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50
250. 5월의 크리스마스 (5)
“저기 보이지? 저 성이 흑설공주의 집이야.”
백설공주가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성을 가리켰다.
공주의 성보다는 악마성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했다.
좋게 봐줘도 뱀파이어 정도가 살 것 같았다.
우리의 앞에는 절벽이 있었다.
백설공주의 성처럼 눈사람이 다리를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낡은 다리가 이어져 있었으니까.
“그럼 출발…!”
목소리를 높이던 지율이가 백설공주의 얼굴을 살폈다.
백설공주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지율이의 표정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저기, 백설공주.”
내가 목소리를 냈다.
“…왜 불렀지?”
“얼굴 좀 펴.”
“뭐라고?”
백설공주는 찡그린 눈썹으로 거슬리는 감정을 표했다.
옆에 있던 로바와 눈사람이 덩달아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짓으로 지율이를 가리켰다.
“얼굴 좀 피라고.”
그제야 지율이의 표정을 살핀 백설공주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이해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지율이를 보며 웃어 보였다.
“신경 쓰였지?”
“네? 아니에요!”
온 세상을 녹여 버릴 만큼 마음이 따뜻한 지율이는 백설공주가 마음을 쓰는 게 신경 쓰였는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도 안 그랬어요!”
백설공주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내가 걱정이 돼서 그랬어. 미안해.”
“안 미안해도 돼요!”
“아니야, 미안해야 할 일이지.”
“……뭐가 그렇게 걱정됐어요?”
백설공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원래 이곳은 어두워야 해.”
그녀의 시선은 흑설공주의 성에 고정됐다.
“흑설이가 지내는 곳은 언제나 밤이거든. 그런데 지금 이곳 주변 전부가 밝잖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다시 보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백설공주가 조금 놀라며 지율이를 쳐다봤다.
지율이는 세상 전부를 밝힐 듯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죠.”
당연한 말이면서도, 대부분 실천이 불가능한 말이었다.
백설공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그대로 굳어 있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네 말이 맞네.”
백설공주가 손을 내밀었다.
“같이 손 잡고 갈까?”
“좋아요!”
지율이가 백설공주의 손을 꼭 잡았다.
백설공주는 걸음을 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하네.”
“그래요?”
“응.”
“공주님 손은 시원해요.”
“호홋. 아마 너와 손을 잡고 있으면 아무것도 얼릴 수 없을 것 같아.”
백설공주는 흑설공주의 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따뜻하고 밝아서.”
* * *
의외로 아무 난관도 없이 흑설공주의 성 앞에 다다랐다.
“흑설아.”
백설공주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 불러서 들리겠어? 성 밖인데?”
내가 의구심을 표하자 지율이가 동의했다.
“그렇겠다. 내가 부를게!”
지율이는 성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흑설공주니이이이이이임!”
아무래도 지율이는 그냥 공주님을 부르고 싶었던 것 같다.
잠깐 성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찰나였다.
착. 착착착착.
성이 마치 판자로 만들어진 것처럼 사방으로 벌어졌다.
우리의 위로도 엎어졌는데, 절묘하게 구멍이 난 부위라 깔리지는 않았다.
가운데는 검은 단발에 현백이처럼 어두운 피부를 가진 소녀가 서 있었다.
흑설공주는 백설공주와 쌍둥이라고 했지만 완전히 달랐다.
머리칼과 피부의 색도 그랬고, 얼굴이나 체형까지 그랬다.
심지어 나이도 달라 보였다.
“오랜만이야.”
백설공주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흑설공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4일 전에 봤는데 뭐가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잘 지냈겠어?”
지율이는 눈치를 살피다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흑설공주님 삐쳤나 봐.”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러게.”
흑설공주는 모두를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이렇게 다 끌고 왔어? 그리고 저 인간들은 뭐야?”
나와 지율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상에서 올라왔어.”
백설공주가 말하자 흑설공주가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루돌프.”
“왜?”
“내가 도움을 청했거든.”
“무슨 도움?”
“너와 화해하고 싶어서.”
흑설공주가 코웃음을 쳤다.
“저 인간들이 우리가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내가 화해할 마음이 없는데?”
“마음 좀 풀면 안 되겠어?”
“내가 말했지? 두고 보자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백설공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무룩이를 안아 들었다.
“자.”
흑설공주는 무룩이를 한 번 보고는 백설공주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까닥였다.
“뭐 어쩌라는 거야?”
“너 고양이 좋아하잖아.”
무룩이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흑설공주와 눈을 마주쳤다. 잠시 눈빛 교환이 이어졌고, 흑설공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뭐 고양이라면 다 좋아하는 줄 알아? 저런 눈썹 웃기게 생긴 고양이를 좋아할 것 같아?”
그러자 무룩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 그랬냥! 실례하지 말라냥!”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자매 싸움에 아무 상관도 없는 고양이를 데려온다고 해결될 리가 없었다.
“너 고양이 좋아하잖아. 그래서 난…….”
백설공주가 시무룩하게 말했는데, 흑설공주는 오히려 더 쏘아붙였다.
“다시 말해줘? 아무 고양이나 좋아하지도 않고, 고양이를 데려온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야. 며칠 전에 나 그렇게 무시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거야?”
“겨울을 준비해야 하잖아.”
그 순간 흑설공주가 더 화가 났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아서 해. 난 아무것도 할 생각 없으니까.”
그때 지율이가 조심스레 가운데 끼어들었다.
자연스레 백설공주에게 들려 있던 무룩이는 지율이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겼다.
“넌 뭐야?”
흑설공주가 눈을 흘겼지만, 지율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을 생각해야죠.”
“뭐? 너 같은 꼬맹이가 뭘 안다고 그래?”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 마음. 마음 중요하지. 그래서 나도 내 마음 얘기하고 있잖아. 난 백설공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지율이는 흑설공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양이 좋아한다면서요. 무룩이 보고 마음 풀 수도 있잖아요.”
“아무 고양이나 좋아하는 거 아니라니까?”
“무룩이는 아무 고양이가 아니에요.”
“나한테는 아무 고양…….”
흑설공주가 말끝을 흐렸다.
지율이가 분한지 조금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두 눈의 습도가 확실하 올라가 있었다.
흑설공주도 근본적으로 나쁜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줄곧 툴툴거리다가도 정작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울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살폈으니까.
“그래, 알아. 너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고양이겠지.”
흑설공주는 조금 전보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 무룩이라는 애를 처음 보잖아.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들은 고양이라서가 아니야. 그 고양이라서 그런 거지. 너도 무룩이가 무룩이라서 좋은 거잖아. 안 그래?”
“맞아요.”
“그러니까.”
“그래도 무룩이를 보고 마음을 풀 수도 있었어요.”
흑설공주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얘기했잖아. 알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본다고 마음을 풀고 말고 할 게 아니라니까? 애초에 고양이 문제가 아니잖아.”
“그게 아니에요.”
“…?”
“제가 말하려고 한 건 백설공주님 마음을 보라는 거예요.”
흑설공주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백설공주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백설공주님이 저희랑 무룩이를 여기까지 왜 데려왔겠어요. 흑설공주님이랑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
“그리고 백설공주님도 흑설공주님도 행운을 가졌으니까 소중히 해야죠.”
“행운?”
“네. 자매가 있잖아요. 저는 자매가 없어요. 저는 자매가 있는 게 엄청 부러운데, 자매가 있으면서 소중히 못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흑설공주는 생각이 많아진 듯했다. 그러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아직 화해는 할 수 없어.”
“왜요?”
“왜냐하면…….”
흑설공주가 백설공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는 나한테 사과한 적이 없거든. 지금도 봐. 본인이 뭔가를 할 생각은 없어. 항상 제대로 사과는 안 해. 그냥 매번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 그리고 아까도…! 화해하려는 이유가 뭔데?”
흑설공주는 서럽다는 듯이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방울방울 흐르지 않고, 마치 검은 안개처럼 눈가 주변으로 번졌다.
“나하고 화해하고 싶어서가 아니잖아. 겨울을 준비해야 돼서잖아.”
왜 그렇게까지 흑설공주가 서운하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율이도 공감한다는 듯이 백설공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율이 머리 위에 있는 무룩이도 이건 네 잘못이라는 듯 백설공주를 빤히 쳐다봤다.
백설공주는 조금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그리고 흑설공주를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거였으면 말을 하지.”
흑설공주가 조금 놀랐고, 백설공주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미안하지 않아서, 아무 신경도 안 써서 그랬던 게 아니야. 단지 당장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으니까, 그냥 그걸 생각했던 것뿐이야. 항상 네게 미안했었어. 내가 제대로 표현해야 됐는데, 미안해. 내 잘못이야.”
“뭐야, 이렇게 쉽게? 이런다고?”
“진짜 미안해.”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말한 게 전부야. 내 생각이 짧았던 거지.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미안해.”
이내 흑설공주의 눈가에서 검은 안개 같은 눈물이 번졌다.
둘의 마음은 깊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냥 작은 오해, 표현의 부족으로 인해 생긴 골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매가 서로에게 가지는 애정의 크기와 감정의 골은 비례하지 않았다.
백설공주와 흑설공주는 서로를 가볍게 안고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감동적이군.”
로바는 눈물을 감추려는 것인지 등을 보였다.
“감동적이야.”
눈사람은 눈에서 눈가루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눈가루를 다시 몸에 보충하고 있었다.
무룩이가 묘하게 웃음을 머금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쨌든 한 건 해결했다냥.”
아니, 네가 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
* * *
절벽 앞에서 루돌프가 서 있었다.
“고마워. 너희 덕분이야.”
백설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별거 아니었어요! 그리고 백설공주님이랑 흑설공주님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지율이는 아차 싶은 듯이 말을 보탰다.
“로바랑 눈사람도!”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지율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웃음과 행복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금세 피운다. 절대 시들지 않는 꽃을.
“이건 별거 아니지만…….”
백설공주가 손에 끼고 있던 하얀 장갑을 벗어서 내밀었다.
“주는 거예요?”
지율이의 물음에 백설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네.”
“괜찮아요! 이건 공주님 거잖아요!”
“고마워서 그래.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나는 또 만들 수 있어. 꼭 받아줬으면 해.”
“알겠어요.”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소중하다는 듯이 하얀 장갑을 꼭 끌어안으며 품었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그래. 나중에 겨울에 눈이 오면, 그때 꼭 껴봐. 그전에도 언제든지 괜찮고.”
“네!”
흑설공주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밤이 왔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언제든 말만 해. 내가 밤을 불러줄 테니까.”
백설공주가 흑설공주의 팔을 찰싹 때렸다.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뭐 어때. 지율이를 위해서라면 가끔 그럴 수도 있지 뭐. 요즘은 지상 쪽에 기상이변이 심해서 그 정도는 일도 아니야. 언니도 여름인데 우박 떨어뜨렸다며.”
“그건 그런데…….”
그때 기다리던 루돌프가 앞발을 바닥에 두 번 굴렀다.
“끼에에엥.”
루돌프의 재촉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만 가봐야겠네. 반가웠어.”
지율이도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반가웠어요! 또 만나요!”
백설공주, 흑설공주, 로바, 눈사람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만나.”
“잘 가!”
“또 보자.”
“반가웠어.”
그렇게 우리는 루돌프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향했다.
* * *
루돌프를 타고 투명장막을 지나 휴도가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져.”
지율이의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벌써? 아직 5월인데?”
“응!”
“왜?”
“화이트 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뭔지 알아?”
“그럼! 크리스마스에 눈 오는 거.”
지율이는 지나온 길을 한 번 되돌아보고는 말했다.
“올해는 무조건 화이트 크리스마스일 테니까 기대돼.”
“하하, 그럴 수 있겠네.”
“그리고 루돌프를 타고 있으니까 더 생각이 나.”
“그러게.”
그렇게 휴도에 가까워지던 중이었다.
“음?”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엇, 삼촌!”
지율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바다 위로 서핑을 하듯 휴도로 향하고 있는 고성우였다.
“어? 뭐야?”
우리를 본 고성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희들 뭐야? 루돌프 타고 있는 거야?”
지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응! 큰 루돌프야!”
“그럼, 산타 집에 다녀오는 거야?”
“아니! 백설공주랑 흑설공주!”
고성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묘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웃더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너 뭐 하냐?”
내가 질문을 던진 순간이었다.
고성우가 다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보였다. 얼굴에 새하얗게 얼음을 얼려 수염을 만들고 있었다.
“산타 수염이다 산타 수염! 아하하핫!”
지율이가 행복하게 웃었고, 고성우는 해냈다는 듯이 씩 웃으려 했는데 하관이 수염으로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와 지율이는 실컷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5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