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역시 경험이 부족하군.’
방가후는 단번에 유운검이 가진 단점을 파악해 내었다.
검을 쥔 손, 하단의 방어.
잘 감추고 있었지만 가끔씩 흐름이 끊어지고 있었다.
방가후는 그것을 그저 초식 운용이 미숙한 이대제자 청상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아깝게 되었군. 이대제자치고는 제법 대단한 실력이었는데.’
약점을 잡았다 생각한 방가후의 앞발이 단번에 내뻗어져 청상의 우측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껏 뒤로 당겼던 주먹을 빠르게 뻗었다.
후웅!
“……!”
그 순간 적중되어야 할 주먹이 허공을 갈랐고, 방가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허리를 빼 주먹을 피하며 검이 반대편 손에 잡히자마자 곧게 뻗었다.
“이런!”
고스란히 전면을 노출해 버린 방가후가 당혹성을 뱉어 내었다.
청상이 노린 것은 방가후의 목.
천돌혈.
“큭!”
검집의 끝이 깊숙이 틀어박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힌 방가후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고의로 허점을 노출한 청상의 전략이 제대로 적중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검격.
잘한다!
조질 때는 확실히 조져 놔야지!
새끼,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진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빠악!
첫 번째 검격이 방가후의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들며 난타가 시작되었다.
이 맛이지. 줘 패기 시작하는데 초식은 무슨.
빡! 빠바박!
방가후는 정신없이 청상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기 시작했고, 지켜보는 제갈근의 눈에 노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저런 멍청한!’
시험해 보라 보냈더니 신나게 처맞고 있었다.
“가후! 어린애를 상대로 부끄럽지도 않은가!”
딱 봐도 동년배인데 어른스러운 척은 더럽게 한다.
제갈근의 외침이 객점을 날카롭게 울렸다.
그 순간 얻어맞고 있던 방가후의 몸에서 예리함을 가득 머금은 기류가 회오리처럼 쏟아져 나왔다.
쩌엉!
“크으윽!”
신나게 검을 휘둘러 패던 청상이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검집은 튕겨져 나가 검신이 드러났고 검병을 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그의 앞에는 방가후가 흉신악살처럼 변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뽑혀 나온 검에 시퍼런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검날을 감싸다 못해 그 끝을 넘어 뱀의 혀처럼 넘실거리는 검기(劍氣).
일류라 평가받는 이들의 전유물인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다 이긴 판을.
멍청하게도 손속에 사정을 둔 게 틀림없었다.
승기를 잡는 순간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아주 작살을 내 버렸어야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청상을 돕기 위해 일어나려던 진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물러난 청상의 검.
우우웅.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검신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기가 채워지며 발생하는 공명 현상.
그리고 검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충검.
청상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층의 제갈근의 놀라는 눈동자가 제법 볼만했다.
‘어디, 좀 더 지켜볼까?’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던 진무가 다시 자리에 앉자 청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사, 사숙. 검긴데요?”
“그래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가만히 청우를 바라보던 진무가 한숨을 쉬었다.
따악!
“아얏!”
“돕긴 뭘 도와!”
“질 것 같아서…….”
져? 확 그냥! 승부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 같으니.
이런 놈이 어떻게 청상을 이겼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런 게 내 제자를 하겠다고 따라다니다니.
어쨌든 진무는 청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호오? 충검? 고작 약관에 이른 것 같은데 제법이군. 허나.”
방가후 역시 청상이 만들어 낸 충검에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막 기를 주입한 충검과 검기의 경지는 천지 차이였다.
기의 응집도가 다르니 위력이 달랐고.
무엇보다 거리.
한 개인이 가지는 공격 거리인 간격(間隔)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거기까지다!”
취릿!
백색의 검신이 가볍게 휘저어지자 검기가 쭉 하고 늘어나며 채찍처럼 크게 휘었다.
쫘악!
예상치 못한 궤적에 청상이 다급히 피했지만 새로 입은 도포의 끝자락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땅! 까강!
검기와 충검이 부딪혀 귀를 찢어 대는 소음을 만들었다.
청상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공격은커녕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기를 겨우 막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어떻게든 방가후의 틈을 잡아내기 위해 열심히 거리를 좁히려 하고 있었다.
기특하다.
무인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하지만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검기가 나온 이상 죽지는 않겠지만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청상이 패배한다면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저 재수 없는 제갈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제자는 아니지만…… 나중에 수련 좀 시켜야겠구만. 이거 같이 다니기 쪽팔려서, 원.’
진무가 일어났다.
그리고 막 수세에 몰려 물러나기 시작한 청상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따아앙!
어느새 뽑혀진 검이 방가후의 검기를 튕겨 내었다.
지이잉.
충격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검신이 잘게 떨렸다.
탁.
손잡이를 잡아 뒷짐께로 검을 돌린 진무가 턱을 슬쩍 치켜들고 가늘게 뜬 눈으로 방가후를 깔아 보았다.
“이놈! 감히 승부에 끼어들 참이냐!”
“승부? 옘병하고 있네.”
“뭐?”
“칼 꺼냈지? 이쯤 되면 그저 실력 확인이 아니라 막가자는 이야기잖아. 어디 하나 부러져도 되고, 실수로 뒈져도 할 말 없고.”
“이, 이놈이.”
“자, 난 시비를 걸었고, 넌 받았고.”
“…….”
“이해되지? 자, 그럼 대충 니가 대단하다는 건 알았으니까 이 차전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착한 내 새끼 괴롭히지 말고.”
진무가 새하얗게 빛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이, 이놈이…….”
“사숙!”
진무에 의해 가로막힌 청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순간 방가후는 물론, 제갈근과 제갈세가 학사들의 눈동자에 놀람이 어렸다.
사숙.
분명 사숙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진자 배.
‘사숙이라고? 저렇게 어린 자가?’
특히 제갈근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자 배, 무당의 일대제자.
무당 장로들에게 직접 사사하고 있는 무인들.
나이는 대부분 서른 중반, 무당의 실질적 주력이라 불리는 무인이었다.
“뭐야? 설마 나를 이런 꼬맹이들이랑 같이 놓고 생각한 건 아니지?”
“…….”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사숙,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청상이 발끈하며 외쳤다.
“청상아.”
“……예.”
“아주 잘했어.”
진무가 초승달처럼 휜 눈으로 청상을 향해 싱긋 웃었다.
“이제부턴 저런 새끼를 어떻게 조지는지 알려 줄게. 잘 보고 배워.”
“아!”
청상의 눈이 반짝거렸다.
진무의 무공.
진허와의 비무에 대해 청우에게 들은 적만 있지, 본 적은 없었다.
팔룡파 식구라는 이들과 십언이흉과 싸울 때 보여 준 것은 딱히 무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냥 팼다.
그런데 사숙이 직접 무공을 보여 준다니,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이, 콧수염. 뭐 해? 니네 주인 기다린다.”
“……방가후다.”
“그거나 그거나. 꼬맹이 뒤치다꺼리나 하고 다니는 병신 새끼 주제에.”
“어린 도사가 말이 심하군.”
진무의 말에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져 버린 방가후의 몸에서 스산한 살기가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그렇지.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래야 줘 패는 맛이 있지.”
진무의 눈동자가 사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가후!”
순간 제갈근이 당황하며 외쳤지만 방가후는 제어되지 않았다.
좋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당의 일대제자.
살기를 품은 이상 비무가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문파 간의 마찰로 이어진다.
아무리 세가 약해진 무당이라 해도 정파의 종맥이었다.
그리고 일대제자라면…….
“젠장!”
방가후를 말려야 한다 생각한 제갈근이 급히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진무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그리고 살기를 머금은 방가후의 검이 묘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었다.
본가가 아닌 분가에게 허락된 소천성검(小天星劍).
청상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좌우의 방위를 번갈아 밟으며 휘저어진 검에 이어진 한 줄기 검기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하지만 진무는 피할 생각조차 없는 듯이 걸음을 내디뎠다.
“사숙!”
검기를 코앞에 둔 절체절명의 순간 청우와 청상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스륵.
순간 진무의 검이 묘한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절묘하게 검기의 방향을 비틀었다.
“아!”
진무의 검신에 보일 듯 말 듯 어려 있는 푸르스름한 기운.
충검이다.
진무는 검기를 사용하지 않고 청상처럼 충검으로 방가후의 검기를 흘려 버렸다.
부딪치거나 막지 않고.
마치 사부가 제자에게 충검의 사용법을 알려 주듯이.
크크, 무조건 세다고 좋은 게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거란다, 이 무식한 놈아.
콰콰쾅!
방가후가 연속적으로 검기를 뽑아내며 공격을 했지만, 진무의 몸에 닿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검면을 타고 흘러 멀쩡한 객점 바닥만 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방가후가 뿜어내는 살기가 진해지고 검격은 훨씬 더 촘촘해졌다.
그리고.
세 발자국의 거리.
짧게 휘어진 검신이 방가후의 검격 사이를 파고들며 사라졌다.
짜아악!
첫 번째 걸음.
옆으로 세워진 검면이 방가후의 왼쪽 볼에 작렬했다.
고개가 꺾여 한쪽으로 치우쳐 버린 방가후.
“크으…….”
빠각!
두 번째 걸음.
바닥으로 눕혀진 검면이 훤하게 드러난 방가후의 쇄골 뼈를 바스러뜨리고.
“끄억!”
빠박!
세 번째 걸음.
방가후의 뒤를 점한 진무의 발이 그의 무릎 뒤를 강하게 때렸다.
쿠웅!
방가후의 무릎이 거세게 바닥을 찧었다.
그리고.
턱.
검을 던져 버린 진무의 손이 방가후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끄으…….”
무릎이 꿇린 채 머리가 뒤로 꺾인 방가후는 진무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딱 여기. 앞으로는 이렇게 우러러보도록 해. 알겠지?”
사악하게 피어오르는 미소와 함께 높이 들렸던 주먹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퍼억! 퍽! 퍽! 퍽!
둔탁한 소음이 객점을 가득 채우고 튀어 오른 피가 바닥을 적셨다.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에 그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방가후는 진무에게 머리가 잡힌 채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린 듯 몸만 잘게 들썩이고 있었다.
“그만!”
보다 못한 제갈근이 그를 말리기 위해 끼어들었다.
쉬익!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음과 함께 뻗어진 손이 진무의 손목으로 날아왔다.
그가 사용한 것은 제갈세가의 금나수법인 응혈신조(凝血神爪)였다.
손목을 잡아 비틀어 꺾은 다음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
잡았다 생각했던 진무의 손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고, 어느새 방가후의 머리를 잡아끌고 피한 진무가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방가후가 당했고, 수하들이 보고 있었다.
가문이 자랑하는 금나수를 사용했음에도 행동을 멈추게 하기는커녕 손목조차 잡을 수 없자 제갈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세인들은 제갈세가라고 하면 기관진식과 남다른 지혜를 가진 학사의 가문이라 평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말이었다.
제갈세가도 엄연히 무림에 적을 두고 있는 무가였고, 그중에서도 거대 세가에 속했다.
단지 무(武)보다 문(文)이 더 뛰어난 것이지 결코 무공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호북 최고의 가문이었다.
쪽팔림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제갈근이 급기야 소천성신공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움직임에 속도를 더했다.
취리릿!
손가락 끝에 옅은 기운이 피어오르며, 응혈신조의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지고 노리는 곳도 다양하게 변했다.
다른 이도 아닌 제갈분가의 직계가 최선을 다해 펼치는 무공이었다.
그쯤 되니 진무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손목도 아니고 어른 멱살을 잡으려고 해?
응수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