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신강 남부 최대의 도시 약강.
천산의 빙설이 녹으며 흐른 물이 모여 호수를 이룬 그곳은 신강 남부의 유목민들 대부분이 겨울을 나는 거대한 도시였다.
호수를 중심으로 지어진 주요 건물들은 중원의 여느 거대 도시에서 볼 법한 크기였고, 중심가에는 격자처럼 관도가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도시는 서쪽 사막의 모래 폭풍을 막기 위해 높다랗게 세워진 토성 안쪽에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오랜 유랑 생활에 지친 유목민들이 하나둘 정착하며 지은 토우(土宇)가 원래의 도시보다 더욱 거대하게 발달해 있었다.
오랫동안 잔혼마도 이강백이 다스린 칠동천의 근거지였던 그곳.
하지만 얼마 전 육동천의 공격으로 힘없이 무너진 그곳은 새로이 부임하는 책임자를 맞이하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똑바로 서라!”
약강 토성의 정문 입구에서 고성이 터져 나온다.
칼날 같은 기도를 가진 무인이 부리부리한 눈매로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을 쏘아보며 담금질하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토성의 외곽 경계를 맡은 책임자 노륭은 수하들의 흐트러짐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자세가 틀어지면 심한 매질을 해 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리를 이탈했던 이들을 참수해 버리기도 했다.
서슬이 퍼런 노륭의 모습에 토성 경계 무인들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수문장님,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
부관 태위위의 말에 노륭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약강의 책임자로 임명된 마령대주 일환이었다.
이미 열흘 전에 나포박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으니 하루 이틀 전에는 도착했어야만 했는데…….
“혹 육동천주의 전서구 내용을 아시고 말을 되돌리신 것은 아닌지…….”
“음.”
태위위의 말에 노룡의 침음이 깊어진다.
일환이 온다는 소식에 이어서 날아온 또 다른 전서구에는 약강의 책임자를 괴충으로 바꾸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왜 하필 괴뢰의 아들이란 말인가?
비록 육동천에 소속된 무인이지만 일환은 십이동천을 넘어 마교 전체에 잘 알려진 무인이었다.
언감생심 강의 경지라는 것이 꿈꾼다고 가능할 경지이던가?
그 초입에 다다른 고수다.
그런 고수에게 제 아들을 보필하라는 명령을 내리다니.
고수가 하수의 수하가 되는 것은 서열 구분이 교주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천산의 마교 본성이라면 모를까, 십이동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화가 나서 인접한 사동천이나 팔동천으로 떠나 버리신 건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
“일환, 그 양반은 육동천주를 절대로 배신하지 못해.”
“그게 무슨…… 아, 소싯적에 육동천주가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해 줬다는 이야기를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하긴, 그때 입은 상처로 육동천주가 아직도 다리를 전다면서요?”
“미친놈, 그건 대외적으로 미화된 소문이고.”
“……?”
“너 같으면 고작 목숨 좀 구해 줬다고 변함없이 충성하겠냐?”
“그야…… 뭐, 안 그러겠죠?”
“당연하지. 너도 기회만 오면 내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 중이잖아.”
“……에이, 제가 어찌. 깜냥도 안 됩니다요.”
“지랄하네.”
과장스레 고개를 내젓는 태위위의 눈에서 탐욕을 읽은 노륭이 피식 웃는다.
중원인들과 살아온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른 마교인들은 은원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부모 자식도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 마교인이었다. 누대를 거치며 살아온 환경이 그러했기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태위위 역시도 실력이 되기만 한다면 정식으로 노륭에게 도전해 그의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었다.
다만 반드시 모두에게 그 강함을 입증해야 했기에 비열한 수법이나 협잡질은 허용되지 못했다.
순수한 실력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해야만 그가 앉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은밀한 소문인데…….”
노륭이 태위위를 끌고 성벽에서 벗어나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듣기로 괴뢰가 수하들에게 자신의 독문무공을 시전한 모양이더라고.”
“독문무공이라면?”
“알잖나, 괴뢰가 어째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지.”
“아!”
노륭의 말에 태위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교에서 괴뢰의 본명을 아는 자는 몇 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무공을 본 북리도천이 직접 괴뢰(傀儡)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무공으로 조종한다고요? 그건 너무 비열한 수법이 아닙니까?”
“어디까지나 소문이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추측성이 진한 노륭의 말에 태위위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토성의 망루에서 소란이 일었다.
“수문장님!”
“……?”
노륭이 망루의 수하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먼지가 이는 곳.
한 떼의 인물들이 약강의 유목민촌을 들어서고 있었다.
“왔구만!”
다급해진 노륭이 서둘러 토성의 정문으로 뛰어가며 외친다.
“지부장님께 속히 준비하라 일러 드려라!”
“예!”
안으로 전갈을 보내게 한 노륭은 무인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빳빳하게 부동자세를 취하고 다가오는 마령대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약강의 책임자, 아니 부책임자인 일환에게 최대한 비위를 맞추며 잘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 앞으로 자신의 생활이 편할 테니까.
근데…… 왜 말이 달리지 않고 걷는 거지? 너무 느린데?
무슨 여유를 부리는 건지 한참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자 뒤편에 같은 자세로 서 있던 태위위가 작게 소곤거렸다.
“저, 근데 어째 행색이?”
“시끄럽다.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린 마령대주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실수라도 해서 나중에 내가 힘들어지면…… 니들도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똑바로 해.”
“……옛!”
노륭이 낮게 을러대자 태위위가 입을 닫고 재빨리 부동자세를 취한다.
잠시 후, 마부의 이끌림을 받은 마령대가 도착했다.
그 모습이 참 묘하다.
사람이 타고 온 말은 모두 다섯 마리.
강보에 싸인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은 물론 어린아이를 태운 자도 둘이나 되었다.
나머지 말들은 모두 짐을 싣고 있거나 비어 있었다.
빈 말도 많은데 수십 명에 가까운 인원이 말고삐만 잡고 걸어온다고?
온통 절뚝거리는데도?
이상하다.
분명 저들에게서 수준 높은 마기가 선명히 느껴지니 마령대의 무인들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어디서 처절하게 전투라도 치르고 온 건가?
어떻게 봐도 의아하기 짝이 없는 행색이었으나 노륭은 제 할 일을 해야 했다.
“멈추어라!”
우렁차게 내지른 고함에 인마가 멈춘다.
노륭은 절차대로 사막을 지나오느라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들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이곳은 육동천의 지부가 된 약강이다! 어디에서 오는 인물인가?”
노륭의 외침에 말 위에 앉은 선두의 인물이 말고삐를 잡은 마부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가린 천을 풀어내는 손길에 마부의 흉측한 얼굴이 드러났다.
“육동천 마령대를 이끄는 일환이다.”
“……마령대주께서…… 마부……?”
얼굴이야 당연히 알지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노륭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일환의 포악한 눈빛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약강의 수문장, 노륭이 마령대주님을 뵙습니다.”
“마령대주님을 뵙습니다.”
노륭의 선창을 따라 성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다.
“문 열어.”
“…….”
일환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륭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 예……. 그…… 말 위에 계신 분께선?”
“…….”
그 말을 듣자마자 일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노륭으로서는 당연한 절차였다.
마령대주만 도착한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다른 인물이 왔으니 반드시 신분을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지부장에게 미리 대비토록 알릴 것인데.
노륭이 고민하는 사이, 말 위에 앉은 자의 입에서 심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뭐야? 책임자라더니 별거 아닌 모양이구만. 아, 빨리 씻고 쉬고 싶은데…….”
“……!”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일환이 다급한 눈빛으로 노륭을 죽일 듯 째려봤다.
안 그래도 오는 내내 자잘한 구타를 당해 진무의 무서움이 뼛속 깊이 각인된 상태였다.
차라리 죽여 달라 빌고 싶을 정도로 무서운 구타.
저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거나, 귀찮거나, 아니면 반항했다가는 곧바로 죽는 게 낫겠다 싶은 구타가 이어졌었다.
이런 망할 수문장 놈을 봤나. 별 시답잖은 게 어디서 자신의 명줄을 잘라 놓으려고!
“이놈! 지부장이 시키더냐? 마령대주가 오면 길 막고 있으라고?”
“……아, 아닙니다.”
섬뜩하게 뻗어 나오는 마기와 얼굴까지 벌게지며 내지르는 노성에 노륭이 아연실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젠장, 죄다 천으로 얼굴을 둘둘 감고 있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그래도 일단은 사는 게 중요하다.
마령대주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대낮에 횡액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문을 열어라! 마령대주님과 그 일행께서 도착하셨다!”
노륭의 명령에 무인들이 다급하게 움직여 거대한 성문을 열어젖혔다.
“들어가십시오!”
재빨리 비켜나 길을 여는 노륭의 귓가에 짜증이 물씬 담긴 일환의 전음이 들려온다.
[너 이 새끼, 노륭이랬지. 이따 보자.]“…….”
이따 보자. 이따 보자. 이따 보자.
사신의 목소리 같은 말에 노륭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망할, 쓸데없이 절차대로 해서는…….
노륭은 제발 별 탈이 없기를 기원하며 성문을 지나는 무리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저, 수문장님.”
진무 일행이 완전히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긴장을 푼 태위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마령대주가 마부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
“혹, 말 위에 앉은 자가 괴충이라는 인물일까요?”
그러고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충은 대외 활동이 적었기 때문에 육동천 외에는 그 외양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아니던가?
그래, 오다가 만난 것이 틀림없다.
한데 일환이 무공이 낮다고 알려진 괴충의 마부를 자처할 정도라면? 더욱이 쉬고 싶다는 한마디에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지 않았는가?
“젠장, 육동천주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육동천에서 두 번째로 강한 무인이 그 아들에게 저리 공손하다니.”
“그런 모양입니다. 서둘러 지부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오, 옳다. 서두르자.”
그 순간 노륭의 머릿속에 무언가 퍼뜩 스쳤다.
지금 지부장이 문제가 아니다.
마령대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으니 재수 없으면 목이 날아갈 판이다.
살려면 그 윗선에 비벼 보는 수밖에…….
“태위위.”
“예!”
“저들을 속히 추월해서 지부장께 책임자로 발령 나신 괴충 님이 마령대주와 함께 도착했다 전해라.”
“예! 한데…… 수문장님께서 직접 전하시지 않고요?”
“…….”
미친놈아, 내가 지금 그럴 시간이 있겠냐? 전음이야 못 들었겠지만, 마령대주 눈빛 못 봤냐고.
지금부터 아주 바쁠 예정이다.
명줄을 보전하려면 몸이 세 개라도 모자라단 말이다.
먼저 약강에서 제일가는 천산루 삼 호점의 후원을 예약하고, 수십 년은 족히 묵은 술에 사내들이 줄을 서는 기녀 호선을 섭외해야 한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 몰래 꼬불쳐 두었던 재화와 보물을 들고 와 괴충에게 갖다 바칠 준비도 해야 했고…….
노륭이 비 맞은 중처럼 해야 할 일을 중얼거리며 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던 태위위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 지부장님께 빨리 알려 드려야지. 괜히 실수라도 하셨다가는…….”
태위위는 급히 명을 내린 뒤 곧장 진무 일행을 추월하기 위해 달렸다.
“지금부터 안으로 누구도 함부로 들여서는 안 된다.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
“예!”
그렇게 둘은 괴충 님께서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가지고 서로 다른 준비를 위해 급히 달려야 했다.
그 뒤로 성문을 굳게 닫은 경계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품는다.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때였다.
쓸데없이 외인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마령대주와 책임자 괴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