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진무가 깨어난 것은 청우가 이불과 옷을 챙겨 왔을 때였다.
머리가 멍했다.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당위가 대랑을 죽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대랑이 당위를 이길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아무리 그가 당위에 필적하는 경지의 무인이라 해도 이미 당위를 만났던 순간에 진무와의 싸움으로 인해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상황은 대충 정리됐을 테고, 당세령도 살았겠지.
그런데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옷은 홀딱 벗겨져 있었고, 이상하리만큼 몸이 가뿐했다.
뱀 꿈을 꾸어서 그런가?
하긴 선기 먹는 뱀 새끼가 보통 뱀이겠는가? 필시 길몽일 터였다.
좋은 일이 생겨야 마땅한데 지금 이 상황은 또 뭘까?
청상과 청우, 정무맹에서 열심히 교육이나 받고 있어야 할 놈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사숙! 아니지요?”
진무가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청상이 다짜고짜 다가와서 눈을 부릅뜨고 묻는다.
“뭐라고 말 좀 해 주십시오. 사숙!”
뭘 말하라는 거냐, 이 새끼야.
그것보다 흔들지 마라, 머리 울린다.
진무가 짜증스럽게 청상의 손을 치워 내는데 옷과 이불을 내려놓은 청우가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저건 또 왜 저래?
원체 뚱뚱한 놈이라 살짝만 움직여도 눈에 다 보이는데 은밀한 척은.
“사숙!”
“아 왜, 인마!”
청상의 부름에 진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지요?”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그, 그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집어치우고, 니들이 어째서 여기 있냐?”
진무의 신경질에 청상이 용봉관의 사정과 임무, 그리고 자신들이 백가장을 지나 사천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양소방도 함께 있다고?”
“예.”
“흠.”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밖으로 나갔던 청우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사숙! 사숙! 사숙모께서!”
이건 또 뭔 개소린가?
사숙모라니?
진무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청우가 급한 일을 고하듯이 외쳤다.
“사숙모께서 끌려가고 계십니다.”
이것들이 약이라도 처먹었나?
사숙모는 누구고 끌려간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어서 나가 보십시오.”
청우는 다급하고 청상은 절망적인 표정이다.
이것들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도무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진무가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청우가 가져온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 이건 챙겨야지.
나중에 쓸모 있을지도 모르니.
진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혈까지 챙겨 후원과 연결된 객점의 문을 열자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 진무를 맞이했다.
“허헛! 일어났는가?”
양소방이다.
쪼개지 마. 안 보고 싶었어.
“진무 도장, 이렇게 또 보게 되는구려.”
청성의 자경.
“당대의 무당지검을 뵙소이다.”
합장해 오는 파르스름한 머리의 여중은 아미인가?
깨어나 보니 뭔가 많이 변해 버린 것 같은 상황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절한 때에 깨어났구먼. 을무반 칠 조를 자네 곁에 두고 가려 했더니. 당가는 이미 출발 준비를 끝냈다네. 우리도 막 출발할 참이고.”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길이 없다. 누가 설명부터 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놔! 안 갈 거야! 절대로 안 가!”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세령이 분명하다.
자신보다 훨씬 중한 상처를 입었을 것인데 목소리를 보니 더없이 짱짱하다.
정말이지…… 경이로울 정도의 회복력이었다.
그나저나 왜 저리 소리를 지르지?
진무가 의아함을 품고 객점 밖으로 나가자 당가의 무인들이 보였다.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당세령은.
“묶어!”
당위의 명령에 의해 팔다리가 묶이고 들려서 마차에 태워지고 있었다.
“이거 풀어! 풀라고! 얼굴 기억했다! 어! 니들 진짜!”
발로 차고 때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곤 진무를 쳐다보며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구해 줘! 빨리! 너 따라갈 거야!”
“시끄러워! 절대로 안 돼! 너는 돌아가는 순간 한동안 구금이다.”
여전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진무가 그 난장판을 멀뚱히 쳐다보는데 눈살을 팍 찌푸린 당위가 냅다 당세령의 수혈을 짚었다.
“구해…….”
잠들어 버린 당세령은 결국 마차에 실렸다.
“고얀 놈. 잘도 깨어난 모양이구나.”
진무를 바라보는 당위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구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진무가 당위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은 아니었으나 그가 자신을 구한 건 사실이니까.
“은혜는…… 갚았다.”
“…….”
“후에 또 보자꾸나.”
당세령을 짐짝처럼 실은 당가가 떠나고 그 뒤를 따라 청성과 아미가 진무와 양소방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근데 무슨 은혜를 말하는 거지?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양소방이 다가왔다.
“자네, 삼양보명단을 먹었다네.”
“삼양…… 예에?”
진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당가의 기물인 삼양보명단에 대해 모를까?
그런데 그걸 내가 먹었다고?
진무가 놀라는 가운데 양소방이 그가 정신을 잃었던 사이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적사……? 그 뱀이 그럼.”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적사투관이라니.
진무 역시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쩐지 깨자마자 전신에 힘이 넘친다고 했다. 진무는 가만히 기를 일으켜 단전을 살폈다.
늘었다.
이전보다 확연하게 커진 단전을 가득 채운 기운.
그리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녀석들이 세맥에서 느껴져 왔다.
아, 마지막 순간에 뱀이 새끼를 쳤었지.
거참, 당위 이 녀석.
정말 좋은 녀석이 아닌가? 자신이 잠든 사이에 그런 기특한 짓을 해 놓았다니.
나중에 정사의 수장이 되고 나면 좀 챙겨 줘야겠다.
진무가 감탄 어린 시선으로 멀어진 당가의 뒷모습을 좇는데.
“이제 자네는 어찌할 생각인가?”
“예?”
“우리는 곧바로 당가로 갈 생각이라네.”
“아.”
청랑대의 무인들 중 일부가 포로로 잡혔다 했으니 그들을 심문해 그들의 배후를 밝혀낼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백가장에서 자네가 잡아 둔 자가 무혈을 찾고 있었고, 그로 인해 노려졌다고 하던데? 혹 아는 것이 있다면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아무 생각 없던 순간 훅 치고 들어온 양소방의 말에 진무가 어색하게 웃었다.
양의심공 때문이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다.
대랑이라는 놈들의 세력에 내어 주기도 싫지만 양소방에게도 내어 주기 싫었다.
“이것이 무혈입니다.”
진무가 품에 갈무리해 두었던 소검 무혈을 꺼내 양소방에게 내밀었다.
“그저 그들이 찾고 있기에 얻었을 뿐 어떤 비밀이 있는지는.”
“흐음. 아는 게 없단 말인가?”
“예.”
“그렇군. 하면 조사를 해 봐야 할 터인데…….”
양소방이 뒷말을 흐리자 진무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냥 달라고 해라, 이 자식아!
어차피 조각을 얻은 이상 무혈은 이제 무의미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열쇠라 밝혀져도 뭔 상관이란 말인가? 내용물은 내가 먹어 버렸는데.
버티다 귀찮은 일을 당하느니 그냥 줘 버리는 게 낫다.
“안 그래도 불의한 자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 염려되어 지니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르신께서 맡아 주십시오.”
“그래도 괜찮겠는가?”
“당연한 일을요.”
진무가 환하게 웃었다.
지금으로서는 무혈에 대해 절대로 모를 것이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자네로 인해 그동안 그들에 대해 미진했던 조사가 큰 진전을 볼 듯 하네. 어떤가? 자네가 함께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될 듯한데?”
무혈을 받아 챙긴 양소방의 말에 진무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궁이라는 자들에 대해 알기보다는 서둘러 곤륜으로 가야만 했다.
그들은 계속 조각을 노릴지도 모른다.
비록 뒷걸음질에 특화된 소는 당가로 끌려…… 돌아가 버렸으나, 어쨌든 지금은 대랑과 한패인 놈들보다 조각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혹시 그놈들이 아니라도 양소방이 무혈에 대해, 나아가 양의심공에 대한 것을 알아 버리면 그도 그 나름대로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고.
“저는 표주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흠.”
양소방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리하게. 이제 그들을 쫓기 위해 정무맹과 그 예하의 문파들이 직접 움직일 터이니.”
“예.”
“그럼 서둘러 당가를 따라가야 하니 이만 헤어지세나.”
“알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양소방이 이동을 위해 준비하는 사이 청상과 청우가 다가왔다.
“사숙. 아니지요?”
“아니, 자꾸 뭐가 아니란 말이냐?”
진무가 확 짜증을 내자 청우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 사숙모께서…….”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사숙모가 누구냐고!”
“예? 당가의…….”
진무가 청우와 청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가의……?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데릴사위 어쩌고.
설마 그년이? 청우와 청상에게?
“너희들 지금 당세령과 나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의심하는 거냐?”
“그분께서 직접 그렇다고 말씀을…… 함께 하룻밤을…….”
진무의 물음에 청우와 청상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진무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진무가 보여 왔던 모습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오, 쌍…….”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충성을 다해 따르겠다고 했던 놈들이 이런 의심을 품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아니다.”
“그, 그렇죠?”
대답은 하고 있지만 둘 다 눈에 떠오른 의심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이런 미친 허언증 여자가 진짜.
순진한 도사 놈들에게 그딴 말은 왜 해 가지고!
“아니야! 아니라고!”
“그렇죠?”
이거 어째 부정할수록 역효과 같은데……. 이 새끼들이 하늘 같은 사숙님을 뭘로 보고 지금.
“휴, 됐다. 말을 말자. 그나저나 니들은 이제 돌아가냐?”
“모르겠습니다. 사숙을 따라나서야 하나 하는 생각도 조금 들고…….”
“뭐 하러?”
“예? 그야 지금 보니 꽤 위험한 일들을 겪으시기도 했고……. 혹시나 또 여인들과…….”
따악!
진무가 거칠게 청상과 청우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니들 그냥 가라.”
“…….”
“아직 시험 중이라며?”
진무는 청상과 청우의 말을 통해 용봉관에 대해 조금 들은 상태였다.
“여덟 명만 뽑는다며?”
“예.”
“가서 합격하고 와.”
“…….”
“당당히 갑무반에 들어. 그러고 나서 따라와도 따라와. 지금 수준이면 괜히 짐 덩어리만 될테니까.”
진무의 말에 청상과 청우가 시무룩해진다.
무당에 있을때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거칠기는 해도 진무를 통해 배워 익혀 지금의 자신들이 되었다.
그 은혜로움에 대한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이제 또 떨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본단 말인가?
그리고.
“그래도 따라가는 것이…… 혹시라도 또 다른 여인과…….”
청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진무의 미간을 잔뜩 구겨 놓았다.
“그래? 좋아. 그럼 오랜만에 수련 좀 할까? 실력 파악도 할 겸.”
진무가 싸늘한 살기를 머금으며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하긴, 용봉관에서 가르쳐 봐야 얼마나 가르치겠냐. 뒈질 때까지 처맞다 보면 훨씬 더 배우지 않겠어? 안 그래?”
“…….”
진무의 사악한 미소에 청우와 청상이 울대가 울컥거리도록 마른침을 삼켰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할까?”
“아, 아닙니다. 사숙! 시험도 남았고! 무풍개 어른께서도 저희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리가.
고작해야 무당 이대제잔데.
하지만 진무가 피식 웃으며 움켜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그럴래?”
“예!”
“청상아.”
“예!”
“그, 갑무반. 될 수 있지?”
“예!”
“그래, 넌 될 거야. 근데…….”
진무가 청우를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짓자 청우가 소름이 저절로 돋아 오르는지 몸을 떨었다.
“청우도 가능해야겠지?”
“…….”
“이 사숙은 너희 둘. 다. 꼭 갑무반이 되었으면 좋겠네?”
“예!”
청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진무의 중얼거림이 그의 귓가에 꽂히듯 들렸다.
안 되면 둘 다 뼈째로 갈아 버리겠다는.
“다들 출발할 모양이다. 이만 가거라.”
“……예!”
“목숨 걸고 해, 목숨 걸고. 응?”
“…….”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좋아. 그럼 가 봐.”
청상과 청우는 양소방을 따라 떠났다. 못내 아쉬운 듯이 몇 번이나 뒤돌아보는 둘을 진무가 환한 미소로 배웅하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가라, 가. 어여 꺼져라, 이놈들아.
이 사숙 곤륜 좀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