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무림맹은 뒤숭숭했다.
특히 문상이 격분했다.
그가 맹주를 제외한 모든 수뇌를 군사당에 모아 놓고 말했다.
“하북성에서 북천의 허리를 끊고, 그곳 정파와 함께 대대적인 반격을 하여 북천의 예봉을 완전히 꺾는 것이 이번 출행의 목적이었습니다.”
잠시 쉬었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무상이 암살당함으로써 계획은 실패했고, 북천은 산서성 남부와 하남 북부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문상은 수뇌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다.
“그의 출행은 맹 내에서도 소수만 아는 극비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유출되었다는 건 내부에 적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마 당주.”
군사당의 사마오가 읍을 했다.
“예.”
“그대가 은월대주와 함께 감찰대를 조직하여 간자를 찾아내십시오. 간자가 정보를 넘긴 곳이 북천인지 마도인지 확인될 때까지 맹은 모든 활동을 중지하며, 내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현천신월대의 대주가 즉시 반박했다.
“비선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보 수집을 한시도 멈추어서는 안 되오. 문상께서는 나를 제일 먼저 감찰하되…….”
문상이 굳은 얼굴로 말을 끊었다.
“나는 방금 모든 활동을 중지하라 명하였습니다. 현천신월대의 비선은 당분간 군사당에서 관리하십시오.”
비선을 넘긴다는 건 사실상 현천신월대가 군사당의 아래로 간다는 의미가 된다.
“문상은 우리에게 명할 권한이 없소!”
문상이 서류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비상시이니만큼 이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모든 조직은 제 지휘하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미 맹주의 허락을 득했습니다.”
무상에 속했던 조직 중 호법을 담당하던 대주가 반대했다.
“무상의 일은 대개 그의 그림자가 행하고 있었으니, 임시로 누군가 맡아야 한다면 그가 하는 게 옳소.”
다른 이들이 동조했다.
하나 문상이 깜박 잊었다는 듯 호천을 바라보곤 말했다.
“그대는 무상의 안전을 도모하여야 하는 절대적인 의무를 저버리고, 자리를 비우는 중대한 실책을 저지름으로써 무상을 잃고 북천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호천은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대는 가장 먼저 감찰을 받고, 세가와 연락을 담당하는 정인당 소속으로서 근신하십시오.”
풍림단과 일대이공부 등 무상을 따르던 조직의 수장들이 웅성거렸다.
정인당에서 그가 할 일이라고는 전서구로 쓸 비둘기를 관리하고, 그것을 통해 온 대롱을 군사당에 건네는 것뿐이다. 심지어 대롱 안에 든 쪽지를 열어 보아서도 안 된다.
무림맹 이 인자의 직속에서 순식간에 잡일을 하는 하인 수준의 잡일꾼으로 좌천된 것이다.
그 의미를 깨달은 호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나겠습니다.”
무상의 휘하 수장들은 만류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어떤 문파에 가서든 최고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고수에게 비둘기 똥이나 치우는 일을 하라고 권하는 셈이 되어 버릴 뿐이다.
문상이 부채를 들었다.
“맹주의 대리로서 재가(裁可)합니다. 이 시간부로 그대는 무림맹의 소속이 아닙니다. 하나, 그 전에 가장 먼저 감찰을 받아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무상의 휘하 수장들이 길게 탄식했다.
그 모습을 본 문상이 말했다.
“우리가 모인 것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슬픈 일을 겪었고 피해도 막심하나, 모두 합심하여 다시 일어나 강호를 위해 뛰어야 합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니 흔들림 없이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예의 바른 태도로 길게 읍을 했다.
수장들도 어쩔 수 없이 함께 포권으로 답했다.
무상은 사라졌고, 무림맹은 이제 문상의 독주 체제가 되었다.
* * *
초우인은 짜증을 냈다.
“또 왔됴?”
호천이 초우인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걸려 있네.”
초우인은 이게 놀리는 건가 싶어서 눈을 부라렸다.
그때 저쪽에서 외눈에 건들거리는 사내가 왔다. 사내가 초우인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뭐야. 아직도 안 죽었네?”
초우인도 아는 얼굴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됴.”
호천과 황금안이 서로를 위아래로 훑었다.
“사파인가?”
“정파냐?”
“나는 마됴.”
호천과 황금안이 초우인을 빤히 쳐다봤다.
“뭘 쳐다보됴. 눈알을 확…….”
황금안이 문득 정문 옆에 걸린 단봉을 보았다.
“오면 때리라고 쓰여 있네.”
초우인이 움찔한 순간, 황금안이 단봉으로 초우인을 때렸다.
빠악!
초우인이 눈을 치켜뜨고 살기를 뿌렸다.
그러자 안에서 서덕이 나왔다.
“손님 오셨나.”
서덕은 초우인을 소수창으로 때려 살기를 가라앉히곤, 둘을 맞이했다.
“어서 와. 그래, 이번엔 무슨 볼일이신가들.”
둘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백룡회주를 만나러…….”
“백룡회에 가입하러…….”
허윤은 호천을 먼저 만났다.
“아직 대낮이지만 괜찮다면 술을 한잔하고 싶군.”
허윤은 일꾼으로 채용된 직원을 불러 술상을 부탁했다.
호천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모든 것을 바친 곳에서 쫓겨나듯 떠난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네. 사문도 잃고, 병든 아이도 돌보지 못해 떠나보내고, 마누라도 비명에 갔는데…….”
“복수를 하고 싶어 온 거요?”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저 갈 데가 없어 염치 불고하고 잠시 신세를 지고자 찾아온 거지.”
가진 걸 전부 잃은 호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어서 허윤은 그가 불쌍해졌다.
“눈치 볼 게 뭐 있소. 친구네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머무르시오.”
“자네하고 얘기하면 꼭 동년배 대하듯 마음이 편해지는군. 그리 말해 주어 고맙네.”
“한데 설마하니 무림맹에서 내칠 줄은 몰랐소. 조금 충격이구려.”
허윤이 곧 말을 보탰다.
“혹시 정보를 유출한 자를 찾고 싶다면 말씀하시오.”
“그럴 필요 없네. 이미 누군지 예상은 하고 있으니까.”
“일전에 한 얘기의 연장선이구려.”
“무상께서는…… 예전부터 문상을 견제해 왔네. 대부분의 군사 출신이 그러하듯 속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미덥지 않아 하셨지. 그러다가 후에야 알게 된 걸세. 그의 목적은 사소취대(捨小取大)였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 설마하니 작은 게 무상이고, 큰 게 마도요?”
“마도의 근절(根絶).”
허윤은 오주 지회의 제갈료가 생각나서 입맛이 썼다.
“같은 제갈 성씨라 그런가. 가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구려.”
“군사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
“꼭 무상을 희생하지 않더라도 소림사를 불러낼 방법이 있지 않았겠소?”
“없네.”
“설득하면 되잖소.”
호천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소림사 승려를 만나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걸세. 제아무리 문상이라 해도, 설사 무림맹주가 가도 소림사를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네.”
“묘하구려……. 하면 이제 어찌 되는 거요?”
“사실상 마도와의 싸움은 끝났다고 볼 수 있네. 그래서 내가 필요 없게 된 거지.”
“내가 볼 땐 그렇지 않소. 야율황 그자가 그걸 알면서도 무상을 암살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소이까?”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 강호의 수많은 문파가 소림사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네. 수만 명이 넘는 속가 제자들이 함께 움직일 걸세. 그게 소림사 출행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네. 그땐 야율황이 어떤 수작을 부려도 절대 전황을 뒤집지 못하지.”
허윤은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끝난다고? 내 복수가 이렇게?
“마도와의 싸움이 끝나면 대대적으로 강호의 세력 구도가 재편될 걸세. 문상은 거기까지 내다보고 무상의 세력을 흡수했지.”
하지만 허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남십자성을 끌어내려고 소림사를 흔든 줄 알았는데, 소림사의 힘이 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면 남십자성을 굳이 불러낼 의미가 있을까?
아무래도 도진의 전언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했다.
* * *
무상의 죽음과 함께 주춤했던 사파의 활동이 다시금 활발해졌다.
심지어는 중도에 가깝던 세력들도 가세했다.
대놓고 마도의 편을 든다기보다는, 정파 쪽에서 운영하는 사업을 방해하는 식으로 명분을 만들어 시비가 붙었다.
툭하면 칼부림이 벌어졌다. 일부러 마주치려고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때문에 곳곳의 객잔, 다관마다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무림인들이 병장기를 차고 앉아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정파는 다급해졌다.
적당히 마도의 공격에 맞추어 움직이던 사파가 갑자기 짠 것처럼 강호 전역에서 작정하고 나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 호면패왕이 호피 의자 위에 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냉막한 표정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그 뒤로는 호면패왕의 가족들이 줄줄이 묶인 채였고, 옆에 남십자성 무인들이 감시하듯 자릴 지켰다.
녹림십팔채의 고수들이 총표파자의 막사 안팎에서 칼을 들고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면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였다.
호면패왕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쩐지 잠잠하던 놈들이 죄다 뛰쳐나와 싸움박질을 벌이고 있더라니. 이런 식으로 협박을 했나.”
청년이 말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이지만, 조금 더 힘을 내십사 우리가 계기를 만들어 드리는 것뿐이지요.”
호면패왕의 기세가 순간 폭발하듯 퍼져 나왔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양쪽으로 날이 달린 거대한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막사 안의 모든 이들의 몸이 굳었다.
사람이 호랑이의 눈을 보면 두려움에 몸이 굳어 버린다는데, 지금 호면패왕의 눈빛이 그러했다.
그가 사람 머리보다 훨씬 큰 날을 가진 도끼를 번개처럼 던졌다.
도끼가 청년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퍼억!
호면패왕이 손을 뻗자, 도끼가 순식간에 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단순한 허공섭물이 아니라 이기어검술에 가까운 속도였다.
호면패왕은 미간이 쪼개졌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청년을 보며 쿵 소리가 나게 도끼를 내려놓곤 웃었다.
청년이 자신의 이마를 만져 보더니 고개를 연신 좌우로 털었다.
그러자 돌연 섬뜩한 눈빛을 가진 노파의 얼굴이 되었다가, 곰보 얼굴이 되었다가, 풍채 좋은 중년 부인의 얼굴이 되었다가 하더니…… 마침내는 가히 절세 미녀라 할 수 있는 여인의 옥용(玉容)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령성.
남십자성의 세 번째 성주.
도끼에 맞아 난 상처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호면패왕이 그제야 본래의 표정으로 되돌아와 말했다.
“야율황과는 협력하기로 한 사이지, 종속 관계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당장은 따라 주겠으나, 후회하게 될 거야.”
화령성이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된 협력을 하지 않으니, 곤란한 건 우리 쪽이지요. 심지어 녹림의 고수가 우릴 공격한 일도 생겼고.”
“황금안 말이로군. 그 녀석은 이미 수배를 걸었다. 대가를 치러야지.”
“어쨌든 지금부터는 소림사도 애를 먹을 만큼 힘을 써 주셔야겠습니다. 귀하의 식솔들은 일이 끝난 뒤에 풀어 드리지요.”
소림사라는 말에 호면패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요? 소림사가 두려우십니까?”
“소림사 땡중을 만나 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스님은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요. 어차피 피와 살로 된 사람인 건 똑같을 텐데요. 정 그렇다면 소림사는 우리 쪽에서 맡아 드리지요.”
호면패왕은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만나 보면 알게 될 거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무공이지만?”
그가 기억을 떠올리더니 곧 질린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짜증 나는 것들이지. 아주.”
화령성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뭐가 그리 짜증 나지요?”
“화를 안 내.”
“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