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51
웰컴 투 NBA 51화
#051. 루키 계약
예로부터 NBA는 살인적인 경기 일정으로 악명이 높은 리그였다.
정규시즌은 10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약 25주.
25주간 82경기를 소화해야 하니, 대략 2~3일에 1번꼴로 경기를 뛰어야 하는 셈이다.
‘이동시간까지 생각하면 진짜 사람 잡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어디 그뿐일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상위 16개 팀의 선수들은 가혹한 일정에 걸레짝이 된 몸을 이끌고 7전 4선승제의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렇게 5, 6월에 걸쳐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나면 아무리 금강불괴인 선수라도 몸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기 마련.
4개월간의 오프 시즌은 그런 선수들을 위해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기였다.
‘사실 나도 어릴 적에는 오프 시즌이 너무 긴 게 아니냐고 불만이 많았는데 말이야.’
이게 선수 입장이 되고 보니까 또 다르더라고.
선수들에게 오프 시즌은 다음 시즌을 치르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
구단에게는 이전 시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드래프트, 트레이드, FA 계약 등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터를 보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같은 신인들에겐?
‘뭐긴 뭐야. 정신없이 바쁜 시기지.’
찰칵! 찰칵! 찰칵!
번쩍!
사방에서 번쩍이는 플래시 라이트가 눈을 따갑게 한다.
오늘은 7월 3일.
내가 정식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일원이 되는 날이다.
[먼저, 이 자리에 재능 있는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앞으로도 적극적인 보강을 통해······.]구단에 새로 영입된 선수들을 소개하기 위한 기자회견.
내 옆에는 세 명의 선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세 선수와 잠시 대화를 나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킴! 다시 만났네. 반가워.”
“재럿.”
아프로 머리의 빅맨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컴바인에 이어서 묘하게 계속 인연이 이어지네?”
“그러게. 설마 같은 팀이 될 줄은 몰랐어.”
재럿 앨런.
원래는 22픽으로 브루클린 네츠에 지명되었을 선수다.
드래프트 결과를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지.
‘아무래도 내가 낳은 나비효과 때문인 모양인데.’
원 역사에서 10픽으로 포틀랜드에 간 선수는 파워포워드/센터인 잭 콜린스.
그 대신 날 지명한 포틀랜드는 남은 20픽으로 빅맨 유망주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고, 꿩 대신 닭으로 재럿 앨런을 지명한 모양이었다.
‘실제로는 꿩 대신 봉황을 데려온 셈이지만.’
재럿 앨런은 훗날 올스타급 센터로 성장하는 선수.
유리몸 기질 때문에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잭 콜린스보다 훨씬 나은 선수였다.
주전인 유서프 너키치의 약점인 림 러닝과 스위치 대처에 강점이 있는 만큼, 아마 출전 시간도 충분히 받아 가지 않을까 싶은데.
앨런과 악수를 나누고 몸을 돌리자, 그 옆에는 또 다른 아프로 머리의 흑인이 서 있었다.
“헤에이. 왓썹.”
정중하고 지적인 재럿 앨런과 달리, 흑인 특유의 스웩(swag)이 살아 있는 유쾌한 친구.
브루클린에서 온 듀얼 가드, 스펜서 딘위디였다.
“같은 팀이 되어 반가워. 스펜서 딘위디라고 해.”
“반가워요. 김시온이라고 해요. 편하게 킴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앨런과 딘위디.
두 아프로 머리가 나란히 서 있으니 꽤 그림이 된다.
‘좋아. 니들은 앞으로 큰 아프로와 작은 아프로다.’
사실 진짜 놀랐다.
재럿 앨런과 스펜서 딘위디가 포틀랜드로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두 선수는 본래는 브루클린 네츠에서 합을 맞췄어야 할 선수들.
보스턴에 미래 픽을 탈탈 털리고 기나긴 암흑기에 빠졌던 브루클린 넷츠를 다시 플레이오프로 이끈 장본인들이었다.
‘브루클린, 이래도 괜찮나······?’
내 세계선에서 벌어진 일을 안다면 브루클린 GM이 피눈물을 흘리며 샷건을 꺼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뭐, 대신 카일 쿠즈마를 뽑았으니 불행 중 다행인가.
그러고 보니, 이렇게 되면 레이커스에서 릅까 쿠즈마와 릅신이 결합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그건 좀 아쉽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나도 잘 아는 선수.
정식 로스터에 합류한 게 아니라 올해 신설된 투웨이 (two-way) 조항으로 팀에 합류한 탓에, 자신이 여기 껴도 되는지 어색해하고 있었다.
“주장, 거기서 뭐하고 있어요? 얼른 와서 팀원들이랑 인사 나눠요.”
“내, 내가 그래도 괜찮을까?”
“안 될 건 또 뭐예요. 자, 다들! 이쪽은 우리 오리건의 주장. 크리스 부쉐입니다.”
“헤이. 반가워.”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크리스 부쉐.
주장은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결국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받지 못했다.
그렇게 언드래프티가 된 주장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평소 오리건에서 펼치던 활약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포틀랜드였다.
“그래도 정말 잘 됐어요, 주장.”
“난 혹시 네가 꽂아 준 건 아닐까 싶었는데.”
“에이. 저 같은 루키 나부랭이한테 그런 힘이 어디 있습니까. NBA 구단은 그런 식으로 선수 안 뽑아요.”
투웨이 계약은 이번에 새로 신설된 계약 형태.
간단히 말하면 NBA 팀이 15인 정식 로스터 외에도 최대 2명의 G리그 선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되는 제도다.
투웨이 계약을 맺은 선수는 기본적으로는 G리그에서 활동하지만, NBA 구단의 콜업을 받으면 1년에 최대 45일간 NBA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량을 인정받으면 정식 계약을 맺어 15인 로스터에 합류할 수 있고.
“그런데 포틀랜드는 G리그 팀이 없지 않아요?”
“응. 그래서 LA 클리퍼스 소속 G리그 팀에서 활동할 예정이야. 다행히 재활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조만간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아.”
“잘됐어요. 주장은 분명 NBA까지 올라올 겁니다. 제가 장담해요.”
내가 온 세계선에서 크리스 부쉐가 NBA에서 두각을 드러낸 건 몇 년 뒤의 일이지만.
지금은 부상의 정도도 심각하지 않고, 포틀랜드는 3점슛이 되는 백업 파워포워드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잘하면 빠른 시일 내로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빨간 안경을 쓴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들 잘 적응하고 계십니까?”
“아, 단장님!”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어요. 어차피 임시 단장에 불과합니다.”
난처한 얼굴이 된 홉킨스 임시 단장.
처음으로 높으신 분을 만난 제럿 앨런과 크리스 부쉐는 통나무처럼 몸이 굳어 있었다.
그나마 짬이 좀 되는 딘위디만 여유로운 모습이었고.
‘단장이 교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놀랐지.’
내가 살던 세계선에서 올쉐이가 갑질, 폭언 논란으로 해임되는 건 2021년의 일이었거든.
왜 그 사건이 지금 터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 다음은 선수 계약서에 서명하는 사이닝(signing) 세리머니였다.
슥슥. 스태프가 건넨 계약서에 서명하자, 십여 대의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가며 그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이걸로 난 정식으로 NBA 선수가 되었다.
“블레이저스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모든 1라운드 선수들은 매년 책정되는 루키 스케일(rookie scale)에 따라서 연봉을 지급받게 된다.
올해 1픽인 마켈 펄츠의 연봉은 5.8mil.
30픽이 받는 연봉은 1.1mil로, 무려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10픽인 내 연봉은 원칙상 3.8mil이지만, 여기에 구단의 재량껏 추가 지급할 수 있는 20%를 더해 실제로는 4.5mil을 지급받게 될 예정이었다.
‘450만 달러라······ 한화로는 약 50억인가.’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오는 금액이다.
1라운드에 지명된 신인의 계약기간은 2+1+1년으로 총 4년.
아무리 기량이 처참해도 최소 2년은 계약을 보장받고, 대부분은 4년 계약을 채우게 된다.
딱 2년 만에 쫓겨나도 일단 100억은 번다는 소리.
‘내가 전생에 18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받은 연봉이······ 젠장.’
이래서 NBA, NBA 노래를 부르는구나.
물론 소득세를 떼고 나면 한참 줄어들겠지만.
옆에 앉은 재럿 앨런은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지, 사인을 하고도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홉킨스 단장이 내게 유니폼을 내밀었다.
Red & Black의 세련된 디자인.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홈 유니폼이었다.
“킴, 자네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이네.”
“아, 감사합니다.”
“오리건 시절의 시그니처인 11번을 주지 못한 게 아쉽군. 이걸로 괜찮겠나?”
“예, 1+1이란 의미로 2번으로 정했어요.”
내 새로운 등번호는 2번.
11번은 마이어스 레너드가 사용하고 있어서, 이번에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웨이드 발드윈의 등번호인 2번을 물려받았다.
어쩐지 준우승을 자주 할 것 같은 번호지만.
NBA에서 준우승이면 파이널까지 간 건데, 그 정도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지.
“주택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 그건 이미 구했어요. 대학생 시절부터 눈여겨보던 매물이 있거든요.”
“하하. 역시 홈타운 보이라 이거로군. 부쉐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아, 전 대학생 때부터 살던 곳에서 계속 묵을 생각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치안이 안전하고,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운 지역에 위치한 2층 주택이었다.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골랐지.’
나중에 독립하면 부모님께 드리면 될 거다.
원래 NBA 선수는 아무 은행에나 찾아가 계약서만 내밀면 즉각 백만 달러 대의 대출이 나오는 직종.
게다가 나는 이름만 대면 포틀랜드의 부동산 중개인들이 알아서 최고의 매물만 구해다 주는 상황이었다.
“그거 부럽네. 킴, 나도 소개해 줄 수 있을까?”
“나도 좀 부탁할게.”
“그럼요. 어려울 것 없죠.”
앨런과 딘위디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제가 구한 집 근처는 어때요? 치안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출근 거리가 가깝다는 거죠. 구단 훈련시설까지 차를 타고 딱 15분 거리에요.”
“좋지. 그렇게 부탁할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스펜서 딘위디.
반면 재럿 앨런은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끄응······ 난 좀 거리가 있으면 했는데.”
“왜?”
“아무래도 여가 시간에는 직장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달까? 일과 사생활은 가급적 분리하고 싶거든. ······ 그런데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눈빛을 감지하고 몸을 움찔하는 재럿 앨런.
이 자식 봐라.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노오오력을 해야지, 루키 나부랭이 주제에 벌써 잔꾀를 피우려고 해?
“그러고 보니 너, 컴바인 면접에서 너무 정직하게 대답하는 바람에 드래프트 순위가 미끄러진 거였지?”
“그, 그랬었지.”
“무슨 질문이었는데?”
딘위디의 질문에, 나는 가볍게 컴바인에서 있었던 썰을 풀었다.
면접관의 ‘당신은 농구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의례적인 질문에, 순진한 19세 청년 재럿 앨런은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어······ 못 살 것까지야 없겠죠? 전 수학 공부를 좋아해요.
“푸핫핫핫핫!”
“수학? 진짜 그렇게 답했다고?”
“왜, 왜요! 그게 뭐가 부끄러운 일인데요?”
배꼽을 잡고 뒤집어지는 딘위디와 크리스 주장.
재럿 앨런의 학창 시절 별명은 Nerd(괴짜).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무려 수학, 컴퓨터, 우주 항공이었다.
“주장, 이 친구, 어째 우리 형님이랑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데요.”
“타이런이랑? 큭큭큭. 그럴 것 같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컴바인에서 벤치프레스 기록이 고작 4회였지, 아마?
“4회? 진짜로?”
눈이 휘둥그레진 크리스 주장.
“안 되겠네. 그런 나약한 육체와 정신으론 거칠고 험난한 NBA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예?”
주장과 내 눈빛이 교차하고.
덥썩!
우린 좌우에서 대뜸 앨런의 팔뚝을 붙잡았다.
“재럿 앨런.”
“네, 넵?”
“오늘부터 넌 새벽 5시에 기상해 우리와 함께 체육관으로 간다. 알겠나?”
“네에!?”
“순순히 포기해. 우리 주장은 한번 꽂히면 용서가 없거든.”
“아니, 잠깐만!?”
이곳은 명부의 10대 지옥 중 하나. 헬창지옥.
3대 500을 치지 못한 죄목으로 끌려온 중생들은 영원히 쇠질형에 처해진다.
새로운 희생자는 재럿 앨런이었다.
***
[2017-18 NBA 프리뷰: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Written by Matthew Kyle, ESPN]블레이저스가 달라졌다!
(It’s all new Blazers!)
구단 내 갑질, 폭언, 괴롭힘, 권력 남용 논란으로 닐 올쉐이 단장이 해임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지도 벌써 열흘째.
사령탑을 잃고 혼란에 빠질 것처럼 보이던 블레이저스는 의외로 빠른 속도로 질서를 되찾으며 대대적인 내부 개혁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12년 넘게 구단을 지킨 어시스턴트 GM, 새뮤얼 홉킨스였다.
임시 단장으로 임명된 홉킨스는 이전부터 꾸준히 논란이 나오던 메디컬 스태프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하고, 휴스턴 로키츠의 보조 디렉터, 몬테 멕네어를 부단장으로 영입하는 강수를 두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몬테 맥네어는 데릴 모리 단장의 최측근이자 핵심 참모로서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전략에 관여해 온 인물.
로키츠 내부에선 데릴 모리의 잠재적인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평이다.
몬테 맥네어는 사실상 블레이저스의 신임 단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보이며, 부단장으로 임명된 것은 단장직을 승계하기 전, 우선 구단의 문화와 업무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존 크로닌을 선수단 관리를 맡는 인선 (Personnel) 디렉터로 내부 승진시키며 균형을 맞추는 모습을 보인 새뮤얼 홉킨스는, 임시 단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어시스턴트 GM으로 돌아가 본래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새뮤얼 홉킨스의 지휘 아래 영입된 김시온과 재럿 앨런, 그리고 새로 이적한 스펜서 딘위디는 내일부터 라스베가스 서머리그에 참여해 블레이저스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게 된다.
블레이저스의 서머리그 주요 로스터는 다음과 같다.
PG – 스펜서 딘위디
SG – 팻 코너튼
SF – 제이크 레이먼
SF/PF – 김시온
C – 재럿 앨런
서머리그는 신인들이 NBA 팬들에게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뽐내는 무대.
포틀랜드는 이번 서머리그를 핵심 신인인 김시온의 기량을 점검할 기회로 삼는 한편, 김시온과 벤치 선수들의 합 또한 시험해 볼 예정이다.
2017년 라스베가스 서머리그는 바로 내일, 7월 7일부터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