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진무의 말에 북리도천의 몸을 차지하고서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던 청염의 새파란 눈동자가 불안감을 머금고 잘게 떨렸다.
“네놈, 설마?”
“…….”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저 미소.
확실하다.
중원의 도사라면 누구나 기초 지식처럼 알고 있는 술법, 방술(方術) 혹은 법술.
잊고 있었다.
놈의 태생이 도사라는 사실을…….
방술은 신선술이라 불리는 도가의 유서 깊은 학문이다.
도가의 시작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술은 꽤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나, 지금 청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하나였다.
이보통령(耳報通靈).
원래는 단순히 귀신에게 정보를 캐내서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인데 이게 자꾸 발전하다 보니 부적과 같은 매개체를 이용해서 귀신을 부리기도 하고 힘을 빌려 쓰기도 하며, 때로는 봉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왜? 내가 도사라는 걸 아니까 쫄리냐?”
“…….”
진무가 허리춤을 뒤적거리며 태극패를 슬쩍 들어 보이자 청염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무당 도사들이 사용하는 태극패는 그저 호패의 용도가 아니라 법술을 사용하기 위한 매개체나 다름없었다.
현신과 동시에 봉인의 위기에 처한 청염은 진무가 방술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빼야 한다 생각했다.
“이리 와, 이 새끼야. 넌 오늘 뒈졌어.”
“……!”
동정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저 미소.
틀림없다.
도망쳐야 한다.
천 년을 살아온 잡…… 마령 청염.
시시껄렁한 방술사 따위는 씹어 먹고도 남을 만큼 강했지만, 상대는 북리도천을 이긴 진무였다.
저 정도로 자신만만한 표정이라면 무위만큼이나 강한 방술을 지닌 것이 틀림없을 터.
말하자면 자신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일지도…….
그 순간 진무가 태극패를 꺼내 듦과 동시에 청염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 하필이면!”
청염이 황급하게 태극패에서 시선을 돌리며 뒤로 물러났다.
놈의 손에 들린 태극패를 봐서는 안 된다.
태극패에는 귀신을 홀리는 힘이 있는 데다 놈의 법력까지 더해지면서…….
빠가가각!
“커억!”
시선을 돌리느라 진무의 움직임을 미처 보지 못했던 청염이 불시의 일격에 땅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주먹……? 법술이 아니라?
대체 이게 뭔…… 설마 법술을 쓰기 전에 자신의 움직임을 제재하려고?
툭.
“…….”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진무의 행동에 청염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였다.
바닥에 떨어진 태극패.
강한 일격으로 청염을 패대기친 진무가 꺼내 들었던 태극패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것이다.
“뭐? 왜?”
“…….”
청염이 눈을 부라리며 묻는 진무와 바닥에 떨어진 태극패를 번갈아 쳐다봤다.
“너? 어째서?”
“뭐? 저거? 시팔 진작에 떼 버렸어야 했는데. 싸울 때마다 거치적거려서 원.”
“……?”
“넘어질 때마다 배겨서 혼났네. 휴우,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법술을 쓰려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냐? 설마 부적을 쓰려고?”
“지랄하고 있네.”
“뭐?”
“그딴 건 갖고 있지도 않다.”
“…….”
청염의 황당한 표정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설마 자신이 법술로 상대할 줄 안 건가?
하여간 귀신 놈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것하곤.
그래, 방술.
너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다면 좀 더 열심히 배워 둘 것인데 그랬다.
진무는 도사가 되는 과정에서 스승인 명진의 성화에 못 이겨 방술의 기초를 공부한 바 있었다.
잘만 수련하면 귀신을 퇴치하는 것은 물론, 비바람을 뿌리는 능력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들었다.
하여간 도사 놈들 허세 하나는…… 어디서 그딴 허무맹랑한 소리를.
그럼 방술가가 천하제일인이겠지, 무인이 천하제일인일까?
저 오래된 귀신 놈도 놀랄 정도니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뻥을 치고 다녔겠는가?
어쨌든 북리도천의 몸에 스민 잡불, 다시 말해 잡귀신.
놈을 쫓자면 반드시 부적을 활용해 방술로써 상대해야 하지만…….
알아도 어디까지나 기초 지식일 뿐이었다. 관심이 없기에 제대로 듣지 않았고, 때문에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는 건 고작 염불처럼 급급여율령이나 외는 정도?
“하면 지금…… 나를 무엇으로 상대하려고?”
“패려고.”
뭔 저런 자신만만한 놈이 다…….
정말이지 귀신인 자신이 당황할 정도로 신박한 도사 놈이다.
“이, 이런 미친놈이 내가 그런 흔하디흔한 잡귀인 줄…….”
파악!
청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무의 신형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이런 천 년이나 산 잡불 새끼야.
그럼 니가 잡귀 아니고 뭐냐? 산신령이냐? 신선이야?
쓔아악!
강맹한 선기를 머금고 날아온 주먹을 피해 급히 고개를 숙인 청염의 뒷머리를 잡아챈 진무가 손을 빠르게 당겼다.
뻐거걱!
동시에 차올린 무릎이 청염의 얼굴을 강타했다.
“커억!”
대번에 코뼈가 박살 나 버린 청염이 거친 신음을 토해 냈다.
남의 육신에 숨어들었다고 꼴에 고통은 느끼는가 보지?
그래 뭐, 퇴마가 별거냐.
이미 마기, 사기에 상극인 선기인데 귀기 따위가 무슨 재주로 버텨.
선기로 패 주마.
북리도천의 몸에 씌었으니 북리도천을 뒈질 때까지 팬다. 버티다가 도망쳐 다른 놈의 몸에 씌면 그놈도 팬다. 아주 땅끝까지 쫓아가서 패 버릴 것이다.
온 힘을 다해 패는 것. 진무에게는 그것이 곧 법술이요, 귀신 쫓는 방법이다.
지혈해 둔 상처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지, 뭐.
퍽! 퍼퍽! 뻑! 뻑!
“죽어라! 이 잡불 새끼야! 급급여율령! 급급여율령!”
진무가 북리도천의 몸을 신들린 듯 구타하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급급여율령을 외쳐 대면서.
“크악! 크아아악!”
한참이나 두들겨 맞던 청염이 괴성을 토하는 순간, 시퍼런 기운이 몸 전체에 어렸다가 외부를 향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후욱!
훌쩍 물러난 진무가 기운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일휘를 끌어당겨 잡았다.
망할 잡불 새끼. 오래 묵어 그런가 더럽게 질기구나.
고통을 느끼긴 하는 것 같은데 저 시퍼런 귀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충격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고 전신의 뼈마디가 부러지도록 때려 놓았는데도 북리도천의 몸뚱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상태로는 계속 때려 봐야 자신만 지칠 뿐이었다.
방법을 달리하기로 한 진무는 손에 쥔 일휘에 푸른 선기를 가득 주입했다.
이제부턴 잘라서 조각내 주마.
네놈이 사용하고 있는 북리도천이라는 그 육신을.
쓔아아악!
발출된 강기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으로 나뉘다가, 이윽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갈라져 청염을 뒤덮었다.
완전히 피해 내지 못한 검격에 살결을 베인 것이 아니라, 조각난 검강에 실린 선기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인지 청염의 귀기는 더욱 강해졌다.
“크아악! 죽여 버리겠다! 이 망할 도사 놈!”
분노한 놈의 기운이 배가되어 사방을 채운다.
두려워한 법술이 아닌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이라 공격에 망설임조차 없었다.
새파란 귀기가 몸에 닿을 때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가 진무의 몸에 새겨졌고, 천산은 소름 끼치는 귀기에 잠식당했다.
“크윽…….”
북리도천과의 싸움으로 이미 몸이 천근만근이었고, 호흡도 턱밑까지 차올라 폐가 찢어질 듯했다.
몸을 스치는 귀기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잡불이라 비웃었으나 놈은 강했다.
더욱이 귀신이라 그런지 북리도천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해 버렸는지 그 무공을 훨씬 더 완숙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더 빨리 움직일 것이다.
더 강하게 공격할 것이고, 더욱 힘껏 베고 찌를 것이다.
진무는 정말로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다만 시시껄렁한 말투와 자신 넘치는 표정 뒤에 고통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무리한 움직임을 버티지 못해 기껏 지혈했던 상처가 다시 터지고, 쉴 새 없이 흐르는 피에 현기증이 몰려왔으나 진무는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다.
꽉 다문 어금니 사이에서 흐른 핏물이 입가를 흘러 가슴을 적시고 있음에도 움직이고 또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가슴을 채운 숨을 완전히 내뱉으면 무너질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했고, 멈추는 순간 청염의 귀기에 살점이 뜯겨 나가고 정신을 잃을 듯하여 그러했다.
슈아악.
청량함을 머금은 선기가 날카롭게 귀기를 잘라 내고, 일휘의 끝에서 무당의 모든 검공이 펼쳐졌다.
천지인의 이치를 담은 삼재, 자연을 이루는 오행, 북두의 칠성, 구궁, 태청, 유운…….
처음에는 그 형과 식을 따랐으나 더 빨라지고 예리해지는 과정에서 잘게 쪼개지고 합해지기를 반복하니 이제는 그 어떤 검공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무당의 검이었다.
발걸음은 구름 사이를 노니는 바람이 되었고, 검은 손의 연장선이 되어 자연스러움으로 화한다.
고절한 기예라는 이기어검 따위는 없었다.
베는 것과 찌르는 것.
검의 기본이 되는 두 가지 동작이 끊김 없이 흘러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쿠르르르! 콰우우우!
청염의 귀기를 피해 물러날 때면 선기와 사기가 치환되며 검게 변한 손에서 묵룡이 포효했다.
하늘을 찢는 천교열, 비틀림으로 소용돌이를 만드는 와류, 모든 것을 찢어 내는 용조난작. 대지를 터트리는 충룡의 대지창파.
선기에 이어 사기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무공이 펼쳐지고 종전의 무당 무공과 반복을 거듭하며 하나의 무공인 듯, 하나의 기운인 듯 이어진다.
그의 손이 담은 것이 때로 사기인가 하면 때로는 선기라.
끝없이 이어지는 듯싶던 사기와 선기가 경계점을 넘어 조금씩 뒤섞이기 시작했다.
검이 묵룡의 송곳니가 되어 하늘을 찢어 내고 주먹이 내뿜는 선기가 대지를 짓이겼다.
무엇이 선기고 무엇이 사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치환되니 어느덧 진무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은 태초의 세상이 가졌던 혼돈의 기운과도 같았다.
움직임이 더해지고 더해져 진무는 점차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게 되었다.
무아(無我).
시작은 자신의 의지였으나 후에는 모든 것을 잊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슈욱, 콰쾅!
펼쳐 내는 무공에 터트려진 것들이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소음이 조금씩 귓가에서 멀어졌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이름난 무희가 자신도 모르게 천상의 춤을 그려 내는 것처럼 진무는 그가 가진 모든 무공으로 춤사위를 그렸다.
그리고 마침내 두 무공이 가진 본뜻이 진무의 의식 속에서 자연스레 떠올라 하나로 연결되었다.
무극이 태극이요, 태극이 무극이라. 태극이란 나누어지되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니 곧 다함이 없다 할 수 있다.
이는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이니 태초의 혼원과 다를 바가 없음이라.
혼원은 정제되기 전의 어둠이며 처음이 곧 끝이고 끝 또한 처음이라. 둘이 아닌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니 어지러움 속에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혼원공이라.
뜨거움은 위로 흐르고 차가움은 아래로 흐르니 이는 양과 음이며 물과 불이라.
불은 밝음이요, 물은 어둠이라.
이는 하늘과 땅이며 하늘은 양이라 멈춤 없이 움직이고 땅은 음이라 흐름 없이 멈춘다.
둘로 나누었으나 하나에서 출발하였으니 어찌 다르다 할 것인가?
고저는 그저 구분이며 마음에 음양이 닿아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이는 곧 태극이라.
태극요결과 묵룡혼원공.
둘의 무공을 이루는 요체가 하나로 합해지는 순간 선기와 사기가 미친 듯이 솟구쳐 둘 사이의 경계점과 같았던 백회를 강타했다.
쩌어어엉!
강렬한 충격이 머릿속을 뒤흔드는 순간, 쉼 없이 움직이던 진무의 움직임이 멈췄다.
쩌어억!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청염의 귀기가 진무의 몸을 후려쳤다.
뭐지 이건……?
마땅히 있어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혼이 떨어져 나온 듯 진무는 자신의 몸이 충격을 받고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쓰러진 자신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망할 귀신 놈도 보았다.
“크핫핫핫!”
개자식이 웃기는.
그런데 왜인지 화가 나지 않는다.
마치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무감각해져 버렸다.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분명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호했다. 다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묵룡혼원공과 태극요결이 같은 흐름을 가지고 합해졌다는 것.
젠장, 지난번이 태극인 줄 알았더니 이게 진짜 태극이었구나.
근데 저 빛은 뭐지?
문득 진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어서 오너라 유혹하듯 손짓하는 빛.
이거 설마…… 상단전이 열려 버린 거야?
무릇 상단을 깨우쳐 정기신이 활성화되면 영(靈)으로서 선계에 이른다고 하더니…… 나 지금 등선하는 거냐?
이 와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