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9
389화
무수히 많은 무인이 장로들을 따돌린 진무의 앞을 막아섰다. 창검을 세우고, 온몸에 마기를 두른 채로.
저 많은 새끼 중에는 분명 제법 이름난 전대의 거마도 있을 것이고, 난다 긴다 하는 무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그들의 얼굴을 보며 손 흔들어 인사하고 대화 나눌 생각 따윈 없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지금 내 눈에는 오직 저 구름 너머 천산의 정상만 보이니까.
진무는 달리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막아서는 족족 주먹을 때려 박았고, 발로 차 으깨 버렸으며, 일휘를 휘둘러 갈랐다.
“크아악!”
수직으로 그어 내린 일휘를 따라 막아섰던 이들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사람의 육신 사이로 만들어진 틈으로 진무가 머뭇거림 없이 뛰어들었다.
남은 자들은 진무의 꼬리를 잡기 위해 열 지어 뒤쫓았고, 막은 자들은 다시 포위망을 쌓으며 진무를 공격했다.
진무는 그렇게 피의 길, 시신으로 가득한 길을 내며 천산을 미친 듯이 뛰어올랐다.
그런 그에게 맞서 마도인들이 진무를 산 아래로 밀어 버릴 기세로 마종지로를 겹겹이 채우며 쏟아져 내려왔다.
밑에서는 청화 가문의 무인들과 진무 일행이 포위망을 뚫고 길을 오르며 진무가 지나간 자리를 꽉 메운 마교인들과 싸웠다.
다행히 적들은 그들을 죽이는 것보다 진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한 모양이었고, 더 다행인 것은 시기적절하게 여백기와 청상 등 나머지 일행이 뛰어든 덕에 장로들이 잡혔는지 거리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후우, 후우…….”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속도를 줄인 진무가 적들을 일별했다.
무지막지하게 내력을 때려 박은 탓에 숨이 한계치까지 차오르고 온몸의 근육들이 신경질적인 비명을 질러 댔다.
지금의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정상까지의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굳이 휴식하며 뒤의 일행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이 싸움은 애초에 자신을 위한 것.
마의 종주가 되는 길, 아니, 천하제일인이 되는 길이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해낼 것이다.
이곳을 뚫고 나가 천산의 정상에서 천하제일을 논하리라.
오래전 한 득도한 승려였던 혜개(慧開)가 말했다.
‘대도무문 천차유로(大道無門 千差有路), 투득차관 건곤독보(透得此關 乾坤獨步).’
큰길에 문은 없지만 천 갈래의 길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 막고 있는 빗장만 열고 나가면 하늘과 땅에 홀로 걸을 수 있으리.
담긴 의미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진무의 모습은 글귀가 가진 의미 그대로를 행하고 있었다.
천산을 향해 오르는 마종지로는 거대한 길이고, 이미 자신을 맞이하려 모조리 열려 있었다.
달리 오르는 길 또한 수없이 많았을 것이나 진무는 오직 마종지로 한 곳만을 택하였다.
더욱이 천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마교인들이 방어망을 구성해 빗장을 걸었으니 그것을 뚫으면 곧 건곤독보(乾坤獨步)일 터였다.
“그래. 건곤독보…… 참 좋은 말이야. 그러니 니놈들이 빗장을 걸고 담을 세워 막더라도 나는 반드시 지나가겠다.”
문이 잠겼다고, 열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점잖게 기다려 본 적 없는 나다.
열어 주지 않으면 담벼락, 아니 성벽을 뚫고 들어가면 될 일이 아니던가?
좋다. 이 길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결심을 마친 진무의 입술이 얇게 벌어지며 미소를 그리는 것과 동시에 송곳니가 하얗게 빛을 발했다.
가슴을 부풀렸던 진무가 양손을 좌우로 펼쳤다.
묵룡혼원공, 천교열.
솟구친 사기가 장심(掌心)을 중심으로 응축되어 점점 더 크기를 더해 갔다.
치지직, 지직.
진무는 강기가 손안에 가득히 잡힐 정도로 커다란 구슬이 되었을 즈음 손을 다시 가운데로 모았다.
그의 손을 따라 두 구슬이 하나로 합쳐지며 마찰하자 전격과 함께 거대한 용음이 일었다.
쿠우우우우.
진무의 손안에서 태어난 묵룡이 하늘을 물어뜯을 듯 아가리를 벌렸다.
포효에 휘말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대기를 뚫고, 용이 진무의 손을 떠나 천산을 거슬러 올랐다.
콰우우우!
쏘아진 검은 섬광이 막은 이의 사지 육신을 뜯어 먹고, 사방에 핏물을 뿌리며 그들의 방어막을 꿰뚫었다.
그리고 진무가 그 길의 중앙을 관통해 달린다.
쐐애액!
허공에 뜬 일휘는 광룡의 뒤를 쫓는 진무를 보호하듯 공격해 오는 이들을 모조리 자르고 꿰뚫었다.
진무는 하나였고, 그들은 다수였으나 긴 꼬리를 만들며 날아가는 검은 창처럼 몸을 내쏘는 진무를 막아 내지 못했다.
진무는 무엇이든 뚫는 창이었으되, 그들은 모든 것을 막아 내는 방패가 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진무의 신형이 구름에 가까워질수록 구름과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산의 정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이제 곧이다.
후아악! 쿠우웅!
온 힘을 다해 짓밟은 대지가 터져 나가고 허공으로 솟구친 진무의 신형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아연실색하여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유영하는 진무를 바라보는 마교인들의 눈동자에, 잡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아득한 실망감과 패배감이 어렸다.
날아오른 힘이 다해 낙차가 생기는 찰나, 진무의 몸 안을 거칠게 휘돌던 사기가 바닥을 드러냈다.
우우웅!
양의심공.
사기를 거두고 선기를 담자 진무의 몸이 일순간 푸른 빛을 뿜었다.
후웅!
비룡번신으로 몸을 비튼 진무는 일휘를 불러 그 검신을 밟으며 솟구치곤 무당의 제운종을 펼쳤다.
구름을 밟는 듯한 걸음으로 허공에서 재차 도약한 진무가 구름을 향해 몸을 던졌다.
넘었다.
저들이 걸어 둔 빗장을 풀었으니 이제 정상.
목전에 자리한 목표에 진무의 눈동자에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끓어올랐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 왔다.
그리고 그의 손이 구름을 잡으려 뻗어졌을 때, 찾아온 것은 성취감이 아닌 섬뜩함이었다.
슈아아악!
살기를 드러내며 진무의 목을 향해 교차하듯 날아든 두 줄기의 섬광.
“……!”
너무 흥분했기 때문일까?
지척까지 다가온 것을 느끼지 못했다.
진무는 다급히 양손을 잡아당기며 팔다리를 모아 구부렸다가 힘껏 떨쳤다.
따아앙!
손등에 부딪힌 날붙이의 아릿함과 연이은 반탄력에 진무의 몸이 구름에서 멀어졌다.
정상의 바로 앞에서 밀려 버린 진무가 공중제비를 돌아 뒤로 물러나는 순간…….
쿠루루루!
녹빛을 머금은 강기가 진무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독강? 젠장…….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거의 다 왔는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이었는데.
망할 새끼들.
정말 더럽게 끈질기구나.
내 움직임을 찬찬히 살피고 구름 안에서 기운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린 게야.
어쩔 수 없다.
피할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니 최선을 다해서 버티는 수밖에.
진무가 두 손을 아래로 뻗어 반원을 그려 세우며 독강을 향해 밀었다.
후우웅!
비틀린 손끝을 따라 일어난 바람에 선기가 실린 무당의 회풍장이 뻗어 나갔다.
푸우웅!
공기층을 이룬 선기가 독강의 전면을 때리고, 진무는 그 반탄력을 발판 삼아 훌쩍 날아 바닥에 착지했다.
차라라랑!
진무의 의지에 반응한 일휘가 쏜살같이 날아와 착지할 위치에 있던 마교 무인들을 휘저었다.
한순간에 만들어진 피와 살점의 공터에 내려앉은 진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크으…….”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회풍장으로 만들어 낸 공기층이 얕았던 모양인지, 완전히 막지 못한 오른손에 독기가 스민 것이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자 진무는 재빨리 혈도를 눌러 오른손의 혈맥을 차단했다.
빌어먹을, 묵룡혼원공이었다면 독기가 흑수를 뚫지 못했을 것인데.
“…….”
날카롭게 전방을 쏘아보는 진무의 눈동자에 재수 없게 생긴 노인 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까지다.”
“…….”
아는 얼굴들이다.
화불유와 양춘백.
한 놈은 과거에 소약벽과 겨루어 똥구멍이 뚫릴 뻔했던 살수 놈이고, 또 한 놈은 당가도 아니면서 독성의 경지에 오른 개자식이다.
하지만 진무에게는 화불유가 더욱 익숙했다.
오래전 중원 최강의 살수 자리를 놓고 맞붙었던 그때, 화불유가 참패를 당해 소약벽이 밤의 여제로서 살수계에 군림하게 되었으니까.
“육제씩이나 되는 새끼들이 쥐새끼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
쥐새끼라는 말에 화불유의 눈썹이 꿈틀거린 것은 순전히 본인의 생김새 때문이었다.
물론 독물을 식사인 양 씹어 처먹어 독하기로 유명한 양춘백은 그따위 도발은 축에도 못 낀다는 듯이 웃고 있었지만.
“큭큭, 어쩔 수 없지. 권좌를 노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니, 쥐새끼 흉내라도 내어야 잡을 수 있지 않겠나?”
이죽거리기는.
진무는 실실 웃고 있는 양춘백의 뺨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망할 새끼가 안 본 사이에 입심이 좋아졌다. 그사이 말싸움 좀 하고 다녔나 보지?
그런데 조금 아깝다.
화불유가 먼저 나섰으면 해서 인신공격부터 날리고 본 건데.
“그런데 자네, 그 팔 괜찮겠나?”
“…….”
“시퍼런 것이 독기가 스민 것 같은데?”
양춘백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진무의 오른팔을 힐끗거렸다.
물론 안 괜찮다.
아까부터 팔이 저릿해져 오는 게, 독하기로 유명한 양춘백의 기운을 머금었으니 빠른 시간 안에 그 일부를 도려내어 뿌리를 뽑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싸움을 앞두고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좋을 것이 없으니…….
“이거?”
피식 웃은 진무가 팔에 스며든 독기를 한곳에 모으고 일휘를 잡아 그대로 팔뚝을 그었다.
푸학!
잘린 상처에서 죽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무렇지도 않아.”
독기를 뽑아내 버린 진무가 일부러 피가 흘러내리는 팔을 들어 휘휘 흔들었다.
일시적으로 독기가 빠져나가자 다시금 현기증이 일었으나 이를 악물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호오, 그래? 거참 다행이구만. 혹시나 그 한 방에 당했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
제 허세를 다 안다는 듯 빈정거리는 양춘백의 모습에 진무는 내심 속이 탔다.
지금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다행히 치료의 효능을 가진 선기를 운용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 해소는 되었지만, 그 뿌리를 뽑지 않고 방치하다가는 팔이 썩어 들어갈 터. 오래 지체하면 진짜로 팔을 잘라 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둘은 마도의 하늘로 군림해 온 육제였다.
묵룡혼원공의 사기는 완전히 비어 버렸고, 쓸 수 있는 것은 무당의 선기뿐이다.
와중에 팔 한쪽이니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양춘백이 끼어들면서 사방으로 독무가 뿜어져 나와 마교의 무인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일까.
선기가 일정 영역을 가로막고 독무를 밀어 냈기에 진무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진무를 죽이겠다고 뛰어들었다가는 숨을 들이쉬는 동시에 칠공에서 검은 피를 토하고 죽게 될 터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네. 괜한 오기를 부려 외팔이로 남는 것은 옳지 못해.”
“…….”
“어떤가? 이쯤 하고 물러나 준다면 좋겠는데?”
“물러나라고?”
양춘백의 말에 진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많은 숫자를 상대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지금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이름값은 톡톡히 얻었으니 이만 권좌를 포기하고 물러나게.”
“…….”
아, 그 소리였어?
하지만 소싯적 동네 장기판에서도 졸(卒) 하나도 물려 본 적 없는 나다.
니까짓 것들이 물러나라고 위협한다고 들어 먹겠냐, 내가?
진무는 피식 웃으며 소매를 찢어 상처를 휘감았다.
일시적인 지혈.
최대한 빠르게 싸움을 끝내야만 한다.
혹여 독기가 퍼지기 전에.
그리고 거리를 벌려 놓은 장로들에 원로원의 거마들까지 몰려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