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62
262. 차가워서 좋아
청룡의 두 뿔 사이에 자리한 무룩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냐하아아아아아앙.”
여유를 넘어서서 시시했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냥.”
무룩이가 앞발로 청룡의 머리를 탁탁 쳤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곤…….”
청룡의 기다란 양쪽 콧수염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어째서 예전보다 차이가 더 벌어진 거곤…….”
무룩이는 말 대신 다시 한번 청룡의 머리를 두드렸다.
이내 청룡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콧수염이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냥.”
사뿐하게 땅에 내려온 무룩이는 양 앞발을 앞으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냐음냐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뭘 어떻게 한 거야?”
나의 물음에 무룩이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봤으면서 뭘 묻냥? 내가 이겼다냥.”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이긴 거야? 뭘 어떻게 한 건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율이를 보며 물었다.
“지율아, 무룩이가 어떻게 이긴지 알아?”
“응!”
“알아?”
“청룡 머리 위에 올라가서!”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올라갔는지, 그거 알아?”
“아.”
지율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지율이마저 모르다니.
“잘은.”
“응?”
“막 이렇게, 이렇게.”
지율이는 손을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말했다.
“이렇게 빛 속을 순식간에 움직였어.”
완벽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무룩이는 내가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 듯했다.
빛 속을 움직였다는 것은 번개 안을 돌아다녔다는 뜻.
역시 무룩이는 범상치 않다.
“무룩아.”
“냥?”
“너 혹시…….”
“냥?”
“천둥 호랑이인 거야?”
무룩이는 양 끝이 축 처진 눈썹을 한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조금은 나를 모자란 게 아닌가 하는 눈빛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가족이라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때가 있다.
무룩이는 묻고 있었다.
네 눈에는 내가 천둥 호랑이로 보이냐고.
하지만 상황적으로는 분명히 그것 말고는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야?”
나는 다시 한번 대답을 재촉했지만, 무룩이는 시큰둥한 얼굴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뗐다.
“밥이나 먹자냥.”
“대답을 해야지.”
“밥 먹자냥.”
아리송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건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냥 나를 놀리는 게 좋은 건지.
어느 쪽이든 무룩이는 지금의 기조를 유지할 듯했다.
원래 자기 멋대로인 녀석이니까.
사실 천둥 호랑이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룩이가 진짜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게 중요하지.
진작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괜히 녀석이 다르게 보인다.
“츄르가 먹고 싶구냥.”
혀를 날름거리며 눈치를 주는 무룩이를 보니 평소의 무룩이로 보인다.
“빠아.”
내가 고개를 돌리자 지율이가 맑은 눈을 하고 말했다.
“무룩이는 무룩이야.”
맞는 말이다.
무룩이는 천둥 호랑이도, 특별한 힘을 지닌 고양이도 아니다.
그냥 무룩이지.
그래도 어쩌면 천둥 호랑이 설화가 무룩이로 인해 생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천둥 호랑이가 아닌 천둥 고양이인 것이다.
“밥 안 먹냥? 배고프다냥!”
무룩이가 재촉했고, 다른 아이들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다들 대결한답시고 힘을 쓴 탓에 배가 고플 만도 하지.
“그래, 다들 고생 많았어.”
어쩌면 심각한 대결이 아니었나 싶은데.
나는 몸을 틀다 말고 사신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청룡, 주작, 백호, 현무 전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살피며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면 발휘하는 힘이 대단할 뿐이지, 그 내용은 아이들의 시험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다들 되게 착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돌아가는 게 좋겠곤.”
청룡의 말에 다른 사신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모두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너희들은 배 안 고파?”
지율이의 목소리에 사신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같이 밥 먹자!”
사신들은 내게 그래도 되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같이 먹는 건 좋은데…….”
나의 걱정은 사신들의 몸집이었다.
휴도의 식량을 이것저것 끌어오면 배를 채울 수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나 내가 직접 요리를 해주는 것은 힘들 듯했고.
“용용용용용용용용.”
지켜보던 황룡이 갑자기 요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무슨 고민을 하시는지 알 것 같군용. 제게 묘수가 있습니다용.”
황룡은 사신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규격을 맞추시지용.”
청룡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였곤.”
청룡이 고갯짓을 하자 다른 사신들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사신들이 차례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덮을 듯했던 사신들은 순식간에 인형처럼 보였다.
청룡은 황룡처럼 작아졌고, 백호는 무룩이와 견주는 몸집이 됐다. 주작은 붉은 씨암탉처럼 보일 지경에 현무는 바다거북이보다도 작았다.
“오…….”
다들 작아진 모습에 감탄하는데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황룡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으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나용? 나의 묘수가용?
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묘수랄 게 없잖아. 그냥 사신들이 변할 수 있던 것뿐인데.
황룡의 미소가 커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족하는 게 분명했다.
즉, 내 의사가 잘못 전달됐다는 뜻.
굳이 내 뜻을 다시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밥 먹으러 가자아!”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고, 내가 손짓했다.
“그래, 그러자. 다들 배고프지? 따라와.”
* * *
인원이 많을 때는 푸짐하게 많이 차리는 게 인지상정.
모두가 즐기기 쉬우면서도 맛이 없을 수 없는 메뉴를 골랐다.
바비큐.
보통은 고기만을 떠올리지만, 각종 채소들도 구우면 맛있어진다.
소금과 후추 조금으로 맛이 확 살아나고, 때로는 소스를 곁들여도 좋다.
숯불에 직접 구워지는 고기야 말할 것도 없다.
특히나 오늘은 특별한 숯불이라 그런지 냄새부터 달랐다.
화륵! 화르르륵! 화르륵!
핫도그와 주작이 양쪽에서 불을 지폈다.
주작은 계속해서 핫도그를 의식하며 날개를 살살 흔들었다.
핫도그는 그저 즐겁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불씨가 섞인 입김을 불었다.
“냄새 좋다아아아.”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옆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백이도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현백이라.
언제부터 드래곤의 원래 모습이 사람 상태였는지.
괜히 웃음이 나오는데 핫도그가 앞발을 내 발등 위에 얹었다.
“응? 아.”
고기가 다 익어 있었다.
“태울 뻔했네.”
당연하게도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내가 제일 많이 먹을 거다냥!”
무룩이는 기운차게 말하는 것치고는 작고 잘게 자른 고기만 먹고 있었다. 그 옆에 짜놓은 츄르는 소스 역할을 했다.
“크릉.”
백호가 무룩이의 츄르를 자꾸만 쳐다봤다.
“먹고 싶냥?”
무룩이의 물음에 백호는 관심없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먹으라냥.”
무룩이가 앞발로 츄르가 담긴 그릇을 살짝 밀었다.
“크르릉.”
여전히 백호는 자존심을 세웠지만, 무룩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맛있는 건 같이 먹는 거다냥.”
“크릉?”
당황한 백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룩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많이 먹으라냥.”
현무는 어느새 곰곰이와 친해져서 허니포켓을 나눠 먹고 있었다.
전설에나 나오는 사신들이 알고 보니 바비큐에 행복해할 줄이야. 심지어 백호는 츄르를 좋아하질 않나.
즐거운 식사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대결에 이기면 뭐가 좋아?”
지율이가 던진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무룩이나 황룡 혹은 청룡이 대답해 주겠지.
“별 이유는 없다냥.”
무룩이는 대답을 툭 던지고는 다시 먹는 데 집중했다.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좋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치?”
나의 물음에 황룡이 대답했다.
“그러게용?”
황룡은 고개를 돌려 청룡에게로 대답을 돌렸다.
“고온?”
열심히 고기를 먹던 청룡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곤? 그냥 이기고 싶을 뿐이곤.”
다시 시선은 무룩이에게로 옮겨졌다.
“냥?”
지율이가 방글방글 웃어 보였다.
“이겨서 좋은 거!”
“당연히 이기면 좋은 거다냥.”
그랬다.
처음부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친선경기 같은 거였다.
황룡과 청룡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도 최근에 가벼운 다툼이 있었을 뿐.
그래서 안심이었다.
결국 다들 순수한 아이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 *
“후식도 먹고 가지.”
지율이는 그새 사신들과 정이 들었는지 아이스크림도 내주고 싶어 했다.
“후식은 다음 기회로 미룰게용. 너무 오래 내려와 있었으니까용. 맞죵?”
황룡의 말에 청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곤. 다음에도 맛있는 음식을 부탁하겠곤.”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물론이지!”
“다음에는 나도 선물을 가져오겠곤.”
그렇게 사신들은 원래 모습이 아닌 귀여운 상태로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잘 가아아아아아!”
지율이가 손을 크게 흔들었고, 황룡과 사신들은 허공에서 각자의 꼬리를 흔들어 보였다.
잠시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율이.
역시 아쉬워서 그런가 싶었는데, 활짝 웃으며 홱 돌아섰다.
“빠아! 아이스크림!”
의외로 밝은 지율이였다.
조금은 침울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현백이도 놀러와 있어서 그럴지도.
“많이 아쉽지는 않아?”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해맑게 대답했다.
“아쉬워! 더 놀고 싶었는데! 후식도 먹었으면 했고!”
“그런데 기운 넘치네?”
“다음에 또 볼 거니까!”
“하긴, 맞네. 그렇네. 기운 없을 필요가 없지.”
“그치?”
“응.”
나는 아이스크림과 얼린 허니포켓을 꺼냈다.
“어떤 거 먹을래?”
현백이는 허니포켓을 골랐다.
“이렇게 얼려서 먹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렇게 먹어도 엄청 맛있어.”
나는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율이는?”
“나는…….”
지율이는 양손을 뻗어 아이스크림과 얼린 허니포켓 둘 다 골랐다.
“둘 다 먹을래!”
“둘 다아?”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둘 다 내줬다.
얼린 허니포켓은 건강에 좋을 정도고, 아이스크림도 유기농에 성분이 좋았으니까.
“만세!”
지율이는 아이스크림과 얼린 허니포켓을 동시에 깨물었다.
“맛있… 으아아아. 너무 차갑다아아아.”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하나씩 먹어야지.”
“응! 그래도 차가워서 좋아! 아빠도 먹어!”
“응.”
나는 허니포켓을 먹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곰곰이와 싹이가 서 있었다.
“고옴.”
나는 피식 웃으며 얼린 허니포켓을 내밀었다.
“당연히 네 것도 있지.”
싹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주거라.”
“그래, 여기.”
싹이에게는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삐삐와 핫도그는 얼린 허니포켓.
즐거운 후식 타임을 가지는데 지율이가 말했다.
“삼촌이 만드는 빙수 진짜 맛있는데.”
“삼촌?”
“응! 빙수는 삼촌이 세상에서 제일 잘 만들어!”
아이스맨 고성우도 휴도에서는 빙수 기계 취급이다.
문득 하늘이 꽤 어두워진 걸 느꼈다.
“어…….”
나는 현백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현백이 안 가봐도 돼? 연구소에 말하고 온 거지?”
얼린 허니포켓을 먹던 현백이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은 더 커졌고, 입도 벌어진 채로 멈췄다.
아무래도 깜빡한 듯하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6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