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추혈살귀의 앞을 막은 노인이 진무를 바라보았다.
“양다리가 모두 으스러졌으나 목숨은 붙어 있습니다.”
그 사이 이강백의 몸을 살핀 무인이 말하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나는 공손승일세.”
“…….”
아무리 팔십 년을 산 노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교의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진 못한다.
관도에서 ‘어이, 장 씨!’하고 부르면 삼 할은 고개를 돌리는데 그 많은 이름을 어찌 다 기억한단 말인가? 특출난 명호라면 모를까.
“유, 육지마동!”
고맙다, 시기적절하게 설명해 줘서.
경악한 운암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육지마동?
그러고 보니 나타난 노인네가 어린애처럼 작은 몸에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아, 들어 본 것 같다. 그러니까 분명…… 마교의 장로 중 한 명이었나?
기억이 맞다면 마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
비교하자면 등여평 정도는 될 터였지만, 그래 봐야 장로 따위에 쫄 일은 아니다. 북리도천이 직접 나왔다면 몰라도…… 원래라면 말이지.
문제는 이강백과 칠동천의 정예와 싸운 직후라 이쪽의 내력 소모가 심하다는 데 있었다.
육지마동도 육지마동이지만, 그의 뒤를 따라 나타난 백여 명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운암과 곤륜 제자들은 부상이 심하니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즉, 여차하면 진무 홀로 싸워야 했기에 최대한 내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태청신단과 달리 최근에 취해 완전히 흡수되지 못하고 세맥에 남아 있는 삼양보명단의 기운 일부.
진무는 재빨리 세맥에 쌓여 있는 삼양보명단의 기운을 은밀하게 돌려 단전을 채웠다.
길을 열어 주자 물 만난 고기처럼 단전을 향해 치닫는 기운. 연단하지 못한 불순물 덩어리라 쓰고 나면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고, 몸에 무리도 꽤 갈 것이었으나 당장은 도움이 될 터였다.
“이강백이 이 모양이 되다니. 제법이군.”
“기본이지, 기본.”
빈정거리는 진무의 말투에 진무를 향해 칼을 들이밀고 있던 추혈살귀들이 잡아먹을 듯한 얼굴로 혈광을 뿜는다.
이 새끼들 죄다 잠을 못 잤나?
토깽이 새끼들도 아니고 눈까리가 왜 전부 시뻘게?
그나저나 자꾸 야려라, 확 다 뽑아 버리려니까.
그러나 살기를 내뿜으면서도 움직이지는 않는다. 육지마동의 명이 없기 때문이겠지. 짖기는 할지언정 충성스러운 개새끼들이라 이거야.
“그대는 누군가?”
“나? 말 주인.”
“…….”
장난스럽게 말하며 웃는 진무의 모습에 공손승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가 받은 명령은 이강백의 확보였지 곤륜과의 전쟁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허나 조심하게.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때론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하니.”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진무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말싸움에서도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아쉽군. 교주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네놈의 그 예의 없는 주둥이를 아주 뭉개 놓았을 것인데.”
그 말 역시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지만 공손승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북리도천의 명령이 있었다고?
어떤 명령?
“본래라면 네놈에게 칠동천의 정예를 죽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나 이강백을 놓아준다면 그만 물러날까 하는데?”
“교주가 이강백은 데려오라 했던 모양이지?”
“…….”
“한데 어쩌지? 나는 아직 받을 게 남았는데?”
“받을 것이라고?”
“그래. 그의 목숨까지 받아 내야 빚 청산이 완료되거든.”
단전이 어느 정도 채워졌다.
아랫배가 빵빵할 정도로 포만감이 느껴진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놈은 아직 진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분명 약관의 무인이라고 방심하고 있을 것이니 절대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 틈을 노려 단번에 끝내 버릴 참이었다.
“불가한 일이군. 나는 이강백을 반드시 살려서 데려가야 하니.”
“그럼 덤으로 니들 모가지까지 받아 내면 되겠네.”
진무가 한 발을 물리며 자세를 잡자 공손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놈, 무언가 착각하는군. 네놈의 지금 행동으로 인해 뒤에 있는 곤륜 도사들이 죽는 것은 물론 정마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다.”
“오, 마교 놈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뭐?”
“니들 목표가 중원을 마도로 짓밟는 거 아니었어?”
“…….”
“상관없어. 이놈들이 다 죽든, 정마대전이 일어나든. 나는 내가 받아야 할 것만 받아 내면 되니까.”
쿠우우우…….
진무의 몸에서 막대한 기운이 일어나 거칠게 뿜어졌다.
이전까지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운.
지금까지 진무의 몸에서 느껴진 것은 거칠긴 했으나 청량감을 머금은 선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기운은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진한 사이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짜릿하다.
연단하지 않은 기운이라 불순물이 많다.
폭발적이고 거칠다.
진무가 자신도 모르게 희열에 찬 얼굴로 공손승을 노려보았다.
“네놈? 도사가 아닌가? 어찌 이런 기운을?”
진무의 기운이 예상치를 웃돌자 공손승이 살짝 긴장했다.
추혈살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무의 기세에 대기가 뒤틀리는 것도 모자라 진하게 떨려 오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마교 인물들과 진무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극을 향해 치달아 오르던 그때.
“멈추시오!”
웅혼한 도력을 머금은 인물들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그만 멈추시오!”
“…….”
그들의 모습에 진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곤륜의 장로이자 신영관의 주인 운검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내려서는 것은 곤륜의 일대제자로 구성된 삼청검수들이었다.
곤륜의 도포가 학창의와 비슷하기 때문일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고고한 모습으로 비행하다 떼 지어 집을 찾아드는 학처럼 보였다.
검을 등 뒤로 잡은 운검이 진무의 앞을 막아서고, 삼청검수들이 진무의 뒤에 넓게 포진했다.
“진무 도장은 기운을 거두시게.”
“…….”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 목숨값을 더 받아 내야 하기도 했거니와, 이미 세맥에 있던 삼양보명단의 기운을 단전에 모조리 때려 박은 뒤였다. 연단도 안 된 기운이었기에 여기서 흩어 버린다면 쓰지도 못하고 날릴 판이었다.
“진무 도장!”
왜 자꾸 불러!
오려면 진작에 올 것이지 뒤늦게 나타나서는!
진작 왔으면 아까운 삼양보명단의 잔류 내공까지 쓰는 일은 없었잖아!
“이제부터는 곤륜이 맡겠네.”
호의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하는 운검.
잘도 그딴 소릴 지껄인다.
하지만 운검이 부탁하듯이 말해 오는데 마냥 버틸 수는 없었다. 그의 말처럼 곤륜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는 싫었다.
한 대만 때리면 안 될까? 기껏 모은 거 다 날려 먹을 생각만 하면 진짜 너무너무 아까운데?
진무가 영 아쉬운 듯이 주먹을 움켜쥐고 공손승을 노려보자 운검이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마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자네의 마음은 알겠네.”
응, 아니야.
“민초들의 죽음에 분노한 것도 알겠네.”
그건 얼추 다 받았어. 화도 풀렸고.
“아직 젊어 혈기 넘치는 것은 알겠네만 대승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네. 지금 저들과 부딪히면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알아! 아는데…….
“진무 도장. 내 말을 듣게.”
“…….”
자신을 바라보며 따뜻한 눈길로 설득해 오는 운검의 모습에 진무는 이 눈깔도 파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가, 어쩔 수 없이 기운을 흩었다.
잘 가라, 삼양보명단.
힘이 빠져 버린 진무가 축 처진 어깨로 물러나자 운암이 다가왔다.
“진무 도장, 이제 그만 쉬십시오.”
“…….”
“그대의 의기에 내 많은 것을 깨달았소. 그대는 진정한 도문의 제자로서 민초들의 복수를 해 주었소.”
너한테 그딴 칭찬 듣자고 한 일 아니다.
진무는 사라져 버린 삼양보명단의 기운을 그리워하며 귀를 막았다.
그사이 마교인들과 대치한 운검이 공손승을 노려보았다.
“육지마동. 그대들은 이번 일로 청해에 큰 피해를 끼쳤소.”
“…….”
“이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싸움이라도 하자는 말인가?”
“원한다면.”
운검이 가슴을 펴자 삼청검수들이 진한 선기를 뿜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공손승이 날카로운 눈으로 운검과 그의 뒤에 선 삼청검수, 그리고 운암의 곁에 앉은 진무를 노려보았다.
곤륜의 무인이야 공손승 본인의 무위와 추혈살귀 일백이라면 능히 해 볼 만했다. 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뒤로 물러난 도사였다.
그가 뿜어내었던 기세.
자신에 비해서도 결코 낮지 않으니 과하게 신경 쓰였다.
부딪힌다면 득보다 실이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쯧, 안타깝군. 하나 나는 이강백을 데리고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네놈들의 목을 전부 따 버리고 싶지만 이번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하지만 방해한다면 싸워 주겠다.”
“구야자는?”
“그를 데려오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
“하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교주께선 구야자 따위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
“…….”
하긴 북리도천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손승의 말에 운검이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듯 가만히 바라보는데 물러나 있던 진무가 중얼거렸다.
“구야자 같은 소리들 하네. 어차피 탈을 뒤집어쓴 가짠데.”
“……?”
그의 말에 운검과 공손승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진무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냐?”
툭!
공손승의 말에 진무가 가짜 방유척의 곁에 떨어져 있던 거죽 하나를 주워 휙 던졌다.
인피면구.
그를 바라본 운검과 공손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니들 속은 거야. 어떤 놈들이 가짜를 내세웠고, 이강백은 그 미끼를 문 것이지.”
“미끼를 물었다고?”
“그래. 휘둘린 것이지.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이런 짓을 벌였다면 마도와 곤륜, 혹은 정무맹이 싸우기를 바란 걸 테니까.”
“…….”
진무의 말에 운검은 의아한 눈빛을 했고, 공손승은 눈을 찌푸렸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군. 잘 알았다.”
공손승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무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대의 이름을 알려 줄 수 있겠는가?”
“무당의 진무다.”
“……진무. 기억해 두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맥이 다 풀려 버린 진무였다. 이젠 그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진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공손승이 운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울 생각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리라.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며 전쟁을 해 왔으니까.
운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 역시 싸움을 원치 않았다. 언젠가 마교를 무너뜨려 정도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것은 원대한 목표이자 그들의 존재 이유였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들이 물러난다면 굳이 막을 이유는 없었다.
마도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지금 저들과 싸운다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일. 마교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곤륜의 힘이 부족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날 것이고, 만에 하나 북리도천이 직접 중원으로 나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불어닥친 피바람이 쉬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러모로 정리할 시점이었다. 더욱이 상대가 가짜라곤 해도 구야자를 놓고 물러난다니, 더없이 좋은 조건이 아닌가?
“다음 전쟁에서 만나지. 그땐 반드시 목을 잘라 줄 터이니.”
“마찬가지외다.”
“허세는. 복귀한다!”
운검의 대답에 공손승이 피식 웃으며 몸을 물렸다.
하지만 절대로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물러나는 마교도들은 혹여 그들이 뒤를 공격해 올까 경계했고, 지켜보는 곤륜 도사들은 혹여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기세를 유지했다.
공손승과 추혈살귀들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팽팽했던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곤륜의 이번 전쟁은 끝났다.
조금은 흐지부지되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무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또 한 번 마도의 무리들을 몰아냄으로써 중원을 지켜 낸 것이니까.
“고생들 하였다.”
운검이 운암과 곤륜 도사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입은 상처 때문인지 얼굴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모두가 진무 도장 덕분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강백과 칠동천의 정예에게 당해 이미 명을 달리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구야자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구요.”
“으음.”
운암의 대답에 운검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무를 향해 진심을 다해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곤륜은 민초들을 지키고 곤륜의 제자를 구해 준 무당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네.”
어이, 무당이라니? 말은 바로 해야지, 진무 도장의 은혜라고.
그리고 인사할 거면 영단 같은 거라도 내놓으면서 하든가, 어?
지금 연단도 못 한 삼양보명단의 잔 기운들이 싸그리 날아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