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第六十一章 지수사의 점괘
허윤의 말대로 이틀간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고우사만 심심하다고 툭하면 다른 배로 날아가서 노는 바람에 간혹 선원들이 귀신이라고 놀랐을 뿐이었다.
삼 일째 아침인 오늘도 굳이 허윤이 있는 대장선까지 몇 척의 배를 뛰어 넘어와서 같이 식사 중이었다.
고우사가 닭 다리를 껍질까지 뜯으며 우걱우걱 씹었다.
허윤이 물었다.
“수상생활 체질이셨소? 얼굴도 좋아진 데다 식욕도 아주 왕성해 보이오.”
“잠잘 때 옆에 이상한 거 들고 다니는 놈 없어서 잠도 안 설치지, 눈만 뜨면 개겨서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놈들도 없지. 아주, 내 세상인 것 같다.”
한데 그때, 이진휘가 조심스럽지만 퉁명스러운 투로 말했다.
“각자 맡은 위치를 지켜 주셔야지, 이렇게 자꾸 자리를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괜찮아. 허가 놈이 오늘 일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전까진 아무 문제 없는 거야.”
대장선의 화물을 지키는 표두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지성채의 채주는 임성이란 자인데, 워낙에 잔인하고 악랄한 성격이라 저희도 이곳을 다닐 때면 늘 긴장했습니다. 그의 별호가 요인협지(拗引脅持)입니다.”
이진휘가 별호의 뜻을 알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요인협지라면, 온갖 구실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위협한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아주 집요한 자입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통행세를 더 징수하는 바람에 상행에 마찰이 잦았습니다. 일전에 관리를 건드렸던 것도, 사실은 실수가 아니라 자신의 요구를 끝내 들어주지 않자 해코지를 한 겁니다.”
고우사는 여전히 걱정이 없었다.
“점쳐 봐. 다른 점쟁이들은 부지런하게 매일 그날의 운수를 본다는데, 넌 그런 거 안 하냐?”
“이미 했소.”
허윤이 점괘를 보였다.
“지수사(地水師)의 점괘올시다. 이 괘[䷆]는 물이 아래에, 땅이 위에 있는 형태의 괘요. 우물이 솟구치지 않고 아래에만 흘러 위쪽 땅이 마른 형태이니, 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 전쟁이 일어남을 의미하오.”
“싸움이 오늘 일어난다고 했으니 별다른 점괘도 아니구만.”
“싸움에도 종류가 있지 않겠소? 지수사에서도 핵심 효사는 사출이율 비장흉(師出以律 否藏凶)이오.”
식사 자리에 있던 표두와 표사들, 선장과 선원들이 모두 허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허윤이 효사를 설명했다.
“군사를 움직임에 있어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흉을 감추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올시다. 흔히는 그렇게 해석하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선장이 물었다.
“규율에 따라야 한다는 건 흔한 정론이 아닙니까? 부하를 잘 단속해야 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당연한 일인 듯합니다. 다른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허윤의 표정에서 차가운 느낌이 들며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렇소이다. 대개 효사에서 길함을 의미할 때는 정 즉 길(貞 卽 吉) 혹은 무구(無咎)라 하오. 바르게 하면 길하다, 또는 흉이 없다. 이렇게 쓰여 있는 게 대부분이오. 그런데 이 효사에서는 장흉이라 하였소. 장흉은 흉함이 있으나 감추는 것뿐이지, 길하거나 흉이 없어지는 게 아니올시다.”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의문스러워했다.
“흉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감추는 것이라고요?”
“허 선생.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규율을 따르는데 왜 흉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허윤이 계속 설명했다.
“이 효사에서 중요한 건 두 글자요. 바로 율과 비올시다. 율(律)은 인정이나 윤리가 아닌 모두에게 공정한 기준법을 의미하고, 비(否) 자는 부(不) 자에 입 구(口) 자가 붙어 있어서 ‘아니라고 말로 부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구설수를 말하오.”
“그럼 허 선생께서는 효사의 의미를 알려진 바와 다르게 보시는 겁니까?”
허윤이 귀문을 열어 훅! 하고 차가운 입김을 내뱉었다.
그리곤 마치 딴사람이 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규율에 따라 일을 처리하여도 결국은 구설수에 오른다! 이것이 본인이 오늘 낸 점괘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째서 규율대로 행해도 구설수가 따른다는 건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고우사도 이리저리 궁리해 보는데, 딱히 어떤 일일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게 점괘냐. 수수께끼지.”
표두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흰 수적을 만나면 대개 협상을 시도합니다. 조건이 합당하면 통행세를 지불하고, 그렇지 못하면 싸웁니다. 그게 저희 규칙입니다.”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오.”
“음.”
다들 약간은 걱정스러워했다.
“여기가 뭍이 아니라 물인 게 걱정이군요. 대처할 방법이 전혀 다르니…….”
“수적들이 함부로 날뛸 수 있는 것도, 물 위에선 고수조차 땅에서처럼 힘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구설수라니, 대체 어떤 일이 생기려는지…….”
점괘로 미래를 알았지만, 평소와 다르다는 말 때문에 이들은 오히려 더욱 두려워졌다.
선장이 말했다.
“그들은 협상이 결렬되면 불화살을 쏘거나 배에 구멍을 내고 갑판에 올라타 백병전을 하려 할 겁니다.”
허윤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뭐, 그 전에 허 선생께서 그…… 살인두풍으로 도와주신다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강 위에서 피할 데가 없는 건 저희나 그쪽이나 마찬가지니까요.”
허윤의 두풍은 화포만큼이나 강력해서 수적들의 작은 배를 한 방에 쓸어버리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수적들이라고 살인두풍의 위력과 허윤의 행보에 대한 소문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허윤의 점괘처럼 나타나서 싸우게 된다면…….
선장과 표두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에 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것처럼 허윤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고우사에게 말했다.
“단연자 소지광 옹을 이 배로 데려와야겠소.”
소지광은 고우사나 대홍랍강, 약왕처럼 고수들의 상류 세계가 아닌 하류 세계를 떠돌았다.
즉, 그쪽 세계의 경험이 많다.
“이번 일에는 그가 필요할 것 같소이다.”
“임성이란 놈이 말을 잘한다니 장용이나 쾌도더러 상대하라 하지, 왜?”
“지수사의 점괘는 남서쪽의 방위와 관련이 있는데, 선단에서는 소지광 옹이 그쪽 배에 있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고우사 노인장은 날 따라서…….”
상인들의 선단이 강폭이 넓고 잔잔한 곳을 지날 때, 마침내 수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아야 열 명 정도가 탈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날렵한 배 수십 척이 앞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약 네 척의 큰 배와 그것보다도 월등히 큰 대장선이 있었다.
“살인두풍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은데. 겁이 없구나.”
상선의 선원들이 수적들을 비웃었다.
하나 가장 선두의 배에 허윤과 함께 탄 소지광은 원래 찌푸린 인상을 더 찌푸렸다.
“살인두풍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떡하니 나타난 걸 보면 뭔가 대책을 세워 온 게 확실하네. 그런데 조장은 나더러 뭘 하라고 여기 있으라는 게야? 싸우라는 건 아닐 테고.”
소지광이 곰방대로 황금안을 쿡쿡 찔렀다.
“인마. 네가 먼저 말 걸어 봐.”
황금안은 소지광에게 눈을 부라렸다가, 소지광이 곰방대를 치켜들자 곧바로 선두로 갔다.
“본인은 대유령채에서 온 황금안이올시다. 거기 귀하는 누구시오?”
대장선에서도 날씬한 체구의 장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고, 매부리코에 광대까지 튀어나와 있어서 결코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도 해금을 닮은 두 줄짜리 악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황금안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쯧. 녹림의 호래자식 하나가 허 씨의 충견이 되었다더니, 그게 네놈이구나.”
황금안은 가뜩이나 자존심이 상해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이보시오. 전부터 산과 물은 서로 어울리진 않았으나 상대를 존경하고 입장을 존중했으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 왔는데 넌 왜 보자마자 욕질이냐, 이 논다니 깽깽이 새끼야. 손에 이호(二胡)를 든 걸 보니까 호래자식은 내가 아니라 너네. 오랑캐 새끼. 막 생긴 천민 새끼.”
악기의 이름이 이호인데, 호 자가 오랑캐라는 뜻으로도 쓰여서 오랑캐의 악기라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장년인은 화를 내는 대신 껄껄하고 웃었다.
“지성채의 임성이다. 본인의 독문무기 철량호(鐵兩胡)를 보고도 누군지 몰라보는 그놈의 눈깔은 하나가 있으나 둘이 있으나 별 차이가 없구나. 알아들었으면 가서 주인에게 나와서 얼굴 좀 비추라고 해라, 멍멍.”
“너 같은 건 내가 상대해도 모자라지. 나중에 산에 한번 놀러 와라. 주둥아리를 찢어서 아궁이에 처넣어 버릴 테니까.”
그때, 소지광이 곰방대로 황금안을 툭툭 치면서 비키라는 의사를 표했다.
그러곤 연기를 후우 내뿜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황금안의 주인인데, 내게 볼일이 있다고?”
임성이 의아해했다.
“음? 허 선생이란 놈은 아주 젊다고 들었는데. 이건 웬 다 늙어 뒈지기 직전의 노인네냐.”
“소문이 잘못됐을 게다. 내가 좀 동안이라.”
“이상한데…….”
임성의 부하들이 말했다.
“말투가 늙은이 같다고 했으니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문을 들었어도, 그나 부하들이나 허윤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임성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잘됐다. 본인이 이곳에서 기다린 이유는 알고 있으렷다?”
“통행세라면 준비해 뒀다. 받아 갈 테냐?”
임성과 부하들이 크게 웃었다.
“감히 나 임성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당분간 뱃길은 포기하라 했는데도 나온 주제에, 뭐? 통행세?”
소지광은 아직도 허윤이 자신을 왜 앞에 세웠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단 충실하게 대꾸에 응했다.
“그럼, 통행세를 받지 않을 테냐? 받지 않을 거면 썩 비키거라.”
수적들이 또 크게 웃었다.
“상선에 실린 짐을 모두 내놓고 가면 그땐 비켜 주마!”
“그게 우리 통행세다!”
소지광이 황금안을 툭툭 쳤다.
황금안이 소리쳤다.
“이걸 다 싣고 가지도 못할 거면서 욕심만 많구나! 물질하면서 배 터져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임성이 비릿하게 표정을 지었다.
“네놈 말대로 여긴 강이야. 그것도 아주 넓은 강. 네놈들이 땅을 딛고 서 있을 때와는 많이 다르단다. 그럼 응당 여기 주인의 규칙을 따라야지.”
“아이고, 그러셔요? 살인두풍 처맞고 배가 박살 나 봐야 피눈물을 흘릴 오랑캐로구만?”
“개새끼가 아주 시끄럽게 짖는구나. 주인에게 이거나 좀 보라고 전해라.”
임성이 뒤로 손짓을 하자, 부하들이 이십 대로 보이는 남녀 한 명씩을 끌고 왔다.
그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부하들이 남녀를 갑판의 끝까지 몰아세운 뒤에 칼을 겨누었다.
소지광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왠지 임성이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임성은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저쪽 마을에서 데려온 것들이다. 이런 놈들이 이 배에 스무 명쯤 더 있지. 저쪽 배들에도 열댓 명 태워 놨고.”
임성이 과할 정도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놈의 살인두풍인지 뭔지, 나도 한번 보고 싶으니 어디 해 보아라.”
이것이 살인두풍에 대한 수적들의 대비책이었나!
선장과 표두도 한탄했다.
“허어, 인질을 방패 삼다니. 이러면 아무리 허 선생이라고 해도 살인두풍을 쓰기가…….”
소지광은 더욱 미간을 찡그렸다.
“생긴 대로 사파 놈답게 구는구나.”
“생긴 걸로 따지면 그 상판으로 뻔뻔하게 동안이라는 네가 더 심하지.”
임성이 어이없어하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아, 그래. 동안이라 치자. 그래서, 네놈은 잘난 정파란 말이로구나. 요새 강호에서 최고의 협객으로 불리고 있는 허 선생.”
임성이 손짓하자 부하들이 남녀를 갈라놨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인지 울부짖으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으나, 수적들이 강제로 멀찍이 떼어 놓았다.
“내가 준비한 인질극이 성에 안 차시나?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뭘 하는 거냐?”
“배 한 척을 내놓을 때마다 인질을 살려 주지. 단, 한 명만. 네가 고르는 쪽만 살려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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