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48
248. 진짜 음악가 (3)
“흔적이요?”
마치 본인이 질문을 듣는 입장이 된 양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이던 기자가 되물었고, 나는 느긋하게 물 한 모금을 축이며 끄덕였다.
조금 더 설명을 구하는 표정에 사전에 받은 질문지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배려는 고맙지만 애초에 이런 걸 받았다고 대답이 크게 달라질 리 없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 자체가 토마스 브로드우드라는 옛 장인의 소리를 재현해보자는 데에서 시작되었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모두 옛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추억이 소중하단 걸 알기 때문에 그 흔적들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하죠.”
“아버지랑 자주 갔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내가 빙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 그리움을 저마다 하나씩 품고 있기에 우리는 직접 겪어본 적도 없는 고전이란 이름에 로망을 갖게 되고 지금처럼 흔적을 찾고 싶어 하죠.”
“그래서 흔적을 만든다는 표현을 쓴 거군요!”
나는 내가 아닌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고전에 대한 로망을 해석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고전을 겪었으며 그러니 그것을 재현할 자격이 있다는 말 같은 건 오늘 저녁 병원으로 실려 가기 딱 좋은 발언일 테니까.
내 스토리텔링이 마음에 들었는지 긴장하면서도 무료해 보이던 오묘한 에드 기자의 표정이 확 변했다. 약간 신이 난 것 같달까.
“아주 흥미로운 대답이네요. 사실 다른 음악가분이 이런 대답을 했으면 조금 4차원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직접 헌정곡을 찾고, 고전 시대의 스타일을 제대로 부활시킨 한서호라면 얘기가 달라지죠. 고전에 대한 그런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일 테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감사합니다.”
꿈보다 좋은 해몽에 씩 웃자, 그가 다음 질문의 초석을 마련한다.
첫 번째 질문과는 달리 목소리가 살짝 들 떠 있었고, 단조롭던 말이 길어졌다.
“세계 최고의 피아노 브랜드인 스타인웨이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피아노 브랜드인 브로드우드 앤드 선즈. 이 둘과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나 목표에 대해선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다고 느껴지는데······.”
말끝을 늘리며 그가 내게 물어왔다.
“그럼에도 모두가 새 앨범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조금 김빠지는 소식일 수 있단 말이죠.”
아주 순화되어 조심스럽게 던져진 질문.
하지만 지금 여론의 일부가 그리 곱지 못하다는 걸 나 역시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3년을 기다리면 마음이 변할 텐데, 음악이라고 다를까.
“앨범은 계속 작업 중에 있습니다. 이번 앨범의 특성상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작업하는 게 불가피했고요······.”
잠시 말을 솎아냈다.
변명처럼 보이긴 싫었고, 솔직하고 싶었기에.
아직은 솔직할 수 없는 부분들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소식 정도는 전해주고 싶었기에.
“지금 이 프로젝트도 앨범의 한 부분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에드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마크도 금시초문이라는 듯 멀뚱멀뚱 바라본다.
“피아노 제작이······이번 앨범과 연관이 있다고요?”
이어지는 에드 기자의 질문에 내가 담담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이번에 완성될 피아노의 소리를 제 앨범에 실을 생각이거든요. 아마 꽤 오랜만에 들려드리는 제 연주곡이 될 것 같습니다.”
#
-한서호의 연주곡? 그것도 자기가 만든 피아노로? 이건 얌전히 기다려야지.
-한서호에 대해 뭐라 하던 사람들 전부 싹 사라졌네. 거 봐, 한서호 욕하는 사람들만큼 앨범 기다리는 사람들 없다니까?
-한서호의 음악도 좋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 거잖아요. 그러니 최고의 완성도로 나와주는 게 우리한테 더 좋은 일이죠.
-그래도 너무 늦게 나오지만 말기를······. 이미 앨범들부터 사운드클라우디에 올라온 곡들까지 매일 반복해서 듣는단 말이에요.
기사가 나자마자 부정적인 여론은 자취를 감췄다.
끝없이 불어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며 직원이 스크램블을 입에 넣으며 제 일인 양 히죽 웃었다.
“반응이 싹 바뀌었네요. 거만하다던 사람들은 진짜 아예 안 보이고, 오히려 기대된다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어요. 진짜 인터뷰가 신의 한 수였네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든 피아노로 녹음을 해서 앨범에 싣겠다는 얘길 할 줄이야. 클래식 애호가들이 안 좋아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이잖아요!”
테이블을 넘나드는 활기찬 목소리에 건너편에서 조식을 먹던 이들의 표정이 자갈을 씹는 듯했다.
“······끙.”
“여기 베이컨은 너무 딱딱하게 구웠네. 미국식이야. 누가 영국 아니랄까 봐.”
“난 수프나 더 떠와야겠다.”
“크흠, 나도 같이 가지.”
우르르 일어나는 스타인웨이의 피아노 제작자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크가 픽 하고 웃었다.
“은근 귀여운 양반들이야. 피아노 제작에 평생을 바쳐온 분들이니 저렇게 자존심이 센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들이 만든 피아노를 그렇게나 멋지게 연주하는 연주자인데, 아니꼬워할 건 또 뭐예요.”
“그러게 말이다. 아마 평생을 바쳐온 걸 누군가 쉽게 본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뭐······그렇게 생각하니 또 끄덕여지네요. 저는 5년 차밖에 안 됐는데도 누가 제 일 가볍게 생각하면 화날 것 같긴 해요.”
느릿하게 주억이던 마크가 빈 접시를 옆으로 슥 밀며 직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오늘 많이 먹는다?”
“든든히 먹어둬야죠. 이따가 회의 시작하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데. 우리 쪽 제작자들에 브로드우드 쪽 제작자들에 한서호까지. 어후 무슨 삼국지야 뭐야.”
“······.”
갑자기 현기증이 난 마크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나도 한 접시만 더 먹을까······.”
#
“반갑습니다. 로빈 브로드우드라고 해요.”
굳은살이 아닌 곳을 더 찾아보기 힘든 손이 스타인웨이의 피아노 제작자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았다.
스타인웨이 측 인사들의 손이라고 성할 리 없었지만, 로빈에 비하면 아기 손이라 생각이 될 정도로 차이가 컸다.
물론 그것이 누가 더 대단한지를 가르는 척도가 되진 않는다. 애초에 작업 방식 자체가 다른 두 제작사니까.
하지만 그 차이가 두 무리 사이의 긴장감을 불어넣기엔 충분했다.
스타인웨이 측 제작자들이 각자의 손에 느껴졌던 감촉을 느끼며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돌덩이 같은 로빈의 손이 마지막으로 한서호를 향했다.
물끄러미 그의 손을 바라보는 한서호.
로빈은 그 노골적인 눈빛에 잠시 갸우뚱했지만 이내 그러려니 넘겼다. 이런 손을 신기해하는 건 워낙 흔한 일이잖나. 특히나 손을 애지중지하는 연주자들에겐 더욱 낯설겠지.
악수를 마친 한서호도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 앉는다.
스타인웨이 제작자들과 브로드우드 제작자들. 그리고 한서호까지. 모인 인원치곤 짧았던 인사가 끝났다.
“······.”
사방이 막힌 호텔 컨퍼런스 룸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고, 이에 스타인웨이 직원 한 명이 얼른 앞으로 나와 스크린 앞에 섰다.
“인사도 끝나신 것 같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흠흠.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시다시피 ‘하프시코드’고요. 브로드우드 앤드 선즈의 명성을 크게 알린 토마스 브로드우드의 소리를 현대의 피아노로 재현해보자는 컨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하는 직원. 뒤이어 스타인웨이 내부에서 그동안 이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했던 것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가 진짜였다.
‘어떻게 현대의 피아노로 토마스의 소리를 구현할 것인가.’
제작기법 파트로 넘어가자 양측 제작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잠자코 직원의 이야길 듣던 이들이 하나둘 의견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차갑던 컨퍼런스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애초에 옛 방식을 쓴다면 소리를 구현하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겠지만, 스타인웨이가 원하는 건 현대적인 피아노에서 그 소리가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울림통도 달라졌고, 현을 때리는 것에도 큰 차이가 생겼으니.”
“아무래도 액션(-건반과 현을 이어주는 부속품)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것으로 보이네요.”
“소리에 맞는 현을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구리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천차만별이니······.”
로빈은 브로드우드의 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그럼에도 양측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조금 묘한 표정으로.
그러다 문득 고갤 돌려 아까부터 계속 조용한 한서호를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못 한 건가.’
아무리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하지만,피아노 제작 기술에 대한 치열한 대화 사이에 끼어들 틈은 없었을 터.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슬슬 대화에 끼려던 참이었다.
스타인웨이 측의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제작자가 불쑥 한서호에게 바통을 넘겼다.
“마에스트로 한서호도 한번 얘길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올라가는 제작자의 입꼬리.
저쪽끼리도 사이가 안 좋나 보네? 라는 생각을 하며 로빈이 턱을 괴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볼 심산으로.
“저희가 지금까지 무슨 얘길 한 거냐면······.”
“아, 그건 알아요.”
“안다고요?”
“네. 근데 현에 대한 논의, 댐퍼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 액션과 건반의 맞물림. 전부 다 중요한데요.”
한서호가 눈을 깜빡거리며 좌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지금 시점에서 과정에 대해서 먼저 얘길 하는 게 맞는 건가요?”
“피아노를 제작하는데, 제작법에 대해서 얘길 하는 게 맞냐니. 그게 무슨······.”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부터가 먼저 아닌가요?”
몇몇 제작자들이 실소를 머금었다.
“우린 이미 숱하게 많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베토벤의 피아노로 연주한 월광을 아침마다 즐겨 듣습니다. 한서호 연주자는 토마스 브로드우드의 피아노 음색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나이 든 제작자의 질문에 한서호가 말문이 막혔다.
이번엔 브로드우드 측 제작자 한 명이 말했다.
“저희 공방 앞에 작은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또 다른 토마스님의 작품이 있으니 언제 한 번 와서 들어보시는 게······.”
로빈이 조금은 측은한 마음으로 한서호를 바라보았다.
여긴 피아노 제작 회의다.
수십 년을 이 분야에 바쳐온 장인들의 홈그라운드.
그런 곳에서 최고의 연주자라 한들, 지휘자라 한들 그 위상이 큰 의미는 없지.
‘······조금 도와줘야겠군.’
그제야 꺼내려던 얘길 제대로 말하려는데, 그 순간 기가 찬 표정이던 한서호가 고갤 저었다.
“지금 박물관에 있는 토마스의 피아노 소리를 그대로 구현하면 되는 건가요? 그게 끝이에요?”
“······?”
고갤 기울이는 제작자들과.
어느새 좌중을 훑고서 로빈에게 멈춰선 한서호의 시선.
저 청년의 눈빛이······
코너에 몰리긴커녕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꾸짖을 것 같은 눈빛으로 보이는 건 착각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의 질문을 듣는 순간, 로빈의 온몸 구석구석에 작은 소름이 돋아났다.
마치.
‘당신마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거 답이 없는데.’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