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9
59화
다음 날.
명진과 청우, 청상은 암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
“아직인가?”
진무가 태청신단을 취하기 위해 폐관에 들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명현이 찾아왔지만 명진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 말게.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렇기야 하겠지만.”
명진은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진무는 그 어떤 누구보다 소중했다.
폐인이 된 이후로 정성을 다해 자신을 보살핀 진무였다.
절벽에 떨어졌던 이후로 뭔가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만큼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라 주었다.
태청신단을 흡수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나 혹여 뭔가, 아주 사소한 무언가라도 잘못되면 어찌할까 걱정이 가득했다.
“원래 이리 오래 걸리는 겁니까?”
“글쎄. 나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네. 돌아가신 현공 사숙께서 태청신단을 취하셨을 때는 우리가 너무 어렸지 않은가.”
“그렇지요.”
“기다려 보세.”
“예.”
명현이 돌아간 뒤로도 장로들 둘인가 셋이 암묘를 찾았고, 그 이후로는 일대제자들이 줄을 이었다.
마치 영겁처럼 느리게 흐른 시간이 어느덧 사흘이 되었고, 이제 명진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슬쩍 들여다봐야 하나?
무릇 영험한 물건인데 부정이라도 타면 어찌하나?
머릿속을 채운 두 가지 고민이 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흘째.
쩡!
거친 소음이 암묘를 가득히 채워 울리고.
“어?”
진무가 너무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밖으로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명진과 청상, 청우를 바라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뭐 하세요?”
“아!”
십 년은 족히 늙어 버린 듯한 명진의 눈에 진한 습기가 차오른다.
“진무야!”
명진이 진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늙으나 젊으나 참 안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었다.
“스승님?”
“됐다, 됐어. 허헛! 된 것이야.”
무슨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니고 뭘 이리도 기뻐한단 말인가?
와중에 정작 있어야 할 물음은 없었다.
무당의 신물을 취했으니 응당 ‘어떠하냐?’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느냐?’ ‘보여 다오.’ 같은 반응을 보이며 궁금해해야 하는데.
명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환하게 웃으며 진무를 힘껏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저 아무 일도 없이 밖으로 나와 준 것이 그리도 고마운 것일까?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싫지 않았다.
“어? 사숙, 몸이 조금 커지신 것 같은데요?”
“그래?”
“예. 피부도 훨씬 좋아지신 거 같고. 뭔가 탄탄해진 것 같습니다.”
“흐음.”
옆으로 다가와 손으로 머리끝을 가늠해 보는 청상과 청우가 신기해하며 웃었다.
“그만하고 가자. 나흘이나 굶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예. 사조님.”
명진의 말에 청상과 청우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다.
아니, 배가 고픈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청상은 급히 자소궁에 들러 이 사실을 장문인께 고하고 청우는 암자로 올라가 불을 피우거라.”
“예, 사조님.”
청상이 뛰어가는 모습에 진무가 명진을 향해 말했다.
“그럼 제가 얼른 가서 멧돼지라도…….”
“어허! 영단을 취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예?”
“자고로 아이를 낳은 산모도 이레는 쉬어야 한다 하였다. 어찌 영단을 흡수하고 바로 무리를 한단 말이냐?”
애 낳는 게 더 어려울 텐데?
그리고 해산한 산모가 이레만 쉬어서는 턱도 없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을 쉬고 일 년을 족히 조심해야 한다 하였다.
“몸이 커진 것을 보면 필경 골격이 자라거나 했을 것이 틀림없다. 어찌 몸이 정상이겠느냐?”
명진이 자신의 장삼을 벗어 진무에게 걸쳐 주며 다그쳤다.
“앞으로 달포는 족히 쉬며 흡수한 영기를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찬 바람도 쐬지 말고, 무거운 것을 들어서도 안 된다.”
“사부님?”
“어허! 이 스승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그러니까, 몸은 무척 좋아졌는데요?
“자, 서두르거라. 뼈에 찬 바람 들라. 어서 올라가 방에 들어가거라.”
아니, 일단 애를 낳은 게 아니라니까요? 거참.
진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오늘은 직접 실한 놈으로 잡아 오마. 너는 그저 먹기만 하여라. 이 스승은 그것이 더 뿌듯하다.”
“……예.”
뭐라 말을 더 하려 해 보았으나 명진의 표정이 너무 단호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조금 과하다는 것이 문제기는 했지만.
‘뭐, 나쁘지 않네.’
진무는 산짐승을 잡으러 휘적휘적 걸어가는 명진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명진은 더 이상 폐인이 아니다. 내력이 담겨 있지는 않았으나 그의 발걸음에 제운종의 묘리가 느껴졌다.
낫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무인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명진이 잡아 온 고기가 청우의 손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역시 자주 먹어선지 솜씨가 나날이 발전하는 것이 느껴진다.
숙수로 뛰어도 충분하겠다.
찌이익!
청우가 먹기 좋게 익은 다리 두 개를 뜯어 명진과 진무에게 내밀었다.
“허허, 향이 좋구나. 먹자.”
“예. 스승님.”
진무가 막 고기를 베어 무는데.
“허헛, 난 또 네가 대제자가 되려 하는 줄 알았지 뭐냐?”
“에?”
명진의 말에 진무가 입으로 가져가던 고기를 멈추고 명진을 멀뚱히 바라봤다.
“저어, 스승님?”
“응? 왜 그러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가?”
“대제자.”
“응?”
명진이 진무를 지그시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몰랐느냐?”
“예? 뭘요?”
“무당지검의 칭호를 받은 제자는 대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
“몰랐던 모양이구나. 허허, 뭐 아무려면 어떠냐? 자, 먹자.”
명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진무는 이미 석상처럼 굳어 버린 뒤였다.
왜!
왜 그걸 이제 말해!
선택할 때 말했어야지! 길이 세 개라고, 아주 정확하게 말했어야지!
벌써 태청신단도 다 까먹었는데!
여기 배 속에, 세맥에! 막! 어? 호랑이 기운이 막 솟아나고 있다고, 지금!
내 양의심공은? 정사마 최강자가 되는 원대한 꿈은?
개방 협전에 태청신단에…… 어쩐지 억세게 운이 좋다고 했더니.
씨발, 씨발…….
* * *
진무가 태청신단을 무사히 흡수하고 나왔다는 소식에 장문인, 장로, 일대제자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명진은 방 안으로 찬 바람이라도 들까 봐 고리눈을 뜨고 그들의 출입을 감시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리 멍해 보이지?”
“그러게 말일세. 현공 사숙께 들었던 바대로라면 막 눈에 총기가 넘치고 신광이 뿜어진다 했는데.”
진무를 만나고 나온 장로들이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거 흡수가 잘 안 된 거 아니야?”
“그런가?”
“그래, 사흘씩이나 걸린 것도 그렇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말에 명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들의 말처럼 영기가 제대로 흡수되지 않았다면 상처를 가장 크게 받는 것은 진무 본인일 터였다.
‘안 되겠어. 이러다가 진무가 더욱 피곤해지겠군.’
제자의 휴식을 위해 구경꾼들을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모두 이만 돌아가시오. 영단을 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오.”
명진이 떠밀듯이 사람들을 몰아냈다.
시끌시끌했던 충허암이 비로소 한산해졌을 때.
“휴우.”
명진이 긴 한숨을 내쉬며 진무가 몸을 반쯤 기대고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사조님.”
“응?”
“괜찮을까요?”
“음. 방문을 닫아 주거라. 찬 바람 들라.”
“예.”
실의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진무의 모습을 보며 충허암의 사람들은 또다시 한숨만 내쉬었다.
“하아…….”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향해 한숨짓는다.
“하아.”
청상과 청우가 부러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도.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 고기를 굽고 산 아래로 내려가 몰래 사 온 술을 보여 줘도.
진무는 세상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태청신단을 취한 이후로 늘 같은 모습이었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표정에 명진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무의 모습에 충허암의 분위기가 마치 명진이 침상에 누워 멍하니 세월을 보내던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미래도 꿈도 없던 그 시절로.
명진은 결심했다.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것이 스승의 도리이리라.
“진무야.”
“……예.”
명진의 부름에 진무가 힘없이 대답했다.
“너무 앞서가려 하는 것 아니더냐?”
“……?”
“이미 충분하니라.”
명진은 자신의 제자를 향해 진심으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네가 이룩해 낸 경지가 놀라운 것이 아니더냐?”
“예?”
“약관에 의기에 이른 것만도 고금 무림사에 없던 일이다.”
뭐라는 건지.
“태청신단의 영기를 얼마만큼이나 흡수했는지 이 스승은 알지 못하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시련의 연속인 게지.”
“…….”
“하늘은 이겨 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하지 않느냐?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다. 당장이야 깨달음이 없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이나 잘 이겨 내리라 믿는다.”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너는 이미 네 할 만큼 준비를 끝냈으니 필시 하늘이 뜻을 내려 줄 게야.”
이 도사 놈은 도대체 무슨 말을 이리도 길게 하고 있는 것일까?
진무가 명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녀석.”
명진이 제 스스로 뿌듯해하며 웃었다.
그리 생각한 것이다.
의기에 오른 진무. 어쩌면 태청신단을 흡수하자마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도 빠르게 발전해 왔으니 조급해할 만도 했다. 더욱이 ‘무당지검’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니 그 조바심은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의기의 다음 경지인 ‘강’의 단계.
그것이 보통 일이던가?
지금의 무당에서 누구도 이르지 못한 단계였다.
올라서는 순간 ‘절대’의 이름으로 추앙받는 지고지순한 경지가 아니던가?
진무의 나이로 봤을 때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다.
“진무야. 강의 경지라는 것은 말이다. 스스로의 깨우침만으로는 힘든 것이다. 천운이 닿아야만 하는 것이야.”
“…….”
“당금의 정무맹에도 강의 경지를 이룬 이들이 열을 넘지 못한다. 일전에 찾아오신 양소방 어르신도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강의 경지에 오르셨다지 않느냐? 그러니 조바심은…….”
충고라는 것이 으레 그렇다.
같은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마치 자신의 생각을 주입해 설득이라도 할 것처럼 반복한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의 충고는 대개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뭐 명진이야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겠지만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해 죽을 것 같은 진무는 명진이 주절거리는 것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쑤욱!
순간 진무의 손에서 시퍼런 기운이 솟구친다.
“이런 거요?”
“그래. 그런…… 응?”
기운을 목도한 명진은 말을 잃었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억, 아, 하는 소리만 내었다.
수련을 하고 있던 청상과 청우는 아예 턱이 빠질 지경으로 입을 벌렸다.
“아님 이런 거요?”
휙!
진무가 손을 휘젓자 솟구친 기운이 구슬처럼 뭉쳐졌다가 던져진다.
콰아앙!
충허암 인근에 있던 바위가 산산이 폭발했다.
“……!”
명진과 청우, 청상의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가, 가, 가…….”
“예, 강기네요.”
진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태청신단의 영기. 진무는 정말 한 방울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단전이 재구성되고 단번에 반 갑자의 내공을 얻었다.
비록 전설적인 경지라는 탈태환골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강기에 도달하기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공이 부족했을 뿐 이미 ‘강’에 대한 깨달음이라면 넘치도록 많았던 진무였다.
태청신단의 영기를 모조리 흡수한 진무에게 강기 따위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젠 강기를 뭉쳐 포탄처럼 던져 내는 ‘강환(罡丸)’까지 가능했다.
“너, 너…….”
“하아, 이만 쉴게요. 피곤하네요.”
진무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는데도 충허암의 사람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저 ‘가, 가, 강…….’만 합창처럼 연발했다.
도대체 왜!
이미 강의 경지에 올랐으면서 어째서 세상 다 잃은 표정이냐!
이 축복받은 놈아!
멱살이라도 잡고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