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98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98화
각성(2)
이야기가 끝마쳐지고, 나는 봄이네 할아버지의 무한한 격려를 받으며 회사에서 나왔다.
양손에 자리 잡은 금덩이 시계를 보고 있자니 뭐랄까.
인기 래퍼가 된 느낌이랄까.
인터넷에서는 ‘변기’ 이름이 꽤 유명하니 인기 래퍼가 맞긴 하겠지만서도.
되게 부담스러운 기분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잘 어울린당!”
물론 봄이는 내 양 손목에 걸린 시계들을 보며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괜찮아 보여?”
“응!”
“안 부담스러워 보여?”
“아니?”
“….”
…진짜 그런가?
봄이가 비싼 액세서리 같은 걸 걸치는 걸 본 적이 없긴 한데.
역시 부자라서 그런 걸까?
하지만,
“도일이는 지금 그걸 차도 전혀 안 이상해.”
봄이의 생각은, 나의 예상보다도 훨씬 속 깊은 모양이었다.
“내가 예전에 엄마한테 들은 건데, 대단한 예술인에 가까워지면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대. 겸손한 장인이 되거나, 거만한 위인이 되거나.”
“….”
나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내 선택은 후자였고.
‘거만하다기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자세를 취하고 싶었는데.’
어찌 됐든 간에 그랬다.
“근데, 하려면 어중간하게 하면 안 된대.”
“….”
“장인이 될거면 뒤도 안 돌아보고 딱 한 가지에만 열중하고, 위인이 될 거면 진짜 도저히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대단해져야 된대.”
“둘 다 선택하면?”
“이중적인 사람.”
…솔직히 말해서 매우 찔리는 기분이었다.
대충 그런저런 어중간한 작곡가로 살다가 죽은 내 전생의 끝은, 잿빛 그 자체였으니까.
“응. 도일이는 아마 후자를 선택한 거 같아서…. 그래서 말해봤어.”
…겸손한 건 솔직히, 존나 멋있다.
초대기업의 창업자들처럼 어디 나갈 때 추리닝 차림에 모자 푹 눌러쓰고.
근데 또 틈틈이 알게 모르게 기부랑 자선사업을 펼치고.
진짜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던 삶 아닌가?
다만,
‘당장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지.’
현재 세상에서의 내 입지.
예전이랑 비교하면 엄청나게 올라왔고, 길 가다 알아보는 사람이 한두 명씩 쏙쏙 튀어나오는 단계이기는 하지만서도.
진짜 모두가 주목하는 인간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남들처럼 산뜻 발랄 겸손하게 간다면….’
머릿속에 예정된 미래가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클래식 관련 기사만 주구장창 쓰는 기자들이 기사 몇 개 던지고, 조회수는 그닥 별 반응이 안 나오고, 길거리를 나돌아도 며칠에 한 번 뜨문뜨문 알아보는 사람만 있고.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목표한 극한을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만족한다면 충분히 멋있다.
다만,
내 세계는 그저 ‘클래식 애호가’ 그룹이 아닌, 그야말로 전 세상이다.
그러므로, 봄이 말대로 더더욱 몸을 부풀리는 게 알맞은 선택이었다.
“도일이 네 꿈은 뭐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곡을 듣는 거.”
“히히.”
봄이는 내 꿈을 듣고서 웃음을 흘렸다.
“한 명도 안 빠지고?”
“음… 100명까지는 봐줌.”
“히히힣.”
계속해서, 웃음을 지었다.
“…이상해?”
“멋있어.”
“그치?”
“응. 그러니까 시계 잘 어울려.”
…그렇다고 한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다른 사람한테 내 꿈의 상세 내용을 말한 건 처음인 거 같네.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작전 같은 거 생각해 둔 건 있어?”
“음… 아직 안 정했는데.”
“나도 이번에 퀼른 콩쿠르 나가거든. 퀸 엘리자베스랑 기간이 약간 겹쳐.”
“엥? 진짜?”
“응! 그래도 일주일 일찍 가면 파이널 다 볼 수 있어!”
“오오오.”
그렇구나.
지도를 켜서 찾아보니, 벨기에 브리쉘이랑 독일 퀼른이랑 거리가 꽤 가깝더라.
“꼭 봐두고 싶어.”
“나야 고맙지.”
“그리고 나… 퀼른에서 도일이 곡 연주하고 싶어.”
“…오?”
…봄이가 내 곡을 유럽 국제대회에서 연주한다라.
솔직히 말해, 두 팔 벌려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내 근본은 역시나 작곡가지 않은가?
“어떤 곡 연주하려고? 말만 해. 편곡해 줄게.”
“진짜?”
“서로 힘내야지.”
“히히히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실실 웃었고, 투지를 다졌다.
하늘은 순식간에 어둑해졌다.
나는 봄이를 마중한 다음, 지하철에 올랐다.
퇴근시간대라 그런가, 1호선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휘황찬란 번뜩번뜩거리는 내 양손의 금시계에 엄청난 시선이 쏠리기는 했지만서도.
이 또한 조금 있으면 익숙해질 것이다.
“오늘도 연습이나 해볼까.”
당연하게도 내가 내린 곳은 집이 아닌, 아우의 연습실이었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은 공간.
이보다 뛰어난 환경이 어디 있을까?
다만,
“형님, 오셨습니까.”
내 기대와는 다르게 건물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피아노가 놓인 방에는 아우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전화를 안 받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뭔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직 확인을 안 하신 모양이군요.”
아우의 표정은 썩 매우 진지했다.
“앙리 르페브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다짜고짜 꺼낸 이름.
발음이 뭐랄까, 입에 1.5도 화상을 입은 것 같네.
대충 프랑스 사람인가?
“누구죠?”
“유럽의 유망주… 랄까요. 저번 퀸 엘리자베스 2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오호.”
퀸 엘리자베스 2위.
대회와 순위만으로 실력이 매우 대단한 인간이란 걸 알겠다.
이게 바로 명성의 힘인가…?
‘…것보다 아는 이름 같은데.’
…전생의 기억 일부에, 어렴풋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중음악 관련 인물이 아님에도, 회귀 후 클래식에 관심을 두게 되고서 알게 된 이름이 아님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소리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올해 열아홉…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스물이군요. 이번 퀸 엘리자베스에 리트라이 한다고 합니다.”
…TV에 나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라는 나이에, 퀸 엘리자베스에서 2위를 했다는 경이로운 업적을 세우고,
몇년 뒤인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도 하고.
“오호. 그렇군요.”
다만 뭐.
그게 나랑 큰 상관이 있을까?
강적이 출현한다고 해서, 나의 ‘신기술’의 등장이 막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우가 투박한 터치로 잉스타를 열어, 프랑스 여자애의 피드를 재생하기 전까지는.
“이건….”
“몇 시간 전에 앙리가 올린 동영상입니다.”
흘러나오는 것은 익숙한 멜로디.
그냥 들어서 익숙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연주’를 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멜로디.
쇼팽 에튀드, 겨울바람이었다.
“…동영상 예선에 제출한 곡이군요.”
“예.”
동영상의 한가운데에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을 적어놨더라.
“예전에는 SNS니 뭐니… 그런 게 없었으니 서로 무슨 곡을 제출했는지 몰랐습니다. 다만 요즘에는 다르죠. 재작년 첼로 부문부터였나, 자신의 곡을 ‘일부러’ 알리는 참가자들이 많아졌습니다.”
“….”
“일종의 기선제압이죠.”
기선제압.
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승패란 반절 이상 ‘기세’에 따른다고 하니까.
잘만 쓴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이들에게 광역 디버프를 걸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This is a proper etude play!
└not an ignorant touch (◜◡◝)
번역 : 이게 바로 제대로 연주한 에튀드야!
무식한 터치가 아니라. (◜◡◝)
“응? 이거….”
“예. 아무래도 그 기선제압의 대상이, ‘형님’인 것 같습니다.”
왜일까.
회귀 전의 나조차도 이름을 알고 있던, 나중에 ‘작은 거인’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 소녀는,
나의 기세를 미리 꺾어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음.”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네?”
“모르겠는디.”
…솔직히 말하자.
이렇게 대놓고 저격당한 적?
‘변기’ 이름으로 잠깐 랩을 했을 적 외에는 없었다.
심지어 그때는 ‘언더판’이라는 장르적 특성 탓에, 지금보다 수위가 더 높았지.
그러니까 뭐랄까.
당황스럽달까.
아니, 애초에….
“기분이 안 나쁘네요.”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십니까?”
“제가 만든 기술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 거 같은데…. 뭐, 어쩌겠습니까.”
“….”
“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안 배울 수가 있겠어요?”
“…!”
크게 떠지는 눈.
나는 피식, 비웃음을 지으며 댓글창이나 열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반발하는 댓글이 달려 있더라.
또, 내가 아는 이름도 있더라.
U__jaeho : airhead
“…오?”
“유재호 군이군요. 형님이랑은 구면인 아이지요.”
“그랬죠.”
유재호.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나오기 전에 거의 피아노계의 급식 대장 노릇을 하던 녀석이었지 아마.
요즘 좀 활동이 좀 뜸하다 싶었는데. 잉스타는 하고 있었나 보다.
“듣기로는 유재호 군이 이번에 서울 음대에 들렀다고 합니다. 아마, 동영상 예선 장소를 섭외하려는 것이겠지요.”
“오호.”
“놓칠 수가 없을 겁니다. 매년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요.”
그런가?
나는 친절한 아우의 부가설명을 들으면서, 이번에는 유재호 잉스타로 타고 넘어갔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계정이었다.
그와 만난 적이 없다면 위화감에 전혀 눈치를 못 챘을 것이다.
“팔이… 굵어졌네.”
“…그럽니까?”
“많이 굵어졌는데요.”
몸은 뭐 내가 만나기 전이랑 비슷했다.
다만 팔의 두께는 거의 2배가 된 느낌.
…네츄럴로 운동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이 정도 두께가 나오기는 힘들 텐데.
-난 그놈의 기술을 훔치기 위해서 전부 포기했어. 진가를 보여주마.
단정하는 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약을 쓴 모양이었다.
“쓴 김에 하체도 하지.”
“…네?”
“암튼 그렇습니다. 저도 영상이나 슬슬 찍을 준비를 해야겠네요.”
“오…!”
참가자들이 하나둘,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FDRE을 손수 보여주실 생각이시군요! 내일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업자를 불러서 촬영과 녹음 세팅을 해두겠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나는 곧바로 인스타에 키워드를 잔뜩 넣어서 검색을 시작했다.
몇 개 동영상이 뜨긴 했는데, 다 막 그랜드 피아노에 깔쌈하게 차려입고 영상을 찍고 있더라.
자신의 환경이 얼마나 유복한지,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지 알리려고 하더라.
“그리고 FDRE는 안 쓸 겁니다.”
근데 말이야.
다 저 짓을 한다면, 그게 의미가 있나?
“정말입니까?”
“예. 사실 전요,”
아직 무대 위에 올라간 것도 아닌데.
그냥 실력으로 찍어누르면 되는 거 아닌가?
“원래 별다른 기술 없이도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
아우의 눈이, 튀어나올 만치 커졌다.
그리고 나는,
“…내일 장비 들고 학교나 좀 다녀오죠.”
우리 학교 음악실에 있던,
외관과는 달리 소리가 꽤 좋던 썩다리 국산 피아노를 떠올렸다.
원래, 거만하려면 극한으로 거만해야 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