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여전히 화는 난 채였지만, 권풍인지 뭔지의 위력을 직접 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은 아까 분광수가 통하지 않을 때부터 실력 차이가 극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물러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허윤이 공손하게 굴었다면, 안종이 사과하고 허윤을 벌해서 자신의 체면을 살려 줬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 허윤과 안종 때문이다.
“네 이놈! 어른이 꾸중을 좀 했기로서니 악에 받쳐 덤비는 게 옳은 짓이냐? 네놈만 잘났다고 아득바득 우기는 게 중요한 일이냔 말이다!”
진짜 허윤이 조금, 아주 조금만 숙이고 들어오면 용서해 줄 수 있는데 말이다.
“설사 잘못하지 않았어도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나중에 이러이러하여 그랬다, 어른께 양해를 구해야지! 그게 옳은 행동이지!”
허윤은 막성을 빤히 보았다.
문득 눈앞의 이를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빨리 끝내고 연습이나 좀 더 하고 싶었다.
“아아, 그래. 내가 잘못했다 칩시다. 아까는 내가 잘못했다 치고, 이제 진짜 본론으로 가십시다.”
“진작 그럴 것이지!”
“……?”
“오늘은 이대로 넘어가지만, 다시는 그러지 말거라!”
“이보시오?”
막성은 자기가 다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쯧! 잘못했다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을,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일을 이토록 크게 만들었더냐? 내 웃어른으로서 참고 넘어갈 터이니 오늘의 일을 잘 새겨서 큰 교훈으로 삼도록 해라.”
“…….”
그러더니 마치 볼일을 다 본 사람처럼 느긋한 태도로 장내를 벗어났다.
안소방이 놀라서 일어나 막성을 불렀다.
“막 대협?”
막성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안소방에게 눈길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경공까지 써서 사라졌다.
“뭐야…….”
허윤은 어이가 없어 하다가 안소방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짱돌을 주우려고 돌아다녔다.
안소방은 딸꾹질과 함께 식은땀이 났다.
“딸꾹.”
막성은 가고 이제 남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그런데 허윤이 또 짱돌을 고르는 이유는?
방금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 이유는, 어쩌면 막성을 여기까지 안내한 데 대한 경고인지도 몰랐다.
안소방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무위의 격차가 너무 커서 이젠 부끄럽지도 않았다.
“죄송합니다!”
짱돌을 고르던 허윤이 되물었다.
“응? 뭐가?”
“조장의 내력을 알고 싶어서 제가 막 대협을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허윤은 이미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왜 생각한 것과 영 다른 데로 방향이 날아갔는지 그것만 궁금하고 안소방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아, 신경 쓰지 마.”
“……네?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응, 괜찮아.”
주섬주섬.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짱돌을 고르자 안소방은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괜찮은데 왜 계속 돌을 고르시는…….”
허윤이 안소방을 힐끗 노려보았는데, 눈알이 희번덕거렸다.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히익!
순간 안소방은 오금이 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짜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응, 괜찮아.”
분명히 용서해 준다고 말은 하고 있는데, 계속 짱돌을 고르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그때, 짱돌을 하나 고른 허윤이 훅 하고 거기 붙은 먼지를 불었다.
그러다가 냅다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왜 이렇게 쓸 만한 게 없어!”
안소방이 넙죽 엎드렸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형님!”
안소방은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나름 영재 교육을 받고 귀하게 커서 오주 지회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이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다행히 안소방의 발언이 효과가 있었는지, 허윤이 짱돌을 고르다 말고 멈췄다.
“형님? 나 형님?”
“네, 형님!”
그제야 허윤이 좀 풀린 표정으로 안소방을 보며 물었다.
“아, 왜 젊은 사람이 울고 그래. 그건 그렇고, 혹시 술 좀 있나?”
그것이 안소방에게 구원처럼 느껴졌다.
안소방은 바로 일어섰다.
“당장 사 오겠습니다!”
* * *
꿀꺽꿀꺽.
“크으. 이제 좀 살겠군. 고맙네.”
“헤헤, 별말씀을요.”
안소방은 왜 장용이나 쾌도 같은 험상궂고 나이 많은 건달들이 허윤에게 꼼짝도 못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도 새끼들보다 더 무섭네.’
겉으로 보기엔 여리여리한 서생에 헛웃음이나 짓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게 다 거짓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백도맹 광동 지회의 고문이면 절대 낮은 위치가 아닌데, 왜 허윤이 막성을 막 대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사승을 때려죽인 자에게 한낱 고문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막 대협이 사람을 잘못 봤어. 이런 사람을 건드렸다니.’
그리고 그 덕에 자기가 이렇게 비굴하게 허윤에게 웃고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비굴한 건 비굴한 거고, 그래도 태생이 무인이라 안소방은 아까 허윤이 쓴 그 무공이 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안소방은 허윤이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슬쩍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장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됩니까?”
“뭐…… 물어보게. 술을 얻어먹었으니 술값은 해야지.”
“조금 전에 사용하신 그 무공이 무슨 무공입니까?”
허윤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거 권풍 아닌가?”
“하하하…… 그렇지요, 권풍. 네. 권풍.”
안소방은 겉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도 막성이 권풍, 권풍 그랬던 게 마음에 남아 있구나. 쪼잔한 새끼.’
안소방의 어색한 웃음에 허윤도 괜히 머쓱해져서 웃었다.
“……아니겠지? 솔직히 막 노형 말이 좀 그랬네. 권풍이면 그 아무래도 주먹에서 뭐 나가든가 그런 거 아니겠는가.”
“원래는 그렇죠, 네. 권풍은 주먹에서 나가죠.”
“그런데 막 노형은 왜 자꾸 권풍이라고 했을까. 날 놀리려는 것도 아니고.”
“하하, 네. 몰라서 그랬겠지요. 네.”
안소방은 속으로 욕을 했다.
‘너 같으면 그게 머리에서 나올 줄 알았겠냐?’
그렇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하여간 그 권풍 같은데 권풍은 아닌 그것은 분명히 허윤의 머리에서 튀어나왔다.
허윤이 짱돌로 머리를 치는 순간, 허윤의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진동하면서 벼락처럼 그것이 날아온 것이다.
그때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에서 뭐가 나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소림사가 굳이 돌과 철에 머리를 박아 가며 괴롭게 철두공(鐵頭功)을 수련할 필요가 있나 싶다. 백보신권처럼 멀리서 백보철두신공을 쓰면 되는데.
“그런데 막 대협만 모르는 게 아니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헤…… 헤헤.”
그러니까 좀 알려 줘. 알려 달라고.
허윤이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무공에 대해선 잘 몰라서 이게 뭔지 모르겠다네. 하하.”
“하하…….”
허윤이 웃는 걸 본 안소방은 속으로 생각했다.
‘개새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살면서 절대로 적으로 삼지 말아야 할 일 순위를 꼽으라면 안소방은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짱돌로 사승을 패 죽였다는 게 아까까지는 이해가 안 됐는데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습니다. 네,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안소방이 말을 한꺼번에 내뱉고는 후련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종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은 마냥 안소방을 쳐다보았다.
“아니, 더 해야지.”
“네? 할아버님. 저 거기 계속 못 있겠습니다. 다시 청랑조로 옮겨 주십쇼.”
“그러니까 더더욱 허 조장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제가 조장님에 대해 말씀드린 거 안 들으셨어요?”
할아버지 안종은 회주고, 허윤은 일개 조장인데 안소방은 무심결에 허윤을 더 높여 부르고 있었다.
안종이 빙긋 웃었다.
“들었지. 그런데 말이다. 널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지만 네가 이러는 건 처음 보지 뭐냐. 그러니 더 흥미가 생길 수밖에.”
안소방이 눈을 한참 끔벅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아버님. 그러시면 안 돼요. 그거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거기 더 있으면 언제 시체가 돼도 이상한 일이 아녜요.”
“그런 일은 없을 게다.”
“할아버님, 제 말을 안 믿으십니까?”
“팔 조는 말이다. 함정에 빠져서 흑과부와 사승을 만났지만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전원이 생존해서 돌아왔다. 하지만 무림맹은 일류 고수 세 명이 재기 불가능에 가까운 중상을 입었다.”
“…….”
“널 죽이려고 손을 쓰려 했으면 이미 썼겠지. 그리고 막성이가 그리 허 조장을 도발했는데도 결국 멀쩡한 몸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
“그야…….”
듣고 보니 또 그렇긴 한 것 같다.
“네게 할 얘기가 있다.”
안종이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얼마 전 야율황이 자신의 가문 혈족들을 대거 살육했다.”
“저, 정말입니까?”
“야율가는 대대로 천마의 진전을 이어 온 마도의 종가(宗家). 그간 어떤 대종사도 자신의 가문에 손을 댄 자는 없었다. 그러나 야율황은 금기를 깼다. 그동안 천마의 진전을 이었던 역대 대종사들과는 달라.”
안종이 안소방을 쳐다보았다.
“천하의 사승이 성급하게 나선 이유도 야율황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얘기가 있더구나. 어쩌면 우리는 이번 시대에 사상 최악의 마도 대종사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십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호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그게…… 허 조장님하고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안종이 안소방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가올 전란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에게도 숨겨 둔 한 수가 필요하고, 그게 허 조장이 될 수 있단 얘기다.”
기존의 금기와 규율을 무시하는 마도 대종사와 내력도 모르고 어디로 튈지도 모르지만 마도에 원한을 가진 미치광이 서생.
둘의 무게가 같지는 않을 터인데 묘하게 어울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무림맹에서도…….”
“그래.”
안소방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종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뜻을 거스를 수가 없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소손이 조장님을 잘 지켜보겠습니다.”
“듣자 하니 무공의 기초가 부족하다던데, 네가 좀 알려 주든가 해라. 네 판단에 따라 우리 상회의 독문 무공을 전수하는 것도 허락하겠다.”
굉장한 특혜이자 파격적인 허가였다. 하지만 안소방은 입맛을 쩝 다셨다.
“차라리 우리가 조장님의 무공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안종이 픽 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위력은 권풍인데 주먹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간다는 그것 말이냐?”
안소방은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었는지 찝찝한 투로 말했다.
“네. 두풍(頭風)이요.”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