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of the Cataclysmic Predator RAW novel - Chapter 90
재앙급 포식자의 아포칼립스 90화
불온한 공기 그리고 과거의 영웅
세간에선 악의 축이라 평가받던 집단들과 단체 봉기를 일으킨 에어리어들의 연합.
그리고 컴퍼니를 향한 일제 습격.
내부에서는 폭탄 가방을 짊어진 스파이들과 능력자들이 자살 테러를 감행했다.
방심은 치명적이었다.
평화와 권위에 취해 있던 클레이모어들은 내부에서 일어난 습격에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생존율 10%의 참혹한 지표.
컴퍼니의 상징이라는 빌딩의 폭발과 함께 깎여 나간 자존심과 위상이다.
작금의 컴퍼니는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상세한 경위를 들은 유신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상부에서도 지금 대책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일단…….”
컴퍼니는 엄밀히 따지자면 용병들의 조합에 가까웠다.
관료주의의 딱딱함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얻는 이점도 있었지만 불이익도 확실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가드들의 무기 불출과 제멋대로인 능력자들을 경계 근무에 투입한 것만 해도 나쁘지 않은 수완이라 할 수 있다.’
직원은 중상자들만큼은 못 되어도 엉망인 유신 일행의 모습을 보더니 통신용 트럼프를 두드렸다.
“화이트로드 근방은 적어도 치안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얻어맞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반격할 순 없다.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 수집이었으니.
반란에 동참한 에어리어들이 얼마나 되는지 또 누구인지.
범죄자 집단들의 상세한 위치는 또 어디인지.
파악이 끝나는 순간 컴퍼니는 총공세에 나설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피바람이 불겠지.
‘지부장 메이슨부터 시작해서 결사대들이 움직일 터.’
컴퍼니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진정 강력한 초인들이.
“조금 쉬다 오시지요.”
그 말에서 유신은 깨달았다.
그냥 평범한 데스크 직원이 아니다.
권리를 지니고 있는 자다.
“알았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고리의 성에서 펑크시티로 되돌아올 때까지 일행은 지금껏 변변찮은 치료나 휴식도 못 취했으니까.
유신 일행은 그대로 빌딩을 나와 각자의 숙소로 가거나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기로 했다.
물론.
“방심하지는 않는 게 좋겠지.”
“맞습니다. 대놓고 컴퍼니의 빌딩을 터뜨린 놈들입니다. 암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유신과 레이시스터의 말에 매드독과 매지컬씨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껏 왕처럼 군림해 왔던 이 평화로운 도시의 분위기가 이제는 낯설었다.
의아한 것은 클레르였다.
“…….”
그녀는 지금껏 보여준 엄살 끼와는 다르게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긴장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유신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언더캐슬 역시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가겠군.’
잠시 클레르를 힐끔거리던 유신은 이틀 뒤에 사무실에서 보자며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비록 방사능과 기후변화. 송신탑들의 파괴로 인해 대단위 통신장비들은 사라졌지만 인간들은 끝내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냈다.
-그쪽도 난리?
바로 소유자의 에스트와 감응해 글자를 띄워내는 이 신비로운 트럼프였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유신은 답장을 보냈다.
-ㅇㅇ
도심 내에서만 통용되는 통신 기기와는 달리 장거리 통신이 가능하며 보안 역시 철저하다.
비록 사용하기에 앞서 서로 간에 표식을 새겨야 하며 능력자들만이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말이. 짧다?
-네, 여기도 난리입니다. 아이언 나이트 님. (신)군부부터 시작해서…….
찔끔한 유신은 얼른 동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보냈다.
-흐음.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네.
짧은 답장을 끝으로 더 이상 에바그린으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유신은 잠깐 그녀의 행선지를 가늠해보았다.
컴퍼니의 본사인 헬리오스사가 있는 영국으로 갔을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메트로폴리스인 천공성? 리바이어던?
‘지금으로서는 러시아의 프로즌 트레인이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정보로 인해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예상대로 전 세계의 컴퍼니 지부들이 습격당했다.
빌런들의 공세는 범세계적이다.
어쩌면 외부의 도움 없이 오직 펑크시티의 전력만으로 7대 재앙과 맞부딪쳐야 할 수도 있다.
‘아직 여왕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킹의 행보가 예상보다 더 빠르다. 그리고 급진적이야.”
잊혀진 도시의 지하에 잠들어 있는 여왕 대신 그녀를 지키기 위한 장기 말들을 수집하고 다니는 것이 킹의 역할이다. 그 방식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인간의 내면을 긁어 타락시키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놈의 수법이니까.
마치 데몬처럼.
‘이쪽은 하나가 줄고 적은 하나가 더 늘어난다.’
그것도 더 강해져서.
잠시 여왕의 피조물(탐)을 떠올리던 유신이 고개를 저었다.
놈이 먼저 행보에 나선다면 자신 역시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이 싸움의 승산을 점칠 수 있다.
유신이 생각하던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차트를 들고 있는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블레이드 님.”
치료 겸 몸의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유신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테러로 인해 중경상을 입은 대기자들이 한 트럭이었지만 유신은 비교적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야 유신은 클레이모어였으니까.
검사 결과는…….
“에스트의 파동에 의해 신체가 과도한 부하를 겪고 있습니다. 느끼고 계신다는 육신의 부조화 역시 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 테고요.”
의사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육신이 닳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료나 재생과는 다른 의미의 감소.
노화와도 그 궤적이 비슷하다.
그리고 그 연유는…….
“정말 죄송스럽지만 저희로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얘네들도 모르겠단다.
맨바닥에서도 실과 바늘만으로 혈관을 꿰매고 수술까지 해대는 지니어스들이 말이지.
이 이상 가는 엘리트들과 장비를 보유한 곳을 찾으려면 연구부서뿐이다.
그곳은 에스트에 관련해서도 심도 깊게 다루니까.
하지만 그곳은…….
‘껄끄럽다.’
자칫하면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혹여나 불똥이 튈까 안절부절못하는 의사를 뒤로한 채 유신은 병원을 나왔다.
아직 컴퍼니는 소집령을 내리지 않았고 팀원들이 다시 모이기까지는 또 이틀.
지금 상황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둔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볼 셈이었다.
-뭐 하냐?
유신은 또 다른 트럼프를 꺼내서 연락을 보냈다.
그러나 에피와 헤카테로부터 답장은 없었다.
바쁜 모양이다.
‘인형사 토벌전은 아직 계획만 잡고 있었으니 중간에 다른 의뢰를 수행 중인가 본데…….’
그가 생각할 때.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옆에 있던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말을 걸었다.
죽다 살아난 에반 자이로스의 딸이다.
이름이…… 율리아나였나?
고리의 성의 반란에 대한 증인으로 데리고 왔는데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붕 떠버렸다.
유신은 침착한 기색의, 그러나 속을 들여다본다면 불안으로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보다가 무심하게 걸음을 옮겼다.
“변론할 기회는 있을 거다. 일단 따라와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십중팔구 죽을 거다.
컴퍼니는 떨어진 위상을 되찾기 위해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쓸 테니까.
삼대를 멸하라는 법칙은 이 세상에서도 유효했다.
그것이 나중이 될 것이냐. 근시일 내로 일어날 것이냐의 차이일 뿐.
“…….”
어릴 때부터 지배자가 되기 위해 교육 받아온 영특한 소녀가 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얌전히 유신의 뒤를 따랐다.
그것이 현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으니.
‘적어도 나 하나만 희생한다면 백성들은 살릴 수 있을 터.’
결의를 다지는 소녀를 보며 유신은 생각했다.
벌써부터 죽음의 공포와 책임감에 짓눌려 있구나.
역시 이 세상은 엿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나설 생각은 없다.
저 꼬마를 돕는 것은 동정심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유신으로서도 상당한 손해를 입어야만 하니까.
유신은 제 이득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냉정해질 수 있는 사내였다.
[기차 출발합니다]유신은 열차를 타고 블루로드로 건너갔다.
특이점은 또 있었다.
“블루로드로 가신다고요? 모시겠습니다.”
승강장에서도 경계를 서던 몇몇 가드들이 따라붙은 것이었다.
“괜찮다.”
유신은 거절했지만.
“지정된 구역을 이탈하시는 클레이모어 님이 있으시다면 목적이 끝날 때까지 경호하라는 상부로부터의 명령입니다.”
두 명의 가드들은 오더는 절대적이라 말하며 끝내 달라붙었다.
푸른 군복 위에 방탄조끼를 차고, 자동소총까지 맨 채로 말이다.
그야말로 완전무장.
테러리스트들이 도심 내부에도 남아 있기 때문일까?
아니, 또 다른 이유 역시 있었다.
유신은 그 이유를 블루로드에 들어서자 알게 되었다.
-클레이모어다.
-여긴 뭣 하러 온 거야?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더러운 행색의 노동자들은 전처럼 무관심으로 유신을 일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힐끔거렸다.
그 눈빛 안에 담긴 감정에는 때때로 적의 역시 담겨있었다.
철컥.
가드들은 의도적으로 총기를 두드리며 쇳소리를 냈다.
그러자 몰려 있던 시선들이 옅어졌다.
경호라…….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나?
유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을 굴러다니던 신문을 주워들었다.
[특보! 클레이모어들의 추악한 민낯!] [부패한 컴퍼니가 지금껏 저지른 일들!] [바이스 케미컬의 가혹한 노동환경! 결국 6살 난 아이를 죽이다!]싸구려 재질로 만든 신문에는 자극적인 기삿거리들이 대서특필 되어 있었다.
사진까지 박아넣은 채로 말이다.
“펄프픽션이로군요.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이 우매한 녀석들이……. 이딴 허무맹랑한 소리나 들으니 평생 이렇게 사는 겁니다!”
유신의 눈치를 본 가드들이 신문기사와 노동자들을 규탄했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뭐.
유신은 기사의 진위보다는 지금의 상황에 주목했다.
‘테러와 동시에…….’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굳이 물리적인 폭력만이 무기가 아니다.
이런 자극적인 기사 역시 충분히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비수가 될 수 있다.
유신이 처음 펑크시티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이런 기사들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포르노보다 더한 싸구려 잡지라고는 하나 컴퍼니의 눈치를 보며 정도를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컴퍼니가 습격당한 지금은 이런 기사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심 내부로 숨어든 빌런들.
혹은 혁명분자들.
혹은 작금의 상황을 이용해 먹을려고 큰 그림을 그리는 부르주아들.
그들이 손을 쓴 것이다.
이 도시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확히는.
‘컴퍼니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 거대한 혼란의 뒤편에는 틀림없이 여왕과 그 대리자인 킹 역시 일조하고 있을 터.
유신은 신문을 휙 구기며 생각했다.
컴퍼니는 아직 무너져선 안 된다.
정확히는 무의미한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인간들의 전력을 가능한 한 온전히 보전시켜야 한다.
그 속에 끼어든 갱생 불가능한 악의 싹들은 처리하면서 말이다.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조율에 나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이 세상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7대 재앙에 맞서기 위함이다.
유신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한동안 블루로드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정확히는.
-한 푼만 줍쇼…….
거리의 노숙자들과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이 노인네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아무리 뒤져봐도 찾고 있던 자가 안 보였다.
혹시나 해서 가드들한테 인상착의를 말하며 물었지만 그들 역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 거구의 노인이라…… 흠.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가드 임명의 특례로 화이트로드의 외곽에 거주하는 이들이 블루로드에 대해서 안다면 얼마나 알까?
유신이 제 어리석음을 탓하던 그때.
“하하하하! 그래서 말이지. 내가…… 어? 형님. 이런 곳에서 뭐 하고 계십니까?”
근처에 있던 술집의 문이 열리며 매드독이 나타났다.
한 손에는 흘러내릴 듯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끼고, 다른 한쪽에는 검은 옷을 입은 떡대를 낀 채로.
이 자식은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데 처박혀 있는 걸까?
여자뿐만이 아니라. 저 양아치까지 낀 걸로 봐서 딱 봐도 불법적인 일을 한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것도 도심 내부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말이지.’
역시나 가드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매드독과 친해 보이는 유신 역시 부패한 클레이모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녀석과 같은 취급을 받다니. 이건 좀 상처인데.
유신이 행실에 주의를 주려던 그때.
가만…… 혹시?
“매드독.”
“네, 형님.”
“너 혹시 이렇게 생긴 노인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유신은 베르망의 인상착의를 말하며 물었다.
“음. 모르겠습니다만…….”
텄나?
“이 녀석은 알지도 모릅니다. 어이. 빡빡이.”
매드독은 담배를 뻑뻑 피우다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덩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우리 형님이 말한 저 노인네 어디 있는지 아나?”
“헤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갱처럼 보이는 자는 기분 나쁘다는 티도 없이 황동색으로 반짝이는 구리와 톱니바퀴로 된 기기를 꺼내 들었다.
이 도심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핸드폰 같은 거였다.
편리하지만 보안은 좋지 않다.
“어어. 난데.”
어딘가로 통화를 걸던 갱은 금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찾았습니다요. 7구역 마담 토드라는 술집에서 한창 퍼마시고 있답니다.”
호오.
이게 뒷골목 세계의 정보인가?
쓸 만하다.
게다가 이 녀석 역시…….
“개똥도 약에 쓸려면 있군.”
“네?”
“아니다. 잘했다. 매드…… 아니, 드독아.”
나름의 인정을 담아 유신은 이 식충이를 동료로 인정했다.
그렇기에 충고 역시 했다.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거다.”
“하하. 형님. 저도 압니다. 오늘은 가볍게 산책 나온 겁니다. 게다가 말입니다…….”
매드독은 걱정 없다는 얼굴로 웃었다.
“조만간 컴퍼니에서 다 쓸어버릴 텐데 뭐가 걱정입니까?”
“…….”
너 그러다가 진짜 죽어.
언더캐슬한테.
유신은 어차피 들리지 않을 충고를 뒤로한 채 손을 흔들었다.
* * *
크레딧을 연료로 삼은 싸구려 전등이 흐릿하게 반짝인다.
썩은 나무와 담배 쩐내가 찌든 작은 술집은 술 취한 한량들과 그들을 노리는 창부, 그리고 공업용 알코올을 섞는 바텐더로 북적거렸다.
“히끅! 한-잔 더어어어!”
문신이 가득한 바텐더는 죽어라 들이붓고 있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 영감. 벌써 몇 잔째인 줄 알아?”
“몇…… 잔? 모르겥, 는데.”
“그딴 걸 묻는 게 아니야. 내 말은 당신한테 크레딧이 있냐는 거다.”
“크레디잇? 크레딧이라면야 당연히…….”
노인은 더러운 품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탈탈 털어도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먼지뿐이었다.
“하. 이 영감이 보자 보자 하니까!”
바텐더는 따르던 술잔을 노인의 얼굴로 휙 던졌다.
콰장창. 유리가 깨지며 노인이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할짝.
“크흐흐흐. 달다아. 공짜 술인가? 이건?”
붉어진 얼굴로 제 얼굴과 바닥에 묻은 술을 핥아댔다.
“오빠 저것 좀 봐!”
“개새끼가 따로 없네! 하하하하!”
“이 미친 영감탱이가!”
주변 손님들이 웃어 재끼고. 얼굴이 붉어진 바텐더가 소매를 걷으며 노인을 짓밟으려던 그때.
덜컹.
문이 열렸다.
유신과 율리아나. 그를 따르는 가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텐더는 움찔하더니 물었다.
“크, 클레이모어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로…….”
유신은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가늠하더니.
“여기 저 노인네 술값.”
노인의 술값을 대신 계산했다.
뚜벅뚜벅.
그리고는 노인의 앞으로 가서 쪼그려 앉은 채 손수건을 건넸다.
“괜찮나 노인장.”
유신이 찾고 있던 자는 베르망이었다.
한때 검성이라 불리던 존재이자 은거기인.
이곳 펑크시티가 내재하고 있는 최고전력 중 하나.
“아아. 자네는……?”
고주망태가 된 노인은 눈을 끔뻑거리며 유신을 바라보더니.
“그때 봤던 마음씨 넓은 청년이로군! 아니, 이제는 클레이모어가 되었지 참! 축하하네! 하하하하!”
와하하 침을 튀기며 웃었다.
“오늘도 히끅! 적선하러 온 건가? 아니, 해주시러 온 겁니까? 크흘흘!”
뒤편에 있던 가드들과 율리아나. 손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저 주정뱅이 노인이 뭐길래 클레이모어쯤 되는 자가 이렇게 손수 나서는 거란 말인가?
‘아비인가?’
‘전혀 안 닮았는데?’
‘사생아일 수도 있지.’
그들이 되지도 않는 퍼즐을 끼워 맞추던 그때.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유신은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검성 베르망.”
유신이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
실실거리던 노인의 얼굴이 마치 무정물처럼 변했다.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인 것처럼.
고오오오.
이윽고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에스트.
노인의 기세는 그야말로 칼날과도 같았다.
온갖 집기가 기운만으로 날아간 것은 물론.
콰창.
진열되어 있던 술병들이 일제히 깨졌다.
“꺼어억!”
주변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으니까.
“…….”
오직 유신 한 사람만을 빼고 말이다.
스르릉.
유신은 허리춤의 흑도로 손을 가져갔다.
투명한 검날에는 잊혔던 영웅의 얼굴이 비쳤다.
그 모습은 영웅이라기보다는 악귀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