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129
조용했던 사무실. 팀장의 한마디에 팀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죄다 까칠까칠한 수염을 턱에 달고 퀭하게 변해 버린 얼굴. 사무실 곳곳에는 오래된 컵라면과 인스턴트 봉지들이 널려 있었다.
“왜요?”
“뭔 일인데?”
깜장과 몽두가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정신없이 조서를 작성하다 보니, 오랜만에 목소리를 낸 탓이었다. 우리는 쉴 틈을 찾았다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러시아에서 인도장 날아왔는데?”
“빨리 왔네. 이제 막 조서에 잉크 칠했구먼.”
“사건 터지기 전부터 당국에서 계속 조사가 있었던 모양이야. 우리 덕분에 꼬리를 잡은 거지. 암거래 시장 바닥까지 탈탈 턴 것 같다.”
러시아 쪽에서도 밀렵 거래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있었구나. 이참에 기강을 잡으려는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었다.
“참나명쪽새부터 지금까지 빼돌린 동물이 죄다 2급에서 1급 보호종이라 강경한가 봐. 일단 러시아 놈들은 인도장 날아와서 그쪽으로 송환될 것 같은데···.”
“근데 뭐가 망했다는 거야? 걔들도 예상했을 텐데. 자국으로 송환되는 거.”
“우리나라 놈들도 몇몇 포함되어 있어.”
“엥?”
커피를 쭉쭉 빨던 깜장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우리나라 사람을 왜 러시아에서 부른단 말인가. 팀장은 오해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정확히 얘들은 ‘요청’ 형식이야. 나재범하고 걔, 이름이 뭐였더라? 러시아 놈들이랑 같이 들어온 놈.”
“강찬우.”
“어어. 걔 포함 주요 인물 다섯 명. 암거래 시장에서 코 좀 풀었나 봐. 밀렵 및 불법 거래 정황을 제대로 잡았대. 본국에서 일어난 일이니, 본국에서 재판 진행하고 싶은 것 같은데.”
하긴. 러시아 입장에서는 열불날 만도 하다. 나라에서 보호 중인 동물을 외국인이 가담해서 빼돌렸으니. 이참에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도 엿보이고.
“송환될 확률은?”
“뭐. 거절할 이유도 없지. 그쪽에서 세금 들여 처리해 준다고 하는데.”
팀장이 종이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언론에서는 그야말로 국제 망신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 상황.
“정부에서도 크게 일 만들고 싶지 않겠지. 별거 아닌 조폭 새끼들이잖아. 재판 넘어가기 전에 송환해야 하니까, 곧 그쪽에서 사람 내려올 것 같다.”
“잘됐네. 그쪽 교도소가 그렇게 환상적이라며?”
깜장이 박수를 가볍게 치며 적극 찬성했다. 러시아에 비하면 한국 감옥은 복지 천국인 셈이니까. 여러 면으로 보나 상호 이득이었다.
“보자. 보자. 그러면 그 다섯 명 명단 좀 줘 봐.”
깜장이 공문을 가져가며 이름을 확인했다. 그 와중, 멈추지 않는 몽두의 손. 그의 옆에는 사람 상반신만 한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형님. 저 이거 다 해 가는데, 도와드릴게요.”
바로 조폭 택시를 통해 밀렵 거래를 한 사람들을 추리는 작업. 현금 거래다 보니 전혀 흔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콜 기록과 당시 미터기 기록을 일일이 비교할 수밖에. 그야말로 노가다 작업이다.
“내가 한번 추리면 네가 다시 봐 봐. 이쪽에 모아 둔 게 의심 가는 명단이거든. 위치상 멀리서 콜을 받았는데, 이동 거리가 짧은 애들.”
보통 콜이라 하면 근처의 택시가 배정되는 게 상식이다. 허나 꽤 먼 거리의 택시가 배차된 것. 그리고 그 먼 거리를 달려갔는데 막상 운행 거리가 짧다면 수상한 게 당연했다.
“벌써 스무 건이네요.”
몽두는 고단함에 속이 쓰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나는 잠시 기다린 후,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특수대 고지훈입니다.”
-여기 정보과인데요. 장손파 사건 관련해서 인터넷 기록 분석 나왔거든요. 자료 보내 드릴게요. 바로 받으시면 됩니다.
“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때문에 죽기 일보 직전이었거든요.”
특히 몽두가.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다 멈칫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얘들이 해외 아이피로 우회해서 사이트를 하나 열었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조금 늦어졌어요. 별건 없고, 그냥 밀렵 거래 암시하는 소개 글이랑 전화번호만 적혀 있는 사이트지만요.
밀렵 거래. 그것도 해외의 동물이라 하면 당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파는 사람은 물론 사는 사람조차도.
-나재범 자택에서 발견된 대포폰 중 하나가 그 번호더라고요. 문자 받으면 확인 후, 상담 연결하고. 약속 장소랑 시간 잡고 콜 넣는 방식이고요. 기록 남아 있는 번호 쭉 뽑았으니 딴 일 하실 필요 없고 바로 나가시면 될 것 같아요.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몽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려 댄다. 주요 인물은 러시아로 송환, 정보과에서 어시스트까지 적절히 해 주니 잠잘 시간은 생긴 셈이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흐윽.”
몽두가 수화기에 대고 감사 인사를 남겼다. 웃음을 터트리는 정보과 직원. 전화가 끊어지고, 우리는 콜 명단을 보며 인원을 나누었다.
“이야. 많기도 하다. 총 이백삼십?”
“전화 걸기만 한 사람 포함이니까 이것보다는 적어지겠죠. 이 중 실제 콜로 이어진 사람만 추리면···.”
몽두가 마우스를 딸깍거리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백삼십. 이 정도면 할 만하겠죠?”
“그래. 네 옆에 쌓은 양보다는 적다. 그래도 어마무시한 수긴 하지만. 이것도 각 관할서에 협조 요청 넣어야겠는데?”
서울 전역에 걸친,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경기도까지 분포되어 있는 용의자들. 명단 사이사이 적혀 있는 공중전화 번호까지 보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도 같다. 폐쇄 회로를 뒤져가며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도 아예 막막한 것보단 낫네요.”
“그래. 못 잡는 것보단 시간 들어도 잡는 게 낫지. 으악. 누구 홍삼 먹을 사람?”
깜장은 냉장고를 열며 물었다. 또 당분간 고생하라는 서장의 선물이었다. 마치 수혈하듯 즙을 쭉쭉 빨아 먹는 깜장. 우리는 모두 입에 팩을 문 채로 까만 밤을 지새웠다.
***
그리고 며칠 후. 한국인 송환이 정식으로 승인되고, 언론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했다. 뉴스를 틀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기사. 그중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한 교양 프로그램.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실형을 받으면 러시아의 룸프리스츠 감옥이 유력하다고 하죠? 밀렵 암시장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외국인 교도소랍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인으로는 거의 최초가 아닌가 싶어요. 러시아는 감옥 내의 생활이 척박하기로 유명한데요, 자국도 아닌 외국인을 위한 감옥이라면 더더욱 상태가 심각하겠죠? 러시아에서 방영된 영상 한번 보실까요?]깜장이 턱을 괴며 화면을 쳐다봤다. 철저한 보안 벽과 냉정한 교도관들. 식사는 재소자들의 생명 영위를 위한 것이라 풀죽이나 다름없다. 차가운 바닥과 자유를 찾아볼 수 없는 감옥 생활.
“나재범이랑 일당들. 저기 가면 뒤졌다. 뒤졌어.”
깜장이 고소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한 명씩 튀어나오는 매수자들. 대부분 동물은 회수 조치가 되고 있었다. 허나 관리를 제대로 못 해 죽거나 병든 경우도 많았지.
“아 참. 이번 사건 이후로 법 개정안 발의될 것 같다며?”
몽두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외가가 국회의원 밭이다 보니, 김 실장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들린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동물보호법이랑 뭐 그런 건가 봐요. 러시아 측 눈치도 보이고 그러니까 제대로 형량 올린다는데요.”
나는 서류를 정리하며 대꾸했다. 이슈가 되는 사건 사고는 정치인들의 땔감이니. 내가 할 일은···.
“조서 작성 끝났어?”
“네. 결재만 해 주시면 돼요.”
“오케이. 올려, 올려. 빨리 집에 좀 가자.”
팀장이 신난다는 듯 어깨를 흔들어 댔다. 그리고 이어서 구치소 생방송. 호송 차량에 오르는 러시아인들과 나재범 일당의 얼굴이 보인다. 번쩍이는 플래시 사이로 눈을 찌푸리는 녀석들. 반면 우리는 환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자. 그럼.”
“이제 집 좀 가자아!”
팀원들은 재빨리 책상을 정리하며 퇴근을 외쳤다. 아직 해가 하늘에 걸려 있었지만, 보름 가깝게 날을 샜던 우리였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서장님이 이틀 동안 휴가 줬으니까, 몸조리 좀 잘하고 오자고.”
팀장이 으쓱거리며 말했다.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몇 번이나 서장실에 불려 갔던 그. 만족스러울 만큼 칭찬을 들었는지 얼굴이 반질반질하다. 우리는 별관을 함께 나서며 따뜻한 햇살을 쬐었다.
“그러고 보니 막내는 그거 간다며?”
“약혼식이요?”
“그래. 그거.”
이제 척하면 척이다. 나는 웃으며 정문 쪽을 쳐다봤다.
“안 그래도 저 데리러 왔네요.”
정문에 주차되어 있는 람보르기니. 중고차 매장에서 겨우 되찾아 온 것이었다. 이놈들이, 내가 무를까 봐 빨리 되팔려고 다른 회사로 넘긴 상태였지. 우여곡절 끝에 잘 돌아왔지만.
“어어. 김 실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가시는 길이면 어떻게, 태워 드릴까요?”
김 실장은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할지 물었다. 나는 팀원들을 보며 합승을 권했다.
“그래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 타시죠.”
“아냐. 차가 너무··· 좀 눈에 띄어.”
“그리고 뒷좌석 거기는 사람 탈 좌석이 아니더라. 마음만 고맙게 받으마.”
허나 그들은 민망하게 웃으며 거절한다. 나는 차에 올라타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먼저 갈게요. 다들 푹 쉬세요.”
“그래. 고생했다. 들어가라. 조심히 가십쇼. 실장님.”
부드럽게 출발하는 자동차. 팀원들 역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사이드 미러로 보였다. 김 실장은 핸들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휴가가 잘 맞춰져서 다행이에요. 한창 일하실 때면 시간 못 내셨겠는데요?”
글쎄다. 고대만 회장에게 볼일이 있으니, 아마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냈겠지. 허나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좀 씻고. 약혼식 오후라 그랬죠?”
“네. 이브닝 파티까지 있을 예정인데, 도련님은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셔도 될 것 같아요. 사모님 말로는 간소하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절대 쉽지 않지. 고광그룹의 첫 번째 약혼식이었다. 비록 둘째가 먼저 하긴 했지만, 신정물산 사건 이후로 그 역시 정식 후계자의 길을 밟기 시작했으니.
“별별 사람 다 오겠구먼.”
“그래서 이브닝 파티 때는 정신없으실 거예요. 도련님 살짝 빠지면 제가 가려 드릴게요.”
“하하. 그거 고맙네요.”
나는 웃으며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부드러운 차체의 움직임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김 실장 역시 내 컨디션을 아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약혼식이 열리는 서울씨어호텔에 도착했다.
***
나는 객실 하나를 잡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기자진. 대체 이미숙 여사의 ‘간소하다’는 기준이 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호텔 전체를 빌렸다고요?”
“외국에서 오시는 손님들도 있어서요. 외부인 비롯하여 기자들은 출입 금지랍니다.”
김 실장이 머쓱하게 설명했다.
“약혼식이 이러면 결혼식은 어떻게 하려고.”
“회장님도 그렇고, 둘째 도련님 내외분도 크게 하고 싶지 않아 하셔서요. 아마 이렇게라도 한을 풀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나는 넥타이를 고치며 거울을 확인했다. 완벽하게 잡힌 셔츠 깃과 고급스러운 시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광의 고지훈으로 변한 모습이다.
“그럼 갈까요?”
나는 김 실장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광그룹에서 맞는 첫 가족. 우리 검사 형수님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을 든 채로 호텔 방을 나섰다.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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