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1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13화
선지자와 사도(3)
나는 회귀 후 육체가 강해졌다.
바로는 아니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몸이 커지기 시작한 건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한 이후였으니까.
…다만, 정신은 달랐다.
지옥에서 돌아온 그 날부터 줄곧 강철 멘탈 그 자체.
웬만큼 심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에야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어?”
지금은 아니다.
진심으로 놀랐다.
아니, 시발 솔직히 말해서 이건 놀랄 수밖에 없다.
심사위원이 갑자기 뛰쳐나와서 내 옷을 사방팔방 찢어발기고 있는데.
여기서 제정신일 수 있는 사람은 역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뭐, 뭐야 X벌!”
“키에에에엑!”
막썽쓰 브뤼노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로, 치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이 나가 버린 걸까?
혹시 나의 아우처럼, ‘급똥’의 위기를 맞닥뜨리기라도 한 것일까?
여러가지 추측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고,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가 스스로 이유를 말하기 기다리는 것뿐.
“[더… 들을 거야.]”
“예?”
“[이거면… 이거면 당신 힘이 전부 해방되는 거 맞지!?]”
“….”
천재 중에는 미친놈이 많다고 한다.
그럼 반대로, 미칠수록 천재일까?
눈앞에 이 인간은, 천재 중의 천재인 건가?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가, 별 온 개 잡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물론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현상 파악이다.
옷은 이미 찢겼고, 지금 내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것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팬티뿐
그것도 인터넷에서 미친 가성비라고 광고하길래 꾸역꾸역 사서 입고 있는, 면적이 너무나 작은 드로우즈 달랑 한 장.
‘…원래 전신 공개를 할 생각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본 실력을 ‘하사한다’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지, 이런 상황을 기다린 건 결코 아니다.
물론,
‘위기는 곧 기회.’
냉정하게 상황을 가다듬어 보니, 지금 상황이 딱히 큰 문제 같지도 않았다.
“[정답이다, 심사위원.]”
온몸에 힘을 준다.
막 한마 바키처럼 근육 모양 자체를 변형시키거나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을 줘서 분리도를 올리거나 혈관을 튀어나오게 하는 것쯤이야 가능하다.
일종의 ‘분위기’ 반전이랄까.
새로운 페이즈에 돌입했다는, 시각적 효과를 연출시킨달까.
아니나 다를까,
“[몸이, 변했어요!]”
“[드디어 ‘전력’이 발휘되는 거구만!]”
오오오오오-!
기대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엄청난 주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막성쓰 심사위원 또한.
“아….”
눈물과 콧물로 뒤덮인 채로, 매우 만족스럽기 그지없게 웃고 있었다.
‘좀 추하지만… 그렇게 추하지도 않구만.’
같은 음악인으로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열망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난 오히려 찬사를 보내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두웅-!
나는, 건반 위에 악보의 첫 음을, 다시금 강하게 눌렀다.
초장부터 FDRE.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오른… 발!?]”
오른발 연주!
“[아, 아니!]”
“[저게 정녕 가능한 일입니까!]”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미 왼발로 멜로디에 ‘화음’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버린 상태.
거기에 만약 오른발을 추가한다면 어떨까.
그저 ‘화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중 멜로디를… 코드랑 같이 구사할 수 있다고…?]”
왼손으로 받쳐주고 오른손으로 흐르는, 기존의 주법을 완전히 탈피하여,
“[…저자는, 홀몸으로 오케스트라가 될 생각인 건가!]”
두개의 다른 멜로디와 코드가 조화를 이루는, 다시 말해 ‘오케스트라’가 완성된다.
‘…미친 발상이긴 하지.’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상식에 찌들어 버린 어른이 아닌, 어린아이일수록 그 상상력은 다채롭다.
물론 어른이 되며 현실과 타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너무나 ‘X신 같은’일을 실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죽을 때까지 자리 잡고 있다.
그래,
70살이 훌쩍 넘은, 봄이네 할아버지조차 그런 재미난 표정을 지으셨으니, 확신할 수 있었다.
‘…광고를 찍으면서 나도 같이 깨달았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린아이 같은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자.”
나는 그리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연주할 곡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윈스턴 암스타인이라는 작곡가의 ‘special day outing’.
‘특별한 날의 산책이라.’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는 뭐랄까, ‘클래식답지 않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ABA 구조를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코드의 배치가 어디 감성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OST에 어울릴 법한 구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뉴에이지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조화롭달까.
‘실력 있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양반이지만, 실력이 출중하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앙리가 연주했던 것보다는 확연히 난이도가 쉽다는 문제가 있었고, 이걸 뽑은 다른 참가자들은 머리를 싸맬 게 분명했지만,
나는 흐릿하지 못한 색채를 유화 물감으로 뒤덮듯이 덧칠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두 손 두 발이 모두 건반에 올라가자,
마치 정말로 ‘음악’이라는 마약이 실존하는 듯,
강렬한 환상이, 시야를 잠식해 나갔다.
한강대교를 가로지르는, 이른 아침 전철의 풍경이었다.
* * *
사람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정적 감정의 한계를 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굳는다.
슬프다고 울지 않고, 화났다고 얼굴이 벌게지지 않고, 뭔가 마음속에 강제적인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이게 반복되어 역치가 높아지면 적응이 되지만서도.
앙리 르페브는 내성이 없었다.
일평생 느꼈던 감정의 대부분은 ‘긍정’의 종류였으니까.
‘부정적’ 감각에 대비할 역치가 현저하게 낮았던 것이다.
“아….”
꿈뻑꿈뻑.
물론 그럼에도 두 눈은 움직였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만 목 아래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으며, 그저 벌벌 떨리기만 했다.
맛이 가버린 환자.
이 한 문장만이 그녀의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으리라.
물론 환자가 나왔으니 당연히 보호자가 잘 케어를 해야 하는데.
“아…?”
브리쉘 음대의 교수, 파비안 융 또한 미처 충격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브뤼노가 미쳐 버리다니….]”
파비안과 막썽쓰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그 또한 앙리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길을 같이하는 친우라 스스로를 자칭했다.
다만,
“[으하하하! 그래, 이, 이 이 소리야!]”
그는 실성이라도 한 듯이 김도일에게 달려들어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더니,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성적 흥분이라도 느끼듯 마구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앙리와 파비안은, 그 모습에, 아주 티끌만치의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어느새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한 30초쯤 지났을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역시나 연장자인 파비안이었다.
‘이런 미친 연주가… 왜 현실에 존재하는 거지?’
앙리는 김도일이 강적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호루비츠의 연주를 모사했고, 실수 없이 연주를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다만,
‘김도일은 인정하지 않았지.’
비웃었다.
앙리의 연주에, 영혼이 없다는 망언까지 내뱉었다.
그의 언행에 앙리가 동요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공개 곡부터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까지.
준비했던 연주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는 말이다.
확신한다.
이것보다 피아노를 잘 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불과 1분 전까지.
“이건 대체….”
멜로디의 침투력은 어마 무시하여, 거부할 수 없었다.
가장자리부터 물들어가며 색채의 확장은, 너무나 빨랐다.
결국 시야를 메운 것은, 아침 새소리를 맞이하여 삐거덕거리는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는 중년 남성의 얼굴.
새하얀 셔츠를 챙겨 입고, 예물로 백화점에서 산 십수 년 된 시계를 손목에 올리고.
두 명의 아이와 아내가 자리 잡고 있는 식탁에서 빵 한 덩이를 가져다 물며, 오늘은 중요한 일 때문에 일찍 가봐야 한다고 밖을 나선다.
다만,
으레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정신이 맑지도 않고, 몸도 무겁고. 중요한 일은 코앞에 있는데 힘이 부칠 때.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보고 있을 때.
뭐랄까, 탈주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던가.
그날, 남자도 같은 기분이었다.
일과 집의 반복.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
행복하지 않은 생활은 결코 아니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본 지 얼마나 되었는지 까마득하고.
하루가 끝나면 피로가 풀리기는 하는데, 미묘하게 침전물이 조금씩 쌓여 어느새인가, 소화할 수 있는 피로의 양이 점점 줄어만 가고.
딱 그런 날이었다.
언제나 무거웠던 발걸음이, 조금 더 무거웠던 날이었다.
이대로 일을 시작하면 실수 하나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그때.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미룰 수 없는 급한 용무가 생겨 오늘 미팅은 취소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미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번에…… 죄송합니다.
사과로 점철된 메시지였다.
다만 동시에, 몸을 속박하고 있던 중압감이 풀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
남자는 아주 잠시, 고민이 들었다.
점심까지 잡혀 있었던 일정이 없어졌으니, 이제 회사에 돌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일.
출근하여 보고를 받고, 사인을 하고, 이번에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의 감독을 하는 것이 해야 할 일.
다만,
왜일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날따라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마음이 허해서.
여러 핑계를 댈 수는 있겠지만, 뭐 의미하는 바는 별다르지 않았다.
일탈.
남자는 일탈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평일에 회사가 아닌,
주말에 가족과 같이가 아닌,
자신만의 시간이, 갖고 싶었다.
마치 어렸을 적 혼자만 학교를 빠진 날, 조용한 동네를 걸을 때처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사색이 필요했다.
그는 회사에 반차를 쓴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색바랜 보도블록에서, 내리쬐는 아침 햇살에 흔들리는 짙은 녹색의 나뭇잎으로.
가장자리에 페인트칠이 벗겨진 횡단보도용 표지판과, 기억이 바래 버린 젊은 시절의 거리로.
그리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붙이고, 넥타이를 푼다.
파비안 또한.
스윽.
스으윽.
있지도 않은 넥타이를 풀려는 듯이, 니트의 목 언저리를 잡아당겼다.
입지도 않은 와이셔츠의 커프스를 찾으려, 계속해서 소매를 매만졌다.
“…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은 출근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
“….”
환상을 보았다.
곡에 몰입하여, 자기 멋대로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아니라, 진짜고 그곳에 있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파비안은 역사책 속 파가니니의 일화가 떠올랐다.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듯한 연주를 들었던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고, 기절까지 했다는 그런 일화 말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까.
다만,
‘…이건, 그 이상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연주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 따위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음악의 신이 있다면, 당신이 내려오거나,
아니면 직접 택한 사람을 내려보내야 한다고.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선지자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