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3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3화
천재의 귀환(1)
‘사람… 사람이다!’
끊임없는 고통에 이성이 날아가 있을 적, 나는 딱히 사람이 그립지 않았다. 그저 어서 빨리 이 지옥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갈망뿐이었다.
하지만 처음 지옥 엉덩이를 접하고, 지옥에서도 나름의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이성이 돌아왔고 사람이 그리워졌다.
사람 냄새, 사람의 온기,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 내 음악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
그 모든 것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돌진했다.
몰론 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아직 사람을 만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나랑 똑같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
“왜… 왜 그러니?”
약 10㎝. 나와 다른 사람과의 거리.
정말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거리!
“점심에 이상한 거라도 먹었니?”
감격스럽다.
내가 아닌 타인이 입술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감격스럽다.
“예쁘네요….”
“어…?”
사실 이 사람이 예쁜지 안 예쁜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지옥 생활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미의 기준을 뒤엎어 놓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하고는 못 배기겠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아요.”
“…!”
일순간 밀어닥치는 정적.
그리고,
“갸아앙악!”
“와아아아아아아!”
아직 앳된 기운이 섞여 있는 이들이 내뱉는 함성.
나는 환희를 느꼈다.
함성조차 이렇게 아름답다니!
다만 그 환희는, 별로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푹신해 보이는 의자와 얼핏 보면 나무 책상 같아 보이는 몸체.
음악 물 좀 먹은 이들은 괜히 깔보며 기피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친숙한 형태.
업라이트 피아노.
‘피아노다…!’
이번에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피아노에 돌진했다.
* * *
연화예술고등학교의 작곡과 교사 이예림은 도저히 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였다. 오늘도 아침에는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고, 리스로 구입한 중형 SUV를 타고 출근해서 수행평가 준비를 끝내고.
실습실에 들어가서도 이제까지와 별다를 바 따위 조금도 없었는데.
‘뭐야…? 뭐지?’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자작곡을 발표하는 수행평가. 다만 어느 소년이 피아노 앞에 서자마자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게 바뀌었다.
멍하니 30초,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에게 사랑 고백을 해온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젊은 선생님이 학생의 빗나간 애정을 받는 경우는 학교마다 왕왕 있는 일인 것은 맞다.
근데 그걸 수업시간에, 대놓고 하는 경우가 있나?
단언컨대 그런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질 나쁜 괴롭힘이라도 받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그러므로 처음에는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그가 피아노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서 더더욱 걱정스러워졌다.
아무리 봐도 ‘미쳤다’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는 저 표정을 보라.
이예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부를 생각이었지만….
-두웅!
이어서 들려오는 피아노의 저음에, 일순간 손이 멈추었다.
“어…?”
한 소절이었다.
단 한 소절 말이다.
다만 이미 ‘전문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그녀는 바로 알아채고야 말았다.
‘이게 무슨…’
지금 저 소년이 들려주려고 하는 곡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이예림은 고민하다가 이내 핸드폰의 화면을 껐다.
그리고….
타다닷-!
이어지는 화음과 멜로디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무슨…!’
김도일.
2학년.
장학생으로 입학.
작곡전공.
이예림은 이미 소년, 김도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작곡전공은 미디든 클래식이든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행적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변은 더더욱 커다랗게 다가왔다.
‘피아노 터치가… 왜 이렇게 좋아졌지?’
작곡과는 피아노가 기본이었다. 애초에 피아노 실력이 좋지 않은 학생은 연화예고에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피아노가 모든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일정 이상의 수준. 작곡과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것뿐.
도일은 작곡과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릴 정도였다.
‘가정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으니까.’
모두는 아니지만 예고 학생들은 대체로 잘 산다. 어렸을 적부터 개인 피아노 레슨 정도야 누구나 받아본 적 있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면 돈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피아노 실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근데… 실력이 갑자기 올랐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한 깊은 터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에 부족함 없는 서스테인 컨트롤.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왜?
의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작곡 전공 학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곡’을 만드는 능력.
도일은 지금까지 수행평가의 성적이 나름 좋은 축이었지만, 들려오는 곡은 궤가 달랐다.
우선, 코드부터가 단순하기 짝이 없다.
Bb F Gm F의 무한 반복. 그에 비해 올라탄 멜로디는 결코 예사롭지가 않고 복잡하며, 확실하다.
마치 시원한 오전, 봄 들판에 누워 꽃냄새를 맡는 느낌이랄까.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너무 구체적으로 배경이 제시되어서 당황을 멈추지 못할 정도.
결코 이건… 이건.
‘…이게 고2짜리가 만든 거라고?’
학생의 솜씨 따위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쟤 갑자기 뭐야?”
“어디서 베껴온 거 아니야?”
곡이 끝나자마자 어수선함이 몰려왔다.
이변을 느낀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X같아져도 낙을 찾는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말이다.
나 또한 지옥에서 낙을 찾았다. 다른 것이 아닌, 음악으로. 다양한 머릿속에 풍경을 만들어냈다.
화창한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도시, 사막, 설산, 야경 속 거리 등등.
음악으로 머릿속에 풍경을 그렸고,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옥에서 가장 자주 손대던 것을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소리가 좋아.’
좋다.
너무 좋다.
이게 장비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재회의 감동, 깨끗한 소리에 대한 감사함이 물밀 듯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것만 있으면.’
조금 더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
종이랑 펜이 있으니, 괴물의 피로 그린 오선지는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내 맘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
‘뭐든지….’
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예전과는… 나의 전생과는 다르다.
이번 생에는 꼭. 나의 음악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리라.
꿈꿔왔던 ‘궁극의 선율’을 만들어내리라.
“….”
82초.
내가 연주한, 내 곡의 플레이 타임이었다.
그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까마득한 어둠이, 다시금 나를 덮쳤다.
처음에는 지옥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지금까지 보던 게 단순한 꿈이었다는, 개 X같은 패턴인 줄 알았단 말이다.
하지만 반대였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꿈이었다. 살을 꼬집어도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건….”
우리 집.
어릴 적 풍경.
열 평대의 작은 주공아파트의 거실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낡은 피아노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코찔찔이 시절 나는 그 앞에서 열심히 건반을 두들겨댔다.
‘저거 야마하가 아니라 YAMHO였지….’
장비는 중요하다.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것은 프로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순수했던 시절에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즐거움을 즐길 뿐.
순수하게 음악이 즐겁고, 계속해서 듣고 싶었을 뿐.
“못 들어주겠구만.”
튜닝도 안 돼 엉망인 음정과 과도하게 쑤셔 넣어 넘칠 것만 같은 즉흥 연주. 나는 코웃음을 쳤다.
저 정도 실력이면 프로는 무슨, 예중 입학도 못 할 거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쳤는걸요.”
다만, 과거의 나는 역으로 코웃음을 돌려줄 뿐이었다.
“끝까지 다했는걸요.”
“….”
“중간에 도망치지 않았는걸요.”
참, 애새끼 아닐까 봐 사람 가슴을 대못으로 박는다.
아니, 난 원래 저런 새끼였다.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 못 하던 바보 말이다.
“그래… 알아.”
“알아요?”
“알아.”
“마음에 들어요?”
“뭐가.”
“건반을 다시 만질 수 있었잖아요.”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감동 그 자체였지.
그 순간만큼은 천국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꿈속이고, 과거의 자신이라고는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끝까지 가봐요.”
마치 나의 마음속을 읽었다는 듯이, 어릴 적의 나는 그리 말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요.”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부디,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의 만든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끼기를. 세상을 바꿀 날개가, 이번에는 꼭 펴지기를.”
“….”
“잊고 있었던 당신의 천진난만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눈이 떠졌다.
“양호실….”
노을이 내리쬐는, 그리운 학교의 풍경.
나는 돌아왔다.
지옥 같은 전생과 진짜 지옥에서,
2023년 4월 25일, 고등학교 2학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