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99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99화
각성(3)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의 계층은 정해져 있었다.
원래 코쟁이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입문’을 가르는 벽은 역시나 악기의 가격 그 자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당장 옷 기워입기도 빠듯한데.
서민이 어찌 소리 나는 장난감에 수 개월분의 생활비를 태울 수 있을까?
‘…지금은 다르지.’
피아노는 어딜 가든 널리고 널렸다.
부르주아나 귀족 말고는 접할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중고 앱을 켜는 순간 제발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덩이 좀 가져가 달라는 애원 글이 올라온다.
바이올린?
최저가 10만 원.
그야말로, 계층 간의 벽이 허물어져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겉으로는.
“교수님 오셨습니까.”
“그래, 김 조교. 수고가 많아.”
“에이, 아닙니다.”
누구나 악기를 접할 수 있다.
누구나 악보를 볼 수 있고, 누구나 교습 책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안 됐다.
고인 물은 끝까지 자신들에게 고결함을 남기고 싶어 했으니까.
그들은 ‘소리가 나는 것’ 자체가 특별하지 않게 되자, ‘특별한 소리’가 나는 악기에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광경이었다.
웅성웅성-
북적북적-
서울음대 예술관 콘서트홀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이 몰렸다.
딱히 누군가 공연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학교 차원에서 촬영과 녹음을 지원하는 곳이 이곳밖에 없기 때문.
이곳에 놓인 피아노가, 거의 모든 음, 예대를 통틀어 가장 좋기 때문.
‘…콩쿠르도 결국은 장비를 타는 법이지.’
퀸 엘리자베스.
국내 최고의 음대에 들어온 피아노과 학생 ‘대부분’은 그곳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올해 그 시기가 도래했고, 교수 한상훈은 오늘도 학생들의 동향을 살피러 나왔다.
“…붙는 학생들이 많아야 할 텐데.”
“하하…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기는 합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첫 관문은, 동영상 예선이었다.
말 그대로 연주를 촬영 후 주최 측으로 보내야 한다는 소리.
딱히 대회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피아노와 녹음 장비로 녹음하는 게 확률이 올라가지 않겠는가?
완벽한 환경이었고, 필요한 환경이었으며, 비단 그것은 고여 있었다.
‘FDRE을 시도하는 학생들은 아직 없군. 하긴 나도 매일 운동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지.’
콘서트홀의 양상은 4년 전과 비교해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김 조교. 자네 김도일 군 아나?”
“예. 요즘 한국에서 그 이름 모르면 간첩 아닙니까.”
“내 지인한테 전해 듣기로, 이번 퀸 엘리자베스에 출전한다고 하네.”
“…역시 그렇습니까! 이야, 말이 몇 번 나오더니만. 확정이군요?”
“그렇지.”
김 조교는 매우 흥미롭다는 얼굴과 함께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아직 동영상 따위는 올라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른 움직임은 안 취했나?”
“다른 움직임… 이요?”
“우리 학교가 한국 최고의 음대이지 않는가. 그러니 김도일 군도 나중에 이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미리 친해지면 좋을 텐데.”
…그렇다.
후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3, 4학년들은 졸업해서 같이 다니지 못하겠지만.
‘동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연을 만들어 나갈 구실은 충분하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그런 학생은 아직 못 봤습니다.”
“그렇구만.”
한상훈은 내심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말이라고 하는가. 옆에서 배워야지?”
“아… FDRE에 흥미를 가지는 학생은 이미 몇 있습니다만.”
“아니, 그게 아니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힘껏 쿵쿵 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김도일 군의 우수함은 FDRE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네.”
그의 연주를 코앞에서 세 번이나 보았다.
처음에는 그 재능에 경악했고,
두 번째에는 그가 풍기는 압박감에 숨이 막혔으며,
세 번째에는 ‘아이디어’에 감화되었다.
그가 ‘파아노 연주자’에게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아이디어’ 덕이 맞기는 하지만서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소리다.
“…유재호 군이 왔다 갔다던데.”
“예. 그저께인가, 동영상 예선을 촬영을 위해서 찾아왔지요. 아쉽게도 재학생을 위한 곳이니, 박 교수님이 다른 곳을 소개해 줬더랍니다.”
“…그랬지.”
명실상부, 국내 10대 중에 최고의 유망주.
원서 또한 서울대 음대로 넣었다고 하던가.
급사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합격은 거의 당연시 되어 있었다.
‘…유재호에게는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후배.
관심을 갈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왜일까.
그 흥미가, 왜 ‘김도일’에게는 닿지를 못하는 것일까.
“…잉스타도 하고, 우튜브도 하는데. 요즘 애들은 항상 핸드폰 끼고 살지 않나? 찾아갈 필요도 없이, 대충 말 한 번 걸면 대답 정도는 해줄 텐데 말이야.”
“….”
“우리나라 10대의 정상은 유재호가 아니네. 김도일이지.”
많은 학생들이 FDRE에 관심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김도일 군에게도 흥미가 쏠렸다.
다만,
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보려는 학생은, 아마 없는 듯했다.
‘대중음악가 출신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외길 인생을 걸은 게 아니니까.
자신들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 걸까.
뭐, 어찌 되었건 간에.
크나큰 실수였다.
자신이 만약 지금 20대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연락을 하고, 밥을 사주고, 억지로라도 친해지려고 했을 것이다.
티링-!
알림음과 함께, 김 조교가 들고 있던 핸드폰의 화면이 밝아졌다.
띄어진 것은 우튜브의 채널 알림.
익숙한, ‘김도일’ 군의 채널의 프로필 사진.
김 조교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터치했고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현재 학생들의 촬영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태.
김 조교는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디리링-!
투박하기 그지없는, 피아노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허….”
가장 먼저 느껴진 감정은 ‘어이없음’이었다.
눈에 보이는 저 풍경을 대체 뭘까.
‘퀸 엘리자베스 제출용’이라 적힌 이 간단한 제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수님 언제 오셨어요!?”
“동영상 보고 계세요?”
몰려드는 학생들과,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는 김 조교의 핸드폰.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야,
“…고등학교?”
“음악실 아냐?”
영상 속, 거대한 남자를 담아내고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평범한 ‘음악실’이었으니까.
“퀸 엘리자베스 제출용… 이래.”
“도, 동영상 예선을 이딴 데서 찍었다는 거야?”
“미친.”
…모두가 그랬다.
굳이 퀸 엘리자베스가 아니더라도, 동영상 예선 심사가 포함된 콩쿠르라면, ‘좋은 장소’를 찾아 좋은 피아노로 녹음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다만,
화면 속 소년은 아니었다.
그는, 다 부서져 가는 허름한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먼지가 푹 쌓인 덮개를 쓸지도 않고서, 집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상이 빈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시계 완전 비싸 보이네.”
양 손목에 걸친, 어마무시하게 번쩍거리는 시계가, 역설적으로 그가 가진 ‘물질’을 증명해 주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
“거만… 하구만.”
저것은, 거만이었다.
너네들이 아무리 좋은 피아노로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내가 고물 피아노로 치는 것보다 못하다는,
돈이 있지만 굳이 너희처럼 할 필요가 없다는,
‘극한’의 거만 말이다.
“어이가 없네.”
웅성거림의 볼륨이 확 커졌다.
“…재수없어.”
“왜 시계는 저런 걸 차고 다니는 거야?”
“웩.”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아주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재미있구만.”
한상훈은 그저 그렇게 말했다.
불평과 불만을 토하는 학생들을 말리지도, 혼내지도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그의 연주를 직접 보는 것이, 더욱 이해가 빠를 게 분명했다.
“너희는… 김도일 어느 쪽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예?”
“클래식이랑, 대중음악 중에.”
“…대중음악 아니에요?”
허허허.
껄껄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아직, 김도일 군은 클래식계에서는 완전히 ‘이쪽’ 사람들이라 인정을 받지는 못한 모양이다.
다만, 그럼에도 뭐.
상관은 없었다.
“그렇구나.”
한상훈이 생각하는 그는, 바운더리에 속하는 것이 아닌, 바운더리를 만드는 인간이니까.
어디 가서 속하는 인간이 아닌, ‘받아들이는’ 부류니까.
두웅-!
여전히 고물 피아노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만, 그 어떤 학생도 ‘연주’에 대한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 * *
…번쩍번쩍한 금시계를 마주한 우리 반 애들의 첫 반응은, 꽤나 격렬했다.
조폭부터 마피아, 트럼프, 푸틴까지 안 나오는 발언이 없더라.
진짜 금인가 확인하려고 과학실에서 비중계 가져오는 놈도 있더라.
“와 개멋있네.”
결국 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다음 내련 결론은 결국 ‘멋있다’였다.
그리고….
“…미친놈.”
제일 인기 없는 연습실에서, 낡아빠진 업라이트 피아노로 예선용 영상을 찍는다 선언하니, 또라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 피아노가 은근 꿀템이란 말이지.’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로 국산 피아노는 ‘연습용’에 불과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옛날 국산 모델들은 연식에 따라, 뽑기에 따라 사람 소리가 달라지는 것이 매력.
특히 이 셈익 피아노는 그중에서도 소리 퀄리티가 탑급을 달렸다.
비주얼은, 오래된 만큼 아주 폭발적으로 너덜너덜하고.
시선강탈에 제격이라고 해야 할까?
뭐, 어찌 되었건 간에.
나는 수업이 끝나고 두 시간이 채 안 걸려 라 캄파넬라 녹음을 마쳤다.
곧바로 인터넷에 올리는 건 당연지사.
나를 저격했던 앙리 뭐시기한테 유튜브 링크를 댓글로 좀 달아주고.
남은 것은 발가락 기술을 갈고 닦으며, 기다리는 것뿐.
그렇게 3주가 지났다.
당연하게도 떨어진다는 생각 자체는 안 했다.
그리고, 실제로 붙었다.
“…와.”
“우와.”
“퀸 엘리자베스를… 그 영상으로?”
“에이 뭐. 이제 첫걸음 뗀 거지.”
나는 1위를 할 거다.
명예로운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클래식계에서 내 입지를 아주 강력하게 다지고, ‘신기술’을 선보이는 게 목표란 소리다.
그러므로 당장 별 감흥 자체는 들지 않았다.
“당장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올게!”
담임선생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후다닥 달려 나가셨고,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이제 이 교실도 몇 주 동안 볼 수 없게 되겠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달까.
봄이랑은 유럽에서 만나긴 했지만서도.
말동무할 사람 있으면 좋을 텐데.
“흐음….”
특별할 거 없는 단순한 욕망이었다.
다만,
나의 간절한 바람을 우주가 들어준 것일까.
학교가 끝나자마자, 낯이 익은 얼굴이 대뜸 찾아오더라.
“너 이 자식…! 뭔 생각으로 그딴 피아노로 동영상 예선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유재호였다.
“합격.”
“…그딴 걸로 합격을?”
“아니, 너 따까리 합격.”
“뭐…?”
수개월 전과 비교해 듬직하게 팔이 굵어진 약쟁이 유재호는,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하체는 불합격.”
하체는 찌푸릴 게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