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4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나는 창밖으로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
곧 쓰러질 것 같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대로변에는 무질서하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가로등 아래에는 쓰레기가 즐비하다.
내 기억 속 모습과 똑같다.
“동수동도 곧 재개발이 된다던데요.”
“그래요?”
동수동.
내가 교도소 들어가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다.
나 때는 재개발 이야기가 없었는데.
고작 1년 사이 뭐가 변하긴 했구나.
“옆에 상수동이 워낙 성공적이니까요. 계속 말이 나오고 있죠.”
저 멀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빌딩들이 보인다.
동수동과 인접해있지만 마치 다른 세계처럼 화려하다.
해수가 살던 오피스텔도 상수동에 있었지.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혼자 다녀올게요. 커피라도 드시고 계세요.”
“하지만···”
혼자 두지 말라는 고대만 사장의 지시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겠다는 뜻이었다.
김 실장에게서 뺏은 세컨드 폰.
당분간 내가 잘 쓰기로 했다.
“한 시간 안에 돌아올게요.”
“꼭 전화 받으셔야 합니다.”
“아참. 김 실장님.”
나는 차 문을 닫으려다 멈칫거렸다.
“피자 좋아하세요?”
“환장하죠.”
“그러면 삼만 원만.”
김 실장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지갑을 열었다.
재벌가 아들 아니랄까 봐, 서랍 안에서 발견된 수표 뭉치는 모두 백만 원짜리였다.
고대만이 집에만 박혀있는 아들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인 듯싶었다.
뭐든지 하라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보라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고지훈을 깨우지 못했다.
아니, 그러면 지금 아들한테도 지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대기업 회장님 마음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뭐, 어차피 내 계획은 비상금으로도 충분하니까.
“저 월급쟁이예요.”
“걱정 마세요. 배로 갚아드릴 테니.”
“시간 안에 오시기나 하세요.”
나는 싱긋 웃으며 차 문을 닫았다.
***
‘모래오래 피자집’
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익숙한 간판을 찾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했던 곳이다.
유리창은 얼룩으로 엉망인 데다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망한 줄 알겠지.
“여기도 여전하다.”
가게 앞에는 오토바이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배달을 나간 것이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혹시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해도 못 믿을 텐데.
“어서 오세요.”
후덕한 남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손님이 와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 저 뚝심.
내가 알던 그 사장이 맞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살이 찐 것 같군.
“뭐 드실 거요?”
말하는 싸가지도 똑같고.
어린 나이에 무뚝뚝한 사장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월급이 밥 먹듯 밀려도 찍소리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려서 세상물정 몰랐구나.
여기 아니어도 일할 곳은 많은데 말이야.
고아인 내게 세상은 참 좁고 험했다.
“스페셜 피자 하나 주세요.”
“먹고 가요?”
“아뇨. 포장이요.”
“삼만 원.”
나는 빳빳한 지폐를 건넸다.
사장은 돈을 받으면서 내 얼굴을 힐끔거렸다.
짜식, 이렇게 잘생긴 얼굴 처음 보지?
나도 처음 봤어.
“저기 사장님. 물어볼게 있는데요.”
“네?”
“혹시 배민수라고 아세요?”
“배민수요?”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오토바이 몰던 청년인데요.”
“무슨 소리여. 우리 집 오토바이는 예전부터 한 놈만 몰았는데.”
“네?”
“저기 오네.”
유리창 밖으로 오토바이 하나가 멈췄다.
어리숙한 얼굴의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들어왔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새끼. 너 때문에 주문 까였잖아.”
사장이 맨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정작 가게는 파리만 날리는데, 괜히 하는 화풀이.
청년은 머쓱하게 웃으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여간, 할 줄 아는 게 오토바이 타는 거밖에 없으면서 저 모양이라니까.”
사장이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놨다.
분명 안쪽까지 다 들릴 텐데.
일단 상황을 보니 과거의 나는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인물로 대체되긴 했지만.
“그러면 혹시 해수 살인 사건 아세요?”
“여기 동수동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 없지.”
박한동.
모든 정황이 나와 똑같지만 그는 중국집 배달부였다.
아마 근처에서 살던 인물일 것이다.
“범인이 중국집 배달부였다고 하던데. 어디 중국집인가요?”
“거기? 망했어. 동네 장사다 보니 아무래도 좀.”
원래대로라면 여기 피자집이 망했을 것이다.
사장은 오랜만에 손님과 대화를 나눠서 즐거운 것 같다.
쓰잘머리 없이 계속 주절대는 것을 보니.
“그놈도 남매끼리 자랐다고 하던데.”
“그래요?”
“부모 없이 자라면 티가 나나 봐. 우리 배달부도 고아인데, 나사 빠진 것처럼 맹하거든.”
“······.”
사장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피자를 포장했다.
전생에서도 좋은 사장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진짜 쓰레기였구나.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고개를 숙인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내 모습이 저랬나?
저렇게 초라하고 힘들어 보였나?
좀 더 어깨 펴도 되는데, 그걸 몰랐어.
나는 잘 포장된 피자를 들고 안쪽 방에 소리쳤다.
“저기요. 안쪽에 계신 분.”
“네?”
“잠시만 나와 보시겠어요?”
청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왔다.
자세히 뜯어보니 나랑 얼굴도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사장이 월급 제때 안주죠?”
“네?”
“시급도 반 이상 깎고.”
“여보쇼.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오토바이 수리비도 당신보고 내라 하지?”
청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냐는 듯.
반면 사장의 얼굴은 오븐에 처넣은 것처럼 붉게 부풀었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이런 사람 쉽게 안 변해요.”
“이게 미쳤나! 야, 철용이. 너 아는 사람이야?”
“아, 아뇨.”
“여기 아니더라도 일할 곳 많으니까 그만두고 딴 데 찾아봐요.”
나는 지갑을 꺼내 수표 두 장을 그에게 건넸다.
이백만 원. 당시 세 달 치 월급에 준하는 금액이었다.
그마저도 밥 먹듯이 밀렸지만.
“이걸로 당분간 생활하면서 딴 곳 알아봐요.”
“어···어···감사합니다.”
청년이 사장의 눈치를 보며 받았다.
과거의 나에게 이런 행운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도소에서 잠 오지 않는 밤.
식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씩 맞는 ‘행운’이란 게 우리에게도 올 것인지.
대체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현생이 이 모양 이 꼴인지.
킬킬대며 웃어대는 소리에는 착잡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인생을 바꿀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고.
“피자 먹고 싶으면 꼭 사 먹고요. 굶지 말아요.”
나는 방긋 웃으며 가게를 나갔다.
청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기회를 잘 잡았으면 좋겠다.
과거로 돌아와 보니 선택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지 알겠거든.
“생각지도 못하게 지출이 생겼어.”
나는 괜히 지갑을 뒤적거렸다.
크게 상관은 없다.
예산보다 조금 남는 돈이었으니까.
여차하면 방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을 팔아치우면 된다.
그나저나 인생 진짜 한방이구나.
교도소에서 과자 하나 못 사 먹던 놈이 수표를 턱턱 뿌리고.
나는 김 실장이 기다리고 있는 대로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꺄악-!”
어디선가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렸다.
마치 환영처럼 짧게 사라진 소리.
나는 주위를 둘러봤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붉은색 주택들이 밀집해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어디 무슨 일 있어요?”
나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비명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깨진 가로등 사이로 노란 불빛이 깜빡였다.
흠. 잘못 들었나?
시계를 보니 김 실장과 약속한 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내가 발길을 돌리려고 하는 순간,
“우욱.”
하며 고통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반쯤 열린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 공기가 차서 다른 집은 다 닫아 놓은 상태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집으로 다가갔다.
띵동-띵동-
“저기요.”
초인종을 눌렀지만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뭔가 인기척은 느껴지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현관문이 열려 있잖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멈칫거렸다.
“배민수. 정신 차려.”
20년 전 그때도 이러다가 범인으로 몰렸었지.
어찌 학습이라는 게 없냐.
내가 체념하고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살려······주세요.”
확실하다.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
환청도, 착각도 아닌 게 분명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현관문을 발로 뻥 차버렸다.
-철커엉!
녹슨 철문이 삐거덕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피자를 난간에 걸쳐 놓고,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범죄자 새끼들이랑 반평생 굴러먹었지만, 두렵다.
“저기요.”
게다가 지금의 난 교도소에서 굴러먹던 배민수가 아니라 방구석 폐인이었던 고지훈이다.
“여기 안에 계시죠?”
적막.
현관문의 불투명한 유리 안으로 뭔가가 스윽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현관문 앞에 멈추었고.
나와 의문의 그림자가 문을 사이에 둔 채 꼼짝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 속, 내가 손잡이 쪽으로 손을 올렸다.
콰앙-!
“으악!”
그러자 문이 확 젖혀지며 내 얼굴을 후려쳤다.
남자가 한발 빠르게 선공을 날린 것이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나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나는 넘어지는 와중에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우당탕-쨍!
남자는 계단에서 잡기들과 함께 굴러떨어졌다.
줄지어 서 있던 화분이 와르르 쓰러지면서 깨져버렸다.
“으어, 아파라.”
내가 얼얼한 턱을 문지르며 일어섰다.
“으윽······”
남자도 잘못 넘어졌는지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 그리고 쌍꺼풀 짙은 눈.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이다.
“당신 뭐야? 도둑이야?”
남자는 대답 대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날카로운 화분 조각과 흙이 얼굴로 날아왔다.
“읏!”
내가 얼굴을 감싸자 그대로 달아나버린 남자.
난장판이 되어 버린 계단.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다.
이런 소란 속에도 이웃집에서는 아무도 얼굴을 안 내미네.
나는 정신을 차린 후, 어두운 집안 쪽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들어갑니다! 분명히 말했어요.”
현관과 부엌이 바로 붙어있고, 안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한 여자가 엎드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괜찮아요?”
얼굴 왼쪽 부분이 빨갛게 부어있었고, 목에는 가늘게 피가 흘렀다.
아마 흉기를 목에 대고 있을 때 긁힌 모양이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더 큰 일은 안 당한 것 같다.
나는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겨, 경찰 부를게요. 여기 주소가 어떻게 돼요?”
“······세요.”
“네?”
“경찰, 부르지 말라고요.”
여자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뺏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신고는 해야죠.”
여자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눈물로 얼룩져 있었지만 적의가 가득 느껴지는 눈빛.
왜 나한테 그러냐. 나는 널 도와준 사람인데.
여자는 일어나서 보란 듯이 창문을 닫았다.
잠금장치도 걸어 잠그고.
“됐죠? 문단속 잘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이런 싸가지를 봤나.
나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아까 넘어지면서 상처와 먼지로 엉망이었다.
무슨 부귀영광 누리겠다고 이 지랄인지.
“그래요. 단속 잘해요. 그래도 경찰에게는 알릴 겁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는데, 이러고 다른 피해자 생기면 당신도 책임 있는 거예요.”
여자가 내 말에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괴한에게 당할 때도 안 울던 사람이.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어요.”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 경찰은···”
이쯤 되니 이해를 넘어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 쉽게 말해줄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고만 할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고마워요.”
여자는 내 등에다 대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러는지, 원.
나는 손을 털며 집을 나왔다.
계단 아래에 커터 칼이 떨어져 있었다.
아까 그놈이 떨구고 간 건가?
“커터 칼. 녹슨 커터 칼이라.”
나는 문득 수안 발바리 사건이 떠올랐다.
인상착의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이 칼.
녀석이 들고 다니며 썼던 흉기도 커터 칼이었는데.
“헉!”
나는 재빨리 밖으로 달려갔다.
수안 발바리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하지만 녀석은 이미 귀신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 자체가 텅 비어있었다.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사람은 물론이고 제대로 작동하는 폐쇄회로도 안 보인다.
‘한 달 동안의 공백기가 부상 때문에 생긴 거였구나!’
손목이 낫는 대로 다시 범행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커터 칼을 주머니에 넣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김 실장이 운전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 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당장 수안경찰서로 가죠.”
“경찰서요? 갑자기?”
김 실장은 백미러로 나를 살펴봤다.
“얼굴이 그게 뭡니까? 싸웠어요?”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갑시다. 급해요.”
“그런데 도련님.”
“왜요.”
“피자 사 오신다면서요.”
“됐고. 빨리 출발해요.”
이걸 갖다 줘도 수사에는 별 진전이 없을 것이다.
지금 사건 해결의 관건은 DNA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거니까.
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뚝 떨어졌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안경찰서에 가서 만나봐야 할 사람도 있으니 겸사겸사.
그리고 어차피 발바리를 잡는 것은 나다.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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