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예에?”
진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대전각에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황신과 아이들은 상황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고 일환, 괴충을 비롯한 마교측의 수뇌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도, 동천주님.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일환의 물음에 진무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차를 홀짝인다.
“뭐가?”
“뭐라니요? 지금의 상황에서 서열전을 청하겠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
사동천주 능서현에게 서열전을 신청한다.
그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게 아니다.
서열전? 신청할 수 있지. 진무는 충분히 능력이 되니까.
하지만 시기가 문제다.
서열전은 일 년에 두 번밖에 허가되지 않았다.
정해진 날을 통해 서열전을 치르고 모두에게 알려 공증을 받는 것이 관례였고, 그 이외의 날에 서열전이 벌어진 예는 없었다.
“……동천주님, 이는 불가합니다. 동천주가 바뀌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서열전만큼은 반드시 교주님의 재가를 받아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를 무시했다가는 천산이…….”
“거, 새끼 벌써 까먹었네.”
코웃음을 치며 일환의 말을 잘라 버린 진무는 좌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니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잊었어?”
“…….”
“전에도 말했듯이 난 북리도천과 대등한 위치에서 싸우려는 사람이다. 재가 따윈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래, 그랬지.
이 양반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켜야 할 법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법도 같은 소리 하네. 니가 정파냐?
“마교를 지탱해 온 체계를 무너뜨리려 하면 천산 전체가 움직일 겁니다.”
일환의 무거운 목소리에 동조하듯 괴충이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 둘을 쳐다보던 진무가 피식 웃었다.
“걔들? 아마 못 움직일걸?”
“……예?”
“전에도 그랬잖아. 북리도천에게 정식으로 재가를 받지 않으면 천산이 움직일 거라고.”
“그야.”
“그래서 움직였어?”
“…….”
“그놈의 천산이나 교주가 무슨 연락이라도 해 왔냐고.”
“아니, 그건…….”
“그럼 됐잖아.”
“하지만.”
“뭘 자꾸 하지만이야? 시작하면 달려야지. 하지만 이래서, 그렇지만 저래서. 다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법이야. 잡소리 하지 말고 내가 결정했으니까 그냥 믿고 따라와.”
“…….”
진무의 결정에도 일환과 괴충의 얼굴에는 꺼림칙한 기색이 가득했다.
참, 이걸 어디까지 이해를 시켜 줘야 하나…….
“쯧쯧, 하여간 수하라는 것들이 지들 주인 성격도 제대로 모르고.”
“성……격이요?”
“북리도천이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것 같나?”
“…….”
“북리도천이 십이동천의 힘이 뭉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사실이야. 아니라면 심복들을 동천주에 앉혀 두지 않았겠지. 하지만 우려와 두려움은 다른 거거든.”
“…….”
“우리쯤 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지.”
진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쯤 되는 사람? 그게 대체 어떤 사람인데?
“기다리는 거야.”
기……다린다고? 뭘?
일환과 괴충, 그리고 황신과 아이들까지 음흉한 빛을 내는 진무의 눈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궁금해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설명해 줘도 모를 것이다.
우러러보는 것밖에 한 적 없는 놈들이 위에서 굽어보는 심정을 이해할 리가 없지.
더 이상 상대할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망함과 상실감.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싸움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더 높은 경지를 위해 치열하게 분투할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 본 이들은 대리 만족을 찾는다.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거.
일부러라도 싸움을 붙이고, 그 모습에서 재미를 찾는다.
못된 버릇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한없는 무료함과 지루함을 이겨 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잠시뿐이다.
어떻게든 맞수가 있어야만 한다.
더 늙어 자리보전하기 전에, 그나마 운신이 자유로울 때 제 목숨을 끊어 줄 상대가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다.
마교에 온 뒤에 알게 되었다.
호시탐탐 중원 정벌을 부르짖던 북리도천이 일선에서 물러나 칩거한 지 삼 년.
바로 사황 혁련무강, 자신이 죽은 시점이다.
숙적의 죽음으로 그동안 느껴 온 모든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다.
아마 한동안 입맛도 없었겠지. 이젠 도리 없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테니까.
중원 정벌? 마도천하?
이뤄 봐야 얼마 가지 않아 죽는다. 병에 걸려서, 무력하게.
뭐, 정파 놈들은 미래를 대비해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지만 북리도천이나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당장에 늙어 죽게 생겼는데 남 좋은 일을 해서 뭐 한단 말인가?
그 와중에 자신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우려했던 일을 가시화하고 권좌에 도전하겠다는 배짱 좋은 어린놈. 와중에 강하다는 말까지 들었을 테니 지금쯤 즐거워서 팔짝팔짝 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다린다. 두려움이 아닌 희열을 품고.
“천주님? 뭐라도 설명을…….”
“…….”
진무가 침묵을 지키자 괴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해 줘도 니들 같은 잔챙이들은 이해를 못 할 거라니까?
“어쨌든 천산은 움직이지 않아.”
“…….”
“그러니 일단 능서현에게 서신을 보내.”
의중을 알 길 없는 진무의 표정에 의문이 더해지는 와중에 일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천산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능서현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능서현은 상황 판단이 매우 빨라. 유리한 조건이 아니면 절대 나서지 않을 테지.”
“맞습니다.”
“그렇지만 나설 수밖에 없을 거야.”
“예?”
“…….”
뭐가 자꾸 왔다 갔다 한다.
나서지 않을 거랬다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하다니.
“대체 무슨?”
진무는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차게 외쳤다.
“서신을 보내고 북을 준비해라! 북을 치며 최대한 느리게 갈 것이다. 사동천을 향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며, 명을 받듭니다!”
출진을 논의할 때는 갑론을박이 있을지라도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한목소리로 복명한다.
비록 그것이 죽음으로 향한 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말을 어떻게든 현실로 이루어 내는 진무를 지켜봐 왔기에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 따르지 않으면…… 무자비한 구타가 뒤따르는 것을 알기에.
모두가 나간 뒤, 진무가 황신을 불렀다.
“황신, 능서현에게 서신을 보낼 때, 나머지 십이동천주에게도 서신을 보내라. 내가 능서현과 서로의 세력을 걸고 싸운다고.”
“세력을 걸고…… 말입니까?”
“그래. 그럼 다들 구경을 올 테니, 능서현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그럼 어찌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않으시고?”
“……말하면 듣겠냐? 위험하니 마니 하면서 반대부터 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괴충은 몰라도 일환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면서 길길이 날뛸 것이다.
하여간 충성심이 과해진 놈은 이래서 문제다. 자꾸만 직언을 하려고 드니, 원. 옳은 말을 하는데 줘 팰 수도 없고.
“뭐 하냐? 시간 많아?”
황신이 움직이지 않고 있자 진무가 살짝 째려보며 심술궂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황신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숙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잘못되어 그의 옆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 또한 나름 기대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황신과 아이들마저 떠나고 우양진밖에 남지 않은 그곳에 턱을 괸 진무가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능서현.
사내들의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경쟁해서 금나수 하나로 동천주에 오른 철의 여인.
넘쳐흐를 것이 분명한 그 자신감과 자존심을 건드린다.
다른 동천주들까지 지켜보는 마당에 나오지 않는다면 겁쟁이라며 손가락질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자존심 이전에 체면 때문에라도 달려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동천주들은 또 어떠한가?
권좌에 대한 도전 의사를 밝혔을 때야 황당함에 코웃음 쳤을지 몰라도, 서열 십이 위에 해당하는 능서현과 사동천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
그때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진무에게 대항해 뭉칠지, 아니면 진무의 손을 잡고 천산에 오를지.
그렇게 되면 귀찮게 이쪽저쪽 점령한다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내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기막힌 전략을 어린애한테 배우다니.
문득 생각해 보니 큰 마을 대장에게 도전하겠다던 그때 그 아이는 잘하고 있을까?
“양진.”
“예?”
“그때 그 애들을 좀 만나야겠다.”
“……?”
어차피 출진 준비를 하자면 하루 이틀 정도는 시간이 필요할 터.
큰 깨달음을 준 아이에게 당과 평생 구매권이라도 선물해 줘야겠다.
* * *
푸드득.
호천지부의 중심에서 준비된 서신이 신강의 곳곳으로 날아올랐다.
우람한 덩치의 역사가 저마다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는 전서구들의 모습을 응시하다 상의를 벗어 갈색빛으로 물든 근육을 드러냈다.
“퉤!”
손바닥 가득히 뱉어 낸 침에 그의 굳은 결의가 담기고, 박달나무 끝에 천을 단단하게 뭉친 삼 척 길이의 북채가 불끈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을 따라 힘차게 휘돌려졌다.
두우웅!
소가죽을 팽팽하게 당겨 만든 질긴 북이 북채에 얻어맞고 공명하니 산천이 진하게 울린다.
뿌우우!
북소리를 넘겨받은 선두의 무인들이 물소의 뿔을 잘라 만든 나팔을 길게 불자 뒤따르는 무인들이 일제히 창검을 세웠다.
사동천 현천지부를 공격하기 위해 전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육동천! 출진한다!”
일환과 괴뢰가 출진을 알리자 일제히 걸음을 내딛는 무인들의 기세가 대지를 진동시킨다.
하지만 빠르지 않았다.
말은 천천히 대지를 짓밟았고, 뒤따라 진격하는 무인들의 걸음은 왕을 모시는 행차처럼 느리고 진중했다.
마치 그들의 진군을 산천에 고하고 만민에게 알리듯 북소리와 뿔소리에 맞춰서 천천히 걷는 모습에 호천지부의 사람들이 관도로 몰려나와 입을 떡하니 벌리고 그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황신.”
“예!”
진무의 나지막한 부름에 황신이 공손하게 답했다.
“빠를 필요 없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이동한다. 십 리마다 휴식을 취하고, 백 리마다 야영지를 편성하라고 전해.”
“…….”
“그리고 술과 고기를 충분히 지급해 밤마다 잔치를 벌여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최대한 천천히 가는 거야. 가다 심심하면 산천이라도 구경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답한 황신이 말머리를 돌려 뒤따르는 일환과 괴뢰에게 명을 전했다.
진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현천지부까지 사백여 리의 길.
북소리로 자신들의 진군을 사동천에 알리고, 전서구를 받은 십이동천주들이 궁금해서 달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 주기 위해서.
그렇게 진무는 호천지부를 떠나 사동천의 본진이 버티는 현천지부를 향해 느린,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