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villain's infinite absorption power RAW novel - Chapter 163
164. 인생은 투쟁
신격을 얻은 존재와 필멸자 간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결코 메울 수 없는 그 간극이야말로 서로의 수준을 가르는 척도였다.
니쉬코트가 아무리 육체에 갇혀 마력 발현에 제한을 가진다고 해도 신으로서 가졌던 새로운 감각은 죽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일반적인 감각을 뛰어넘는 초감각.
초감각이 발현된 이상 필멸자인 수혁이 무슨 짓을 할지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공격을 당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뭐지?’
생명체도 아닌 것이 초감각을 기이하게 뚫고 들어온다.
등에 멘 망토 쪼가리가 그와 노스페라투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살랑거리는 망토가 그의 눈을 가리며 현혹하기도 하고 주먹이나 다리를 붙잡아 진로를 방해했다.
손쉽게 대응하던 전과 달리 니쉬코트가 심기가 불편해진 이유였다.
퍼벅.
또다시 시야를 가린 망토 때문에 그의 반격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카운터를 맞았다.
턱밑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진동이 골수까지 파고들었다.
흔들리는 감각에서 빠르게 벗어난 니쉬코트가 묵직한 주먹을 날렸으나 또다시 망토만 스치고 지나갔다.
초감각을 무시하는 아이템이라니.
저런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때 니쉬코트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신격을 얻고 육체를 벗어 던진 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느꼈던 순간.
곧장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운명의 실타래가 엮인 물레를 엿보던 날.
자신으로서는 가히 실체조차 명확히 알 수 없는 상위의 존재가 가볍게 자신을 쫓아냈다.
“너는 아직 격이 부족하다.”
“뭐?!”
그 존재의 손짓에 허무하게 튕겨 나가며 자신의 자존심은 나락으로 가 버렸다.
그런데 지금 그때 느꼈던 상위의 신격이 저 망토에서 느껴진다.
‘설마?’
거기에 더해 망토가 자신의 몸을 스쳐 갈수록 미세하지만 자신의 신격을 빼앗아 갔다.
위험을 감지한 머리에 경종이 울려댄다.
붉은 망토를 마음껏 휘두르는 수혁은 마치 투우사처럼 니쉬코트의 거친 공격을 옆으로 흘리고 그를 조롱했다.
“몇 대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지?”
“하찮은 필멸자 녀석이?!”
대해와 같은 마력이 몸에 감돌아도 정작 마력 발현이 억제당한 두 사람은 태고적 본연의 맨몸 전투를 이어 나갔다.
마력으로 만드는 기술이나 무기를 사용할 수 없고 박투만으로 상대를 꺾어야 했다.
원초적인 폭력.
맨주먹으로 이루어지는 야만적인 전투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빠른 회복을 반복했다.
인간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들의 싸움치고는 경박스러웠지만 그 어떤 때보다 진지했다.
퍽. 퍽. 우당탕.
니쉬코트의 발차기에 수혁이 제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제단에서 훌쩍 뛰어오른 니쉬코트가 바닥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옆으로 몸을 구른 수혁이 아슬아슬하게 발차기를 피한 뒤, 망토가 용수철처럼 바닥에서 밀어주자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발차기에 옆구리에 얻어맞은 니쉬코트가 한 발자국 밀려났으나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지금?”
전투를 감옥 밖에서 지켜보던 노르돌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직이요.”
두 손을 꼭 붙잡고 수혁이 이기길 간절하게 바라던 비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과 달리 무심한 눈으로 감옥을 바라보던 그에게 되물었다.
“어때요? 모시던 신을 직접 본 소감이?”
“…생각보다 실망스럽군.”
입을 오물거리던 노르돌이 꺼끌하게 들어온 먼지를 퉤 뱉어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감옥이 신을 가둔다는 말에 반신반의했어. 신이잖아? 그런데 오히려 저렇게 수혁과 드잡이하는 모습을 보니 좀… 실망스럽군. 우리가 죽으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상향에 데려가 준다고 했는데… 뭐, 나보다는 원래 기르덱 님이 독실하게 믿었긴 했지. 그분의 말씀에 다들 공감하며 이곳에 들어왔을 뿐이야. 오히려 난 저 수혁이라는 전사가 더 의외로군.”
“왜요?”
“필멸자의 힘으로 저렇게 신과 막상막하로 싸운다고? 저자는 과연 인간이 맞나? 저 감옥에 내가 들어갔다면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고 그대로 짓눌려 죽었을 거야. 참으로 기이해.”
“…….”
노르돌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수혁에 관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했던 비비안 역시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수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저렇게 모든 힘을 쏟아 내는 그의 처절한 모습은 그동안 봐왔던 수혁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그건 그렇지. 저런 전사는 나도 처음 보거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는 실로 신화에나 나올 법한 위대한 존재겠지.”
“…그렇죠.”
비비안의 동공 안으로 수혁과 니쉬코트가 뒤엉킨 모습이 그대로 들어왔다.
“넌 나를 죽일 수 없다. 그것이 운명이니까.”
“또 헛소리하네.”
두 개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퍽. 뿌지직.
주먹 뼈가 충돌하며 기괴한 파열음을 쏟아 냈다.
이어서 망토가 움직이며 니쉬코트의 주먹에 또다시 엉겨 붙었다.
“…….”
순순히 주먹을 내준 니쉬코트는 망토가 자신의 신격을 빨아 먹자 확신할 수 있었다.
마신의 파편이 바로 망토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어째서 노스페라투의 육신과 마신의 파편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시간이 지날수록 신성만 빨리며 자신의 격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보아하니 저 인간은 아직 자신이 등에 착용하고 있는 망토가 어떠한 존재인지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몇 번 때렸다는 이유로 저렇게 미소를 짓고 있겠지.
겨우 얻은 육체에 크나큰 부담이 될 거 알기에 참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니쉬코트는 자신의 신격을 개방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육체만 얻는다면 파편은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속전속결로 저 인간과 파편을 제압하리라.
“?”
니쉬코트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을 쏟던 수혁은 자그마한 변화를 감지했다.
갑작스럽게 등골이 오싹해지며 뜨겁게 타오르던 투지가 사그라들고 작은 공포가 올라왔다.
단지 니쉬코트와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온 몸을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신격을 개방한 니쉬코트의 몸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피부가 갈라지고 껍질이 벗겨지며 생겨난 틈으로 하얀빛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거룩하지만 압도적인 신성한 힘이 뿜어지며 감옥 안에 가득 차 있던 마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육체를 잃는다면 내 혼이 쪼개져 시공간의 균열로 빠질 확률이 크겠구나. 그것으로 죽는 것은 아니겠지만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니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
니쉬코트의 몸이 하얀빛에 둘러싸였다.
빛을 내뿜는 그가 성큼 다가와 수혁에게 주먹을 날렸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주먹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발광한 상태였다.
몸이 굳어버린 수혁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 한 채 그대로 얼굴에 얻어맞았다.
퍽!
질긴 가죽 북을 세게 때리는 타격음이 생겨났다.
주먹에 얻어맞은 수혁은 의식 한구석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멀어지는 의식을 붙들었다.
“시…x.”
욕이 절로 나왔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퍽!
한 번 더 니쉬코트의 주먹이 수혁을 때렸다.
퍽! 퍽! 퍽! 퍽! 퍽! 퍽!
신성력이 가득 담긴 주먹이 수혁의 육체를 마구잡이로 강타했다.
흔들리는 그의 몸이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망토가 땅으로 뻗으며 몸을 겨우 지탱했다.
의외로 강한 타격음과 달리 그의 얼굴에 어떠한 상처도 생겨나지 않았다.
“제법 버티는구나.”
니쉬코트가 여유로운 웃음을 되찾았다.
그의 주먹은 수혁의 육체가 아닌 영혼에 타격을 주었다.
단단한 암석 같던 수혁의 영혼이 신성한 바람에 얻어맞으며 풍화 작용이 일어났다.
암석이 깎이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수혁의 영혼은 조금씩 크기를 잃고 육체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니쉬코트가 자신의 혼을 담을 그릇에서 수혁이라는 물을 빼 버리는 중이었다.
수혁은 얼굴에 생긴 충격에 점점 의식이 멀어져갔다.
‘이렇게 얻어맞은 적이 언제였더라.’
과거 복싱을 처음 시작하고 첫 스파링을 뛰던 날이 떠올랐다.
떠오른 기억은 조각난 영혼과 함께 다시 사라졌고, 그가 기억하던 여러 기억이 조금씩 흩어졌다.
니쉬코트의 주먹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에 충실한 그는 한낱 인간의 영혼을 깨부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마침내 잔뜩 깎여 버린 영혼의 크기가 한 주먹도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초점이 사라진 수혁의 눈에 새하얀 빛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빡!
니쉬코트의 마지막 일격으로 수혁의 영혼이 육체에서 튕겨 나왔다.
튀어나온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영혼이 빠르게 빛을 잃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며 힘없이 날아가는 수혁의 영혼을 확인한 니쉬코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무기력한 수혁의 영혼은 니쉬코트가 자신의 육체에 손을 뻗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고 기억이 혼란한 수혁의 자그마한 영혼이 날아가는 것을 붉은 망토가 날아와 재빠르게 감쌌다.
꿀꺽.
빛이 꺼져 가던 수혁의 영혼이 망토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으…으…윽.”
온몸에 어찌나 심한 근육통이 생겼는지 수혁은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철썩. 철썩.
누워 있는 그의 몸에 차가운 물이 질척거리자 결국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서 앞을 바라보니 물이 아닌 붉고도 차가운 피가 바닥에 가득했다.
찰랑거리는 피바다의 위에서 자신은 알몸으로 앉아 있었다.
“우욱-”
코끝을 찌르는 혈향이 가득했다.
항상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던 피 냄새였는데 이상하게 욕지기가 올라왔다.
토를 하고 싶었지만 몸에 근육통이 어찌나 심한지 토를 할 힘도 없었다.
“켈록. 컥. 우웩-”
간신히 적응한 수혁이 다리에 힘을 주려 했으나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일어나는 것을 포기한 그는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여긴 어디지?”
“어디긴. 네가 지금껏 마셔 온 적의 피가 모여있는 곳이지.”
“?!”
눈동자만 겨우 위로 들어 올려 보니 그의 머리맡에 웬 알몸의 남자가 서 있었다.
금발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수혁의 얼굴과 비슷했다.
붉은 눈동자에 말할 때마다 입 속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눈에 보였다.
“노스페라투?”
“조각난 너의 영혼을 겨우 이어 붙여 놨으니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내 영혼?”
수혁은 자신의 뒤죽박죽이었던 기억을 떠올리다 마지막으로 니쉬코트에게 얻어맞았던 기억을 되찾았다.
“니쉬코트!”
“그래. 정신없이 얻어맞던 거 잘 봤다.”
노스페라투의 조롱하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상한 수혁이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잘 도와주지 그랬어?”
“풉. 우린 제법 잘했잖아? 파트너. 이미 여러 번 도와줬다고. 지금 저 멀리 죽어 가던 널 다시 데려온 것도 나고.”
“…그건 맞는 말이네. 이이익.”
몸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서려는 수혁을 노스페라투가 지긋이 머리를 누르며 말렸다.
“무리하지 말라고 친구.”
“이럴 때가 아니야. 니쉬코트에게 몸을 빼앗기게 생겼다고!”
“그건 맞지. 하지만 이제 그만하면 많이 움직였잖아? 쉬고 싶지 않아?”
나른하고도 태연한 그의 말이 수혁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물론 쉬고 싶지.
피와 살이 튀고 죽음이 오가는 전투를 멈춘 적이 없었다.
무엇을 위해서?
처음엔 수혁 자신을 위해서였다.
돈 없고 기구한 인생 역전을 위해서.
그다음은 지구가 멸망하는 걸 알자 그걸 막기 위해서.
이것 역시 지구가 남아 있어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까.
단지 그것뿐?
수혁의 머릿속에 블러드 길드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어서 큰 도움을 준 비비안과 콜로세움에서 만난 마르하임, 칼리아, 멜리에까지.
그들 모두가 웃으며 수혁을 바라본다.
그들의 웃음을 보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행복할 거 같아. 그러니 이제 날 좀 일으켜 줘.”
수혁의 말에 노스페라투가 입을 가리고 킬킬 웃었다.
“예전부터 봐 왔지만 넌 좋은 놈이야. 하지만 한 가지 알아 둬. 일어나는 순간부터 넌 또다시 끝없는 투쟁에 들어가게 될 거야. 어쩌면 지금까지 해 왔던 것보다 더 한 싸움을 맞이할 텐데… 그래도 일어날 건가?”
전과 달리 이번 질문에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끝없는 투쟁? 원래 인생이란 투쟁의 연속이지. 그걸 두려워한다면 내가 아니지.”
“좋은 마음가짐이다. 너라면…… 그에게 지지 않을 거다.”
수혁의 답변이 만족스러운지 흡족한 미소를 띤 노스페라투는 이내 온몸에서 피를 쏟아 냈다.
핏물로 변한 노스페라투가 사라진 뒤, 얌전하던 피바다가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