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18주 차 기말고사 (10)
이수독은 무심한 시선으로 마지막 도전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반쯤 무릎을 꿇은 채 헐떡거리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체력이 바닥난 듯했다.
조금의 투쟁심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기다려 주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 이수독은 가차 없이 도를 휘둘렀다.
– 서걱.
도전자의 몸이 허물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던전 밖으로 방출된 것이다.
‘형편없는 놈들.’
이수독은 도전자들을 그 한마디로 일축했다.
기말고사가 시작되고 수많은 학생이 컨트롤 룸으로 몰려들었다.
1,500점이라는 엄청난 보상이 걸린 탓이다.
공략전 한 주를 최고 점수로 클리어해도 1,000점 안팎인데, 컨트롤 룸을 돌파한다면 그 이상의 점수를 얻는 셈.
그저 기본 보상만 얻으려던 이들까지 혹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상당수가 자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무작정 숫자만 앞세워 밀어붙인다는 점이었다.
비슷한 실력에서야 그런 수작이 통했을지 몰라도, 자신한테는 어림도 없는 짓.
모두 단칼에 썰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따분하군.’
교사직을 맡기 전에는 하루하루 위험천만한 임무들을 수행하고, 강적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 가던 그다.
이런 잔챙이들을 수십, 수백씩 베어 넘긴다 한들 감흥이 느껴질 리 없었다.
앞으로 찾아올 도전자들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물론 기대되는 상대가 하나쯤은 있었다.
‘김호.’
그라면 조금은 자신을 긴장시켜 줄지도 모른다.
이수독과 김호의 악연은 학기 첫날, 배치 고사 때부터 시작되었다.
김호는 첫인상부터 아주 가관이었는데, 대인전은 1승만 챙기고 내리 기권했으며, 공략전은 10분짜리 던전에서 3분여만에 걸어 나왔다.
이게 전부였다면 ‘버러지 같은 놈’하고 신경을 끊었겠지만.
‘683점.’
3분 만에 학년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을 냈다.
10분을 채운 게 아닌가, 자신이 착각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후 자료실에서 그 점수가 정말로 3분 만에 낸 것임을 확인했다.
자신은 물론 교장조차도 가능할지 의문인, 실로 압도적인 실력.
아무 배경도 없는 1학년이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다면.
‘드래곤의 하수인이나 혈교의 간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때부터였다.
이수독이 김호를 주시하게 된 것은.
대인전이든 공략전이든, 리플레이가 등록되면 무조건 사서 몇 번이고 돌려 보았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단서나마 찾아내는 게 목표였다.
전투가 격해질수록 본 실력을 조금씩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수독은 순수하게 김호의 실력에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킬을 발동하는 타이밍이 자로 잰 것 같군. 수발도 깔끔했다.’
‘저걸 회피했는가. 어떻게든 적중당하리라 생각했거늘.’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나 보군.’
‘그래서 위치 선정을 저렇게 했던 건가. 다 설계였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죽하면 리플레이를 보고 한 수 배워 갈 정도.
오랜 세월 정체되어 있던 실력이 늘어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럴수록 이수독의 리플레이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리플레이가 비공개되면 혼자서 분통을 터뜨렸다.
‘정말 자주도 비공개하는군.’
‘대체 안에서 뭔 짓을 했길래.’
‘이놈은 포인트 벌 생각도 없단 말인가?’
또 가끔은 경기 내용을 두고 질문을 하러 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여기서는 왜 회피를 선택했는가.’
‘결과는 좋았다만……. 무엇을 의도한 거지?’
물론 선생으로서 자존심이 있었기에 차마 그러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수독은 세간에서 ‘애청자,’ 또는 ‘열혈팬’이라 부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놈과 모든 조건이 같다면.’
자신과 김호 사이에 교사와 1학년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혹은 격차가 지금보다 적다면.
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까?
한동안은 막연한 의문에 불과했지만, 드디어 그 의문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에게 컨트롤 룸을 수비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픽스 존이라면 어느 정도 실력이 보정될 터.’
물론 B랭크로 제한한다 해도 스펙 격차는 여전하다.
스킬/특성 개수만 해도 훨씬 많으니까.
그래도 A랭크 코어를 요구하는 고위 스킬들이 묶이는 데다 다른 것들의 위력도 떨어질 테니, 실력을 겨뤄 보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무대가 될 것이다.
김호 역시 혼자가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을 대동할 터라, 균형도 맞을 테고.
다만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라면,
‘25% 확률을 뚫을 수 있는가.’
컨트롤 룸이 네 군데로 나뉘어 있다는 점.
김호의 성격상 도전은 무조건 할 테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교사들을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 점이 못내 아쉬웠으나 지금으로서는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이수독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군.’
그때, 육중한 철문을 열고 한 무리의 학생이 걸어 들어왔다.
이놈들은 이전 도전자들과 달리 제법 준비를 갖춘 듯했다.
유망주급과 선도부가 다수 눈에 띄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김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왔나.”
이수독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자 흉터들이 일그러지며 악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딴에는 가장 즐거울 때 짓는 표정이었다.
* * *
나는 이수독을 보자마자 속으로 한탄했다.
‘역시 이런 건 쉽게 가는 법이 없구만.’
복덩이 행운이 여기서는 발동하지 않은 모양이다.
서청용이었다면 홍연화가 활약했을 텐데.
조옥순 여사도 비교적 쉬웠을 테고.
괜히 사기만 떨어뜨릴 터라 일행에게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선생님 넷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게 바로 이수독이었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실력은 무수한 실전 경험으로 다져진 것.
대인전에 특화되었다는 뜻이다.
교장이 대인전 교사로 초빙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인간 백정이기도 하고.’
전이미궁 공략 당시 지켜본바, 그런 별명이 붙은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죽여 버리고 말겠다는, 지독하리만치 살기가 짙은 싸움 방식.
아마 어떻게 승리를 따내더라도 피해가 클 거다.
‘그래도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다른 컨트롤 룸으로 갈 수도 없고, 이수독이 순순히 보내 줄 리도 없고.
어떻게든 이기고 나가는 수밖에.
이윽고 이수독은 거대 식칼 같은 도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리고 우리를 차례차례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설명한 대로 컨트롤 룸 점거 조건은 내 체력을 일정량 깎는 것이다.”
이어서 그의 머리 위에 체력 게이지가 떠올랐다.
[이수독 100%]“90%까지 깎으면 레버를 내려 주지. 헌데 열두 명이라, 숫자가 좀 많은 것 같군.”
“인원 제한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 말에 이수독이 선선히 턱을 까딱였다.
“물론 없었다. 다만 교사 재량으로 난이도를 조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없었지.”
“……!”
이내 이수독이 품에서 투명한 구체를 꺼내더니 마나를 불어 넣었다.
구체는 기이한 보랏빛으로 빛나며 초음파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 기이잉—
그러자 몇 초 뒤 갖가지 유령 몬스터들이 벽을 통과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스펙터, 밴시, 도플갱어.
보랏빛 구체는 놈들을 불러 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수독을 쓰러뜨리기에 앞서 놈들부터 정리해야 할 테고.
“스무 마리 정도면 충분할 테지.”
“저도 아이템 하나 써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이수독의 허락에 나는 아공간 가방에서 [퇴마부]를 꺼냈다.
홍연화가 운 좋게 구해 온 아이템으로, 붙이면 유령 계열 몬스터의 접근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찢으면 그 효과가 더욱 배가된다.
‘어쩐지 쓰게 될 것 같더라.’
이런 건 빗나가질 않는다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퇴마부를 반으로 쭉 찢자, 무형의 기운이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 ……!
– ……!
그리고 허공을 유영하던 유령 몬스터들이 일제히 우뚝 멈추더니, 겁에 질리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이내 컨트롤 룸은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다.
이수독이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것도 예상했나?”
“알고 준비한 건 아닙니다. 운 좋게 갖고 있던 걸 쓴 거죠.”
그러면서 슬쩍 옆을 보자, 홍연화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잘 구해 왔지?’하고 묻는 것 같다.
잘한 건 맞았기에 슬쩍 눈짓을 보낸 뒤 이수독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운이 좋았다 한들 적절하게 대처한 것도 사실. 난이도 조정은 이쯤 하겠다.”
“……!”
일행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려다가 도로 심각해졌다.
이수독이 거대 식칼을 어깨에 턱 걸치는 걸 봤기 때문.
어찌 됐든 그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 시작하지. 들어오도록.”
“……!”
“……!”
그 한마디로 컨트롤 룸 레이드가 막을 열었다.
역할 분담은 치즈 방에서 마쳐 둔 상태.
근접 클래스들은 모두 전열로 보내고, 비교적 운신이 자유로운 이들은 올라운더, 홍연화와 박나리 듀오는 후열에 포진한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는 가운데.
이수독이 거대 식칼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기세가 순간적으로 급격히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시작부터 큰 거 쓰시네.’
전이미궁 공략 당시에도 봤던 그것이라, 나는 파티원들에게 외쳤다.
“피해라!”
그와 동시에 윈드포스로 파티원들을 살짝 띄우거나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바로 다음 찰나, 막대한 도기(刀氣)가 장내를 휩쓸었다.
– 콰콰콰콰—!
이수독의 어조는 조금 감탄한 것 같기도, 흡족한 것 같기도 했다.
“잘 피했군. 보통 이걸로 서너 명은 잡고 시작했는데. 허나,”
그는 어느새 백준석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거대 식칼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로.
강력한 일격으로 진형을 흔들어 놓은 뒤 이동한 것이다.
“레이드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지. 지휘가 아무리 뛰어나도 개개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크윽……!”
백준석이 다급히 방패를 치켜올림과 동시에 이수독의 식칼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쫘—악—!
“—이렇게 된다. 정진하라.”
“……!”
백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굳어 있었다.
곧이어 그의 방패는 물론,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실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던전 밖으로 방출되어 버렸다.
안전장치가 발동됐으니 망정이지, 실전이었으면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을 거다.
“……!”
“……!”
이수독의 한 수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백준석은 실력은 다소 떨어져도 기사 클래스로 방어력이 높았다.
작정하고 막으면 한두 수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그걸 단칼에 쪼개 버렸으니.
반면 이수독은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다음.”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