각주, 자선(紫善)일세.”
일각의 주인이자 자(紫)자 배를 쓴다면 무당의 명자 배와 동일한 항렬이었다.
“무당의 진무가 자선 사숙을 뵙습니다.”
무당과 청성은 한배에서 나온 도문이니 응당 사숙이라 칭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자선으로서는 무척이나 의외였다.
근래 자파가 아니면 그저 ‘무슨무슨 도장.’이라 부르기가 예사였는데 사숙이라 칭하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까?
더욱이 무당을 대표하는 무인이 아닌가.
“당대의 무당지검께선 실로 예의가 바르군.”
다행이다. 그렇게 봐 줘서.
“자, 들어가세.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예. 사숙.”
진무는 자선의 환한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나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호감도를 상승시켰노라고.
자선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상청관은 무척이나 비좁았다.
망해 간다고 알려진 무당의 자소궁의 반도 되지 않는 크기.
그 좁은 공간에 당대의 장문인을 중심으로 장로들과 전대의 장로들까지 자리를 채운 채 무뚝뚝한 얼굴로 앉아 있으니 공기마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대 장로들 중에는 더러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혁련무강의 삶에서 만났던 청성의 노괴들이었다.
이제는 다 늙어서 눈조차 주름에 가려지고, 머리와 수염이 허옇게 변한 이들.
그들을 보니 과거 수도 없이 싸워 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서 오시게.”
구릿빛 피부에 각진 얼굴을 가진 당대 청성의 장문인 자환이 진무의 회상을 걷어 내었다.
그의 앞으로 다가간 진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올렸다.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가 청성의 장문 어른과 여러 선배 도장들께 인사드립니다.”
“…….”
공손하게 엎드린 그의 모습에 장로들과 노괴들이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자 삭막했던 분위기가 춘풍이 분 것처럼 온화해졌다.
무당지검이 아닌 일대제자.
진무는 자신을 그리 칭했다.
사실 청성이 모든 장로를 불러들이고 제자들을 연무장에 모을 만큼 진무를 환대할 필요는 없었다.
일대제자들의 표주가 잦지는 않아도 가끔씩 있는 일이 아니던가?
청성의 환대는 당대 무당을 대표하는 무당지검에 대한 예우였으며 청성의 위세를 보이기 위한 자존심이었다.
팔십 년의 세월, 그리고 수많은 경험.
진무가 그런 청성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를 접객당에 기다리게 만들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
분명 시험하고자 할 것이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처음부터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그들이 듣기 좋은 말을 골라서 했다.
그 결과 곱지 않은 시선을 호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만약 자존심을 세우고 머리를 꼿꼿이 들었다면 청성의 시선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얻어내기 위한 진무의 계략이었고, 결과는…….
“차를 내오라!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어찌 이리 대접이 소홀한가!”
“편히 앉으시게.”
“내 무당의 전서에서 성격이 거침이 없으니 양해해 달라 전해 들었거늘. 이리도 예가 바르고 올곧은 것을, 허허.”
“암, 우리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게야.”
“그러게나 말이야.”
장문인의 뒤편에 앉은 노괴들의 칭찬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허허, 사숙들께서 진무 도장이 꽤나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자환의 말에 노괴들이 다시 한마디씩 보탠다.
“허헛, 암요, 암요. 무당의 자랑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역시 노인네들은 예의 바른 꼬마를 좋아한다.
노괴들이 저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당대의 장로이자 청성 육각의 주인 중 하나인 청운각주 자패가 한마디를 꺼냈다.
“한데 함께 온 이가 당가의 여식이라던데?”
“…….”
자패의 말에 갑자기 춘풍이 그치고 싸늘한 한풍이 찾아들었다.
어?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러지?
순식간에 뒤바뀐 분위기에 진무가 어리둥절해했다.
설마? 당가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 때문에?
“……예. 당가의 딸인 당세령과 함께 왔습니다.”
“흠.”
이곳저곳에서 가라앉은 신음이 들려왔다.
“어허, 왜들 이러는가? 객이 정세에 어두울 수 있으니 자중하라.”
자환이 장로들을 향해 자중하라는 듯한 뜻으로 말했지만, 분위기는 이미 엄청나게 무거워져 있었다.
“손님께서는 개의치 마시게. 근자에 당가와 작은 마찰이 있어 그러한 것이니.”
“……아. 그렇습니까?”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까지 이런 적개심을 보인단 말인가?
“그래,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
“오래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렇군. 청성에 먼저 왔다면 다음 행선지를 곤륜으로 잡을 것이니 오래 머물 수야 없겠지. 시험만 치르고 떠날 생각인가?”
“예.”
전통에 따른 시험.
일종의 관례다.
표주를 나오기 전 스승인 명진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오대도문의 확인을 받고자 하면 일대제자로서 적합한 자질을 보여야만 했다.
먼저 도문의 어른과 선문답을 거쳐 도인으로서의 자질 함양을 평가받아야 하고, 간단한 겨룸을 통해 무인으로서의 힘을 입증받아야 한다.
물론 통과하지 못한다 하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관례였고, 확인을 받음에도 제약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통과하게 된다면 그의 이름을 각 도문에 깊숙이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한데 무당의 검께선 어느 만큼의 깨달음을 얻었는가? 시험을 준비하자면 자네의 수준을 알아야 할 듯한데?”
자환의 질문에 장로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모든 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이제 막 뜻을 담아 펼칠 줄 알게 되었습니다.”
“……!”
진무의 대답에 장로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기란 말인가?”
노괴 중 하나의 말에 진무는 웃음으로 긍정을 뜻했다.
“허헛, 실로 무당의 홍복일세. 약관에 의기라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약관에 탄기에 이르기만 해도 천재라 불릴 것인데 의기라니.
괜히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환이 장로들의 수군거림을 멈추게 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게. 먼 길을 왔으니 전통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것은 내일부터 하세.”
“예. 하지만 여장을 풀고 쉬기 전에 먼저 청성의 사당을 찾아 선대의 어른들께 인사를 여쭙고자 합니다.”
진무의 대답.
쉬는 것보다 먼저 조사전에 들러 예의를 갖춘다 하니.
“오오!”
곧바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한껏 무거워졌던 분위기에 다시금 춘풍이 분다.
“저리도 예의 바를 수가!”
“허허! 무당의 홍복이 맞구먼.”
“아암. 저리 바르니 그만한 깨달음도 얻는 게야.”
노괴들은 물론 당대의 장로들까지 흐뭇해하며 진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여간 도가 놈들은 왜들 이리도 조상 챙기는 것을 좋아라 하는지.
이미 백골이 진토되다 못해 넋조차 사라진 귀신들일 텐데.
그래도 다시 분위기가 좋아졌으니 다행이었다.
“허헛, 알겠네.”
자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맨 끝자리에 앉은 도사를 바라보았다.
“상우야.”
“예, 장문인.”
“무당지검이 조사전에 예를 올린다 하니 네가 그를 도와 제를 올릴 준비를 하거라.”
“예, 장문인.”
명을 받은 상우가 갑자기 치러지는 제를 준비하기 위해 공손하게 물러났다.
“받게.”
장문인이 품에서 작은 옥패 하나를 내어 준다.
“이건?”
“청성의 통행패일세. 무당지검은 청성에 머무는 동안 청성의 규율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도록 하게. 그 옥패를 내밀면 청성의 비지를 제외한 그 어느 곳도 드나들 수 있을 것이거니와 산문 출입 또한 자유로울 것일세.”
“아!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행이다.
도문에 머무는 것은 진무로서도 딱히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모를 일이 아니던가?
장문인의 옥패를 받았으니 지루할 때마다 딱히 허락받지 않고 외유를 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저, 장문인.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드려도 되겠습니까?”
“응? 뭔가?”
“제가 머물 동안 함께 온 일행에게도 거처를 내주시면 안 될지요?”
“당가의 여식 말인가?”
도사치고 참 솔직한 사람들이다.
말 속에 당세령이 등장하자마자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겠네.”
매몰찬 말에 진무가 어색하게 웃었다. 괜히 말했나?
“……예. 장문인.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리하게.”
진무가 다시 절을 올리고 물러나 밖으로 나서자 상천이 안내를 위해 다가왔다.
“진무 도장.”
“예?”
“될 수 있으면 당가와의 친분은 언급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요?”
“근래 당가의 무인들이 청성산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아는 이야기였다.
근데 그게 왜?
“불손한 무리를 잡는다는 이유이기는 하나 따로 양해를 구하지 않고 행해진 일이라 장문인과 장로님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시거든요.”
“아!”
당위가 말했던 쥐새끼.
설마 허락조차 받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아니 남의 영역에 침범했으면 당연히! 주인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러나 이미 늦었다. 거하게 맞장구까지 치지 않았는가?
‘아, 젠장…….’
해 놓은 말이 있으니 둘이 싸우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딸년이나 아비나 어찌 이리도 자신에게 민폐를 끼친단 말인가?
제대로 싸움이 붙기 전에 양의심공 후반부를 얻어서 청성을 떠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