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정말 괜찮겠나?”
“그건 제가 형님께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윤은 피식 웃었다.
안소방은 화산파의 무인들과 함께 출정하기로 결정했다.
화산파에서도 한 명이 아쉬운 때인 데다 백도맹 오주 회주의 손자이니 신원까지 확실하여 요청을 수락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강호의 영웅담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강호의 고수들이 펼치는 무공을 글로만 읽었습니다. 언젠가, 그 무공들을 직접 보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겁나지 않는가?”
“겁이요?”
안소방이 들뜬 표정으로 답했다.
“화산파의 무공과 마도의 무공들을 견식할 수 있는걸요.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오히려 대종사가 움직이지 않아 천마의 무공을 직접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허윤은 쓴 미소를 지었다.
대종사의 무공을 직접 겪은 그로서는 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허윤도, 공세연도 그로 인해 굉장한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으니까.
그때 손현이 다가오며 말했다.
“대종사가 움직이기 전에 큰 피해를 주고 보급을 끊는 게 이번 공습(攻襲)의 목적일세. 그가 움직이면 이미 성공이라 할 수 없지.”
안소방이 멋쩍게 웃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네. 무운을 빌지.”
안소방이 힘껏 포권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사님.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허윤은 드디어 출정하는 안소방과 화산파의 무인들을 지켜보았다.
문주 자미사와 현역 장로들까지 이번 작전에 모두 동원되었다.
허윤에게 문파의 미래가 달렸다고 한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손현이 그들을 보며 허윤에게 말했다.
“종남파와 섬서의 정파 대다수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성공한다면 적의 기세를 꺾고 마도 내에 큰 분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성공할 것이오. 한데 분열이 일어난다는 건 무슨 뜻이오?”
“아직도 마도 내 서열 정리가 다 되지 않았어요. 기존의 마도가문과 마가십세가 여전히 반목하고 있는데, 거기에 사교와 이궁, 일사삼종까지 가세하였으니 혼란이 만만치 않겠지요.”
허윤이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는 전략가는 아니나, 조금 이상한 점이 있소.”
“그게 뭐죠?”
“대종사는 패권을 잡기 위해 자기 가문의 일족들까지 참살하였소. 그건 그가 위아래를 나누는 데 그만큼 거침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소? 그런데 아직까지도 서열 정리가 안 되었다는 건 좀 이상하구려.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는 거외다.”
손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나, 그럴 수밖에요. 허 선생께서 마도의 세력을 몇이나 망하게 만들었고, 또 제가 그들의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 만한 소문을 퍼뜨려 이간질하였지요. 세력 구도가 엉망이 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겁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마도의 세력이 강하다는 뜻으로 들리오만.”
“맞습니다.”
손현은 화산파 제자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상당한 타격을 준다면 저들의 혼란이 커질 겁니다. 그러면 대종사와 마도의 정예들을 섬서에 훨씬 오래 묶어 둘 수 있고, 우리는 시간을 벌지요.”
허윤은 손현의 말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섬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잡아 둔다고 했다. 마치 화산파와 섬서 정파를 미끼로 쓰는 듯한 말투였다.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번다는 거요?”
“무림맹이 뭉칠 시간입니다.”
“시간이라면 이미 꽤 있지 않았소? 대종사가 처음 나타날 때부터 지금까지.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오.”
손현이 약간 냉정한 투로 말했다.
“내분이 있는 건 마도만이 아닙니다.”
흠칫.
“무림맹은 대형 문파와 세가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무림의 한 축이자 각기 지역의 토호(土豪)이지요. 연고지를 두고 그리 쉽게 모든 전력을 마도와의 싸움에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마도 대종사가 나타났고, 청성파가 공격을 받았소. 섬서성도 바람 앞의 등불이외다. 그런데 아직도 두고 볼 게 있다는 것이오?”
“섬서성이 점령되면, 그게 계기가 될 수는 있겠죠.”
허윤은 그때에야 손현이 왜 섬서를 ‘구한다’고는 말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대형 문파와 세가를 끌어내기 위해서 섬서가 필요한 것이다.
마도에 극심한 피해를 주어 무림맹이 모든 전력을 쏟지 않아도 될 여건을 만들거나, 혹은 섬서가 점령당해 위기감을 느끼고 결집하거나.
“군사들은 야박하구려.”
“최악을 가정하고 최대의 성공을 이끌어 내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저 역시도 섬서가 마도에 점령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섬서성이 점령되어도 여전히 결집의 계기로는 불충분합니다.”
“뭐요?”
“마도의 세는 강하지만, 정파 무림의 저력은 그보다 더 깊고 단단합니다.”
“아니, 무림맹은 그러다가 하나하나 다 각개격파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요?”
“마도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설사 섬서성이 점령된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인 하남성에는 그곳이 있지요.”
허윤은 퍼뜩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곳이라니…… 혹시 그거, 거기 아니오?”
“맞습니다. 바로 소림사(少林寺)죠.”
“소림사!”
허윤은 소림사의 승려들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림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림사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는 없다.
전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이며, 정파를 지키는 최강의 보루.
천년 무림의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사마외도의 무리에게 무너지지 않았던 곳.
강호 무림의 전설이다.
“그러니 허 선생께서는 너무 우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마도는 절대 소림사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손현의 말투에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아마 손현뿐 아니라 모든 정파 무인들이 그러할 것이고, 무림맹 또한 그럴 것이었다.
하나 허윤은 손현의 표정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뭘까.
* * *
허윤은 화산을 내려와 장용과 쾌도, 고우사에게로 돌아왔다.
다들 궁금해하며 허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화산파가 떼로 몰려서 지나가던데요. 잘된 겁니까?”
“일단은.”
허윤이 대답을 하고 나니 뒤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대홍랍강?”
고우사와 비슷한 연배의 전대 신강제일인 대홍랍강이었다.
“뭐야. 저 노인네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나. 관아에 안 끌고 갔어?”
고우사가 대답했다.
“할 말이 있대서 놔뒀지.”
대홍랍강이 인상을 쓰고 허윤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 허 선생.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허윤은 듣지도 않고 밖을 내다봤다.
“어허. 화산파, 일 똑바로 안 하네. 내가 직접 데려가야 하나.”
대홍랍강이 움찔하더니 비굴하게 말했다.
“에이, 왜 그러나. 이보게, 허 선생. 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부탁 하나 하려고.”
허윤은 못마땅하게 대홍랍강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장용과 쾌도가 대홍랍강에게 눈을 부라리며 끼어들었다.
“어이, 사기꾼 노인장. 죽고 싶어?”
“사람한테 부탁하면서 인상을 써? 이거 뭐 기본적인 태도가 안 돼 있잖아.”
대홍랍강이 바로 표정을 바꾸어 헤헤 웃었다.
“아이코, 본로가 미안하네. 윽박지르는 게 습관이 되어 가지고.”
허윤이 탐탁지 않아 하며 물었다.
“부탁이 뭐요?”
“내가 말이야. 실은 몸에 좀 문제가 있어. 그러지만 않았어도 자네들에게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걸세.”
“근데?”
“자네가 저기 저 두 놈에게 해 주는 걸 보니 막힌 혈을 뚫고 풀어 주는 효능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그거 혹시…… 본로도 해 주면 안 될까?”
허윤은 생각조차 할 필요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안 돼.”
“에이, 그러지 말고. 좀 생각해 봐. 내가 모은 돈이 좀 있는데…….”
“돈 필요 없소. 노인장이 강해져 봐야 애꿎은 사람들이나 해치고 다니겠지.”
대홍랍강이 무슨 말이냐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야. 자네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나 그런 사람 아냐.”
“뭐가 아니오? 저 포대에 담아 다니는 뼈는 뭐고.”
“그거 그냥 묘지에서 슬쩍한 거야.”
대홍랍강은 멋쩍게 웃었지만, 도리어 허윤의 표정은 좀 더 삐딱해졌다.
“노인장이 죽고 나서 다른 사람이 노인장 팔다리뼈를 들고 가면 좋겠소? 거, 살아 봐야 앞으로 얼마나 산다고 그런 천륜에 어긋나는 짓을 하시외까.”
“죽기 전에 할 일이 있네. 몸을 고칠 돈이 필요했어.”
“그게 노인장의 죄를 덮을 이유는 안 되오.”
“나도 알고 있네. 다만 본로가 당장 죽는다 해도, 내 몸을 이렇게 만든 마도 놈에게 복수는 하고 죽어야지 싶어서 그랬네.”
‘마도에게 복수한다’는 말에 허윤도 약간은 흥미가 동했다.
“누구에게 복수를 한다는 거요?”
대홍랍강이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분노를 표했다.
“야율황!”
“엉?”
대홍랍강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오자, 허윤은 적이 놀랐다.
“이십 년 전에도 야율황이 그리 강했소?”
대홍랍강은 치를 떨었다.
“아니. 당한 건 당시의 대종사에게 당했는데, 본로가 뻗어 있으니까 그 후레자식이 지나가다가 팔다리의 근맥을 끊고 갔어. 퉤.”
고우사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무림에서 야율황을 잡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지.”
허윤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냥 재미 삼아 그랬다는 거요?”
“그놈이 쳐다보기에 눈깔을 쌔비 후려 뽑아 버린다고 했지.”
“…….”
“아무튼, 자네도 마도가 원수라며? 본로를 도와주면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허윤이 고우사를 보았다.
“그래서 관아에 안 보내고 내버려 둔 거요?”
“봐 봐. 점혈도 안 했는데 도망도 안 가고 있잖아. 그래서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허윤은 장용과 쾌도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둘은 별 상관없다는 듯 대답했다.
“저런 약한 영감이 해 봐야 뭘 하겠습니까.”
“오늘내일하는 노인네가 둘인데, 그중 하나 죽기 전에 소원 하나 들어준다 생각해도 되죠.”
고우사가 발끈하려 했다가 참았다.
허윤은 대홍랍강의 관상과 눈빛을 보았다.
대홍랍강 본인의 말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눈빛이 탁했다.
그러나 얼굴의 기운을 찬찬히 뜯어 보면 지금까지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 보였다.
순간, 허윤은 뭔가를 깨달았다.
대홍랍강과 같은 느낌.
손현 군사!
그녀에게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망할. 산 위에선 귀기가 억눌려서 신기가 떨어지는 바람에 손 군사의 얼굴을 제대로 못 읽었어.”
허윤은 즉시 동전을 꺼내어 작전에 대한 간이점을 쳤다.
성공과 실패가 동시에 나타났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작전은 무조건 대성공을 해야 뒤탈이 없었다.
그런데 멀쩡히 성공한다던 점괘에 왜 실패가 보이는가!
“역시 속으로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나 보구나!”
이를 어쩐다?
지금 다시 화산으로 올라가 따지기에는 너무 늦다.
오가는 데만도 한나절이 걸릴 것이다.
설령 허윤이 이제 와 따진다고 해도 그의 말을 들어 줄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자미사도, 손현도 섬서를 포기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모든 전력을 마도와의 싸움에 투입’하여 단번에 승부를 내는 건 포기한 모양이었다.
“바보같이.”
허윤은 화를 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섬서의 모든 문파가 작전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허윤은 객잔 내를 돌아보았다.
최근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더 비겁해진 정파인 둘.
할 일 없이 뒹굴뒹굴하는 고수인데 백수인 노인.
한쪽에서 몰래 당과를 먹고 있는 고수인데 아이인 척하는 노인.
그리고 눈을 말똥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포로 노인.
허윤이 포로 노인 대홍랍강에게 물었다.
“날 돕겠다고 했소?”
대홍랍강이 반색했다.
“아무렴!”
“그럼 할 일이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