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이게 뭘까?
몸 안에 들어온 무언가가 혈맥 속을 누비고 다닌다.
구불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 흡사…… 뱀?
희한하게도 혈맥을 돌아다니며 돼지처럼 기운을 잡아먹고 있었다.
처먹을 대로 처먹어 배가 부풀면 아주 잠시 멈췄다가, 소화라도 시키는 것처럼 사기를 배출해 내고는 또 꾸물꾸물 움직인다.
마치 성장이라도 하는 양 몸집까지 착실히 키워 나가면서.
거참 신기한 놈일세.
근데…… 가만히 지켜보니 처먹고 있는 게 다른 것도 아니고, 진무가 각고의 노력 끝에 모아 놓은 육양진기가 아닌가?
이런 날강도 같은 것을 봤나. 감히 내 금쪽같은 진기를 허락도 없이 처먹어? 이만큼 얻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도 모르고?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이 이상 처먹히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화가 벼락같이 치민 진무가 정신을 집중해 육양진기를 끌어 올렸다.
뜨거운 열기가 단전에서 만들어져 숙련된 땅꾼처럼 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불태워 버릴 것이다.
열기를 사용해 선기를 도둑질하는 망할 놈의 뱀을 확 구워 먹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법 눈치가 빠르다.
위협을 받더니만 행동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하는 게…… 영물인가?
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 걸 집어넣은 거지?
열기를 피해 몸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걸 미친 듯이 쫓는 바람에 급기야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놈이!
이렇게 된 이상 절대 질 수 없었다.
거기 서라!
진무가 온 힘을 다해서 열기의 속도를 올리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던지 갑자기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조그만 놈들이 세맥의 곳곳으로 도망친다.
작은 놈들은 둔다.
큰 놈. 진무는 제일 큰 한 놈만 조지기로 마음먹었다.
제 덩치 때문에 세맥으로 피하지 못한 놈이 우왕좌왕하다 단전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쌍놈 새끼, 딱 걸렸어!
진무가 회음으로 가는 맥의 흐름을 닫아 진기를 처먹어 배가 빵빵하게 부푼 뱀을 가뒀다.
으하하, 넌 이제 뒈졌다!
불타 버려라!
단전에 갇힌 뱀을 향해 진무가 육양의 열기를 마구잡이로 쏟아 넣기 시작했다.
도망칠 구멍도 없이 열기에 휩싸인 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래, 악랄한 놈이 버텨 봐야 뱀 새끼지.
* * *
“어?”
진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연 양소방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당위의 얼굴에는 짜증이 잔뜩 떠올랐다.
방 안을 채웠다가 확 하고 뿜어져 나오는 저 열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대체…….”
당가에서 온 의원들이 치료한 다음 안정을 취해야 한다 말했던 터라 문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청상과 청우까지 너무 놀라 눈을 끔벅거렸다.
눈을 감고 좌정한 채로 한 뼘이나 공중에 떠올라 있는 진무.
그의 머리에서 솟구친 하얀 기운이 진무의 몸에서 빠져나온 사기(死氣)에 반응해 붉게 물들며 서서히 그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한 마리의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붉은 뱀? 서, 설마! 적사……투관이라고?”
양소방이 경악에 가까운 외침을 내는데.
“문 닫아. 저런 상황에 외기가 들면 좋지 않아.”
옆에 있던 당위가 짜증이 묻어나는 어조로 핀잔을 주었다.
조심스럽게 닫힌 문.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적사투관(赤蛇透關).
누군가 구분 지어 놓은 내공 발전의 한 단계였다.
내공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그 경지를 초월하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라 전해진다.
운기 중 붉은 뱀이 머리 위에 피어났다가 그 모습을 감추면, 그 대상은 큰 발전을 이룬다고 했다.
일설에 따르면 내공이 입신에 다다라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반박귀진(返撲歸眞)의 전 단계라고 했다.
“허, 저런 광경이!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놈들이 구분해 놓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구먼.”
양소방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듣기는 했으나 본 것은 처음이다. 아마 그것은 직접 겪는 중인 진무도, 함께 온 당위도 처음일 것이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청상과 청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고, 당위는 고까운 표정으로 잔뜩 짜증을 부렸다.
“젠장, 흡수는 잘한 모양이군. 망할 놈.”
“…….”
당위의 짜증에 양소방이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자네, 진무 도장에게 대체 뭘 먹인 건가?”
“삼양보명단(三陽保命丹).”
단답형의 대답.
“사, 삼양…… 뭐?”
당위의 목소리는 심드렁했으나 듣고 있던 양소방은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삼양보명단을 먹였단 말이냐!”
“그래.”
“맙소사!”
좋은 걸 처먹였다더니 그게 삼양보명단일 줄은 몰랐다.
중원 무림에 알려진 당가의 오대 기물 중 하나가 아닌가?
그 영능과 효력이 도가나 불가의 영단까지는 아니었지만, 운이 좋으면 능히 수십 년 내공을 단번에 취할 수 있는 무가지보였다.
그런데 그런 귀한 것을 내주었다고? 제 가문 사람도 아닌데?
양소방이 여전히 놀람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당위를 바라보자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녀석은 내 딸을 구했고, 당가는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다.”
“…….”
“그리고 처먹고 제대로 얻지 못하면 결국 요상단의 효능밖에 없어. 얻은 건 제 놈이 잘나서지.”
요상단?
삼양보명단이 요상단이면 개방의 제자들이 바라 마지않는 기물 청심단은 청심환이게?
“망할 자식이 운도 좋지. 나으라고 줬더니 그 힘까지 제대로 흡수했어. 내 딸은 그저 내상만 치료되고 말았는데.”
짜증이 나서 더 못 보겠다는 듯 당세령이 있는 곳으로 떠나 버리는 뒷모습까지도 너무도 당위다웠다.
그만한 기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으면서 저런 도도한 표정이라니.
“허, 이거 참.”
양소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어르신. 무슨 말씀들이신지?”
청상이 영문을 알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양소방이 고개를 돌려 빙긋이 웃었다.
“기연일세. 기연.”
“예?”
“자네 사숙 말이야. 둘도 없는 기연을 얻었어. 저 당가의 딸을 구하는 바람에 더 강해졌단 말이네.”
“……아!”
뭔가 이해는 안 되지만 좋은 일이란다.
사숙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자네들은 계속 이곳을 지켜야 하네. 진무 도장의 상태를 봤을 때 깨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필요할 듯하니 다른 사람이 방해를 하지 못하도록 지켜야 할 게야.”
“예!”
청상과 청우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고 양소방이 그의 거처를 떠나며 중얼거렸다.
“당위, 저놈은 정말 미쳤어. 외인에게 삼양보명단을 먹이다니…….”
* * *
양소방과 을무반 칠 조원들이 찾아오고 난 뒤 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진무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고, 당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을무반 칠 조는 양소방의 명령에 의해 당가와 동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나, 진무가 깨어나지 않은 탓에 청상과 청우는 여전히 그의 거처 앞을 지키고 있었다.
“뭐야? 아직이야?”
당세령이 진무의 거처를 찾아와 입을 삐죽거렸다.
이미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던 청상과 청우가 경계의 눈초리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 니들이 식객의 사질들이구나?”
대뜸 나오는 반말에 청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가의 직계 자손이라 해도 타 문파의 무인에게 함부로 반말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무리 진무를 구해 줬다고는 하지만…….
“하여간 약해 가지고. 뭘 얼마나 다쳤다고 아직도 누워 있어?”
반말도 모자라 방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자 청상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막아선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화를 낸 것은 청우였다.
“사숙께서 병중입니다. 아무리 당가의 자제분이라고는 하나 이런 방문은 자제해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청우의 반응에 청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예를 갖추어 꾸짖는 것이 무당의 도사다웠다.
“짜식, 뚱뚱한 게 순하게 생겨서는 제법 성깔 있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이 가관이다.
당세령이 피식 웃으며 자신을 가로막은 청우를 밀어냈다.
“어허! 물러나라 했소!”
두툼한 손을 들어 가로막는 청우의 모습에 당세령이 한숨을 내쉰다.
“니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뭐?”
“니네 사숙과 나의 관계.”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건 니들이야. 비키는 게 좋아.”
붕대가 감긴 양손을 허리 위에 올린 그녀가 눈을 찌푸렸다.
“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줘 패 놓고 시작하고 싶은데, 우리 사이엔 대화가 먼저 필요할 것 같네.”
청우를 살짝 째려본 당세령이 갑자기 그의 귀때기를 잡아 당겼다.
“이거 놓지 못 하…….”
반항을 하려던 청우가 귓속말로 무엇을 들은 것인지 마치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청우의 귀를 놓은 당세령이 싱긋 웃자.
“저, 정말……입니까?”
당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이러다가 니네 사숙이 깨어나서 알게 되면 아마 무진장 혼날걸? 내기를 해도 좋아.”
“…….”
갑자기 청우가 사색이 되어 침을 삼킨다.
“자, 그럼 비켜 봐.”
당세령이 살짝 밀자 언제 버텼냐는 듯이 청우가 얼음판에 미끄러진 것처럼 물러났다.
그리고 그녀의 앞을 청상이 다시 막아선다.
“얘 좀 치워.”
“옙!”
그저 손가락질했을 뿐인데 청우가 갑자기 충신이라도 된 것처럼 청상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 녀석, 뭐 하는?”
그사이 당세령이 진무가 누운 방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아니, 아직 위험…….”
청상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지만 당세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자는 거야? 쳇, 아프다니 깨울 수도 없고.”
당세령이 방문을 연 탓에 안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운공 중일 줄 알았던 진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운공 중에 일어난 열기가 그의 옷을 모조리 태워 버렸기에 알몸이 되어 있음에도 당세령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나마 엎드린 모습이라 앞부분은 가려져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아니! 이보시오!”
청상이 화들짝 놀라 진무의 방 쪽으로 가려는데 청우가 도통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형, 안 됩니다. 안 돼요!”
“아니, 이놈이 왜?”
“제발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사숙께서 깨어나시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
대관절 당세령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청우가 이토록 사색이 되었단 말인가?
청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춥겠네. 어이, 거기 청우라고 했니?”
“예!”
“이불 가져와서 덮어 줘. 옷도 좀 가져다 놓고. 그리고 깨어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리는 거 알지?”
“예! 알겠습니다.”
청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당세령이 사라지고 나서야 청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청상을 놓아주었다.
“이 녀석!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운공 중인 무인이 외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몰라서 그래?”
“그, 그게…….”
“시끄럽다 이놈! 운공이 끝나셨길래 망정이지, 사숙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찌할 뻔했단 말이냐!”
“그, 그게…….”
“그리고, 당최 저 여인이 무엇을 말했기에 그리…….”
청상의 서슬 퍼런 다그침에 청우가 주위를 휙휙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사숙모라는데요?”
순간 뭘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진 청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사숙모요. 사숙께서 목숨을 걸고 사숙모님의 목숨을 구했다고. 이미 둘이 바위틈에 갇혀서 하루를 보냈다고.”
“…….”
청우의 말에 청상 역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사숙모? 사숙모라니? 이게 뭔 되지도 않는 말인가?
청상의 고개가 방문을 향해 홱 돌아갔다.
설마 사숙이 금녀의 규율까지 어기신 것인가?
안 될 말이었다.
그것만은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된다. 육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비교적 여인에 대해 자유로운 다른 도문에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무당에서만큼은 불가한 일이었다.
기녀를 끼고 놀아도 엄청난 추궁을 받을 일인데 혼인이라니!
다른 제자라면 파문이라도 당하겠지만 진무만큼은 안 된다.
그는 무당지검이다. 그 파장이 어마어마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청우가 이불을 가지러 가는 사이 망연한 표정으로 방문을 바라보던 청상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아…… 사숙. 어쩌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