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진무에 관한 대화가 오고 갈 무렵, 객점을 떠난 진무는 제 말 들은 호랑이처럼 좌도독의 본가 인근에 당도해 있었다.
“여기냐?”
“예.”
진무의 물음에 청우의 어깨에 걸쳐진 이평세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좌도독 곽종산의 본가.
한 길이 훌쩍 넘는 담벼락이 안을 가리고 있고, 영왕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기세를 가진 군병들이 쉼 없이 순찰하는 곳.
과연 나라에 제일가는 위세를 가진 무장이라더니 그 이름에 걸맞은 저택이었다.
“미친놈들…… 청렴결백은 다 옛말이네, 옛말이야. 아주 돈 지랄을 제대로 해 놨어.”
“……?”
돈 지랄? 어디가?
한 나라의 군권을 좌지우지하는 도독의 본가치고는 무척이나 검소한 편인데?
퉁명스러운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진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망할 고관대작 놈 같으니. 나라의 녹을 처먹는 놈이 아주 장원을 성처럼 지어 놨다.
이게 전부 백성의 고혈인데.
와중에 저 경계 병력은 제 놈 돈으로 부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저놈들도 전부 나라에서 녹을 받아 처먹을 것이고, 그럼 응당 만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고작 집이나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문제는 그 규모에 있었다.
군부의 최상층인 도독 놈이 제집을 지키는 놈들을 허술한 것들로 깔아 두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필시 무림인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무장들이 가득할 터.
와중에 모자란 무공을 채우려 보검과 보갑으로 무장하고 군문에서 쓰는 다양한 무기까지 있다면?
“이거 원, 이 상황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네.”
영왕이 나올 때를 기다려 납치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목적은 그가 금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급했다.
황제의 칙령이 없어 군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진무는 그저 영왕이 이미 좌군 도독을 만난 것이 군을 움직이기 위한 것이라 여겼다.
무리해서라도 만나야만 했다.
그런 진무의 푸념에 청우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왜 어려워요? 그냥 영왕이라는 사람만 만나는 거 아닌가요?”
“…….”
청우야. 누가 그걸 모르니?
근데 영왕이 만나려 하지 않으면?
만났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에는 일전을 각오해야만 한다.
도독의 본가라는 장원의 규모가 수백에서 수천은 족히 들어가 있을 만큼 거대하다.
와중에 안에서 훈련하는 소리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오지 않는가?
사패천주로 살아온 진무는 무림뿐 아니라 군문과도 악연이 있었다.
소싯적의 소약벽이 정쟁에 휘말려 죽은 정인의 복수를 위해 장군부에서 깽판을 쳤었으니까.
그때 경험을 떠올려 보면 정말 치가 떨렸다.
개개의 실력으로는 무림인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것들이 떼거리만 지으면 수 배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이겨도 문제다.
그때도 진무와 천우명이 소약벽을 구하려 장군부를 박살 내었다가 수배가 떨어져 한동안 쫓겨 다니며 개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그 후로 웬만하면 관부와 엮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태극을 이루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진무였으나 녹록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사숙, 왜 어려운데요?”
청우의 재질문에도 진무는 답해 주지 않았다.
이해시키려면 한세월이니까.
“서현.”
“예, 주군.”
“안에 들어가서 싸움이 벌어져도 절대로 죽이지 마.”
“음, 그럼 팔이나 다리를 뽑는 것은 관계없습니까?”
“…….”
사람이 인형이냐? 잡초야?
뭘 자꾸 뽑아내려고 해?
하지만 충성심에서 우러나온 말일 테니 핀잔을 줄 수도 없었다.
“음, 정 위험하면 팔이든 다리든 부숴서 전투 능력만 상실시켜.”
“알겠습니다.”
팔과 다리를 혼잣말처럼 되뇌는 능서현에게서 고개를 돌린 진무가 청우를 불렀다.
“청우.”
“예, 사숙.”
“너는 청상과 황신 등이 올 때까지 잠시 빠져 있어라.”
“예?”
“괜히 너까지 휘말려서는 안 돼.”
“사숙, 그럴 순 없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
청우가 어울리지 않게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는 진무를 쳐다봤다.
망할, 멍청한 놈이 똥고집만 세서는. 아주 청상에게 제대로 배웠네, 제대로 배웠어.
“하아, 좋아. 대신에 웬만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나서지 마. 넌 아직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니까.”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명할 때까지 절대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
“예!”
“좋아, 그럼 어디 잘나신 영왕의 낯짝이나 한번 볼까?”
각자에게 주의 사항을 주지시킨 진무가 정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저, 주군?”
“응?”
“저는 뭘 하죠?”
“…….”
이제 막 한 걸음을 뗐는데 자신을 향해 머쓱한 표정으로 묻는 놈은 다름 아닌 황신과 아이들 소속의 괴충이었다.
아, 너도 있었지?
활약이 하도 없어서 같이 있는데도 있는 줄 몰랐다.
“너도…… 나서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괜한 사고 치지 마라. 이 존재감 없는 인형극 노인네 아들놈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무가 일행들을 이끌고 장원의 정문으로 다가서자 지키던 군병이 매서운 표정으로 창을 세워 위협했다.
“멈추시오!”
“…….”
그래도 영왕부 놈과는 달리 예의는 바르다. 기세도 안정적이고.
젠장, 이건 이거 나름대로 더 문젠데.
군기가 잡혀 있다는 것은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고, 싸움이 벌어지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니까.
“이곳은 좌도독 곽종산 장군의 본가외다. 신원을 밝히시오!”
“나? 무당지검이자 사패천주이자 마교 교주 진무라고 하는데.”
“…….”
진무는 쓸데없는 문답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신분을 죄다 밝혔다.
꽤 거창하고 긴 이름에 군병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당에…… 사패천에…….”
“…….”
“흠흠, 어쨌든 고명한 무림인이신 모양이오. 하나 위에서 통보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약속을 잡지 않은 듯하니 일단 안에 연락을 취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군병의 말에 진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접근에 주변을 순찰하던 군병들이 눈에 띄지 않고 포위하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담벼락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는 화살촉의 그것일 것이고…….
좌우에 순찰하는 척하고 있으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을 보니 진무의 행동을 살피며 언제든 칼을 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 자식들이. 오래 기다리게 할 거면 어디 앉아 있을 곳이라도 마련해 주지. 다리 아프게시리.
이런 걸 보면 새삼 당가가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세 시진 가까이 기다리게 하긴 했었어도 번호표도 주고 대기소도 따로 마련해 두었었는데.
정문 앞에 우두커니 선 진무가 한참을 기다리는 사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전령이 급히 뛰어와 수문장쯤 되어 보이는 군병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뭐라고 속닥거리는 거지?
황신이 있으면 알아보라고 시킬 것인데.
망할 녀석. 청상을 시켜 불러내라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필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청상까지 꼬드겨서.
두고 보자. 내 나중에 반드시 심도 깊은 대화를…….
속닥거리는 내용을 알 길 없는 진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수문장이 다가왔다.
“안에서 기별이 왔소.”
“…….”
다 봤구만 설명은 무슨.
“도독께서 접견을 허락하시었소.”
다행이다.
큰 싸움 없이 영왕을 만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안도하는 진무가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수문장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다만, 허락하신 것은 그대뿐이오. 나머지 분들은 밖에서 기다려 주셔야겠소.”
“…….”
나만이라고? 어째서?
적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대화만 나누려는 것이다.
일행이 함께 들어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데, 이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
그사이 이미 수문장의 눈짓에 좌우에 있던 군병들이 진무와 일행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들이…….”
충성스러운 능서현과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며 매서운 기세를 흩뿌리는 괴충이 나란히 눈을 부라렸다.
물론 순박하게 시킨 말을 잘 듣는 청우는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물러나시오.”
“…….”
능서현의 몸에서 퍼져 나온 살기와 지독스러운 마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수문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차아앙!
그와 동시에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군병들이 창검을 곧추세우고…….
촤자자작!
담벼락에 숨어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
궁수와 군병의 수는 대략 오십에서 백 사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많은 수도 아니었다.
아무리 튼튼한 갑주를 입었다고 해도 청우와 괴충의 무위가 낮지 않았고, 무엇보다 능서현의 손이 닿으면 두부처럼 으깨질 것이 뻔했다.
아니, 저 녀석이면 분명 갑주로 가리지 않은 모가지를 죄다 뽑아 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일단 그들이 접견을 허락했으니 원하는 대로 해 주는 수밖에.
원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다들 대기하고 있어.”
“주군!”
“시끄러워. 괜히 사고 치지 마. 상대는 좌군 도독과 영왕이다.”
“…….”
진무의 말에 한차례 군병을 노려본 능서현과 괴충이 천천히 기운을 풀었다.
“다녀오십시오, 사숙.”
“…….”
“저희는 근처 객점에서 기다릴까요? 때마침 허기도 지는데.”
이 쓸데없이 해맑은 청우 놈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너는 이 사숙이 걱정도 안 되냐? 주둥이로 음식이 들어가?
절대로 나서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않았어도 몇 대 패는 건데.
“그래, 괜히 대로변에서 기다릴 필요야 없지. 인근 객점을 잡고 청상과 황신 쪽 애들이랑 합류해.”
사실 걱정이랄 것도 없다.
차라리 하늘이 무너질까를 걱정하는 게 빠르지.
일단은 대화할 생각이고, 싸운다고 해도 이딴 약해빠진 군병들쯤이야.
좀 성가셔지긴 하겠지만…….
“걱정 말고 기다려. 금세 다녀올 테니까.”
“…….”
진무가 손을 휘휘 젓고는 청우가 둘러메고 있던 서창 무인 이평세를 건네받았다.
“이놈은 데리고 가야겠소.”
“……?”
“영왕부를 은밀하게 살피던 서창의 쥐새끼요.”
“아니! 이런 법이…… 읍! 읍읍!”
진무의 말에 이평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아혈이 제압당해 읍읍거렸다.
“좋소. 그 쥐새끼까지는 허락하겠소.”
이평세를 노려보던 수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서자 진무가 정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문 안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능서현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위험한데…….”
“음, 주군 혼자서는 역시나 위험할까요?”
“…….”
괴충의 말에 능서현이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바라봤다.
위험? 누가? 저 양반이?
착각도 그런 착각을?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
괴충이 슬쩍 눈치를 살피자 능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진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있어서 저 괴물 같은 주군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좌군 도독의 본가를 지키는 군병들이었다.
만약 저 성질 더러운 주군이 사고라도 치는 날에는 좌군 도독의 본가는 물론 순천부가 개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능서현이 진무를 따라가려 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혹시나 사고를 수습도 안 될 정도로 대판 쳐 놓을까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