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Comic Genius RAW novel - Chapter 43
043화. 필살기
2월 29일, 제트 22호 발매.
봄방학이 끝나기까지 단 하루가 남았다.
중학교 입학식도 이제 코앞이다.
[ 적립 시간 : 232시간 ]‘그래도 230시간 이상 모아두었다.’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문구를 보며 생각했다.
입학식까지 적립 시간을 최대한 쌓기를 목표로 했고, 하루도 쉴 틈 없이 일을 한 결과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타났다.
‘열심히 모았네.’
홀가분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으니까.
‘이제 이 시간을 활용해서 차기작을 만드는 거다.’
많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적은 시간이기도 했다.
‘당장 지금 [ 시간과 공간의 방 ]에 들어가 봤자, 아직 뭘 그릴지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도 없는데.’
어떤 만화를 그릴지 결정조차 안 된 상태였다.
‘웹툰을 해야 하긴 할 텐데,’
정해진 것은 하나, 차기작은 웹툰으로 선택한 것.
지금 시대에 맞는 웹툰 기획을 해봐야겠다.
차기작의 구상을 끝내놓고. 콘티까지 그린다음 바로 작업이 가능할 때쯤에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 시간과 공간의 방 ]에서 차기작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현실 공간에선 , 가상공간에선 차기작을 그리는 거다.’
공간을 오가면서 작품도 바꿔 그린다.
내가 가상공간에 일을 한다는 건,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
‘낮엔 수녀가, 밤엔 도둑이 되는 만화가 생각나네.’
그래, 나도 그 주인공과 마찬가지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때였다.
원고를 가지러 온 고준하였음을 직감하고, 서랍에서 서류 봉투를 책상 위로 올렸다.
화실문이 벌컥! 열리자 고준하가 환한 미소로 답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고준하는 평소처럼 먼저 판매집계 데이터를 보여줬다. 6만4천부.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아십니까. 선생님의 라이벌이라고 부르는······.”
“뭐였더라, 말씀하시는 거죠?”
“아, 예. 맞습니다.”
라이벌이라.
나는 속으로 기가 찼다.
‘내 눈엔 보다 한참 떨어지던데.’
물론 점프 플러스에서 가장 재밌는 만화인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구성력이 부족한 건 내 눈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황금으로 세워진 사상누각이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멋지고 세련된 만화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거, 내 만화에 영향 받고 즉흥적으로 그린 거잖아.’
게다가 뚜렷한 한계점도 있었으니, 바로 캐릭터였다.
의 주인공이 아직까진 호쾌하고 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나는 문제점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의 주인공은 너무 겉 멋들었어.’
그리고 이익만을 최우선한다.
물론 이익은 중요한 건 맞다.
이익이 목적이 되며, 그것으로 캐릭터가 움직이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아주 최소한의 인간미는 있어야 해.’
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이익만을 중요시한다.
이익의 노예, 그것이 주인공의 한계점.
아직 초반부라 그러한 점이 부각되지 않는 거 같지만.
에피소드가 몇 번이나 흐른다면 독자들도 눈치를 챌 것이다.
‘쿨하고 호쾌한 게 아니라,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생각도 들 정도니까.’
저런 소년 만화를 많이 봐 왔다. 최소한의 인정미조차 없는 주인공을.
‘그리고 그 만화들의 결말도 항상 안 좋았지.’
단행본을 내지도 못하고 연재가 중단된 사례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난다면 모두가 알게 된다.
인간미가 없는 소년 만화 주인공은 100% 망한다는 것을.
‘지금은 아주 잘나가는 점프 플러스의 간판작이겠지만, 곧 봐라.’
얼마 안 가서 그 황금탑은 무너질 테니.
고준하가 인쇄된 종이를 가방에 꺼내면서 내게 입을 열었다.
“그 가 한양 툰크라는 서점을 활용해서 큰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희전략을 그대로 빼앗겼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매체에도 광고를 올린다고 하더군요.”
단행본 발매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내세운 것.
나를 이기고 싶으니 그렇게라도 도전을 해보는 것이다.
‘근데 날 이길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건 제트에게도 이득이었다.
“편집장님,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점프 플러스가 홍보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라이벌 구도만 부추기면 그 인기에 편승하는 거예요.”
그렇다.
우릴 훼방 놓으려고 노력하는 놈들인 건 분명했지만, 제트는 점프를 딱히 적으로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도움을 주는 고마운 녀석들이지.
“주인공에겐 라이벌이 있어야 해요. 독자들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라이벌을 좋아한다.
점프 플러스와 제트.
이 둘을 라이벌로 만드는 자체를 독자들도 관심 있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벌 전략이 통하고 같이 6만부까지 오르게 된 거죠.”
점프 플러스가 오른다면, 제트도 같이 오른다.
무슨 발버둥을 쳐도 제트 혼자 엎어지는 게 아니면 문제는 없었으니.
“우린 걱정할 필요도 없고, 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아도 돼요. 라이벌에 어울리는 멋진 만화로 승부하면 됩니다.”
내 말을 들은 고준하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멋진 만화로 승부하면 된다······. 그렇지요. 그게 맞습니다.”
나는 고준하에게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23호에 게재될 22화를 제출했다.
“읽어보겠습니다.”
고준하는 서류에서 원고를 꺼내 읽을 때, 나는 이번 편에서 의도한 점을 이야기했다.
“카리스마 있는 악당도 나왔으니, 마침 주인공한테도 필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던 참이었거든요.”
주인공은 그저 한 방 펀치가 쎌 뿐, 아직 아무런 능력을 각성하지 못했다.
“그거 좋군요!”
“주인공이 멋진 필살기를 배운다면,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울 테죠.”
나리토의 ‘나선왕’이나 브리치의 ‘월아천총’도 그랬다.
그 필살기 하나로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그래, 필살기는 멋지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에겐 꼭 있어야 하는 요소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각성하는 게 가장 재밌고 멋진 상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어요.”
악당, 이단 퇴마사 중 한 명이 주인공과 F반에 습격한다.
물론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무찌르지 못할 게 없었으나······.
그 악당의 능력은 ‘일기토’.
상대 단 한 명만 정하고, 그곳에서 지명한 상대와 1대 1로 싸우는 능력이었다.
– 철컹!
복싱 링 같은 커다란 감옥.
바깥의 간섭을 전부 차단하여 1대1 상황을 만들었다.
지명을 당해, 그곳으로 감금당한 건 주인공.
악당도 감옥 안으로 들어온다.
– 내 링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상대는 이단 퇴마사 서열 4위.
아카데미의 일반교사와 비슷하거나 약간 뒤떨어지는 정도의 능력.
주인공은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일 뿐이다.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다.
–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주인공의 파괴력은 아카데미 학생들 중 최 상위 수준.
하지만 그 파괴력 또한 주먹이 닿아야한다는 조건이 깔려있다.
“아니, 그 강한 주인공이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하고 있네요?”
“내지르는 주먹이 악당한테 닿질 않으니 아무리 휘둘러봤자 소용없어요. 방어할 수단마저 없으니 상대방에게 계속 공격당하게 되죠.”
주인공의 공격 반경은 매우 짧아, 원거리 공격에 매우 취약했다.
주인공은 적군에게 단 한 방도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 네놈의 쇄혼을 보여 봐라! 설마 아직도 각성을 못한 거냐?
악당이 소리쳐 웃는다.
쇄혼.
세계관 에너지의 단위, 도력을 이용한 각성 형태였다.
– ······.
주인공은 그저 입을 다물고 적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동안 동료들과 캐미를 보이며 자신의 한 방 능력을 보였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능력’을 각성하지 못했으니까.
F반, 아니, 아카데미 입학생 중에서 오직 주인공만은 각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 하하, 알고 보면 무능 그 자체군.
“주인공 컨셉이에요. 우직하고 우둔하지만 포기를 모르죠.”
“그렇습니다. 이 친구, 참 악바리죠.”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주인공은 마치 회귀 전의 나를 투영하는 듯 했다.
주인공은 남들 다 있는 이능력도 없고, 무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저 부적을 두른 주먹을 이용해 공격할 수밖에 없던 주인공.
– 젠장!
아무리 휘둘러도 주먹이 적에게 통하지 않는다.
거리를 주지 않으니 닿을 리가 없지.
– 크흑!
악당에게 계속 공격당하는 주인공.
온몸이 상처뿐이다.
주인공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손에 있던 부적마저도 찢어져 맨손이 되었다.
– 붙잡던 지푸라기도 사라졌군.
공격할 수단마저 잃었다.
“이제 주인공은······.”
주인공은 아무것도 못한다.
귀신에게 공격할 수 있는 부적이 갈가리 찢어졌으니, 주인공은 이제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다.
22화가 연재될 동안, 주인공이 무력했던 내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능력을 전수받기 전의 내용이었던 1화에서도 아주 무력하지만은 않았으니.’
주인공은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성장하고, 여러 활약을 했다.
더욱 강해졌음에 불구하고 이번 편에서 나온 주인공의 무력감은······.
‘독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겠지.’
–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기분이 어떠냐?
무능.
주인공은 무력감을 느낀다.
힘들다. 이대로 포기할까.
모든 걸 내려놓고 눈을 감을까?
······아니.
– 하, 끈질기군.
악당은 비웃다가도 이젠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 헉, 헉······.
쓰러진 주인공이 몇 번이나 계속 일어난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 왜 저렇게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건가?
“지독한 악바리 근성. 그게 주인공이에요.”
– 이번 일격으로 보내주마. 끝이다.
파아악!
악당이 주인공을 공격하는 그때였다.
– 난 끝나지 않는다.
파아앗!
능력의 각성.
주인공의 능력이 해방된다.
– 이 세상의 모든 악을 멸할 때까지.
눈빛에서 생기가 되살아난다.
– 나 스스로가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머리 위에 동그란 천사 링이 생긴다.
– 멸 귀 나 찰 ( 滅鬼羅刹 )
“이건······!”
고 퀄리티의 2페이지로 이루어진 한 컷.
이 커다란 한 컷에 각성한 주인공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화르륵!
주인공 머리 위의 링이 아주 뜨겁고 크게 불이타기 시작했다.
겉보기로는 마치 불 왕관 같았다.
– 흐름이······ 바뀌었어?
비약적으로 신체능력이 상승하는 능력.
상처가 깊으면 깊어질수록.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고통은 점차 사라진다.
주인공의 스피드는, 공격반경을 커버할 만큼 굉장한 속도.
– 이런!
악당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인파이터처럼 주먹을 쥐고 파고드는 그 순간.
주인공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
콰과과광!
커다란 굉음과 주위를 둘러싼 연기.
감옥은 볼품없게 찌그러졌다.
주인공은 헉, 헉 거리면서 앞을 주시하고 있다.
연기는 어느덧 걷혀지고······.
쓰러져 있는 건, 방금까지 주인공을 농락한 이단 퇴마사였다.
“이, 이제 주인공이 부적을 주먹에 감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아뇨, 필살기를 사용할 때만 한정해서요. 평소엔 부적을 감아놓고요.”
“조, 좋습니다······.”
고준하는 원고를 서류봉투에 넣어놓고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걱정 한 점 없는, 아주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안 선생님, 다음 화 집계는 유난히 기대가 되는데요.”
“사실 저도 조금은 기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