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자, 저딴 허접한 것들에게 잡혀서 물도 못 구해 온 것에 대한 화풀이는 끝났고…….”
“…….”
“니가 이랬냐?”
무심히 물으며 일환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 일환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분명 얼굴은 미약하게나마 웃고 있는데 눈동자에 담긴 가공할 살기와 포악함이 뇌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디 허락도 없이 내 걸 건드린 데 대한 이유나 좀 들어 볼까?”
대기를 타고 잔잔히 흘러드는 분노에 일환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감히 추측이 안 되는 고수.
더욱이 저자가 나타난 순간부터 공기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해졌다.
기로써 일정한 공간의 대기를 지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대한 공력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일을 저리 대수롭지 않게 행한다는 것은……. 최소 강기 이상의 경지?
“없냐? 없으면 안 될 건데?”
미간을 모아 눈썹을 팔자로 휘면서 웃는 진무의 표정이 일환의 불안을 더욱 키웠다.
“네놈은 누구지?”
긴장 가득한 일환의 물음에 진무가 물끄러미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거참, 대가리 안 구르네.”
“뭐?”
“내가 먼저 내 새끼 건드린 이유를 물었잖아. 그러니까 답을 해도 니가 먼저 해야지. 순서가 그래, 순서가.”
“…….”
같잖다는 기색이 역력한 미소에 일환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대체 이 새끼는…….
하지만 진무에게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위압감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더욱이 재수 없게 쳐다보며 웃는 저 표정이 이상하리만큼 심장을 옥죈다.
마치 건드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하들이 보고 있기에 일환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꼿꼿하게 세웠다.
“네, 네놈……은 뭐 하는 놈이기에 우리 마령대를 공격해 육동천을 적으로 돌리려는 건가?”
공격? 육동천을 적으로 돌려?
“철혈의 마교 어쩌고 하더니 다 옛말이구만. 마교의 무인이란 새끼가 지가 안 될 것 같으니까 뒷배를 들먹이네?”
“뭣이?”
“하긴, 동네 꼬마들이 맞고 나면 형이나 엄마를 부르는 법이지.”
“이, 이런 망할 자식이?”
졸지에 동네 힘없는 꼬마가 되어 버린 일환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대가리가 나빠서 사건 순서가 정리 안 되는 모양인데.”
진무가 땅바닥에 처박혀 있는 황신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얘가 내 부하거든? 반 시진쯤 전에 물을 구해 오라고 시켰어. 근데 상황을 보니 니들이 공격해서 방해한 것 같은데, 아니야?”
“그, 그건…….”
“이거 봐, 여기 상처. 휴, 안 죽은 게 다행이네. 이 머리에 혹은 또 뭐야? 사람을 이렇게 후려 패면 어떡하냐?”
짐짓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까지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일환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아니, 그 혹은 니놈이…….
“이거 봐, 아파서 얼굴 찡그리는 거 보이지. 어우, 아주 마음이 찢어진다, 찢어져.”
“끄으으…….”
진무의 말에 화답하듯 황신이 눈을 부릅뜨고 신음을 내뱉는다.
아니, 다친 팔을 그렇게 힘껏 움켜쥐면 당연히…….
황신의 다친 상처 이곳저곳을 보란 듯이 괴롭히며 째려보는 진무를 바라보던 일환의 입가에 차츰 싸늘한 조소가 피어올랐다.
되지도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애를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 놨네. 쯧쯧, 마음 같아서는 니들 모가지 전부 따 버리고 싶지만……. 어쩌면 나중에 한솥밥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놈의 물 때문에 급하기도 좀 급하거든.”
“……?”
“소정의 보상금과 물을 가지고 있으면 전부 내놔라. 그럼 이번만큼은 봐준다.”
협상, 아니 협박에 가까운 말에 조소를 머금었던 일환의 눈동자에 살기가 어린다.
이곳은 마교의 땅.
눈앞의 고수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는 알 길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자신들과 싸우는 것을 껄끄러워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육동천을 홀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죽더라도 싸워서 마교의 자존심을 세운다.
기세가 오른 일환이 손에 든 칼에 힘을 담자 마기가 울컥거리며 새어 나온다.
“……아, 결렬이야?”
“귀하가 강하다는 것은 알겠군. 하지만 우리는 마교 육동천의 정예.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놈에게 굴복할 수는 없다.”
일환의 기세에 마령대의 무인들 또한 눈빛을 달리하며 거친 살기를 내뿜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안 될 줄 알았어.”
“…….”
“뭐, 이편이 좋기도 하고. 그동안 체면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참았거든.”
“뭐라고?”
“역시…… 강제로 빼앗는 게 마음이 편하단 말이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말고 별안간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진무의 움직임을 놓친 일환이 눈을 부릅뜨고 몸을 빼며 외쳤다.
“이런 제기랄! 마령대는 귀마진(鬼魔陣)을 펼쳐라!”
이 새끼들이 합체를 시도하네?
누가 기다려는 준대냐?
순식간에 허공을 격한 진무가 일환의 측면으로 파고든다.
“……!”
지면을 박차며 방향을 튼 진무의 주먹이 일환의 옆구리에 강하게 틀어박힌다.
쩌어억!
“커어억!”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망치로 맞은 듯한 무지막지한 고통이 찾아든다.
“안 끝났다, 이 새끼야!”
옆으로 꺾인 채 몸이 붕 뜬 일환을 쫓아 몸을 띄웠던 진무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발을 뻗는다.
허공에 그려지는 수평의 원.
빠가각!
두 방.
단 두 방에 강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으며 육동천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는 일환이 모랫바닥에 너절하게 처박힌다.
아직 멀었다, 이 새끼야.
물 못 가져가게 훼방 놓은 새끼, 내 새끼 몸에 상처 낸 새끼, 기회를 줘도 차 버린 새끼!
쿠악, 콰지직! 두두두!
쓰러진 일환의 몸 위로 진무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
진의 축인 일환이 쓰러지면서 진을 구성하지 못한 마령대의 무인들이 아연한 표정을 짓는다.
고수와 고수의 싸움……이……. 저런 건 처음 본다.
딱히 강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수준 높은 무공을 펼친 것도 아니다.
그냥 때리고 짓밟는다.
마치 저잣거리의 흔한 무뢰배의 싸움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 아닌가?
더욱이 저리 맞으면서도 어째서 대주는 정신을 잃지 못하는 거지?
“노, 놈을 죽이고 대주님을 구해라!”
쓰러진 일환을 대신해 마령대의 부대주 대곤이 다급히 외치자 무인들이 일제히 진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쯧, 쓸데없이 충성스럽기는.”
진무는 달려드는 무인들과 자신이 딛고 선 모랫바닥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들었던 발을 힘껏 찍어 밟았다.
퉁! 차아아악!
발에서 일어난 원형의 기파를 타고 진무의 몸을 휘감듯이 솟구쳐 오르는 모래.
니들 눈에는 이게 그냥 모래 같지?
그런데 이게 다 돌이 깎이고 부서져서 만들어진 거라 이거야.
즉, 한 알 한 알이 조그마한 암석이나 다름없다는 뜻이고, 그걸 내가 쓰면?
죄다 암기인 게지. 고로 여긴 어디? 무한한 암기의 밭.
취릿!
허공을 향해 비틀어 띄운 진무의 몸이 회오리처럼 돌고, 손과 발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모래를 사방으로 튕겨 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당가 놈들 암기술, 폭우침(暴雨針) 따라 하기다, 이놈들아!
파파파파!
모래가 빛줄기처럼 뻗어 장마철 폭우처럼 사선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마령대의 무인들이 진무를 향해 달려들고 있던 시점이니 이보다 좋은 먹잇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크아악!”
“으아악!”
“케엑!”
암기로 변한 모래알로 인해 몸에 수많은 구멍이 뚫린 마령대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순식간에 할 일을 끝내고 사뿐히 내려앉은 진무는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참상을 바라보았다.
“오홋, 쓸 만하네. 대인전에는 아주 최고겠는데.”
폭우침이 펼쳐지고 난 후 남아 있는 마령대의 무인은 황신이 있는 쪽의 서른 명이 전부였다.
쓸모 많은 노예 오 호 놈을 물을 못 구해 왔다는 이유로 모래 암기로 구멍을 뚫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 외에 서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몇몇은 벌집으로 변해 죽어 버렸고, 몇몇은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도 못했다.
자, 이놈들을 이제 어찌한다.
앞으로 마교를 점령하려면 꽤 많은 수하가 필요하다.
정사의 무인들을 동원하면 세력전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마교에서 얻어야 한다.
마령대, 꽤나 잘 단련된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부상당한 녀석들 따위 있어 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렇다고 흔적을 남기면 나중에 분명 귀찮게 될 것이 뻔하고…….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너희 같은 충성스러운 녀석들이 수하가 될 리도 없고……. 니들, 살려 주면 또 와서 덤빌 거지?”
“…….”
스산하게 퍼져 나오는 살기에 이미 진무의 신위를 똑똑히 목도한 무인들의 몸이 얼어붙듯이 굳었다.
“그래, 분명히 덤빌 거야. 이럴 땐 참 편해. 그 피의 율법이라는 거 말이야. 패한 놈들을 죽여도 죄책감에 시달릴 일도 없고,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으니까.”
쿵!
가볍게 짓밟는 발이 모랫바닥에 깊숙이 박혀 든다.
드드드드.
이어 갑자기 대지가 지진이 난 듯이 진동하며 일대의 모래가 파묻힌 진무의 발을 중심으로 휘돌아 흐르기 시작했다.
싸르르르.
마치 호수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만들어지는 소용돌이처럼 흐르는 모래의 모습에 마령대의 무인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린다.
유, 유사(流沙)!
자신의 기운으로 강제로 유사를 만들어 내었다고?
“봐준다고 했는데도 굳이 죽겠다고 덤빈 건 니들이니까.”
“…….”
“흔적 자체가 남지 않도록 깊이 파묻어 주마, 모조리.”
이 사막이 너희의 묫자리다.
움푹, 움푹.
곳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휩쓸려 버린 마령대의 무인들이 모래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진무의 모습.
흑요석처럼 물든 눈동자가 시커먼 빛을 토해 내고, 묵룡혼원공에서 기인한 검은 사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사람이 아니다.
사막 모래를 유사로 만들어 움직이는 무공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저 검은 눈동자에 어린 살기는 자신의 말을 확신시켜 주듯이 소름 끼쳤다.
본적도 없는 잔인한 괴물.
저놈이야말로 마(魔)의 화신이 분명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마령대의 부대주 대곤이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것들이 갑자기 왜 생존 욕구를 드러내는 거지?
하지만 진무가 모르는 것이 있다.
피의 율법이 지배하는 마교에서 패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죽든가, 꼬리를 말고 충성스러운 개가 되든가.
그들이 찰나의 순간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령대주보다 더 강한 진무의 개가 되기로.
“굳이?”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그다지 믿음이 가질 않는데?”
“저,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흠, 어차피 다쳐서 걷지도 못하는 것들을 살려 둬 봐야.”
“아, 아닙니다. 거, 걷습니다, 걸어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대곤의 말에 사방을 가득히 채우던 검은 사기가 흩어지고 유사가 거짓말처럼 흐름을 멈춘다.
“……그래? 그럼 걸어 봐.”
진무의 말에 대곤이 모래에서 사력을 다해 몸을 빼내 일으킨다.
비틀, 비틀.
악마가 지켜보고 있기에 힘겹지만 어떻게든 걸어 보려는 그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어? 걷네? 흠, 좋아. 넌 살려 주마.”
휙 시선을 돌리는 진무의 모습에 대곤이 영혼까지 빠져나갈 듯 숨을 내쉬며 주저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도 걷습니다.”
“저도!”
“깨금발로 뛸 수 있습니다!”
“저는 부상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대곤이 목숨을 부지하자 이곳저곳에서 마령대의 무인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건재함을 주장한다.
이른바 앉은뱅이마저 걷게 만드는 성자(聖者)의 기적이 사방에서 펼쳐진 것이다.
오냐, 걸어라.
내 너희를 살릴 것이니라.
죽음이 구원으로 바뀌는 순간.
마령대의 무인들은 이미 전의를 잃어버렸다.
패자에게 생과 사의 경계를 정해 주는 것은 오롯이 승자의 전유물.
그리고, 그들 역시 대곤처럼 더 강한 무인에게 고개를 조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 그럼 물 있는 사람?”
파파팍!
이젠 말하기 무섭게 말 위의 짐에서 물을 담은 가죽 부대가 꺼내진다.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잖아.
“황신!”
“…….”
“늦었다. 물이랑 말 몇 마리 몰고 가서 우등 가족이랑 니 동생들 데려와.”
“……예!”
진무의 말에 황신의 얼굴이 한껏 밝아진다.
다행이다.
한 대 맞기는 했어도 서열은 지켰다.
황신은 혹시라도 진무가 말을 바꿀세라 서둘러 물주머니를 챙겨 말에 올랐다.
미친 듯이 채찍질하며 쏜살같이 사라지는 황신의 모습을 응시하던 진무가 고개를 돌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마령대의 무인들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가만, 대장 새끼는 어디 있지?
고개를 휘휘 돌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일환을 찾은 진무가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
진무는 쪼그려 앉아 일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짓궂은 웃음에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섬뜩함을 느낀 일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예?”
절로 나오는 존댓말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근처에 마을 있냐?”
“……그, 인근에 약강이라는 큰 도시가 있습니다.”
“잘됐네. 그럼 니들이 길 안내 좀 해 줘야겠다.”
진무의 미소에 일환은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라온 진무 일행이 합류했다.
샘이 흐르는 곳을 찾은 그들은 모처럼 목을 흠뻑 적셨고, 젖먹이가 방실거리며 웃고 나서야 다시 길을 떠났다.
도시가 있다는 약강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