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7
17. 재밌네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한다. 지금까지 공감하지 못했던 말이다. 차원문 관련 현장이 미지 그 자체였으니까.
지금 바닷속의 시커먼 것은 수차례 봤던 검은 차원문이 분명했다.
차원문의 영향력은 마력을 기준으로 하지만, 통계상 크기와도 비례한다.
가늠조차 불가능한 전례 없는 크기의 차원문.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눈을 떼지 못했다.
문득 검은 차원문이야말로 가장 이질적이고 미지의 것임을 깨달았다. 마력은 감지할 수 없지만, 차원문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랬다. 이미 상식과 법칙을 깨뜨리고 있었다.
“……!”
말을 안 듣고 바다만 바라본 이유가 있었구나.
처음 겪는 감정. 쳐다보게 만들고,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거부할 수 없는 감각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억지로 고개를 틀었다. 목 근육에 경련이 올 것 같았지만, 지율이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해냈다. 그 순간 지율이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빠아!”
지율이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가 빛을 뿜어냈다. 아무리 어두워도 손전등이 바라보는 곳은 밝아지고 만다. 손전등에게 어둠은 가장 쉬운 공략대상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내려다봤다. 차원문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순식간에 쪼그라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애초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지율이를 바라봤다.
“빠아!”
내가 어떻게 딸을 가졌는지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응! 딸!”
“바다 재밌어!”
“그래?”
“응! 예뽀!”
지율이는 짧고 통통한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도 예뽀.”
“그치. 예쁘지.”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현장에서 캐고 줍고 하면서 바닥만 바라보던 삶이었는데, 이제는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봤다.
바다가 하늘에도 있는 거 같고, 바다에도 하늘이 있는 것 같았다.
* * *
거대한 차원문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공포는커녕, 걱정조차 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 한두 가지였어야지. 하늘을 완전히 덮었던, 꼬리부터 머리를 한눈에 볼 수조차 없던 하늘혹등고래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빠아아아!”
지율이가 전방을 가리켰다. 강척 마리나항이 코앞이었다.
“응, 다 왔다.”
배를 정박한 뒤, 가장 가까이 있는 휴대폰 수리센터부터 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기종인데도 수리비가 상당했다.
“그냥 새로 사는 게 낫겠네.”
“그렇네!”
설명도 안 했는데 지율이는 맞장구를 쳤다.
“지율이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귀여울까?”
“어…….”
지율이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듯했다.
“미안해, 아빠가 괜한 걸 물었다.”
“아니야!”
“아빠가 귀엽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닮았어.”
“닮았어?”
“응! 근데 귀엽지는 않아! 멋있어!”
“아빠 멋있어?”
“응!”
귀에 입이 걸릴 지경이었다.
“어떤 점이?”
“밥을 잘해.”
또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다.
“그, 그게 다야? 밥을 잘해서 멋있어?”
“또 있어.”
“또? 어떤 거?”
“국도 잘 끓여!”
“그건 똑같은 거잖아.”
“달라! 밥이랑 국은 다르잖아.”
“아니, 그게, 그렇기는 한데…….”
멋있게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칭찬이 전부 밥에 몰려 있으니 아쉬웠다.
“다른 건 없어?”
“있어!”
“그래? 있어?”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기대했다.
“힘이 세!”
“힘?”
“응!”
“그치! 아빠 힘세지!”
“응! 멋있어!”
“고마워. 지율이가 최고야!”
“히히히히.”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기에, 가족에 대한 갈망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여겼다.
막상 가족이 생기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영원한 내 편이 생긴 기분. 이 작은 아이가 내는 목소리에 나는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힘을 얻는다.
화목한 가정을 가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을 듯하다.
* * *
대형마트 도착.
휴대폰부터 구입한 뒤에 식품 코너 쪽으로 향했다.
“빠아! 저거!”
지율이가 쇼핑카트를 가리켰다.
“그래야지.”
지난번에 쇼핑카트를 탔던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웃차.”
지율이를 안아 올려 카트 안쪽 유아용 의자에 앉혔다.
“출발!”
지율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쉬잇.”
나는 검지를 코와 입 앞으로 가져가며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한테 폐가 될 수도 있으니까.”
“폐?”
“응. 싫어할 수도 있거든. 주변에 다들 조용하지?”
지율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응, 알았어.”
검지를 세워 자신의 코와 입에 붙였다.
“쉬이이잇.”
“그렇지.”
“근데 있잖아.”
“응?”
“집에서도 안 돼?”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
나는 걱정 말라는 의미로 지율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예를 들어서 무룩이가 자고 있을 때는 소리 지르면 안 되잖아. 그치?”
“맞아. 시러해.”
“그런 거야. 뭐든지 때와 장소를 가려야 돼.”
“때와 장소.”
“응.”
항상 놀라운 모습을 보이는 지율이가 자랑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온 세상에 대고 자랑하고 싶다.
마트에서 살 게 많지는 않았다. 휴도에 가면 아직 식재료가 많이 남아 있었다. 텃밭에서 계속 자라기도 했고.
자급자족이 힘든 것들을 위주로 골랐다. 유제품과 군것질 등을 위주로 샀다.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 재미를 주고 싶었다.
“이제 계산하러 가자.”
“계산하러…!”
지율이가 계산대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내는 찰나였다.
콰지직!
카트 내부 유아용 의자가 부서지면서 지율이가 물건들 위로 누웠다.
“어! 지율아, 괜찮―”
“아하하하하핫!”
지율이는 뒤로 쓰러진 게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웃고 있는 지율이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려놨다.
“아픈 데 없어? 괜찮아?”
“응, 괜찮아.”
카트에 담겨 있던 물건들이 쿠션이 되어준 덕분에 다치지 않은 듯했다. 지율이의 괴력을 생각하면 고작 이 정도로 다칠 것 같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여느 아이들처럼 보드라운 손인데도 기왓장 같은 알껍데기를 으스러뜨리고도 생채기조차 안 남으니까.
마트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변상하려 했다. 하지만 마트 측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죄송은요.”
“편히 장을 보러 오실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죄송하죠.”
애초에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 * *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요트에 실었다.
“가자! 집으로!”
지율이는 휴도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아직 아니야.”
“응?”
“한 군데 더 들를 데가 있어.”
내가 향한 곳은 JMT 글로벌.
은물주머니 판매를 대행하기로 한 조민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미 경매에 등록은 된 상태.
처음에는 일 얘기를 하는데 지율이랑 가도 되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고객 입장이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고급스럽게 꾸며진 사무실에서 조민택과 마주했다.
“안녕하십니까.”
내가 인사를 건네자 조민택이 시원하게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사답게 인사를 건넨 그는 소파를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다과와 차, 커피, 음료 등이 준비돼 있었다.
“안녕?”
조민택은 눈썹을 들썩거리며 인사했고,
“안녕!”
지율이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다. 무룩이가 가르칠 리도 없었다. 아이튜브 키즈채널을 통해 스스로 전부 익히길 바라면 그건 부모 자격이 없는 거고.
“따님이 그새 큰 것 같네요.”
“그런가요?”
“그나저나 아직 젊으신데 따님이 크시네요.”
“그렇게 됐습니다.”
지율이는 자신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손등이 하늘을 보게 한 채 이리저리 손날을 대며 키를 재고는 물었다.
“나 커?”
나는 하하 웃으며 지율이의 등을 가볍게 문질렀다.
“아기들에 비하면.”
“그럼 작아?”
“아직 한참 더 커야지.”
“그렇구나.”
“응.”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지.”
“그렇구나.”
금세 수긍한 지율이는 두리번거리며 사무실을 살폈다. 과시용으로 둔 몇몇 장식품들은 마수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거라 시선을 끌었다.
“은물주머니 경매 진행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니면 다른 물건이……?”
“은물주머니에 대해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마침 근처에 지나가는 길이라서요. 그냥 직원분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대표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제가 자리에 있을 때는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궁금하신 부분이 있을 때는 언제든 전화나 문자, 메일, 무엇으로든 연락 주시면 됩니다.”
일부러 들러서 대면했다. 무슨 일이든 온라인이나 전화로만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 만났을 때 진행이 빨랐다. 문제가 생겨도 수월하게 해결됐다.
“등록은 된 상태죠?”
“예, 그럼요. 이번에 경매에 올라온 물건들이 독특한 것들이 많아서 참여자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경매가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 정도로 큰 은물주머니는 없었으니 아마 많은 관심들을 보일 겁니다. 이미 VIP들에게는 경매 도록이 나갔습니다. 마침 오늘 아침에 저희 쪽에도 이미지가 왔네요.”
조민택은 태블릿PC로 화면을 띄웠다.
빨간 벨벳이 깔린 받침대 위로 은물주머니가 곱게 놓여 있었다. 밝은 조명에 빛이 반사되어 화려함이 사진을 뚫고 나왔다.
“어떻습니까?”
“좋아 보이네요.”
“생각보다 은물주머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한 래퍼가 관심을 보인 덕분에 입소문을 탔어요.”
그때 지율이가 태블릿PC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냈다.
“은물주머니!”
조민택이 깜짝 놀라며 살짝 웃었다.
“따님이 은물주머니를 다 아네요?”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맛있었어!”
“맛있…?”
조민택이 당황했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잡힌 은문어를 먹었거든요.”
“아아아아, 그래서. 그러셨군요. 은문어를, 크으, 별미죠. 세계에서 제일 커다란 은물주머니를 품고 있었으니, 맛도 영양도 세계 최고였겠습니다.”
조민택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고객으로서 등급이 더 높아진 듯하다. 어지간한 재력가가 아닌 이상 은문어를 먹지는 못하니까.
조금 더 강한 인상을 남겨서 신경을 쓰게 만들려고 한 것은 맞지만, 이런 부분까지 의도치는 않았는데.
뭘 하든 지율이와 함께면 잘 풀린다.
“그나저나 식사는 하셨습니까?”
조민택이 갑작스레 식사 제안을 했다.
“아직이시면 저랑 같이 식사하시죠. 근처에 괜찮은 대게집이 있습니다.”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식사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나는 눈짓으로 지율이를 가리키고는 말했다.
“딸이랑 나온 지가 좀 돼서요.”
인상만 남기면 됐다. 잘 모르는 사람과 산해진미를 먹기보다는 간단히 먹더라도 휴도에서 지율이와 편하게 먹는 게 좋았다.
“아, 그렇군요. 그럼 얼른 들어가셔야죠.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경매는 다음 주 월요일에 진행됩니다. 그때 실시간으로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제가 앞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민택이 코를 찡긋이며 웃었다.
“사실 제가 어차피 나가는 길이라서.”
“하하하, 식사하신다고 하셨죠 참.”
“예예.”
엘리베이터를 건물 1층으로 향했다. 지율이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순간의 느낌이 재미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배시시 웃었다.
“재미써.”
“재밌어?”
“응. 또 타고 싶다.”
“요트보다?”
지율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치?”
“응!”
조민택이 웃음기를 머금고 물었다.
“요트도 보유하고 계십니까?”
본의 아니게 과시를 한 것처럼 됐다.
“아, 예. 그냥 조그만 거요.”
“저도 여기 강척에서 사업을 하는 만큼 요트를 한 대 들일까 고민이었는데, 다음에 얘기 나누시죠.”
나는 적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그러시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조민택은 지율이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빠이빠이.”
지율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물었다.
“빠이빠이가 뭐야?”
“안녕이라는 거야.”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민택을 향해 다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빠이빠이.”
조민택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덕지덕지 붙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육지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강척 마리나항으로 갈 차례.
슬렁슬렁 걸어가는데 앞쪽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5톤 트럭이 도랑에 사선으로 반쯤 걸쳐져 있었다.
부르르르르릉! 부르르릉!
몇몇 사람들이 트럭 뒤에 붙어서 미는 중이었는데, 여의치 않아 보였다.
평소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봉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외면하지도 않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지율아,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응!”
나는 곧장 트럭 뒤쪽으로 달려갔다.
“도와드릴게요!”
트럭 적재함 뒤에 붙어서 구호를 외쳤다.
“자, 하나둘셋 하면 한 번에 가요! 하나, 둘, 셋!”
힘을 줘서 밀자 트럭이 미끄러지듯 쑥 길 위로 올라갔다. 애초에 내 도움이 필요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쉬웠다.
“음…?”
스스로 양쪽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힘이 더 세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