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선도의 무공을 익혔다.
마음이 악함에도 강제로 육양신공을 얻었으니, 위화감 없이 무당의 무공을 익혔다.
깨달음의 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다 깨달았으니까.
그러니 그 마음 또한 전혀 선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사악하고, 여전히 비열하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도포 입은 사파인이었다. 그것도 극악할 정도로 탐욕스러운 사파인. 양의심공을 익힌다 해도 무슨 심마에 빠진단 말인가? 근본이 악한데.
“저는 괜찮습니다.”
“뭐?”
“저는 절대로 심마에 빠지지 않습니다.”
진무가 자신 있게 말했다.
“허!”
이게 무슨 개소린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 주었건만 ‘응 나는 괜찮아.’하며 처웃고 있다니.
진무가 도무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운공의 미간이 깊이 일그러졌다.
선도비기를 익혀 앞으로 나아가는 자로서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두면 그 수양이 얕아지기 마련이었다.
해서 운공은 앞으로 무당의 이름을 드높일 진무를 설득하기 위해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 하나를 꺼내기로 했다.
“백 년 전이다.”
백 년 전?
진무, 아니 혁련무강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였다.
노인의 나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아니, 근데 뭘 이렇게 오래 살았어? 무당산 정기 혼자 다 빨아 처먹었나?
“하여간 오래전 그때, 마지막으로 양의심공을 익혔던 분이 계셨다.”
마치 할아버지가 머리맡에서 으레 해 주는 옛날이야기처럼, 나지막이 읊조리는 운공의 말이 시작되었다.
양의심공.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진무는 할아버지 무릎에 누운 손주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청했다.
“당시의 장문인이셨던 청무(靑武)께서도 너처럼 당신은 괜찮을 것이라며 양의심공을 수련하기 위해 폐관에 드셨다.”
청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양의란 원래 하나의 태극이었다. 하나를 둘로 나눈 셈이지. 그 덕에 한 사람의 몸에 음양의 무공을 익힐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나누어져 있다고 해도 원래 하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조화인 게지. 한데 그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그건 아까도 했던 이야기였다.
늙으면 같은 말을 반복한다더니.
하지만 진무는 운공의 말이 끝날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분은 양의심공에서 말하는 음의 무공을 채우려 사파의 심공을 따로 익히셨다. 하지만 태극으로 합일하는 과정에서 균형을 맞추지 못하여 심마에 빠지셨고, 끝내 마인이 되어 본문에 화(禍)를 남겼다.”
음양의 무공이라 했으니 당연히 도가의 심공 외에 사파의 무공이나 마공을 익혔을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화라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전혀 들어 보지 못했는데?
“생소한 이야기겠지. 청무, 그분에 대해 남은 기록은 무림에서 활동하신 십 년이 전부니까. 그 외에는 모두가 무당 내부의 일이었고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무당에서 막았다. 어쨌든 이제야 다 잊었으나 당시의 무당으로서는 더없는 치욕이었다. 한 줄이라도 역사에 남길 수 없었지. 어쨌든 무당은 십 년간의 기록을 제외하고 양의심공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우고 마인이 된 그분의 무공을 폐했다.”
장문인이 마인이 되었으니 치욕스러울 만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양의심공을 익혔음에도 이런 허접한 무당 도사들에게 막혔단 말인가?
사패천주였던 자신조차도 막지 못했던 무당에게.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진무가 양의심공을 익히려는 것은 묵룡혼원공을 익히기 위함이니까.
태극 따위를 이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다지 강하진 않으셨나 보네요.”
“뭐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진무의 중얼거림에 운공이 갑자기 화를 내듯 소리치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진무를 쏘아보았다.
“강하지 않아? 그분께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마기를 억누르고 동문의 목숨을 앗은 것에 대한 속죄를 위해 제자의 손에 목을 내놓지 않았다면 무당은 물론 온 세상이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아씨, 깜짝이야.
아니면 아닌 거지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고약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런데 온 세상이 피로 물들어?
이 노인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천하제일 고수, 뭐 이딴 걸 말하는 건가? 무당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창때 활동하신 십 년의 시간만으로도 무림사에 더없는 전설을 만들어 내신 분이다. 내 그분의 앞에 고개를 빳빳이 든 인물은 맹세코 보질 못했느니. 만약 태극을 이루셨다면 황제조차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뭐? 에이, 뻥을 쳐도…….
황제가 고개를 조아린다고?
손짓 한 번에 백만 대군을 움직이는 게 황제인데.
이 양반 이거, 과하게 오래 살아서 혹시 노망이라도 난 건?
그런데 이글거리는 운공의 눈동자에 거짓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못했다더라.’가 아닌 ‘못했다.’였다.
“근데 그걸 어찌 직접 본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그건…….”
부리부리한 눈으로 화를 내던 운공이 문득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분의 목을 자른 그 제자였으니까.”
“…….”
아, 그러시군요.
막 천하제일인이고 모두가 머리를 조아릴 정도의 대단한 사람인데 말이죠.
그 대단한 사람이 정신을 차렸는데 스스로 목을 내놓았다고?
괜히 들었다.
이 노인네, 노망난 게 확실하다.
그리 오래 살면서도 장서각에 처박혀 비급이나 필사하는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자신이 청무라고 했으면 조금이라도 믿었겠다.
그럼 엎드려 절했겠지. 제발 양의심공을 가르쳐 달라고.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려는데 운공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어쨌든 그때 이후 양의심공의 제이 권이자 후반부인 태극본이 넷으로 나누어졌다.”
응? 잠깐만, 두 권이라고?
한 권이 더 있는 거냐?
“두 권이란 말입니까?”
“그래, 원래 두 권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유지에 따라 앞으로 무당의 그 누구도 태극을 이루다 마기에 빠지지 못하도록 태극본을 무당을 제외한 네 곳의 도문에 나누어 봉하게 하셨지.”
이 노인네가 진짜.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럼 없다는 거잖아!
듣다 보니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럼 장문인에게 대제자가 전수 받는 양의심공은 뭡니까?”
“전반부다.”
“…….”
“하지만 태극을 이루는 후반부가 사라졌으니 진정한 양의심공이라 할 순 없다.”
말인즉슨 전반부인 일 권이 양의심공이고, 후반부인 이 권이 태극을 이루는 요결이란 말이다.
중요도는 비슷하다고 해도 진무가 필요한 건 전반부였다.
후반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깟 태극 따위…….
결국 진무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이다.
“그럼 찢어졌다는 태극본은 전반부가 없으면 쓸모가 없겠네요. 양의심공을 익힐 수 없으니 두 가지 내공을 다시 합할 수도 없을 텐데.”
“아닐 것이다. 청무께서 주해본과 태극요결을 각기 둘로 나누어 네 곳에 봉인하라 하셨다 하니 후반부에는 전반부의 주해가 담겨 있을 것이다.”
뭐? 그럼 후반부가 더 대단하단 소리를 하는 건가? 후반부만 얻어도 양의심공을 익힐 수 있다고?
이 노인네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럼 그 사실을 다른 도문에서도 아는 건가요?”
“글쎄. 그들이 비밀을 지켰다면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겠지.”
“…….”
진무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운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그사이에 누가 찾았다는 소문도 없구요?”
“글쎄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만.”
“혹시 이 이야기를 무당에 또 아는 사람이 있나요?”
“말했지 않느냐? 양의심공에 관련한 내용은 치욕스러운 역사였기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그다음 대 장문인이었던 운정이 후대에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예에.”
돌고 돌아 원점.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이야기는 운공만이 아는 이야기였다.
미친 노인네의 상상 속에서 존재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미래를 걸고 싶진 않았다.
더 들을 가치도 없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젠 청무라는 자가 실존했다는 이야기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만한 인물이면 응당 전 무림에 소문이 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마인이 된 사람이라고 하나 이미 스스로 정신을 차린 인물이다.
조상을 제 몸같이 대하는 도사가 다른 이도 아니고 또한 자칭 중원 최고수로 불린 장문인의 목을 자르고 살아남았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정도로 대단한 무인이라면 사고를 좀 쳤다고 해도 면벽이네 뭐네 하며 나이 들어 죽어야지.
목을 잘라?
그랬다가는 분명 고리타분한 도사 놈들이 기사멸조를 들먹이며 사지근맥을 자르고 뼛가루를 빻아 뿌려 버렸을 일이다.
노인의 눈빛이 심상치 않길래 뭔가 있는 줄 알고 기대했더니만.
신광인 줄 알았더니 그저 미친 노인네라 다른 사람들과 눈빛이 달랐나 보다.
심연인 줄 알았던 것은 그저 멍한 것이라 그리 보였나 보다.
“어쨌든 세월이 이리도 흘렀으니 태극본이 남겨져 있을지도 알 수 없구나. 자파의 것도 아니고 찢겨져 불완전한 것을 과연 보존하고 있을까?”
운공이 아련한 눈빛으로 중얼거리지만 이젠 관심도 없다.
청무? 황제가 머리를 조아려? 하여간 도사 놈들이 뻥은…….
“예. 그렇겠네요.”
망할 노인네, 혹시나 살아온 세월이 있어 구결이라도 알면 뒷구멍으로 좀 얻어 볼까 했더니.
사실 관계조차 명확하지 않은 역사만 늘어놓았다.
존재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후반부 따위…….
흥미가 완전히 떨어져 버린 진무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운공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다만, 어쨌든 다시 말하면 양의심공 같은 헛된 욕심을 버리고…….”
* * *
운공과의 대화 이후 충허암으로 돌아온 진무는 스승의 명령에 의해 장서각에서 받아온 책을 종류별로 분류했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운 좋게 태청신단을 얻어 강의 경지를 이루긴 했으나 애초의 목표인 양의심공은 완벽하게 날아가 버린 셈이다.
“망할. 괜히 무당지검을 선택한 건가?”
이 무당의 검이란 칭호가 아주 더럽기 짝이 없다.
일단 움직임에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그의 행동이 곧 무당의 행동과 다름없으니 매사에 조심스럽기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태청신단은 소화되다 못해 뒷간에 버려진 지 오래였다.
당초의 계획은 양의심공을 익힌 뒤에 스승의 허락을 받고 무당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의심공이 날아가 버린 마당에 지긋지긋한 무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젠 자신을 제약하는 스승의 허락을 받고 떠날 시기가 된 것이다.
한시적으로 떠나는 외유가 아닌, 오랫동안 무당에서 떠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떠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진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옆에서 함께 비급을 분류하던 청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숙? 표주(漂周)라도 떠나시게요?”
“응? 뭐?”
“아니 무당을 나가신다고 하길래. 표주라도 나가실 생각인가 하고.”
“뭐?”
“모르셨어요?”
알긴 안다.
표주(漂周).
그에 대해서 진무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두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는 말이었다.
무인은 무공만 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강호를 알아야만 했다.
무공을 익히고 강호를 돌며 경험을 쌓음으로써 진정한 무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표주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 인맥을 키운다.
그것이 표주의 목적이었다.
“표주는 대제자에게 주어지는 기회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렇죠. 근데 사숙께선 무당지검이시잖아요.”
“……응?”
“무당지검은 무당의 대표자이자 외적인 일에 나서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대제자보다 더욱 표주를 나가 경험을 쌓는 것이 마땅할 겁니다.”
“아!”
그래, 네 말이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했단 말이냐.
무당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자신을 제약하고 있는 ‘스승의 허락’을 받기에도 충분한 명분이었다.
무당지검이니 당연히 표주를 나가서 세상 경험을 쌓아야지.
이미 넘치도록 쌓은 경험이 머릿속에 있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 어디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무림에서 경험을 쌓아 더욱 뛰어난 무인으로 거듭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기특한 청상 놈.
이런 귀한 정보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다니.
“으하하! 청상아, 청상아. 이런 예쁜 녀석 같으니.”
“예?”
“그런 게 있다.”
진무가 갑자기 칭찬하자 청상이 영문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오룡궁 재건 현장에.”
“오냐! 알겠다. 넌 그만 쉬어라. 개인 수련을 해도 좋고.”
“예? 아, 알겠습니다.”
청상에게 내려진 휴식에 청우가 기대감이 잔뜩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사숙, 저는요?”
“아직 분류되지 않은 비급이 많이 남았는데?”
“…….”
“꾀부리지 말고 계속해. 오늘 밤에 확인할 거야.”
“……예.”
실망한 청우를 뒤로하고 진무는 힘차게 오룡궁 재건 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평판, 업적 같은 건 필요 없다. 대제자? 양의심공도 날아간 판에 엿이나 먹으라지.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남은 건 한 가지뿐이다.
스승의 허락.
그래야 어떠한 제약도 없이 중원을 활보할 수 있었다.
스승도 이제 많이 좋아졌다. 혼자 사냥도 잘하고, 조금씩 무공도 되찾아 가는 모양새였다.
그래, 진무 성격에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있었다. 이대로 곧장 허락을 받고! 무당을 떠난다!
쇠뿔은 원래 단김에 빼야 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