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50
50화
“그래서 그냥 나왔다고?”
“일 보 후퇴지.”
“허어.”
후퇴는 무슨.
한유주는 차일남에게 눈을 부라렸다.
직장에서는 하늘 같은 상사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잘 쉬고 있는 자신의 집에 쳐들어왔는데 상사는 무슨.
한유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온 차일남을 맞이해 술상을 차렸다.
딱 들어오는 안색을 보니까 술 한잔이 필요한 몰골이었다.
그래봤자 집에 있던 소주에 과자 한 봉지를 깐 것이 다였다.
대본만 완성되면 거한 걸 쏜다더니 국장실에 다녀온 차일남은 급히 할 말이 있다며 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선배 파워가 생각보다 약한가 봐?”
“뭐?!”
버럭하는 차일남을 앞에 두고 한유주는 소주를 한잔 주욱 들이켰다.
탁.
빈 잔을 부서질 듯 내려놓은 한유주가 인상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아니, 설마 금요일 2회 편성을 줄지는 몰랐다는 거지. 그럼 이제 어쩌지?”
“몰라. 작품 볼 줄도 모르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인 차일남 역시 소주 한잔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니까. 하··· 이번 건 내가 썼지만 진짜 명작인데.”
“그니까. 내가 괜한 소리 하겠냐? KMB 망하라고 굿을 하겠냐고. 사람을 뭘로 보고 진짜.”
주거니 받거니 자신들이 속한 회사를 씹던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말없이 술잔을 채운 두 사람은 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후우, 캐스팅은 어쩌지.”
“···그러게나 말이다. 지금 겨우 붙들어 놓은 주연 두 사람은 편성보고 최종 사인하겠다고 했는데.”
“······캐스팅도 불발되는 거야?”
“아이씨, 그러면 진짜 망하는데.”
답이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차일남을 보고 한유주는 입에 소주를 털어 넣더니 패기 넘치게 말했다.
“아니, 선배. 그러면 캐스팅 누구 찔러 볼 건데. 딱히 없지. 그냥 이 시간대로 가보고 다른 방법을 찾을까? 우리가 금요일 저녁 드라마의 신드롬이 되는 거지. 홍보를 새롭게 한다거나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발언에 차일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가 뭘 모르네. 너 방송이 장난인 줄 알아? 황금시간대, 시청률이라는 건 무시하면 안 돼. 어? 금수저 흙수저 있듯, 시간대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다른 출발선을 가지고 출발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 그러면 어떡해! 이대로 진짜 엎기라도 하자는 거야?”
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는 상황.
두 사람은 연신 소주를 들이켜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궁리했다.
하지만, 딱히 없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과자 봉지를 뒤적거리는데 옆에 놔둔 차일남의 핸드폰이 우웅- 울렸다.
“에이씨, 몰······. 엉?”
“뭔데? 모르는 번호야?”
“···그건 아닌데. 크흠, ······여보세요? 어어, 응? 네? 네. 네에?!”
자신 없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은 차일남은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고서 점차 눈이 커다래졌다.
***
“올해는 꽃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KMB의 드라마국 국장실.
유명주는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는 난들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한바탕 물을 준 다음에는 마른행주로 잎을 닦아줄 예정이었다.
요즘 유명주의 유일한 낙이었다.
아침 루틴을 마치기 위해 서두르는데, 국장실의 두꺼운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뭐야?”
유명주가 놀라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차일남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국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뭐, 그래. 아침부터 또 무슨 일이야 노크도 안 하고.”
“국장님. 긴말 필요 없고. 저희 편성 주말 밤으로 주시죠.”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황금시간대를 달라고 요구하는 차일남의 작태에 유명주는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야, 차 PD. 너 드디어 돌았구만?”
“돌았다니요. 저 아직 멀쩡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차일남의 표정이 묘하게 당당했다.
아침부터 기세 좋게 쳐들어온 것도 그렇고.
아무것도 없이 저렇게 뭘 요구할 놈이 아니었다.
“너······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는 무슨. 우리 한 작가가 그럴 취급 받은 인사는 아니거든요. 저희 캐스팅도 빵빵하겠다. 이 정도는 요구할 법하지 않나, 싶어 가지고.”
“아침부터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앉았어. 야, 그래봤자. 한 작가가 신인이지. 뭐가 있어야 나도 황금시간대를 넘겨주지 않겠냐? 뭐, 어디 가서 문희성이라도 낚아오든지.”
유명주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자식과도 같은 난에게 눈을 돌렸다.
“와······. 국장님도 가만 보면 양반은 아니야. 맞아요. 문희성이 우리 드라마 합류한답디다.”
“무어?!”
툭, 땡그랑.
차일남의 말에 너무 놀란 유명주가 난에게 물을 주던 물뿌리개를 놓쳐버렸다.
그 김에 땅에 떨어진 물뿌리개는 뚜껑이 열려 안에 있던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명주는 너무나 놀라운 소식에 입을 떡 벌린 채로 차일남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한번 으쓱해주는 차일남은 이제 어쩌겠냐는 표정이다.
***
“결말이 진짜 감동적이에요.”
에 출연하기로 확정한 이후 찾은 문희성의 집.
나는 한유주에게서 받은 대본을 모두 챙겨와 문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 몇 가지를 꼽아 이야기를 하고,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하면 좋을지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갖는 티타임.
방송 연기라서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솔직히 기대가 더 컸다.
나는 지금까지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던 대본과 이 대본을 비교하면서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일장연설을 펼쳤다.
“······그래서 이건 제가 지난 몇 년간 본 어떤 드라마에서도 안 나온 스토리예요. 분명 먹힐걸요?”
“그래? 그 정도란 말이지?”
“네. 요기, 요기 읽어보세요.”
손짓발짓까지 곁들여서 문희성에게 이 작품의 대단함을 어필했다.
휴, 문희성이라면 내가 어떤 작품에 나가도 응원해주겠지만, 나름 처음으로 방송 연기를 하는 건데.
아무 작품이나 골라서 했다고 하기가 좀 그랬다.
제안이 들어온 작품 중에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문희성이 내가 넘겨준 대본을 팔락거리면서 넘기는 동안.
나는 미리 체크해둔 페이지 몇 개를 꺼내 들었다.
“아저씨. 저 이 용어들 모르겠어요.”
“흐음. 아, 이건 카메라랑 관련된 용어라서 낯설 거야. 내가 설명해줄 수도 있지만, 현장 가서 직접 경험해보는 게 빠를 거란다.”
“으움······. 그래요?”
“그래. 아니면 여기서 직접 조금 해볼까? 낯선 지문 같은 건 연기하면서 카메라가 어떻게 이동할지 머릿속에 그려가며 이해하는 게 쉬울 거야.”
“웅! 할래요!”
저번에 내 오디션 영상을 찍은 후로 문희성은 아예 카메라 한 대를 거실 구석에 세팅해 두었다.
이렇게 내가 놀러 올 때마다 간단한 연기 영상을 찍어주고 커다란 TV에 연결해 함께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게 된 탓이었다.
나는 오늘도 영상을 찍으면서 놀자는 말에 신나서 두 손을 번쩍 들며 반겼다.
“그럼······ 오늘 이 대본도 가져온 김에 이 중에서 한 장면 해보자.”
문희성의 제안에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문희성과?
이건 이미 놀이가 아니었다.
훌륭한 연습, 아니 훈련이었다.
“좋아요. 어떤 걸로 하실래요?”
“으음, 이 조연이 나오는 장면 어때.”
“아아. 지현성.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나와 문희성이 함께 노는 장면과 흡사해서 표시해 놓은 장면이었다.
“그럼 찍는다?”
“우웅!”
나는 카메라에 반짝 빨간불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난 후,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물수제비 뜰 줄 알아?”
“물수제비?”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호숫가에 놀러 온 우주와 지현성.
우주는 극 중에서 내가 맡은 아이의 이름이었다.
지현성이 물수제비를 뜨는 모션을 보여주자, 우주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한다.
어린 나이일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우주는 이런 놀이를 누구에게 배우는 게 처음이다.
“우아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와, 이걸 할 줄 모른다고? 인생 헛살았구나, 너.”
“익. 아저씨.”
빙글거리면서 자신을 놀리려는 지현성의 모습에 우주는 잔뜩 성이 난다.
“요 쪼꼬만 게 만날 때마다 나보고 아저씨래? 나 아저씨 아니라니까?”
“아저씨 맞아요! 아저씨가 맨날 그러니까 친구도 없는 거지! 아저씨 친구 없죠?”
아픈 구석을 찌르는 아이에게 지현성을 찔끔하더니 곧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반격한다.
“이 자식이······. 너 말 다 했냐? 물수제비 뜨는 거 알려주려고 했는데?”
“······진짜요?”
“그래. 이렇게 넓적하고 작은 돌 좀 찾아봐. 너는 손도 쪼만해서 큰 돌은 못 던져.”
“음, 음. 이런 거?”
나는 우주가 하는 것처럼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문희성에게 보여주었다.
“오, 좋네. 그다음에는 이렇게 허리를 비틀어서 손목으로 휙, 던지면 돼.”
문희성은 내게 돌을 받아 들어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멋지게 한 번, 두 번, 세 번 튕겨 나간 돌멩이를 보고 우주는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컷!”
장면이 끝났다.
지현성은 사실 우주의 새아버지가 될 남자의 친형이다.
드라마에서도 꽤나 비중이 커서 주조연 정도의 배역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둘 다 그런 사정을 모른 채 친해지고 앞으로도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뒤에 이어지는 결말을 알기 때문일까, 대사를 주고받기만 해도 느껴졌다.
이 작품이 전해주는 마음 따뜻한 감성이.
“휴, 진짜 좋지 않아요?”
몇 번이고 우주의 대사를 곱씹으며 문희성에게 물었다.
지현성을 맡아 내 상대역을 해준 문희성 역시 괜찮았는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이제 카메라 의식은 아예 안 하는데?”
“우웅. 여기 올 때마다 해서 익숙해졌어요.”
“하하, 그래도 방송국에 있는 건 이거보다 훨씬 큰 카메라야.”
저거보다 더 큰 카메라가 있단 말인가?
가끔 어머니가 꺼내 드는 캠코더라는 것보다 문희성네 집에 있는 카메라가 더 커다랬다.
“저것보다 더 커요?”
“그럼. 그거 앞에서도 괜찮겠어?”
빙글거리는 문희성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없어요. 카메라가 어떤 느낌인지는 똑같을 테니까.”
“아주 자신만만한데? 그런데 시우야.”
“네?”
갑자기 문희성이 대본을 뚫어져라 보면서 나를 부른다.
방금 우리 두 사람의 연기는 흠잡을 게 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가?
현장에서는 아마 다른 사람이겠지만, 이렇게나마 문희성과 합을 맞출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문희성에게는 뭔가가 걸렸나 보다.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서 문희성을 빤히 올려다봤다.
“음,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이 지현성이라는 배역 말이야.”
“웅, 네.”
“벌써 캐스팅 끝났니?”
“우웅? 모르겠는데요.”
나는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저런 건 갑자기 왜 물을까.
“시우 너랑 대사를 주고받다 보니까 매력 있는 거 같아서 아직 맡은 사람 없으면 내가 할까 하는데.”
“······진짜요?”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내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문희성과 같은 작품으로 함께 연기를?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아직 편성인가, 뭔가가 안 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촬영 스케줄이 나오는 게 늦어진다는데······.
이리저리 고민하던 나는 문희성에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웅, 모르겠어요. 차 피디님이 아직 편성이 안 됐다고는 했는데. 그럼 캐스팅이 안 끝난 건가요?”
“편성이 안 됐다고?”
“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기껏 문희성이 관심을 가져줬는데 실망하겠지.
나는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폭 쉬었다.
편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었으니.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문희성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간다.
“편성이 아직 안 잡혔다라. 시우야, 지금 PD님이랑 전화되니?”
“웅? 아마 될걸요?”
“전화해서 아저씨 좀 바꿔주렴.”
나는 꽤나 적극적으로 나오는 문희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핸드폰을 꺼냈다.
차일남의 번호는 명함을 받자마자 저장해놓아서 쉽게 찾았다.
“여보세요? PD님!”
갑작스러운 전화에 차일남은 꽤나 당황한 듯했다.
“우웅, 편성은 잘 돼가세요?”
“시우야, 나 좀 바꿔줘.”
“아, 웅. PD님. 잠깐만요. 바꿔 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당황하는 차일남에게 그렇게만 말하고 문희성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전화를 바꾼 문희성은 차분하게 차일남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PD님.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배우 문희성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아직 캐스팅이 완료되지 않았다면 제가 ‘지현성’ 역을 맡고 싶은데요.”
곧 수화기 너머에서 차일남의 비명과도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