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허윤이 머리를 딱! 하고 칠 때마다 부두에 댄 노략 배들이 펑펑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수적들에겐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단이 없었다.
허윤의 살인두풍은 지금 그들에겐 천재지변에 가까웠다.
소지광이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새삼 무시무시하구만. 이러니까 저것들이 인질까지 붙들고 난리를 쳤지.”
고우사도 한마디 했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볼 때마다 위력이 자꾸 세져. 전에 유성산채에서 내가 당했던 건 거의 새끼 두풍이었다니까.”
대홍랍강이 말했다.
“내가 매일 벌모세수를 받으면서 좋아지듯이, 동생도 밤마다 내공 수련을 해서 그런 것 같소.”
“그것도 그런데, 귀기까지 점점 짙어지는 걸 보면 그것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귀기’ 소리에 약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윤이 하필 귀기를 배 위에서 쓰는 게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딱! 소리가 날 때마다 퍼지는 귀기를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나저나 저들도 불쌍하구려. 가만히 구경만 하며 뭘 해 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으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얘기한 약왕은 문득 자기를 돌아보는 쾌도와 눈이 마주쳤다.
해서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니, 내 말은…… 이왕 살인두풍을 날릴 거면 배에서 내려서 쓰는 게 어떠냔 얘기지. 우린 정정당당한 정파 아닌가, 정파.”
그 말을 들은 것인지, 때마침 허윤이 입김을 내뿜으며 수석을 내렸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수적들이 급히 만든 조잡한 백기를 들고 부둣가로 모이는 중이었다.
허윤 일행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음? 뭐야. 벌써 항복이야?”
“이런 상황에서야 항복밖에 할 게 없긴 한데…….”
“이제 막 시작인데 끝난 건가? 이래서야 원, 속 시원히 복수했다고 치기도 좀 그렇군. 고생만 들입다 하고.”
“그렇다고 항복을 받아 주지 않으면 그것도 또 문제가 될 수 있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테니까요.”
고우사가 허윤이 말없이 가만히 있는 걸 힐끗 보더니, 배를 좀 더 가까이에 붙이도록 했다.
살인두풍이 멈추자 수적들이 저마다 긴 숨을 내뱉었다.
“항복을 했는데도 쏘면 어쩌나 걱정했잖아.”
“아, 내가 뭐랬냐? 정파는 우리랑 달라서 받아 줄 거라고 그랬잖아.”
“아무튼 살았다.”
배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 임성도 부하들처럼 안도했다.
“이럴 땐 정파 새끼들이 고맙다니까. 위선자 새끼들이라도 체면치레나마 해 주니 좀 살겠네.”
점점 가까워지면서 임성은 그제야 처음으로 허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생긴 건 부잣집 도련님같이 곱상하니 멀쩡하게 생겼는데, 눈은 까뒤집고 입은 살짝 벌린 채 춥지도 않은데 혼자 입김을 뿜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괜히 오싹했다.
‘어디서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새끼가.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을 기다린다고, 지금은 굽히지만 이 원한은 결코 잊지 않는다.’
속으로는 악에 받쳐 있었으나 겉으로는 겁먹은 척, 반가운 척 양손을 흔들어 댔다.
한데 갑자기 배가 멈췄다.
부둣가에서 약 너덧 장을 남긴 거리였다.
허윤이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곤 물었다.
“어딨어……?”
“……뭐가 말입니까?”
“창고.”
“창고요?”
“보물 창고…….”
임성은 입맛이 썼다.
녹림을 털었다고 해서 혹시나 싶었는데, 진짜로 돈 뺏으러 온 거였구나.
일단 지금은 내주고 나중에 상인 놈들을 더 바짝 조여서 본전을 찾아야지.
그가 뒤로 고개를 돌려서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 중의 한 채를 가리켰다.
“저깁니다요.”
딱.
응?
순간 임성의 옆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
푸아아앙!
놀란 산적들이 죄다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다.
“으앗!”
목표는 창고였다.
재화를 모아 놓은 창고에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 너머로 은이 담긴 상자며 도자기며 비단이며 온갖 돈 될 만한 것들이 보였다.
‘확인까지 했어? 치밀한 새끼.’
거짓말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엎드려 있던 임성이 고개만 들고 비굴하게 웃었다.
“아무렴, 제가 대협들의 앞에서 감히 거짓말을 했겠습…….”
허윤이 무표정하게 돌을 들었다.
“어? 어? 대협?”
딱!
“으아아아!”
딱 따닥!
와지끈! 콰드득!
창고를 제외한 건물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기둥이 부러지고 대들보가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마치 아주 커다란 거인이 손가락으로 긁은 것 같은 흔적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어디 불이라도 붙었는지 잔해 사이에서 연기까지 피어올랐다.
임성과 산적들은 머릿속이 허예졌다.
초토화.
이러면 재건이고 복구고 다 글렀다.
잔해를 일일이 정리하고 치우느니, 차라리 다른 데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아니…….”
임성이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항의했다.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창고 알려 달래서 알려 줬더니, 거기만 빼고 부숴요? 항복까지 했잖습니까!”
“응.”
딱!
콰드드드!
딱 딱딱!
쿠웅! 콰득!
“항복했다니까요? 대협, 정파인 아니십니까? 이러시면 안 되죠.”
허윤이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
“응.”
딱!
임성은 식은땀이 났다.
이 새끼가 대답을 건성으로 하잖아!
눈알이 뒤집혀서 그런지 말을 알아듣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쿠르르르…….
허윤이 손을 멈췄을 땐 이미 부술 만큼 다 부순 뒤였다.
그가 수석을 들고 임성을 쳐다보았다.
임성은 뜨끔했다.
아차.
지금은 항의할 때가 아니었다.
건물은 다 박살 내 놨으니 남은 건 사람이다.
“저희가 다 잘못했습니다. 부서져도 싸지요! 살려 주십시오, 대협!”
“응.”
임성은 ‘응’이라는 대답이 이토록 소름 끼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임성이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자, 다른 수적들도 같이 고개를 처박았다.
“살려만 주시면 다시는 수적질 같은 건 안 하고 살겠습니다. 모아 놓은 재물도 다 나눠 주고 착하게 살 테니, 제발……!”
“고개 들어 봐…….”
임성이 고갤 들어 허윤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요?”
“관상 보게.”
관상!
허윤의 점술이 엄청나다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임성은 최대한 환한 미소로 웃으며 비굴하게 말했다.
“헤헤, 어떻습니까요. 아주 선량하게 잘 살 팔자로 보이지요?”
허윤이 임성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대답했다.
“아니. 앞날에 피만 보여.”
임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벌떡 일어나서 철량호를 꽉 움켜쥐었다.
“어차피 죽일 거면 그냥 죽여, 이 새끼야! 그런데 내가 호락호락하게 죽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돈? 보물? 어디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
임성은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남은 수적들도 어차피 살기는 글렀다 생각했는지 임성을 따라갔다.
뱃전에서 고우사가 주먹을 말았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불이라도 지르려는 모양이군. 아니면 창고를 등지고 두풍을 막으려는 거든가. 어느 쪽이든 꽤 머리를 쓰는 놈이네.”
대홍랍강도 말했다.
“두풍을 쏘면 창고까지 같이 날아가겠어그래.”
허윤이 허공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눈은 허옇게 뒤집혔는데, 상황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소지광이 말한 것처럼 정신을 놓지 않은 것이다.
소지광은 허윤을 잠깐 돌아보곤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 수적들이 항복했을 때, 무시하고 정신이 나간 척했던 건 고의가 다분했다.
선원들이 배를 움직였다.
뭍이 가까워지자 고우사와 대홍랍강, 소지광을 비롯해 장용, 쾌도, 안소방, 번산이 차례로 배에서 뛰어내렸다.
수적들은 수십 명이나 되어 꽤 많은 편이었고 그중에는 일류 수준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허윤 일행의 무력은 그들을 상회했다.
고우사야 원래 절정 초입이었고, 장용과 쾌도, 안소방은 청성파의 상승 무공을 사사하여 본 실력 이상의 능력을 뽐냈다.
대홍랍강은 혈맥의 부상이 나아지면서 예전의 무공을 일부나마 되찾아 좋아졌다.
거기다가 최근에 알게 된 허윤의 천근추 수법을 포대에 응용해 그것을 마치 철퇴처럼 휘둘러 댔다.
언뜻 폭신해 보이는데 정작 맞으면 턱이 바스러지고 뼈가 으스러졌다.
뒤늦게 합류한 소지광과 번산도 벌모세수를 간혹 받긴 하나, 효과가 크진 않았다.
대신 운남에서 어려운 환경의 사투를 겪어서 실전 경험이 뛰어났다.
애초에 이 일행의 무력을 다 합치면 무림맹의 특수조에 버금갈 정도인 것이다.
적 중에서는 그나마 허윤의 살인두풍이 두려워 창고를 등지고 있던 임성이 가장 위험한 상대였다.
실제 실력도 초일류에 가까운 데다, 철량호라는 특수한 병기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번산은 덤볐다가 철량호에 어깨를 얻어맞아 물러났고, 안소방은 덤볐다가 철량호의 줄에 검이 걸려 놓치기까지 했다.
“으하하! 이 새끼들 대갈선생만 아니면 순 오합지졸 아냐? 이런 놈들이 감히 나 임성을 어쩌겠다고?”
“젠장! 역시 장강 십대 기병 중 하나인 철량호.”
안소방이 이를 박박 갈며 장용과 쾌도에게 도움을 청했다.
“형님들!”
그러나 장용과 쾌도는 임성을 계속 노려보고는 있는데, 정작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 약한 수적들만 때려잡고 있었다.
“야, 너네 두목은 너희를 버렸나 보다. 도우러 오질 않고 입만 터네.”
“저러다 혼자 남아 봐야 정신 차리지. 머릿수가 줄면 우리야 편해. 크크크.”
번산과 안소방을 비웃고 있던 임성의 웃음이 멈췄다.
의외로 그 말이 임성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이러다가 혼자만 남으면 그땐 칠 대 일이다.
눈먼 칼이라도 날리는 부하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낫긴 나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부하들을 도우러 갈까 생각했는데…….
“저 새끼, 뜨끔했네.”
“이제 부하들 도우러 오다가 우리 형님 두풍 맞고 뒈지겠지. 크크크.”
아차! 격장지계였나!
임성이 움찔했다.
듣고 보니 정말 창고를 벗어나면 두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거 봐라. 또 오려다 안 온다.”
“겁먹었네.”
이 새끼들이!
임성은 당한 건가 싶어서 욱하고 화가 치밀었으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껄껄 웃었다.
“너희 둘, 내가 받아 줄 테니 밑에서 일해 보겠냐? 입담이나 상판대기가 아주 우리 애들 저리 가라야. 우리 수채에 있으면 큰 인물이 되겠어.”
너희들은 생김이나 하는 말이 우리 같은 수적에나 어울린다고 돌려서 욕을 하는 것이었는데, 정작 장용과 쾌도는 임성을 비웃었다.
“븅신. 자기 처지를 알아야지.”
“누가 누굴 받아 줘. 자기가 우리 밑에서 일하겠다고 해도 받아 줄까 말깐데.”
돌려서 욕한 걸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 채용을 제안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뭐? 아니, 야. 내 말뜻은 그게 아니지.”
“쟨 왜 저렇게 한가하냐. 자기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러게.”
깜짝 놀란 임성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창고만 보이고 아무도 없었다.
수적질을 하며 닳고 닳아서 어지간한 술수에는 넘어가지 않는데도 깜박 속은 것이다.
“이 새끼들이!”
하지만 임성이 고개를 다시 돌리는 순간, 그의 뒤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임성은 장용과 쾌도 중에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굴렀다.
부웅!
그의 뒷덜미로 몽둥이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쾌도가 아까워했다.
“눈치는 빠르네.”
하지만 임성이 구르고 나서 벌떡 일어났을 때, 그의 앞에는 고우사가 있었다.
“망할…….”
임성은 이를 악물고 고우사에게 달려들었다.
“죽어어어!”
임성은 부하 수적 몇과 사로잡혔다.
귀기가 아직 남아 있어 싸한 분위기를 풍기는 허윤이 꿇어앉은 임성을 내려다보았다.
고우사가 물었다.
“이제 어쩔까? 그냥 물속에 처넣어서 고기밥을 만들까. 잘라 넣어서 고기가 더 먹기 편하게 만들까.”
“그게 그 얘기잖소. 관아에 넘기면 어떠오?”
“녹림과 달라서 얘들은 숨으면 못 찾아. 그래서 원님들이 엮이길 싫어해. 그냥 놔줄 수도 있다.”
허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처분을 생각하고 있는데, 임성이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했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오. 내가 죽인 사람들의 마을로 날 데려가 주시오. 몰매를 맞아 죽더라도 그들에게 사죄를 하고 싶소. 어차피 가는 길, 남은 이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고 가면 내 죽음도 쓸모가 있을 거요.”
뚝 뚝.
눈물을 흘리는지 갑판에 물방울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음…….”
일행들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려던 때.
소지광이 비웃듯 입술을 이죽거렸다.
“그러면 그 마을 전멸한다.”
약왕이 놀라 되물었다.
“허? 그게 무슨 말인가?”
“장강수로채의 채주를 죽인 일개 마을 사람들을 그들이 내버려 둘 것 같소?”
번산이 임성에게 화를 냈다.
“이런 비열한 작자 같으니! 죽는 순간까지……!”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임성이 얼굴을 들고 한쪽 입 끝을 올려 웃으며 말했다.
“하…… 씨. 들켰네.”
일행들은 오싹했다.
허윤이 말했다.
“그럼 내가 그 무게를 안고 가겠소. 앞으로 무림인으로 살아가려면 이건 피해 갈 수 없는 일인 것 같구려.”
임성이 허윤을 노려보았다.
허윤은 삼청신공을 운용했다.
귀기가 물에 씻은 듯 사라지고 현현한 기운이 풍겨 났다.
“하하하하!”
갑자기 허윤이 웃자 임성도 비웃음을 지었다.
“미쳤나.”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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