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82
182. 겨울이 가기 전에
짜식, 잘생겼네.
쪼그만 게 눈도 초롱초롱하고 코도 오뚝한 게 잘생겼다.
근데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스키복 차림의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지율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 있었다.
아는 애인가?
* * *
첫 인연은 날아가던 풍선이었다.
김토일이 팔을 뻗어 풍선을 낚아챘고, 울 뻔했던 영진이의 눈은 반짝였다.
영진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그날 풍선을 가질 수 있던 것도 응석을 조금 부리면 엄마인 이미주가 다 해주려고 노력한 탓이었다.
영진이의 삶은 김토일과 지율이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지율이가 건넨 정체불명의 딱딱한 과자를 먹은 이후로 영진이는 건강해졌다.
건강한 정도가 아니라, 최연소 각성자가 된 상태.
똘똘한 영진이는 자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여느 아이들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으며 성인이 될 날을 기다렸다.
꿈을 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영진이에게 지율이는 은인과도 같은 존재.
당연하게도 지율이를 한눈에 알아본 영진이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주는 영진이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지율이가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걔네?’
이미주는 지율이를 기억했다. 보기 드문, 아니, 살면서 본 아이들 중 가장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내놔도 눈에 확 띄었다.
‘전에도 영진이가 쟤한테서 눈을 못 뗐는데. 오늘도 그러네.’
이미주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모르는 척 사과를 골랐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하아아아, 알 것 같은데 안 떠오르네?’
김토일은 영진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지율이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영진이를 바라보며 눈썹에 힘을 줬다.
‘그나저나 저놈이 보는 눈은 있어서 우리 지율이한테 반했구만. 아주 뚫어지라고 보네? 하지만 100년은 이르다 요놈아.’
김토일은 여느 딸바보 아빠처럼, 지율이를 평생 끼고 살 생각까지 했다.
적막을 깬 것은 지율이가 손을 흔들며 던진 한마디였다.
“안녕!”
“어…….”
당황하던 영진이는 활짝 웃고 있는 지율이의 얼굴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안녕?”
지율이는 영진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러다 이미주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까치까치 설날은 1월 1일이었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어제였어요!”
“어? 어, 그래. 맞아. 그랬지.”
이미주가 웃으며 대답하자 지율이가 더 활짝 웃었다.
“하루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머. 고마워.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뒤에서 지켜보던 김토일은 조마조마했다. 설마 지율이가 이미주한테도 세뱃돈을 달라고 하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사과해야지. 그렇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유심히 지켜봤다.
김토일의 걱정과는 다르게 지율이는 영진이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뗐다.
“안녕?”
영진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사는 방금 했잖아.”
“또 할 수도 있지.”
“그건 그렇네.”
지율이는 영진이가 형광 초록색 파카 안쪽에 입은 보라색 멜빵 스키복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 옷 되게 멋있다.”
“이거? 스키복이야.”
영진이는 헤헤 웃다가 말했다.
“근데 오빠라고 해야지. 내가 나이 더 많을 텐데.”
“오빠?”
“그래. 나이 더 많은 여자한테는 언니, 남자한테는 오빠.”
“난 아빠랑 삼촌만 있는데.”
“나는 네 아빠나 삼촌이 아니니까.”
“그렇구나!”
지율이는 아이튜브로 봤던 영상을 떠올렸다. 오빠라고 하지 않는다고 싸우던 남매 캐릭터.
“아하!”
“떠올랐어?”
“응! 오빠라고 안 하고 이름 부르면 다들 화내더라고. 그게 중요한 건가 봐.”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아니야?”
“응.”
“그럼 야, 라고 해도 돼?”
잠시 고민하던 영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좀 그렇지.”
“결국 안 되는 거잖아.”
“이게 한국법이야.”
“진짜? 한국법은 그런 거야?”
“그래.”
비비 꼬여서 삼천리로 흘러가는 대화.
“아무튼 나도 그런 옷 갖고 싶다. 멋있어.”
지율이의 말에 영진이가 헤헤 웃었다.
“그래?”
“응!”
“이건 스키복이야.”
“스키복?”
“응. 스키 탈 때 입는 옷.”
“아하아…….”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김토일을 돌아봤다.
“빠아! 우리도 스키 타자!”
“응?”
“그래서 스키복 입자!”
“뭐, 노력해 볼게.”
“좋아!”
지율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영진이와 눈을 마주쳤다.
“아빠가 노력하겠대!”
“좋겠네.”
“그럼 나중에 스키 대결도 하자.”
“스키 대결……?”
“누가 먼저 빨리 내려가는지.”
“그건 위험해서 안 돼.”
“그런가?”
“그렇지.”
“그럼 그냥 같이 재밌게 타자.”
“그래. 언젠가.”
두 아이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던 이미주가 활짝 웃었다.
“그래, 언젠가 꼭 같이 스키장 가면 좋겠다.”
슬슬 장을 보기 위해 이동할 때.
스키장에 갈 참이라 시간이 없었다.
“그럼 우리도 이제 맛있는 거 사러 갈까?”
김토일이 손을 잡자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이미주와 영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
그때 영진이가 황급히 물었다.
“이름. 이름이 뭐야?”
“지율이!”
“지유리?”
지율이가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지, 율. 김, 지, 율이야.”
“김지율.”
“응.”
“나중에 봐.”
“그래!”
이미주도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율이 안녀어엉.”
그리고 김토일과 이미주는 말없이 미소와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 * *
지율이와 손을 잡고 가던 내가 물었다.
“아는 애야?”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안다고?”
“응.”
“어떻게 알아?”
“몇 번 봤어.”
그냥 강척에 오가면서 본 적이 있는 애였나 보다.
“그렇구나.”
“우리 스키 탈 거야?”
“스키라…….”
스키장에 가볼까 싶었지만, 아직 지율이에게는 무리일 듯했다.
겨울이 가기 전에 눈썰매라도 타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스키보다는 썰매가 좋지 않을까?”
“썰매 좋지! 재밌어! 그럼 삼촌 기다려야겠네!”
“삼촌? 아.”
고성우 얘기였다.
“그럼 꼭 겨울에 집착할 필요도 없네.”
“삼촌은 더울 때도 시원하게 할 수 있지?”
“당연하지.”
“잘됐네!”
천천히 카트를 밀면서 걸음을 옮기다 물었다.
“그런데 지율이 무슨 요리할 거야?”
지율이는 고민하다가 되묻듯이 대답했다.
“맛있고 새로운 거……?”
“새로운 거?”
“응! 맛있지만, 나도 할 수 있게 너무 어렵지 않고, 근데 새로웠으면 좋겠어.”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었다.
새로운데 지율이도 할 수 있으면서 맛까지 있어야 한다.
가능할까?
그냥 요리라는 것을 하지 않고 허니포켓이나 한 송이 먹으면 가능하긴 한데.
조금 꼼수를 써?
허니포켓을 물에 담그고 뭐, 허니포켓 차라고 요리 끝이라고 하면?
지율이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
이건 신뢰가 걸려 있는 문제다.
무엇보다 지율이는 직접 장을 보는 과정까지 거쳐서 요리를 하고 싶어 한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찰나, 광명처럼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깨찰빵 믹스.
계란과 우유, 물을 넣고 반죽을 한 다음 오븐에 굽기만 하면 끝이었다.
저거라면 지율이와 함께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
“지율이 빵 좋아하지?”
나의 물음에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응! 맞아!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좋아해!”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스치는 게 느껴졌다.
왜들 그렇게 보는 거예요? 저희는 가난하지 않아요. 애가 먹고 싶은 건 다 먹이면서 잘 키우고 있단 말입니다.
나의 괜한 피해의식일지도 몰랐지만,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딱하다는 듯이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수습했다.
“그치! 너무 자주 먹는 건 또 몸에 안 좋으니까. 더 건강하게 먹어야 하잖아. 그치?”
“빵은 건강에 나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밀가루랑 설탕 같은 건 많이 먹으면 안 좋기는 하거든.”
“그럼 일부러 가끔만 먹는 거야?”
“그렇지.”
“근데 빵은 왜?”
“빵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빵은 건강에 안 좋다며.”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 거야. 몸에 좋은 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고, 건강보다는 맛으로 먹는 것도 적당히 먹고. 그리고 우리는 튼튼해서 더 괜찮지.”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깨찰빵처럼 동글동글한 두 주먹을 쥐어 보였다.
“맞아! 나는 튼튼해!”
나는 피식 웃으며 깨찰빵 믹스를 집어 들었다.
“같이 이거 만드는 건 어때?”
“이게 뭔데?”
나는 상자에 있는 견본 사진을 보여줬다.
“이렇게 생긴 건데, 되게 고소하고 맛있어.”
“재밌게 생겼다!”
“그치?”
“아빠는 이거 좋아?”
옛날에 현장에서 한 개 정도 먹어본 기억이 있다. 가물가물하지만 꽤 고소하고 질깃한 게 맛있었다.
“응. 옛날에 한 번 먹어봤는데 맛있었어. 지율이는 못 먹어봐서 되게 새로울걸?”
“좋아! 그럼 이걸로 해!”
그렇게 지율이와 함께 요리할 것은 깨찰빵으로 결정했다.
“이건 내가 들게!”
지율이가 깨찰빵 믹스를 들었다.
“그래? 잠깐 카트에 넣어둬도 괜찮은데.”
“아니야, 내가 들 거야.”
“그럼 지율이 카트도 가져올까?”
“괜찮아. 오늘은 이거 하나뿐이니까.”
“그래? 그래, 그럼.”
다른 것들도 사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 고구마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고구마는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 가기 전에 군고구마를 한 번쯤은 먹어봐야겠다 싶었다.
고구마 한 박스를 카트에 담자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빠 손이 크네!”
“하하하하, 그치. 아빠 손은 크지.”
손이 크다는 표현은 언제 배웠는지 참.
“나는 손이 작아서 그런 거 들기 어려운데.”
진짜 문자 그대로 손 크기를 얘기하는 거였다.
“하하, 그치. 아빠 손이 커서 그래.”
나중에 손이 크다는 관용어 표현도 알려줘야겠다.
그렇게 계산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지율이가 잠깐 멈춰 섰다.
지율이의 시선은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에게 고정돼 있었다. 기껏해야 두 살이 채 안 됐을 듯했다.
“애기 잠깐 봐도 돼?”
지율이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실례하면 안 되니까, 조금 떨어져서 보기만 해야 돼. 알았지?”
“응!”
지율이와 나는 천천히 유모차 근처로 다가섰다.
아이 부모와 눈이 마주친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기가 너무 귀엽네요. 몇 살이에요?”
“작년 크리스마스가 돌이었어요.”
아이 엄마는 지율이를 보고는 말했다.
“따님? 조카?”
“딸이에요.”
“너무 예쁘게 생겼네요.”
지율이의 관심은 온통 아기에게 쏠려 있었다.
아기도 지율이가 신기한지 입을 옹알거리며 쳐다봤다.
지율이는 씩 웃다가 자랑하듯이 깨찰빵 믹스를 들어 보였다.
“나는 이따 아빠랑 이거 만들 거야.”
“웅앙양.”
“그래? 너도 나중에는 할 수 있어.”
“응양.”
“맞아. 나도 이거 아빠 만들어줄 거야.”
지율이가 깨찰빵 믹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꼭 해드려.”
너무 귀여워서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을 듯했다.
지율이가 요리를 하려던 게 나를 해주기 위해서였다니.
아이 부모와 인사를 건네고 다시 계산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슬쩍 물어봤다.
“지율아, 깨찰빵 믹스는 누구 해줄 거야?”
“아빠!”
나는 걸음을 멈췄다.
“진짜?”
“응.”
지율이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이 말했다.
“맨날 아빠가 맛있는 거 해주잖아. 이번에는 내가 해줄 거야.”
이 맛에 자식을 키우는구나.
부모가 된다는 것이 축복임을 새삼 다시 느낀다.
지율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존재 자체가 고마울 수도 있구나.
“고마워 지율아.”
지율이는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환하게 웃었다.
“나도 고마워 아빠.”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8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