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71
170. 교통정리 (1)
2017년 8월.
“…여기까지입니다.”
지훈이 발표를 마치자 한쪽에 앉아있던 팀원이 사무실 불을 켰고, 회의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상석에 앉은 정현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틀 만에 나온 결과물치고는 마음에 드는데? 임 의원 수고 많았어요.”
이틀 전, 정현석이 맡긴 통합 캠프의 조직도를 지훈이 발표했고, 정현석은 크게 만족하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정현석은 임건식을 향해 수고했다고 말했지만, 눈빛은 지훈에게 더욱 수고했다고 말해오는 것 같았고, 정현석의 눈빛을 받은 지훈은 살짝 고개 숙여 정현석에게 인사했다.
지훈이 공치사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은 정현석도 잘 알고 있었지만, 늘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지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제가 뭐한 것이 있겠습니까? 김 팀장이 많은 일을 했고, 또 당에서도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에서 기본 조직도 바탕을 그려주었고, 저희 팀은 거기에 덧칠을 한 것뿐입니다.”
지훈마저 임건식의 말을 거들자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 쉬운 일입니까? 발표된 것만 봐도 중앙선대위, 본부장·단장급, 특보단에 위원회까지 200자리가 넘는 조직입니다. 이틀 만에 조직도가 나온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김 팀장도 그렇고 임 의원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정현석이 다시 한번 수고의 말을 건네자 이번엔 두 사람 모두 거절 대신 살짝 고개를 숙여 정현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 제가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의견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정현석은 오늘 자신의 계파 중진의원들을 불러모았는데, 캠프 조직을 짜는 데 있어 그들의 의견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훈의 충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자신에게 무언가 요구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마저 이들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한다면 은연중에 불만이 새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 줄 사람은 주고 배제할 사람은 배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현석 계파 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규섭이 먼저 운을 뗐다.
“자세하게 얘기해주시지요.”
“구윤서를 안고 가실 겁니까? 경선 기간 우리에게 해온 짓을 생각하면 멀리해야 합니다. 언제 또 등에 칼을 꽂을지 몰라요.”
김규섭이 그렇게 말하자 몇몇 강경파 의원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현석 또한 김규섭의 의견에 일정 동의했다. 다만, 특정인을 배제하고 가는 것은 통합 캠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생각하고는 이영식을 바라보았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영식은 정현석의 눈빛을 받고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 의원 말도 틀린 것은 아니나 우리는 경선 후유증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선 후유증이라니요? 그것은 경선 막판에 우리 후보가 구윤서와 손을 맞잡은 것으로 해소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남은 것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당 안팎에서는 경선 기간 주고받은 고소, 고발 건으로 시끄러워요.”
“그거야 그쪽에서 여지를 줬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 아니겠습니까?”
“캠프끼리 고소, 고발한 것은 그대로 두더라도 지지자들끼리 고발한 것은 어떡할 겁니까?”
이영식의 물음에 김규섭은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구윤서의 흑색선전 이후 정현석의 지지자모임에서 구윤서를 허위사실공표로 검찰에 고발했고, 구윤서의 지지자들마저 정현석의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맞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의 미디어국 보고에 따르면 여전히 인터넷 SNS상에서 두 지지자가 서로 나누어져 욕을 하며 싸운다고 합니다. 지지자들끼리의 일에 후보들이 개입하는 것이 우습긴 합니다만, 거사를 앞두고 이런 일에 흔들려서야 되겠습니까? 언제고 불거질 일입니다. 출발 직전에 봉합하고 가는 것이 맞습니다.”
지훈은 이영식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 같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마저 언론의 보도를 타게 되면 콩가루 집안처럼 비추어질 수 있었고, 이는 결국 앞으로 나가야 할 캠프가 엉뚱한 일에 시간을 소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리 털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도 이영식 의원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자리를 줘서 봉합할 수 있다면 주는 것이 맞다고 보고요.”
임건식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결심이 선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임 의원 말에 동의합니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할 수 있다면, 자리가 대수겠습니까? 다만, 어떤 자리를 주면 되겠습니까?”
정현석이 묻자 모두가 고민에 빠진 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완벽한 봉합을 위해선 구윤서가 만족할 만한 자리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모두가 고민에 빠진 듯 아무런 말이 없자 정현석은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 팀장이 어디 한번 말해보지?”
정현석이 지훈을 지목하자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지훈에게 쏠렸고, 지훈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면에 구윤서를 포함한 비(非) 정현석 계파를 세우고, 내부요직에 우리 사람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풀어서 설명해보지.”
김규섭이 자신을 향해 그렇게 얘기하자 지훈은 김규섭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밖에서 봤을 때는 정말 정현석 캠프가 계파를 초월해서 꾸려졌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을 택하는 겁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 후보와 마음 맞는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요.”
“전면이라··· 선대위원장말인가?”
“그렇습니다. 상임선대위원장에는 현 당 대표인 허훈 대표를 임명하고, 공동선대위원장에 구윤서 의원을 포함해 계파 간 안배를 하는 겁니다.”
“내부요직은?”
“캠프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총무본부라던지 후보 비서실을 우리 사람으로 채우는 거고요.”
지훈이 말해오는 방식이 나쁘지 않다는 듯 김규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그럼 김 팀장이 생각하는 캠프 요직을 한번 말해봐.”
정현석은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듯 지훈을 향해 되물었고, 지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캠프의 자금 집행을 도맡아 할 총무본부와 캠프를 진두지휘할 종합상황본부 그리고 조직관리를 할 조직본부,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본부 마지막으로 이들을 총지휘할 캠프 총괄 본부장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조직도에는 본부장, 단장급이 열다섯 자린데 그 정도면 되겠어?”
“네. 나머지 본부들은 유세 본부나 홍보, 직능본부 같은 실무를 담당하긴 하지만 중요도가 앞서 말한 본부들보다는 떨어지니까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반대가 심했던 김규섭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김 의원님.”
“후보께서 만족하신다면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김규섭의 답이 마음에 든 건지 정현석은 미소를 지었다.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선대본부는 당의 대선 기획단을 그대로 옮겨 올 텐데 대선 기획단장에 한윤성 단장이 앉아있지 않습니까? 관행상 캠프 총괄 본부장 자리가 그에게 넘어갈 텐데요. 경선 때 그렇게 흥행에 목숨을 건 것처럼 행동한 사람이 본 게임에서 밀려나려고 하겠습니까?”
지훈의 보고를 듣던 임건식이 표정을 굳히며 지훈을 향해 물어왔고, 지훈은 그런 임건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기 시작했다.
“밀려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 방법이 있나?”
“네. 간단하지만 후보께서 직접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정현석을 바라보자 정현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여의도의 한 식당 정현석은 약속 상대인 한윤성보다 먼저 식당에 도착해 한윤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지훈의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다.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직원의 안내를 받은 한윤성이 방으로 들어왔고, 정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윤성과 손을 맞잡았다.
“한 단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이고, 제가 먼저 나왔어야 했는데······.”
“누가 먼저 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제가 먼저 뵙자고 했으니 먼저 기다리고 있어야지요.”
“저는 대표님께서 저를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뵈었던 것을 빼면 따로 뵙기는 몇 년 만인 것 같습니다.”
한윤성의 너스레에 정현석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 오늘 대표님께서 저를 뵙자고 하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하하하, 놀라실 것까지 있습니까? 그저 경선협상 과정에서 저를 배려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본 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이래저래 감사 인사드릴 분들을 찾아 봬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정현석의 말에 한윤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현석은 한때 자신과 같이 소장파로 분류되었던 한윤성의 변한 모습에 조금 씁쓸해져 왔지만, 따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대표님께서 저를 뵙자고 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한윤성은 정현석을 향해 본론부터 물어왔고, 정현석은 딱히 내뺄 생각이 없다는 듯 한윤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단장님께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물이라면······.”
정현석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한윤성은 기대한다는 눈초리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예상한 것과 똑같은 말을 정현석이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프 총괄 본부장직을 맡아달라 요청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낙하려 했다.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아주시지요.”
“고··· 공동선대위원장이요?”
한윤성은 정현석의 말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자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정현석이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저를 배려해주셨는데 드릴 것이 없나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당 대표께서 제게 캠프 인사의 전권을 위임하셨으니, 한 단장님의 급에 맞는 자리를 찾아드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현석은 싱긋 웃으며 한윤성을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우리 한 단장님께서 정치해나가실 때 대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직만큼 도움 되는 직책이 있겠습니까?”
“공동선대위원장직은 보통 5선 이상의 중진분들이 가는 자린데 제가 가서 되겠습니까? 저는 지금 자리에······.”
“아휴, 그런 걸 어디 당헌 당규에 정해놓은 게 있습니까? 이번에 저와 경선에서 맞붙었던 구윤서 의원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담가지지 마시고 승낙해주셨으면 합니다.”
한윤성은 정현석을 향해 거절하려 했지만, 딱히 명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현석이 은연중에 반박할 명분을 차단하면서 자신을 향해 말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 대표가 위임한 캠프 인사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말했고, 또 대선 후보였던 사람에게도 제의하려고 하니 너는 이 제의를 거절하면 안 된다고 말해오는 것 같았다.
또, 밖에서 보았을 때는 직급이 올라간 것이기 때문에 영전(榮轉)이라고 볼 것이 뻔했다.
“대표님······.”
“하하, 이것 참. 거절하시면 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사실 캠프 내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아무리 공동선대위원장직이 밖에서 봤을 땐 명예직이라고 해도 사실 굉장히 중요한 자리 아닙니까? 캠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회의의 구성원인데 우리 사람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요.”
정현석은 망설이는 한윤성을 향해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제가 딱 잘라 말했습니다. 한 단장님과 같이 고생하신 분을 임명하는 게 맞다고요. 그런데 한 단장께서 거절하시면 제가 참 우스워집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얘기하자 한윤성은 고민이 깊어지는 듯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정현석은 그런 한윤성에게 시간을 주겠다는 듯 그저 조용히 한윤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반박할만한 명분을 모두 차단당했다고 느낀 한윤성은 정현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배려해주셨는데 제가 거절하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겠지요······.”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 단장께서 제의를 받아주시니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군요!”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벨을 눌러 음식을 주문했고, 한윤성은 쓴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