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쉬익!
날카로운 칼날이 낮은 파공음과 함께 날아온다.
“오라버니! 숙여요!”
제갈명은 기겁하며 허리를 숙였다.
살수의 칼이 흙바닥에 박혔다.
동시에 남궁민이 검을 휘둘러 살수의 몸을 베었다.
살수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면서도 제갈명의 다리를 붙들었다.
제갈명이 다리를 버둥거리는 동안 양쪽에서 살수들이 제갈명을 향해 뛰어올라 칼을 내리찍었다.
제갈명이 자기 다리를 잡은 살수의 손목 힘줄을 재빨리 그어 벗어나고는 바닥을 굴렀다.
급하게 구르느라 바닥의 돌에 얼굴을 부딪쳤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궁민이 한껏 내공을 끌어 올려 창천검로(蒼天劍路)의 초식을 펼쳤다.
공중에 투명한 반원이 그려졌다.
뛰어오른 살수 중에 한 명의 배가 갈렸다.
촤악!
남궁민의 얼굴과 몸에 피와 내장들이 쏟아졌다.
다른 한 명은 진승이 날려 버렸다.
제갈명이 몸을 일으켰다.
“헉…… 헉헉.”
“괜찮아, 명이?”
원래 진승이 제갈명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아도 서로 형이라 호칭했는데, 상황이 워낙 급하다 보니 절로 이름이 나왔다.
“괜찮소.”
도사 진승의 잘생기고 훤하던 얼굴은 멍이 들고 찢어져 피가 났다.
옷도 여러 군데를 베여 피가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 제갈명은 그보다 더해서 엄청 심하게 당한 꼴이었다. 눈도 붓고 이도 하나 깨졌다.
남궁민이라고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머리는 완전히 헝클어진 데다 피 때문에 뭉쳐서 떡이 졌고, 얼굴에도 피며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원래 얼굴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헉헉…… 누이, 나 때문에 너무 내공 소모가 큰 초식을 쓰지 마. 그러면 오래 버틸 수 없어.”
“버틸 만큼은 버텼어요. 벌써 하루나 지났는걸.”
진승이 말했다.
“나와 제갈 형이 호법을 설 테니 운기조식을 해. 한 명이라도 우선 기력을 회복해야 해.”
남궁민이 쓴 미소를 지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글렀네요.”
위쪽 나무의 가지들 사이로 살수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은 뛰어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운기조식을 하려는 순간, 바로 움직일 것이다.
뻔히 보이는 거리에서 살수들이 눈을 빛내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제기랄. 이게 이렇게 될 게 아니었는데.”
제갈명이 이를 갈았다.
사실은 허윤에게서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허윤은 어이없게도 하룻밤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괜히 점친답시고 풀떼기를 주워다가 느릿느릿 뭘 하더니, 자꾸만 때를 기다리라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명이 보기에는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치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허윤만 믿고 있다간 도저히 살길이 없어 보였다.
하여 참다못한 제갈명은 따로 떨어져 나왔다.
답답해하던 남궁민도 결국 제갈명을 따라왔다.
진승은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차마 두 사람만 따로 가게 내버려 둘 수도 없어서 책임감에 같이 오게 된 것이었다.
이때 제갈명은 한 가지 꾀를 냈다.
인근에 숨어 있다가 허윤이 움직여서 살수들의 이목을 끌면, 그때 움직이기로.
거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허윤은 지독하게도 반나절이나 더 궁둥이를 붙이고 있다가 움직였다.
그리고 곧바로 살수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때 제갈명과 남궁민, 진승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나……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살수들에게 발각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하루를 넘게 쫓겼다.
“하늘의 그물이 뭐가 어쩌고 저째?”
남궁민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사사삭.
세 사람이 위를 쳐다보았다.
살수들이 보란 듯 거꾸로 기어서 나무를 내려오고 있었다.
진승이 진저리를 내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차라리 섬서까지 최대한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그럽시다. 서로 번갈아 선두와 후미를 맡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그동안 휴식을 취하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
남궁민도 동의했다.
“가요.”
지옥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살수를 쳐 냈는지 세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살수들이 완전히 작정했는지, 갑자기 수가 배로 늘었다.
새까맣게 시야를 뒤덮을 정도였다.
꿀꺽.
세 사람은 죽을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쳐 내고, 또 찌르고 베고 쳐 냈다.
검날은 이가 다 나가고, 제갈명의 철 부채도 날이 다 빠진 채로 휘어졌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세 사람의 입술은 바싹 말랐고, 입가는 허옇게 되어 있었다.
입에선 단내가 났다.
“내가 화산파의 진승이다! 이놈들!”
“창천검로의 맛을 봐라!”
더는 서 있을 힘도 없을 정도로 싸운 덕에 세 사람의 주변에는 살수들의 시체와 잘린 팔다리가 즐비했다.
피 웅덩이가 철벅거려 걸음이 무겁고, 내장을 잘못 밟아 미끄러지기도 했다.
다행히, 그것은 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도로 은밀한 경신법을 사용하는 살수들의 입장에서도 미끄러운 장소는 껄끄럽기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군의 시체가 걸리적거렸다.
세 사람이 악에 받쳐서 살수의 시체를 방패로 삼기까지 해서 더 껄끄러워졌다.
그런 이유로 살수들이 잠시 물러나, 싸움이 소요 상태가 되었다.
“헉…… 헉헉…….”
“헉헉! 와라, 이놈들…… 다 죽여 주마.”
세 사람이 겨우겨우 등을 댄 채 버티고 있고, 살수들이 좀 떨어져서 빙 둘러싼 채로 대치가 이어졌다.
보이는 곳마다 시꺼먼 복면들이 가득한 가운데.
유독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살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진승이 말라서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몇 호냐.”
살수가 대답했다.
“이십칠 호.”
“하…… 드디어 진짜가 오는군.”
그동안 상대한 건 백번 대 이후의 살수들이었고, 간혹 오십 번 대가 섞여 있었다. 그나마 고수가 없어 겨우 버텼는데, 이제 정말 끝이 온 것이다.
이십칠 호가 말했다.
“신경 쓰이는 잔챙이부터 처리하려 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이야.”
제갈명은 눈으로 흘러 들어가는, 누구 피인지 모를 핏물을 닦아 내며 이십칠 호를 쳐다보았다.
말투가 뭔가 이상했다.
이제 다 끝난 상황이나 다름이 없는데, 느긋한 말투가 아니라 뭔가 분해서 이를 가는 듯한 말투였다.
“이봐…… 하나만 묻자. 왜…… 저쪽은 안 따라가고 우리만 죽일 듯이 따라오는 거야.”
제갈명이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가리키며 억울한 투로 소리쳤다.
“이건 좀 너무하잖아! 왜 우리에게만 작정한 듯 죽자사자 달라붙느냐고!”
남궁민이 피식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한테 이 정도면, 거긴 얼마나 붙었겠어요. 지금쯤 우리보다 더 고생하고 있겠지. 안 그래?”
그러나 이십칠 호는 대답을 못 했다.
“…….”
“안 그래?”
“…….”
남궁민과 제갈명, 진승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이십칠 호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왜 너희들에게 인원이 몰렸는지 아느냐?”
“우리에게…… 몰렸다고?”
이십칠 호가 쌍칼을 뽑아 들고 피 웅덩이 사이를 걸어 세 사람에게 다가가려 했다.
“아니지. 아무래도 상관없다. 죽어라.”
그때.
퍼퍽!
“하지 마시오!”
“미안합니다.”
퍽!
“하지 말라고!”
“죄송해요.”
퍽!
“죄송하면 하지 말라니까!”
퍽퍽!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십칠 호가 움찔 놀라서 뒤를 다 돌아볼 정도였다.
뻔히 이십칠 호의 뒤통수를 보면서도 힘이 없어 공격할 수 없다는 게 세 사람은 안타까웠다.
그런데…… 가만히 소릴 듣고 있노라니 어쩐지 목소리가 너무 익숙했다.
“어어……?”
퍽 퍽! 퍽!
“그만 좀 하시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세 사람은 계속해서 들려오던 ‘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이십칠 호가 휘파람을 불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세 사람을 포위하고 있던 살마가의 살수들이 즉시 포위를 풀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시꺼먼 복장의 인영들이 한 점을 향해 파도처럼 쫘악 몰려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어? 여기에도 잔뜩 있네?”
“아니, 좀 그만 오시오! 살고 싶으면 다들 도망가시오!”
“넌 점쟁인데도 왜 이건 예상 못 했냐.”
“이 못된 노인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소!”
“아니지. 내가 가자고 했어? 네가 이리로 가자고 했지.”
퍽!
“죄송해요!”
퍽!
“어허, 황보 소저까지 이러면 어떡하오?”
“죄송합니다!”
퍼억!
소리가 완전히 가까워지면서 제갈명과 남궁민, 진승은 수풀 위로 튀어 오르는 핏덩이를 볼 수 있었다.
“설마……?”
수십의 살수들이 수풀과 나무로 뛰어들었는데, 별다른 비명도 없이 수박 깨지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퍽! 퍼억! 퍽!
삐익! 삐익!
휘파람이 울리고, 몰려갔던 살수들이 갑자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이십칠 호가 갑자기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이십칠 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의 반이 뭉개져 있었다.
이십칠 호가 비틀거리다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하지만 세 사람을 보고는 살기를 가득 뿌리며 일어나 다가왔다.
“너희들만은…… 죽인다!”
세 사람이 안간힘을 쓰며 무기를 들려 하는데, 이십칠 호의 머리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따라붙었다.
“어딜 도망가, 새끼야. 운 좋게 한 번은 살았지만, 두 번은 안 돼.”
이십칠 호가 황급히 몸을 위로 비틀며 칼을 뻗었는데, 고우사가 아주 슬쩍 고개를 움직여 칼을 피한 뒤 이십칠 호의 팔을 금나수로 붙들었다.
그러곤 뒤로 힘껏 집어던졌다.
이십칠 호는 날려 가면서도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곤 방향을 바꾸려 안간힘을 쓰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예 날아가는 방향으로 칼을 휘둘렀다.
퍽!
곧 이십칠 호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힘없이 튕겨 나갔다.
“으아아! 진짜 하지 말라니까!”
허윤이었다.
허윤은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런데 얼굴은 멀쩡해서는, 팔에 돋은 소름을 긁으면서 항의했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아시느냐고!”
그에 비해 고우사는 몇 군데 칼에 베인 정도의 흔적은 있었으나, 아주 말끔했다.
“너, 마도가 원수라며. 그럼 겸사겸사 복수도 하고 좋지, 뭘.”
“누가 복수를 이렇게 한댔소?”
역시나 고우사만큼 멀끔한 안소방이 허윤에게 거듭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쓸 만한 돌을 못 찾아와서, 다 깨져 가지고.”
고우사가 말했다.
“아냐. 이래 터져 죽나, 저래 터져 죽나 쟤들 입장에선 머리 터져 죽는 거 똑같은데 돌 좀 없으면 어떠냐?”
허윤이 항의했다.
“그건 저들 입장이고! 내 입장은 다르잖소!”
“난 싫다. 그놈의 살인두풍 때문에 어제도 몇 번이나 죽을 뻔했잖아. 봐라, 이게 얼마나 안전한지. 아무 데나 잡히는 대로 던지기만 하면 저들이 죽자사자 너한테 덤비다가 그냥 깔끔하게 정리되잖아.”
뒤이어 황보홍과 양걸이 수풀을 나왔는데, 두 사람도 아주 멀쩡했다. 옷에 피 한 방울 튀어 있지도 않았고, 특히나 황보홍은 얼굴이 뽀얗고 심지어 머리카락에서는 윤기까지 났다.
“어? 저기 세 사람…… 오라버니랑 언니 아녜요?”
“어엇? 그러네. 허 선생 말대로 살아 있었어! 진승 형! 제갈 형! 남궁 누이!”
멀쩡하디멀쩡한 그들의 모습을 본 제갈명과 남궁민, 진승은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
우린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피를 뒤집어쓴 데다 서 있는 것도 겨우인데, 쟤넨 왜 저렇게 멀쩡하고 밝아?
서러운 것도 서러운 거지만, 왜 살수들이 자기들에게만 몰렸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더 서러웠다.
“저래서…….”
“우리 먼저 죽이려고 그랬던 거야?”
울컥.
남궁민이 먼저 눈물을 터뜨렸다.
“으아아앙! 억울해. 억울해!”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절절했다. 제갈명도 눈물이 거의 맺히지 않았으나 눈가를 훔쳤다.
“제길…….”
진승은 길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고 눈물을 겨우겨우 참았다.
“원시천존, 태상도군, 태상노군…….”
하지만 목이 메어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태어나서 지금처럼 허탈하고 서럽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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