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01
401화
왜들 저런 표정이지?
진무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뻐서 그런가?
축하해 주려고……는 아닌 것 같다. 검을 빼 들고 있으니까.
그럼 지금 제 주인을 쓰러뜨렸다고 복수라도 하려는 것인가?
망할 마교 놈들. 명명백백한 결과를 이다지도 받아들이지 않다니.
좀 피곤하긴 하지만 혼을 내 주는 수밖에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닥에 떨어진 일휘를 주워 든 진무는 또다시 의문을 품었다.
근데 왜 청상이…… 청우도 있고, 황신과 아이들까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사숙! 피하십…….”
청상이 목에 핏대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발악하며 외치는 소리가 진무의 귓가에 닿았다.
피하라고? 뭐…… 어?
순간 진무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건 뭐지? 이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특이한 기운인데……?
푸하학!
이번엔 무언가가 몸을 찢고 지나갔다.
뭐지?
어째서 내 몸에 피가 튀어 오르는 거지?
털썩.
쓰러진 건가? 내가?
진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눈을 끔벅였다.
주저앉아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살점이 거칠게 뜯겨 나간 허리에서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눈을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북리도천이 서 있었다.
분명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숨만 쉬고 있었는데.
“크크크.”
“…….”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새파란 귀기를 줄기줄기 뿜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북리도천.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딱히 기세를 끌어 올린 것 같지도 않은데 새파랗게 빛나는 불꽃이 날아왔다.
따다다당!
“크윽.”
어느새 몸을 날려 온 청상이 불꽃을 쳐 냈으나 곧바로 반탄력에 튕겨 진무의 앞에 처박혔다.
하지만 청상은 곧바로 이를 악물고 일어나 검을 세워 잡으며 외쳤다.
“사숙을 지켜라!”
발악과도 같은 그의 외침에 황신과 아이들이 진무의 주위로 둥글게 섰다.
“사숙!”
“…….”
청우가 자신을 품에 안고 또 운다.
이런 눈물 많은 녀석 같으니.
그래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 것이냐?
“사숙, 피가…… 피가…….”
울먹이는 청우가 두툼하게 살이 오른 손으로 피가 멈추지 않는 진무의 옆구리를 압박했다.
아프다, 이놈아. 그만해라.
그나저나 상처가 너무 심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직격당한 탓인지 몸을 일으키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북리도천이 보이는 변화는 대체 뭘까?
어째서 그가 이지를 상실한 것처럼 귀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것일까?
와중에 저 새파란 기운…… 강기가 아니다.
마치…… 마치 인간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그의 혼백을 지배하는 느낌.
“교주님!”
어느 순간 염왕대주 마강이 북리도천의 앞을 막아섰다.
“정신 차리시오, 교주!”
이번에는 청화 가문의 주인 여백기.
“형님!”
북리도천의 동생이기도 한 염인 북리가의 주인 북리도평도 왔다.
장로들도 보이고, 원로원의 거마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부름에도 북리도천은 화답하지 않고 되레 살기를 뿜으며 늑대 무리에 갇힌 범처럼 주변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교주의 상태가 심상치 않소.”
“역천이오. 싸움의 과정에서 기가 역류하여 마성에 빠지게 되신 게 분명하오.”
“점점 더 귀기가 강해지고 있소이다. 서둘러 막아야 합니다. 이대로 두면 천산이 온통 피로 물들 것입니다.”
급박한 외침들.
근데 마성? 저 강한 놈이 고작 마성에 빠져들어서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쩌어엉!
싸움이 시작되었다.
내로라하는 마교의 무인 모두가 북리도천을 포위해 진형을 갖추고 막아섰다.
“크크크, 네까짓 것들이 나를 막겠다고? 이제야 제대로 몸을 얻은 나를?”
북리도천은 기괴한 목소리를 토하며 자신의 눈동자에 비치는 모두를 적으로 맞이해 싸우고 있었다.
미친놈.
마성에 빠져서 제 수하들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한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북리도천이 보이는 광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졌고, 막아서는 이들은 족족 온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지고 처박혔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 휘둘러진 무기들은 그의 몸에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했다.
북리도천의 손짓에 무인들이 쓰러지고 사방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열기에 천산의 눈더미가 녹아 생겨난 물고랑이 점점 더 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진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을 보이는 북리도천.
운공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무당의 역사상 가장 강했다는 청무 조사.
양의심공을 수련하기 위해 폐관에 들었다가 그 균형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마성에 빠져들었다고 했던가?
가까스로 스스로 정신을 차려 마기를 억눌렀기에 막을 수 있었다 했다.
청무도 해낸 걸, 어찌하여 너는 해내지 못해 그따위 부끄러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냐?
나는 이미 그가 익히지 못한 양의를 익혔거늘.
“청우.”
“……사숙.”
“나를 일으켜 다오.”
“예?”
“일으켜.”
담담히 내뱉는 말에 청우가 진무를 부축해 일으켰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이미 많은 내공을 소진한 상태에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어 버렸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화가 났다.
인생 최대의 숙적이 최대의 쓰레기로 변해 가고 있는 모습이.
마성에 젖은 괴물로 변해 충성스러운 제 수하들의 목을 꺾는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멍청한 자식. 고작 그 정도냐?
진무는 어금니를 깨물고 찢겨 나간 옆구리로 선기를 돌렸다.
청량함을 머금은 선기가 상처를 보듬고 피를 지혈했다.
찌이익.
진무는 자신의 상의를 길게 찢었다.
북리도천과의 싸움에서 이미 넝마가 된 의복이었으나 상처를 압박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후우…….”
천천히 호흡을 고르자 사지백해로 힘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우자 흐릿했던 시야가 다시금 밝아졌다.
“모두 물러나라. 멀리 피해 있어.”
“사숙!”
앞으로 내딛는 진무의 걸음에 모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끼들. 누가 보면 내가 제일 약한 줄 알겠다.
“너흰 방해만 돼. 전력을 다할 수가 없어.”
“……사숙.”
“……천주님.”
진무의 말에도 청상을 비롯한 모든 무인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청상, 청우, 황신…….”
젠장 힘들어서 다 못 부르겠다.
“이건 내 싸움이다. 너희들에게 끼어들라고 한 적 없어.”
“……사숙, 하지만 북리도천은.”
“마성에 빠져들었지. 그래서 뭐? 지금 저 모습도 북리도천이 가진 힘 중의 하나라면 쓰러뜨려야 할 거 아냐.”
“…….”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까.”
청상을 비롯한 무인들은 더 이상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다시 걸음을 내딛는 진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사형, 저대로…….”
청우가 울먹이는 눈동자로 말해 봤지만 청상이 고개를 저었다.
“때론…… 홀로 가야 할 길도 있음이다.”
“사형.”
하지만 걱정을 숨길 수는 없었는지 청상의 턱 언저리에는 근육이 진하게 잡혀 있었다.
“물러나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숙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걸어가는 길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설사 그 길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해도.
뒷말을 삼킨 청상이 굳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고민하던 황신과 아이들이 뒤를 따르고, 연신 진무와 청상을 번갈아 보던 청우가 마지못해 걸음을 물렸다.
어느 순간 힘겹게 걷던 진무의 걸음이 빨라졌다.
잰걸음은 달음질이 되었고, 마교인들의 포위망에 다다르자 허공을 향해 높이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일휘가 그의 손을 떠나 높이 떠올랐다.
“북리도천!”
하늘을 울리는 외침과 함께 쏘아진 일휘가 다시금 섬전이 되어 북리도천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
“……!”
마교의 무인들에게 합공을 받고 있던 북리도천이 귀기 어린 눈빛을 뿜어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따아아앙!
새파란 귀기가 일어나 부딪히고, 튕겨 나올 듯했던 일휘가 살아 춤추며 그를 공격했다.
“이런 망할 것이!”
쩌어엉!
귀찮도록 집요한 공격에 화가 잔뜩 치민 북리도천이 온 힘을 모아 찔러 들어오는 일휘를 후려쳤다.
착!
진무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떨어져 내리는 일휘를 역으로 손에 쥐고 온 힘을 다해 바닥을 찍어 눌렀다.
꾸우우우웅!
검이 대지에 박히고 푸른빛 선기가 그 중심점에서 터지며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힘의 여파로 인해 주위에 있던 마교의 무인들이 썰물에 휩쓸린 부표처럼 멀찍이 밀려나 버렸다.
“크으으…….”
졸지에 그 공격을 온몸으로 맞아 버린 북리도천의 몸이 혈신으로 변해 비틀거렸다.
“네놈…….”
그 중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진무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했고, 귀기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일휘를 뽑아 들어 어깨에 걸친 진무가 싸늘하게 이죽거렸다.
“이런 의지박약한 새끼.”
“…….”
“고작 마성 따위를 이기지 못해서 괴물이 된 거냐?”
“크크크, 마성?”
“…….”
“꼬마 놈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구나.”
북리도천이 몸을 쭉 뻗어 세우며 진무를 오만하게 노려보았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허세는.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말하는 것을 보면 정신이 이상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찬찬히 진무를 바라보던 북리도천이 문득 흥미로운 눈빛으로 웃었다.
“이제 보니 네놈,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뭐?”
진무는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이놈이 그걸 어찌?
그러고 보니 꽤 전에 매병에 걸려 제정신이 아니던 곤륜의 풍환에게 영안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
도사 중에는 귀신을 보는 자들도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의에 이르면 통한다더니.
설마 이 망할 놈도 마성에 빠져서 정신을 잃고는 영안을 각성한 건가?
“죽은 육신에 씐 귀신이라. 거참, 희한한 놈이군. 어째서 이 북리 놈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가 의아했는데.”
“……!”
자신의 정체를 명확히 알아보고 있다. 영안의 각성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느낀 거지만 놈의 목소리에 뭔가가 덧씌워져 있기도 했다.
마치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처럼.
“……너 북리도천이 아니구나.”
“크크크, 이 내가 하찮은 인간일 리가 있나?”
“…….”
“나는 북리도천의 몸에 스며든 성화 청염, 천 년을 살아온 존재다.”
“성화…….”
“그래. 원념을 먹고 살아가는 내가 이제야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육체를 가지게 되었지.”
“그렇군.”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었다.
“내가 북리 놈의 육체를 얻은 이상, 나의 원념이 정한 바에 따라 네놈을 시작으로 천산과 세상을 피로 물들일 것이다. 모든 곳에 살의가 넘치고 좌절과 원망, 복수…….”
“큭.”
북리도천, 아니 청염의 말에 진무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나 원 참, 웃겨서 대화를 못 하겠네. 난 또 북리도천이 영안이라도 각성한 줄 알고 놀랐잖아?”
“……?”
“세상을 피로 씻어 놓는 게 유행이냐? 어째 궁 놈들도 그렇고 이젠 별게 다 세상을 피로 씻겠대?”
“뭐?”
놀란 눈 하지 마라. 이 새끼야.
나도 놀라지 않으마.
하긴 불로초를 먹고 살아 돌아온 나도 있는데 불 따위가 남의 몸에 빙의하는 게 뭐 그리 놀랄 일일까?
“북리도천 녀석. 멍청하게. 고작 이딴 녀석에게 몸을 빼앗기다니. 쯧쯧.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지 저딴 거나 믿으니까 문제인 거야. 원념? 아주 지랄이 풍년이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있었던 게지.”
혀까지 차며 빈정거리는 모습에 청염이 눈을 씰룩거리면서 진무를 노려보았다.
“야, 잡불.”
“자, 잡…….”
“뭐? 왜? 청염 어쩌고라며?”
“…….”
“그럼 잡불 맞구만, 뭘 화를 내고 지랄이야?”
“이런 개자식이?”
“개자식이고 사람 자식이고, 넌 그냥 잡불이니까 아가리 싸물고 잘 들어라.”
“…….”
“내가 북리도천 이긴 거야. 너는 별개란 이야기지.”
그러니까 너는 승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잡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아까부터 뭘 그렇게 노려보고 지랄이야? 망할 불 새끼, 물을 확 끼얹어 버릴까 보다.
일휘를 잡은 진무가 선기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선기가 스며 푸른빛으로 물든 일휘가 화답하듯이 검명을 울렸다.
“놈, 고작 네놈 정도로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더욱이 그만한 상처를 입고?”
“이거? 암것도 아냐. 추워서 두른 거야, 추워서.”
진무가 옆구리를 지혈한 천을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이런 상처가 있다고 해도 넌 상대가 안 돼.”
“뭐라? 크크크, 아주 광오한 애송이로구나.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거늘.”
그래, 지혈해 둔 곳이 얼마나 버텨 줄진 모르겠다. 지금도 선기가 줄줄 빠져나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광오하긴. 진심이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그따위 허세를 부린다 해도 결과는 명명백백하다. 네놈은 절대로 날 이길 수 없어.”
“…….”
거참, 뭔 잡불이 표현력이 저렇게 좋아?
하긴 천 년 동안 안 꺼졌으니 이래저래 들은풍월이 많기도 하겠지.
“근데 너 그거 아냐?”
“뭐?”
“나, 도사야.”
“그게 뭔……?”
의아해하는 청염을 향해 진무가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뭔 소리긴?
이 마교에서 꽃같이 산 불꽃 나부랭이 자식아.
니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도사에게는 방술이라는 게 있어.
나도 소싯……적까지는 아니고 스승님이 하도 잔소리를 해서 좀 익혔지.
이른바 귀신 쫓는 술법.
부적은 안 가져왔다만 이 선기라는 게 귀신 쫓는 데는 아주 즉효거든. 마기고 사기고 안 가려.
아주 그냥 죽여 주지.
“너 귀신이지?”
“신령, 아니 마령이다!”
“그래. 귀신. 잡불. 그럼 됐어.”
“뭐라고?”
뭐긴.
급급여율령이다, 이 불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