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아버지와 아들 (3)
“유야, 이리. 이리 가까이 와 술잔을 받거라.”
세종께서 수양 대군을 가까이 부르시자 강녕전 대청마루에 흥겹게 넘쳐흐르던 속삭임과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총독의 직위를 처음 맡아 파견되는 아들에게 무엇이라 당부하실지, 아바마마의 말씀에서 차기 총독이 갖춰야 할 자질을 들어두려는 왕자 모두 귀의 온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이다.
세종은 이향과 함께 나란히 북쪽 최상석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가족 모임이기에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대신 당대 최고의 화가로 뽑히는 안견이 그린 화조도 병풍을 등에 두고,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붉은색의 곤룡포 대신 미색의 도포를 걸친 세종은 상기된 얼굴로 다가오는 둘째와 장성한 아들들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스스로 다복하다 자부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모두 잘난 아들들이었다.
이러했기에 설마설마하다가 죽었겠지.
이젠 익숙해진 격한 통증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음악을 멈추거라.”
금성 대군을 가까이 불러 북경성처럼 단단한 성벽을 환인 지역과 두만강 이북에 쌓는 것이 여진족과 몽골족 방비에 효율적일지 논의하던 이향이 뜰의 월대 위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던 무희와 악공의 공연을 중지시켰다.
부왕께서 수양에게 내리실 말씀이 오래 고심하신 끝에 정하신 내용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윤서 시대의 역사 기록을 더 정확히 알고 계신 상왕 전하의 가르침을 수양과 형제들이 가슴 깊히 새겨듣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세종 또한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숫자 삼(三)에는 신성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지. 천제 환인께서 아들 환웅 천왕을 내려보내실 때도 천부인 세 개의 신물을 하사하셨고, 또 불교에서도 삼보라 하여 세 개의 보물을 말하고 저 먼 서역의 종교는 삼위일체라 하여 또 세 개의 신성이 하나의 신을 나타낸다고 하더구나.”
비색 바탕에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진 잔 가득 술을 따르시며 세종께서 말씀하셨다.
대청마루에는 숨을 약간 몰아쉬는 상왕 전하의 옥음과, 쪼르르 술이 떨어지는 소리와, 교태전의 담장을 넘어온 왕실 여인들의 부드러운 웃음소리만 들렸다.
아바마마께서 궁인과 악공을 멈추게 할 때부터 무릎을 꿇고 등을 꼿꼿하게 바로 세워 경청의 자세를 취했던 홍위는 아예 몸을 돌려 할바마마를 향해 앉았다.
그러자 몸을 굽혀 두 손을 술을 받는 수양 숙부의 굽어진 등이 보이고, 할바마마 옆에서 마침 홍위를 바라본 아바마마가 보였다.
‘잘 듣고 배우거라, 홍위야. 이다음에 너도 해외 개척지에 나가는 형제와 사촌, 조카들에게 내려야 할 말일 것이니.’
살짝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시는 아바마마의 시선이 그리 일러주셨다.
홍위도 보조개가 패도록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유 너에게 세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한다.”
수양 대군이 하사받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동안 상왕 전하는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아들과 손주들을 바라본 후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첫째, 해외에서 너는 우리 조선의 얼굴이다. 현지인들은 너를 통해 우리 조선의 통치이념과 도덕 윤리를 짐작할 것이란 뜻이다. 허니 그곳에서도 늘 배움을 멈추지 말고, 주상께서 명하신 바가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 아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조선의 얼굴’이란 말씀에 쳐졌던 수양 대군의 입꼬리가 움찔 광대로 승천하였다.
얼굴이지. 암, 얼굴이고 말고.
실무를 행할 관원들이 함께 파견된다고 하나 최종 권한을 행사할 자는 나다!
“그래, 그리고 둘째! 주상께서 임명해 보내는 관원들이 제 기량을 꽃피울 수 있도록 힘껏 뒷받침해야 한다.”
“······?!”
“통치는 인재를 모으고 키우는 것이 처음이자 끝이다. 허니, 각자 영역에서 마음 놓고 역량을 발휘하게 하고, 불미한 일이 있을 땐 규율에 따라 엄정하게 다스리되 본국 송환 후 다시 확인하여 처벌을 확정 지을 때까지 사사로이 인명을 상하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예, 아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숨을 한 번 고른 후 수양 대군은 답을 올렸다.
함부로 총독의 권세를 휘둘러서는 아니 된다고 강하게 경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군권은 유응부가 따로 행사하게 하고, 또 조선 정착민을 다스리는 일은 조선의 법률과 미리 정한 규율에 따라 파견 관원과 협의하여 행하게 되어 있거늘. 왜 아바마마께선 마치 내가 함부로 사람을 상하게 할 것처럼 미리 경계하시는가. 능력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뜻인가. 형님 전하께서도 날 불신하시어 임기제로 보내는 것인가.’
굳어지는 표정에서 세종은 아들의 심정을 읽어내었다.
실은 역사에서 수양이 벌인 그 대학살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경고가 맞았다.
하지만 그 과거는 결코 미래로 오지 않는다!
“유야. 내가 이렇게 권력의 남용을 경고하는 것은 유 네가 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대신 세종은 장차 파견될 모든 후손에게도 해당될 당부를 덧붙였다.
“계속 불어날 개척지 여기저기에 파견될 너희 왕자와 왕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미리 정한 통치 규율이 존재하고 또 실권을 가진 조정 관원이 함께 파견된다곤 하나, 국왕의 통치가 닿기까지 시차가 있는 저 먼 이국의 땅에서 왕의 자손은 크나큰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총독의 다스림이 정도를 벗어나면 달리 호소할 데 없는 우리 조선인의 처지가 얼마나 가여울 것인가. 그러니 유 너는 항시 항시 스스로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아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저희도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할바마마!”
세종의 아들과 손주 모두 함부로 권한을 휘두르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세 번째 당부의 말씀을 기다렸다.
그러자 세종께서는 자손들을 놀리듯 빙긋 웃으셨다.
“세 번째는 아비로서 유에게만 따로 내리는 당부이니, 연회가 파하면 따로 말할 것이다.”
“예, 아바마마. 이따 제가 침전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리하도록 하자.”
엄한 당부의 말씀이 끝나자 대청마루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향은 대청마루 아래 서 있는 대전 내관에게 손을 들어 보엿다.
다시 음악을 연주하란 어명이었다.
타닥, 탁!
박 소리를 시작으로 멈췄던 풍악이 다시 울리고, 월대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궁중 무희도 다시 무대에 올라 오색 한삼을 나풀거리며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회의 흥이 깊어지면 할바마마께선 늘 아바마마께 일어나 춤을 추라고 하셨지.’
흥겨운 대화와 술잔이 오가는 연회가 재개되자, 수양 대군은 문득 늘 닮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셨던 할바마마 태종께서 신하들과 함께 춤을 즐겨 추셨단 사실을 떠올렸다.
가무를 즐기지 않으시던 아바마마께서도 할바마마 앞에서는 열심히 춤을 추셨던 일도 함께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새 땅에서 할바마마처럼 엄정한 치세를 확립하자는 의욕이 불끈 솟아오르면서 문득 아바마마께 효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바마마! 형님 전하! 이렇게 다시 모이려면 여러 해가 지나야 할 터인데 이대로 파하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하여 제가 두 분 전하와 동생들을 위해 한 곡조 연주하겠습니다.”
왕가의 사적인 모임이라 오늘 모두 암갈색의 관복이 아닌 색색의 화려한 도포 차림이었다.
상왕 전하는 쪽빛 고운 한산 모시 도포를 입으셨고, 형님 전하는 짙은 아청색의 도포 차림이다.
소매가 치렁치렁한 분홍색 도포를 입고 있는 수양 대군은 가슴께 묶은 붉은색 세조대 아래 장신구처럼 늘인 옥피리를 떼어 입술에 대었다.
“저, 아버님께서 두 분 전하와 숙부님을 위해 옥피리를 부시니 소손은 그 곡조에 맞춰 춤을 추겠습니다.”
명례궁에서 힘깨나 쓰는 자들과 술자리를 즐기다가 흥이 오르면 새벽 늦게까지 춤과 노래로 떠들썩하게 노는 아버지를 많이 보았던 도원군이 나섰다.
“숙부님께서 성공적으로 임기 마치시고 무사히 귀환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도 함께 추겠습니다.”
혼자서는 흥이 안날 형님을 위해 홍위도 나섰다.
그러자 안평 대군의 아들 의순군과, 임영 대군의 아들 오산군, 구성군 계동과 함께 금동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요한 왕실 모임인지라 아이들 모두 화려한 색상의 쾌자를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사대부의 춤은 부채를 이용해 팔을 우아하게 휘젓고, 버선코가 드러나도록 다리를 올렸다가 옷자락을 쥐고 빙그르 도는 것이 주가 된다.
왕족이 나서는데 무희가 춤을 출 수야.
월대 위에서 하느작 춤을 추던 무희는 모두 종종걸음으로 내려서고, 악공들은 수양 대군의 곡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필릴리 청아한 옥소리가 가을 공기에 매혹적으로 섞여 흐르고,
장구와 북이 둥둥 박자를 맞추는 가운데 왕실 아이들 모두 부채를 든 팔을 쭉 내밀며 양팔을 펴고 버선코를 종종 내밀며 서너 걸음 걸은 후,
차락 부채를 펴며 쾌자 자락을 잡고 빙그르 함께 돌았다.
붉은색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쾌자 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스러지고 다시 어깨를 들썩이면서 춤동작을 이어갈 때였다.
“안평 숙부님!”
모두 동작을 맞춰 느리고 우아하게 춤사위를 만드는데 홀로 흥에 겨워 두 팔을 넓게 펴고 오색 쾌자 자락이 넓게 퍼지게 빙빙 돌던 금동이가 넉살 좋게 안평 대군을 불렀다.
“춤사위는 숙부님이 최고시잖아요. 안평 숙부님!”
“하아, 춤은 그저 허리 낭창한 무희 춤이 최고이거늘, 어째서!”
금동이가 부르자 내키지 않는 듯 대꾸를 하면서도 안평 대군은 성큼 일어서 금동이와 아들 의순군 사이에 섰다.
그러자 조카들은 모두 조선 최고의 풍류남 안평 대군을 바라보았다.
“잘 보고들 배우거라. 사대부의 춤은 팔을 뻗을 땐 부채를 펴고, 팔을 접어들 땐 부채를 접는 것 등 적절한 때에 펴고 접는 지점을 잘 잡는 것과 또 다리 동작에서 발끝을 우아하게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니라.”
안평 대군이 오른손으로 붉은 산호가 달린 멋스러운 부채를 차락 펴 얼굴을 가리고, 오른쪽 버선코를 맵시 있게 살짝 들어 올렸다 내리며 동시에 왼손으로 붉은색 창의 자락을 슬쩍 들추며 우아하게 빙그르 돌았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우아하였다.
“역시!”
“춤은 안평 숙부님이십니다!”
“해 봐! 새벽아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오른쪽 다리 들고, 응!”
홍위와 금동이, 도원군과 오산군 등도 모두 열심히 안평 대군의 춤사위를 따라하였다.
“형님 전하도 일어서시지요. 우리가 수양 형님의 곡조에 맞춰 아바마마께 춤을 보여드릴 기회가 오 년 후에나 있지 않습니까?”
금성 대군이 슬쩍 이향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상왕의 아들과 손주 모두 유려하게 흐르는 옥피리 선율에 맞춰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상왕 전하를 위해 춤을 추었다.
대청마루가 상왕 전하를 위해 춤을 아들과 손주로 웃음과 흥겨움이 넘쳐흘렀다.
빙긋 웃음을 머금고 자손의 재롱을 즐기시던 세종의 코끝이 맵게 달아올랐다.
‘하아! 아버님께선 이런 기분이셨습니까?’
세종은 연회에서 늘 ‘주상도 일어나 춤을 춰 보시오. 그리 심각하고 단정하게 앉아 있지만 말고.’ 재촉하시던 부왕을 생각하였다.
“모든 악업은 다 내가 지고 가니, 너는 성군이 되거라!”
그렇게 단호히 조선의 반석을 놓은 피의 통치 끝에서 성군의 자질이 충만한 자신이 춤을 보여드렸을 때 부왕의 심정은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얼마나 벅차셨을까.
자신도 마땅히 그리해야 하건만, 그리고 가슴 한켠은 정말 뜨거운 감동으로 젖어들건만.
이 아이들이, 서로!
왈칵 치솟는 감정에 세종께서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였다.
“할바마마! 할바마마! 소손과 함께 춤을 추세요.”
“할바마마! 제가 어머님께 왈츠란 서양 춤도 배웠는데 가르쳐드릴까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찢기듯 아프게 만드는 홍위가 동생 금동이 손을 잡고 와 함께 춤을 추기를 고하였다.
“···그래! 추자꾸나.”
세종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엉거주춤 팔을 휘저었다.
“할바마마, 왈츠는요. 이렇게, 제가 형님이랑 추는 거 보세요!”
금동이가 홍위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로 손을 잡고 몸을 밀착해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가 함께 빙글 도는 낯선 춤도 보여주었다.
“하핫핫, 남녀 사이에 추기는 아주 숭한 춤이로구나!”
결국 세종은 역사의 그림자가 자아내는 통한을 잊고 가슴을 들썩이며 웃고 마셨다.
*
*
*
“너는 늘 네가 할바마마를 닮았다고 자랑한다만, 네가 할바마마와 확연히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연회가 파한 후.
침수를 드실 연생전으로 향하며 세종께서 수양 대군에게 물으셨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