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and actress RAW novel - Chapter 138
138. 트렁크에라도 탈래?
도윤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대박. 또 올라왔어.”
1시간이 멀다 하고 팬카페에 접속해서 민주가 올려주는 도윤의 근황을 확인하며 행복해하는 은성부터-
[최도윤, 촬영장에서 포착!]└와! 찐촬영!
└그래서 방영일이 언제임?
└연말에 시즌1 시작한다던데
└HBU 채널 한국에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함?
도윤의 다른 팬들 사이에서는 가 방영되는 미국 채널 HBU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서고 공유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평소 도윤과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도윤 오빠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럼. 형님이 어떤 분인데.”
휴가를 나온 선우, 그리고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 해영.
“이놈은 죽었나, 살았나.”
가끔 경후로부터 들려오는 소식 외 별다른 소식을 접하지 못한 석준.
“내가 미국 갈까?”
“셰프님, 우리 가게 좀 보세요. 죽겠습니다.”
이전에 와 로 인연을 맺은 강민혁 셰프.
그리고.
“기철아, 나 미국 갈까?”
“누나가 미국엔 왜요.”
“아니, 가서 여행도 하고 가는 김에 미국 투어도 해볼 수 있으면 해보고…….”
“미국 투어가 무슨 뒷마당 콘서트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요. 뭐 먹으러 가는 거죠. 아니면 다른 이유?”
“그, 그건 비밀!”
“이상한 소리 말고 앨범 좀 준비하세요.”
죽이 잘 맞는 도윤과 만나지 못해 가끔 아쉬워하던 이솔까지.
여기에.
“야, 유준아. 왜 굳이 미국이냐? 그것도 로스엔젤레스로?”
“그야 당연히 할리우드가 있는 곳이니까요!”
“최도윤 보러 가는 건 아니고?”
“……헤헤.”
“부럽다, 부러워. 이거 원, 나중에 이엔 엔터에 너 안 빼앗기려면 내년에 재계약이라도 제시해야 하나 싶다.”
작품 하나 끝나자마자 바로 미국에 놀러 가겠다고 선언한 유준까지.
물론.
아주 무리하게 말이다.
“야, 근데 다시 좀 생각해 보자. 너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지 시간 일주일도 안 남았을 텐데, 그사이에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못 갈 건 없죠.”
“그래…… 너 알아서 해라…….”
평소에 말 잘 듣는 유준이지만.
자기가 좋아하거나 꽂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러운 면이 존재하는지라.
유준의 소속사 실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 * *
여하튼.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윤의 소식과 도윤이 참여하는 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는 가운데-
“오케이.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도윤은 오늘 첫 씬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배역.
‘강석’이 등장하는 씬 말이다.
“도윤, 잘해보라고.”
“리허설 때처럼만 하면 저기 있는 감독을 만족시키는 덴 전혀 문제없지.”
“잘해, 도윤.”
이미 첫 촬영을 마친 다른 배우들의 응원 속.
도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
자라난 수염.
햇빛에 바랜 청바지와 때가 탄 운동화.
그리고 해진 셔츠와-
그 사이로 꿈틀거리는 근육.
도윤의 몸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보다 훨씬 더 커져 있었고.
이제는 완연한 남성미를 뿜어내며.
지금 이 순간.
에서 펼쳐질 아포칼립스 세상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해보자.’
약간의 기분 좋은 긴장감이 차오른다.
몸을 뻐근하게 만드는 이 감각.
이날을 위해.
지난 몇 달을 준비했다.
주어진 대본을 해질 때까지 보고 몸을 키우고, 생전 처음 잡아보는 권총을 수백 발이나 쏜 이유.
그걸 보여줄 시간.
“도윤, 긴장했나?”
“그럴 리가요.”
“그럼 가서 보여주라고.”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우우우…….”
시작은 ‘죽은 자’들과의 조우다.
카메라는 먼 곳에서 대여섯 정도 되는 죽은 자 무리를 비추더니.
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한 남자, ‘강석’의 모습을 잡아준다.
길은 하나뿐이고.
그 길은 죽은 자들이 막고 있다.
갈등하는 ‘강석’의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강석’은 곧 결단을 내리고 일어서더니 피 묻은 도끼를 꽉 쥔 채 천천히 죽은 자들에게 다가가.
“그우우우…….”
으적!
한 놈에게 도끼를 휘두른다.
물론.
진짜 때린 건 아니다.
도끼 자체도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럴 듯한 물건이고.
죽은 자를 연기하는 엑스트라 역시 특수 분장을 거치고 맞는 척 넘어진 것.
하지만 도윤의 몸짓, 표정, 도끼를 휘두를 때 내는 신음 등이 이를 모두 실제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고.
카메라 역시 이에 더해 완벽한 구도로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제 하나.’
크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장면은 ‘강석’의 첫 등장이자 ‘강석’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려주는 장면.
참고로 이전 씬까지는.
등장인물들이 죽은 자들과 사투를 벌이며 고생하는 장면들만 나온 반면.
지금의 ‘강석’은.
다소 불안정하지만 침착하게, 그리고 노련하게 죽은 자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더니.
“후우.”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그와아아악!”
미처 보지 못한 다른 한 죽은 자가 달려들었음에도.
콰득!
재빨리 물러나 머리를 쪼개 버리며.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장면을 완성시켰다.
‘좋군.’
그리고 크리스는 조금의 NG 없이 죽은 자들과 조우하는 씬을 완벽히 소화해 낸 도윤의 모습에 속으로 박수를 쳤고.
지켜보던 다른 배우들은 낮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움직임 좋군. 사미르, 넌 저렇게 할 수 있나?”
“시켜만 준다면?”
“시킨다고 다 하면 어디 내가 이렇게 물어보겠어?”
사미르가 어깨를 으쓱이는 가운데.
‘강석’이 마침내 도끼를 늘어뜨리며 컷이 선언되었고.
“좋아. 도윤. 바로 다음 씬 넘어가도 되겠군.”
크리스의 극찬이 흘러나왔다.
도윤은.
그 극찬에 어떤 겸손도, 겸양도 표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뿐.
* * *
는 사전 제작 드라마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촬영한 후 방영분이 마련되었을 때 방영을 시작하는 셈.
도윤이 회귀한 시점의 한국에서도 사전제작 드라마가 꽤 유행하긴 했지만.
미국은 사전제작 시스템이 꽤 오래 전에 정착했다.
노동환경의 차이, 배우나 스태프의 의식 차이 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도윤은-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형 근데 진짜 촬영 끝나면 널널하네요.”
성호의 말마따나.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는다.
도윤은 그래도 한국에서 주연 배우를 맡은 이후 촬영 시간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짧긴 했지만…….
사실 그때도 지금에 비하면 더없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참 여유롭다.
“형도 대본만 보지 말고 나가서 노세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지, 진짜요?”
“왜.”
“아니, 형 안 나가니까 저도 안 나갔거든요.”
“내가 언제 나가지 말라고 하든?”
“나가면 뭐라 했을 거면서.”
슬슬 고개를 드는 성호의 개김에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너 여기 와서 영어 공부 얼마나 했냐?”
“그, 그게요.”
“됐다.”
여하튼 뭐.
촬영은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촬영 자체에 별다른 문제도 없다.
그러면-
슬슬 다른 쪽으로 잠시 관심을 가져도 괜찮겠지.
“근데 형은 미국 와서 해보고 싶은 거 없었어요?”
“글쎄.”
“카지노를 간다든가, 레이싱을 즐겨본다든가.”
“너 하고 싶은 거 말고.”
“아니, 아까워서 그렇죠. 프로듀서가 준 선물도 아직 한 번도 안 탔잖아요.”
안 그래도.
빌은 자신을 믿고 미국으로 와준 도윤에게 선물을 하나 줬다.
무려-
R사의 슈퍼카를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미국에 있는 동안 타라고 뽑아준 줄 알았는데.
차키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이, 원한다면 한국으로 가지고 돌아가도 좋단다.
거기에-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라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여기서 뭐 총 맞아 죽을 것도 아니고.’
도윤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두었던 차키를 챙겼고.
“오, 드디어 나가세요? 설마 시운전?”
“따라와. 조수석 태워줄게.”
“형, 그거 돌아올 때는 제가 한번.”
“그러든가.”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손바닥을 슥슥 비비는 성호를 뒤로하고 문을 나섰다.
하지만 그때였다.
지이이잉.
“얘가 왜 전화했지.”
“누군데요?”
“너도 아는 애.”
도윤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너 잠 안 자고 뭐 하냐?”
-선배님! 제가 왔지 말입니다!
“뭐?”
-저 미국에 왔지 말입니다!
순간.
도윤의 머릿속에선 며칠 전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곧 미국에 간다고 흥분해서 말하던 유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휴가도 일주일밖에 없다고 들었고.
무슨 시답잖은 소린가 싶어 올 거면 오라고 하고 잊었는데.
설마 진짜 왔을 줄이야.
-어, 설마 선배님. 제가 온 게 안 기쁘신 겁니까?
“응. 별로.”
-아,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서운하다는 듯 말해도.
목소리엔 여전한 흥분이 가득한 유준.
도윤은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거리곤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성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미안 같이 못 가겠다.”
“왜, 왜요?”
“누구 데리러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저도 같이…… 아!”
성호는 그제야.
도윤이 쥔 차키로 운전할 수 있는 차가 2인승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도윤은 물었다.
“트렁크에라도 탈래?”
물론.
들어갈 리 없었지만 말이다.
* * *
“여기가 세트장.”
“우와!”
“여기가 배우 대기실.”
“우와!”
유준 정도의 리액션을 지닌 투어객들만 모아 놓으면.
관광 가이드도 할 만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이 문득 든다.
뭐, 배우로서 꿈 혹은 도저히 바라보기 힘든 할리우드의 촬영장에 왔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된다만.
유준의 리액션은 특히 좋은 편이었다.
“선배님, 정말 대박 터뜨리셨지 말입니다.”
“아직 방영도 안 했다.”
“주연이시잖아요. 그리고 촬영 멀쩡하게 잘하고 있는데 이만하면 대박 아닙니까?”
유준의 말에 도윤은 피식거리며 답했다.
“그래. 대박 맞지. 근데 더 터뜨려야지.”
“역시, 선배님이시지 말입니다. 포부가 크시지 말입니다.”
“근데 너 여기까지 와서 말입니다 써야겠냐?”
“입에 붙었지 말입니다, 헤헤.”
여하튼 뭐.
총감독의 허락하에 구경시켜 준 보람이 없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촬영을 쉬는 날인지라 유준이 눈치를 볼 일도 없으니까.
“근데 너 소속사에서 용케 보내줬다?”
“헤헤, 실장님이랑 사장님이 보내주셨지 말입니다.”
“포기하신 건 아니고?”
“음…… 아직은 아닌 것 같지 말입니다.”
“자랑이다.”
유준은 계속해서 눈을 반짝이며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다녔고.
규정상 사진만 못 찍었을 뿐, 눈이 카메라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고 있었다.
“근데 선배님, 진짜 부럽지 말입니다.”
“너도 나중에 와.”
“꼭 와야겠지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오, 도윤.”
오늘 잠시 촬영장에 나온 총감독이 도윤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 이쪽은 우리 총감독 쿠퍼 씨. 크리스 쿠퍼. 쿠퍼, 이쪽은 제가 말한 배우 ‘박유준’입니다.”
“오! 한국에서 왔다던 그 친한 배우. 반가워. 크리스 쿠퍼야.”
“유, 유준 박…… 아니, 박유준…… 그러니까 유준……입니다!”
적잖이 당황한 모습에 크리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유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언 것 같은데. 아, 혹시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인가?”
“유명하고, 유망한 배우입니다.”
“자네만큼은 아니지?”
도윤은 그 말에 씩 웃었고.
적절한 대답에 크리스는 유준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자네 보러 놀러 온 건가?”
“그런 셈이죠.”
“얼마나 머무르지?”
“앞으로 한 4일 정도입니다.”
“흐음, 그렇다는 거지.”
크리스는.
온전히 도윤 덕분이라 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도윤이 어느 정도 의도치 않게 이유를 제공해 준 주연 배우 교체 사건을 떠올렸다.
‘그 덕에 편해졌으니, 보답을 하나 해볼까.’
사실 보답이라 하기도 뭐하다.
왜냐하면.
“혹시 옆에 있는 친구한테 이번 에 한 화 정도만 출연할 생각 있냐고 물어보게.”
총감독 정도라면 가볍게 결정 가능한.
간단한 배역 출연 제안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