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7
27. 교감
현장 일을 할 때, 죽은 마수를 손질할 일이 많았다. 아예 마수 손질 전문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였다.
마수는 1톤이 넘어가면 중형이다. 5톤 이상이 대형, 20톤 이상은 초대형, 그다음부터는 무제한급에서 따로 측정한다.
크기가 강함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대체로 비례하는 편이다.
중형 이상의 마수를 손질할 때마다 드는 생각 몇 가지.
살아 움직이면 말 그대로 괴물이겠구나. 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런 걸 죽였지? 죽어 있어서 다행이네.
“핫…….”
헛웃음이 흘렀다. 허니베어는 중형급에서 작은 편에 속하지만, 웬만한 대형 마수들도 힘으로 이긴다. 그런 허니베어를 앞에 두고 자신감이라니.
“해볼 수밖에 없겠지.”
쇠삼의 효과로 검게 물들인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아하하하핫! 복슬복슬한 허니포켓!”
나의 헛웃음이 진짜 웃음인 줄 알았는지 지율이가 밝게 웃었다.
“쿠마아아아…….”
허니베어가 그르렁거리며 위협했다.
“지율아. 무룩이랑 같이 뒤로 가 있을래?”
“왜? 나도 복슬복슬 허니포켓이랑 놀래.”
“쟤는 허니베어야.”
“허니베어?”
“응. 꿀곰.”
“귀여운 이름이다. 쟤도 달아?”
“단 걸 좋아하긴 하는데…….”
그때 허니베어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천천히 움직였다.
“쿠마아아…!”
지율이를 뒤로 보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허니베어는 컨테이너를 두부처럼 부술 수 있으니까.
나는 허니베어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했다.
쾅!
바닥을 차는 순간,
펑!
허벅지 근육이 뜨끈해지면서 바지가 터졌다.
로켓을 쏘듯 허니베어의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쿠마아!”
허니베어가 뭔가 반응하려 할 때는 이미 충돌 직전.
나는 쇳덩이처럼 변한 왼쪽 주먹을 내질렀다.
떠어어엉!
주먹은 허니베어의 미간에 꽂혔다. 눈을 노렸는데 빗나갔다. 하지만 확실한 느낌이 왔다. 제대로 들어갔다.
팔꿈치가 뻐근하고 어깨가 저릿하다. 충격음에 귀가 먹먹할 정도.
거대한 허니베어가 뒤로 넘어가면서 쿵 소리가 울렸다. 그대로 한 바퀴 구른 허니베어가 바닥에 대(大)자로 뻗었다.
된다! 먹힌다! 1톤이 넘는 마수를 주먹 한 방으로 넘겼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나는 거칠게 호흡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전력질주를 하고 난 직후처럼 심장이 뛰었다.
뻗어 있는 허니베어를 보며 제발 일어나지 말라고 생각하는 순간,
“베어어어엉!”
허니베어가 울부짖었다.
“베어엉! 베어어어엉!”
상체만 일으킨 허니베어는 멀쩡해 보였다.
“베어어어어!”
허니베어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봤는데, 굶주림을 채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누가 잡아먹힐 줄 알고…….”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예상 내였다. 주먹질 한 방으로 허니베어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주먹 한 방으로 저 거대한 놈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점이 자신감을 키웠다.
속도는 내가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수많은 마수들을 손질한 덕에 누구보다 그 구조를 잘 안다. 허니베어에게도 약점은 있다. 한 번만 기회를 잡으면 허니베어도 순식간에 숨통을 끊는 게 가능하다.
“쿠마아아아아아!”
허니베어의 울부짖음은 몸까지 찌릿하게 만들었다.
나는 섣불리 뛰어들지 않고 틈을 노렸다.
쇳덩이 같은 주먹을 더 꽉 쥐었다.
“빠아아아아!”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뭐?”
“아파!”
“……응? 아파?”
“응! 아파!”
허니베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야 아프긴 하겠지. 아빠가 때렸으니까.”
허니베어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쿠마아아아…!”
“지율아, 뒤로 물러나 있어. 위험해.”
“안 돼!”
나는 허니베어를 힐끗 보고는 다급히 말했다.
“이럴 때 아니야. 진짜 위험해.”
평소처럼 ‘아야 할 수 있어’ 정도로 설명할 상황이 아니다. 설명하고 있을 시간도 없고. 나는 감정을 담아 지율이와 눈을 마주쳤다. 때로는 입과 귀로 하는 대화보다 눈빛이 더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연으로 연결되고, 감정이 전해지는 나와 지율이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괜찮아!”
“아니…….”
나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쿠마아아아…….”
허니베어는 여전히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덤벼들지는 않았다. 공격적이었고, 위협적이었으며,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는 것도 불가능. 허니베어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고, 굶주림을 채우겠다는 욕망은 여전했다.
“지율…….”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무룩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매일 순찰을 도는 무룩이가 저 거대한 허니베어에 대해 모를 리 없었으니까.
“무룩… 아?”
무룩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일자 눈썹에 맹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애옭?”
원래대로 팔자 눈썹이 된 무룩이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왜 불렀냥?”
“쟤 알아?”
내가 허니베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누구 말하는… 카아아아악!”
무룩이는 허니베어를 보자마자 털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다.
“저건 뭐냥! 어디서 나온 거냥?”
더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대체 지금까지는 뭘 보고 있던 건지. 무룩이는 일자 눈썹이 될 때면 마치 렉이 걸리는 듯하다.
허니베어는 원래부터 휴도에 있던 존재가 아니라, 검은 차원문에 의해 온 것이 확실했다.
“빠아! 배고파.”
“지금은…….”
지율이는 허니베어를 가리키고 있었다.
“쟤가 배고프다고?”
나의 물음에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 그리고 지금의 정황들로 살폈을 때,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일.
“쿠마아아아아아…!”
여전히 공격성을 드러내는 허니베어를 뭘 보고 믿겠나.
“밥 안 줘?”
“허니베어한테?”
“응.”
“……알았어.”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굶주린 상태이니 무엇이든 먹겠지. 공격성이 가라앉지 않으면 미끼를 던져두고 빈틈을 노려볼 수도 있고.
허니베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허니포켓.
허니베어는 꿀색의 털을 가졌고, 그만큼 꿀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수준을 벗어나서 꿀이 충분히 있다면 다른 것은 입에 대지 않을 정도. 미국의 ‘마수원(Mana Beast Zoo)’에 있는 허니베어는 꿀 혹은 꿀에 절인 고기를 하루 100킬로그램씩 먹는다.
“쿠마아아아아!”
허니베어가 포효했고, 모든 게 들썩이는 듯했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앞에 있는 허니포켓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이게 먹고 싶어?”
“…….”
“보통 꿀하고는 비교도 안 될 거다.”
내가 허니포켓 한 송이를 던지자 허니베어가 입으로 받았다.
“베엉?”
허니베어는 허니포켓을 통째로 질겅질겅 씹었는데,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굶주림을 채우겠다는 의지는 여전했지만, 공격성이 많이 가라앉았다.
“베어어엉?”
하나 더 달라는 눈치.
고개를 돌리자 지율이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가 허니포켓을 하나 더 던졌다.
이번에는 앞발로 받더니,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허니베어에게 허니포켓은 막대사탕이나 다름없었다.
“고옴, 고오오옴.”
허니포켓이 빨리 사라지는 게 싫었는지 허니베어는 계속 낼름낼름 핥으며 천천히 먹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귀여워 보였다. 사실 흉포한 야생곰도 원래 생긴 것만 보면 귀엽게 마련.
경계는 풀지 않았지만, 긴장은 풀렸다.
“고오옴.”
허니베어는 허니포켓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야구공만큼 커다란 검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래, 먹어.”
내가 허니포켓을 툭 던졌고, 허니베어는 양 앞발로 받아냈다. 그리고 핥아서 천천히 먹었다.
허니포켓을 던져주길 다섯 번.
허니베어의 굶주림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도 작정하면 허니포켓을 열 송이씩 먹을 수 있다. 꿀이니까. 허니포켓 몇 송이로 허니베어의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을 리가 없다.
“곰곰이 힘이 넘쳐!”
지율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이유를 깨달았다.
허니포켓이 풍부한 마력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덕분이었다.
허니베어는 마력을 채우면서 허기도 달랬다.
“고오오오옴.”
허니베어가 일어나더니 다가오려고 했다.
꽈득.
나는 곧바로 경계하며 왼손을 검게 물들이고 주먹을 쥐었다.
“베엉…….”
시무룩해진 허니베어가 주춤거렸다.
“빠아!”
지율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응! 곰곰이 착해!”
벌써 이름까지 붙여준 모양이다.
“어떻게 알아?”
“곰곰이가 마음을 보여줬어.”
“마음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지율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안다.
“그리고 곰곰이 아파.”
“아프다고?”
내가 공격했던 곳은 생채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가 아프대.”
지율이는 손을 가리켰다.
“손이?”
내가 고개를 돌렸고, 곰곰이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퍼?”
“고오옴.”
“이리 와서 손 내밀어봐.”
곰곰이는 눈치를 살피며 다가와서는 조심스레 왼쪽 앞발을 내밀었다. 솔직히 속으로는 긴장했다. 발톱 하나가 휘어진 쇠말뚝이나 다름없었다.
“여기로.”
곰곰이가 천천히 발을 바닥에 내려놨다.
“뒤집어.”
담요를 여러 겹 쌓은 듯한 두툼한 발바닥. 매트리스로 써도 될 것 같았다.
“아.”
허니베어는 죽은 상태에서도 가죽을 자르기 힘들다. 발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곰곰이가 다친 곳은 두 번째 발톱이 난 곳이었다. 발톱 옆 틈으로 가시가 박히듯 무언가 박힌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
“고옴.”
내가 박힌 이물질로 손을 가져가자 곰곰이가 움찔거렸다. 나도 흠칫 놀라며 경계했다.
“괜찮아.”
지율이가 곰곰이의 앞발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
“고오옴.”
곰곰이는 다시 얌전해졌다.
“잠시만 참아.”
나는 엄지와 검지로 이물질 끝을 잡았다. 원래대로라면 공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맨손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아…….”
곰곰이의 발톱 사이를 파고들고 있던 것은 내 등산칼이었다. 내가 떨어뜨린 것을 곰곰이가 밟은 듯했다.
현재 내게서 마력은 감지가 안 되는 상황. 하지만 마력을 가진 것처럼 마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아마 그 영향으로 등산칼이 파고든 듯하다.
“고오오오옴! 고오오옴!”
곰곰이는 등산칼이 빠져서 시원해졌는지 기뻐했다. 어느새 곰곰이에게서는 온화함과 행복감만이 느껴졌다.
“잠깐 그대로 있어.”
나는 구급상자에서 소독약부터 꺼냈다.
“베어어어어엉.”
소독을 하자 곰곰이가 또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조금만 참아. 그 덩치에 엄살은.”
약을 발라준 뒤 붕대를 칭칭 감아주자 곰곰이는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고오옴. 고오오오옴.”
“……참나.”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곰곰이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거대한 얼굴에서 오는 압박감. 하지만 눈이 너무 맑았다.
“고오옴.”
곰곰이가 나를 한 번 핥았는데, 혓바닥이 축축한 이불 같았다.
“으악……. 목욕해야겠다.”
“고오오오옴.”
곰곰이는 수차례 나를 핥았다.
“아하하핫! 곰곰이 귀여워!”
지율이가 곰곰이의 얼굴 옆에 들러붙었다. 곰곰이는 편안한지 눈을 감고는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했다.
“애오오옹!”
갑자기 끼어든 무룩이가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곰곰이의 얼굴을 앞발로 탁탁 쳤다.
“여긴 내 구역이다냥. 특별히 살게 해줄 테니 이제부터 나를 대장으로 모셔라냥!”
곰곰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천히 교육하겠다냥.”
휴도에 피바람이 부는 게 아닌가 했는데, 꿀처럼 달콤한 향만 퍼졌다.
안도감에 한숨을 길게 내쉬며 편히 웃는 찰나였다.
“어? 이게 무슨 냄새… 아!”
오븐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갈빵은 시커먼 숯이 돼버렸다.
“에이…….”
내가 실망을 금치 못하는데, 지율이가 활짝 웃어 보였다.
“새까매! 맛있어?”
“아니, 이건 못 먹어.”
“못 먹어?”
“응. 미안.”
“괜찮아!”
“괜찮은가?”
“응!”
“그래! 오늘은 다른 거 먹지 뭐!”
“좋아! 다른 거 먹자!”
“와아아아아!”
곰곰이가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며 끼어들었다.
“고오오오오옴!”
앉아 있던 무룩이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너무 크다냥.”
“고오옴.”
곰곰이는 무룩이도 좋은지 혀로 한 번 핥았다. 무룩이는 단번에 축축이 젖은 꼴이 됐고, 평소보다 더 울상을 지었다.
“대책이 필요하다냥…….”
* * *
평소보다 별들이 적게 보이는 밤. 달이 조금은 쓸쓸하게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 아래 곰곰이는 황금빛 털을 반짝이며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 일단 거기서 자라.”
컨테이너보다도 큰 듯한 덩치.
“고오옴.”
나는 곰곰이의 얼굴을 가볍게 문지르고는 컨테이너로 들어왔다. 살면서 살아 있는 허니베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는 날이 올 줄이야.
그나저나 무룩이의 말대로 대책이 필요했다. 곰곰이는 마력을 채워서 당장 허기는 달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덩치에 맞는 식사량을 채웠다.
이것저것 다 먹여서 어떻게 양을 채우기는 했지만, 100킬로그램 이상의 식료품이 사라졌다.
“어쩌겠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내일은 꼼짝없이 육지에 가게 생겼다.
지율이는 침대에 누워서 마이패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영상을 껐다. 독서에 재미를 들리고 있었다. 글도 제법 읽었는데, 아직까지는 내가 읽어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책 읽을까?”
“응.”
나는 자연스레 지율이의 옆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휴도에서 어떤 마수를 만나더라도 지율이에게 먼저 상황을 물어봐야겠다.
지율이는 마력을 가진 생물과의 교감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들도 읽어낸다.
곰곰이와의 일이 다시 눈앞을 스친다.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들을 한 거였는데, 지율이의 말대로 하면 조금 더 빠르고 간단할 뻔했다.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아이를 믿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지율이를 믿지 못했더라면 지금처럼 해결되지는 않았겠지.
“재밌다!”
“그래?”
“응! 보고 싶네!”
‘갈매기의 꿈’을 읽는 중이었다. 지율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표지 그림이 예뻐서. 하지만 생각보다 깊은 내용에 푹 빠진 듯했다.
“갈매기도 꿈을 꾸네?”
“그럼, 그럴 수도 있지.”
“꿈을 꾸는 건 좋은 거구나.”
지율이는 자면서 꾸는 꿈 그리고 살면서 꾸고, 이룰 수 있는 꿈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하는 듯했다.
“나도 높이 날고 싶다.”
“그래?”
“응!”
“언젠가 가능할지도 몰라.”
지율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지율아?”
그새 잠이 들어 있었다.
“말하다가 자네.”
나는 피식 웃으며 새근새근 자는 지율이를 토닥였다.
* * *
“다녀오겠다냥!”
이른 아침부터 무룩이는 순찰을 돌겠다고 했다.
“밥은 먹고 가지 왜.”
“저 덩치부터 먹여야 된다냥.”
곰곰이는 산책 가기 전의 강아지처럼 헥헥거리며 웃었다. 무룩이는 뒷산에 허니포켓이 자란 곳을 또 알고 있는 듯했다. 동굴처럼 많지는 않아도 여기저기서 피는 모양이었다.
“다녀와.”
“알겠다냥.”
무룩이가 앞장섰고, 곰곰이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뭐 하냥? 따라와라냥!”
제법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거리를 곰곰이는 단 한 걸음에 좁혔다.
“……의식을 치러야겠다냥.”
무룩이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는 곰곰이와 함께 뒷산으로 향했다.
“지율아! 아침 먹자!”
“응!”
아침은 간단하게 만든 크림 파스타였다.
면은 일반적인 면이 아닌 형형색색의 보타이 파스타를 사용했다. 면 자체가 각종 채소나 다른 재료가 함께 섞인 거라고 하니 왠지 좋을 것 같았다.
적당히 간을 하면서 삶을 보타이 파스타를 생크림과 우유 조금으로 만든 소스에 끓였다. 마지막에는 약불에 놓고 달걀노른자만 넣고 비볐다.
“우와아, 이게 뭐야?”
“크림 파스타야.”
“냄새 좋아!”
“그래?”
“응!”
지율이는 포크수저로 보타이 파스타 하나를 콕 찍어서 들어 보였다.
“나비 모양이야!”
“그치?”
나는 휴대폰으로 보타이와 리본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비슷하게 생겼지?”
“응! 예쁘다!”
지율이는 포크로 찍은 보타이 파스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그래?”
“예뻐서 먹기 아까워.”
“나중에 또 해줄게.”
“그래도.”
“배고프잖아?”
“응.”
“그럼 먹어야지.”
지율이는 여전히 고민하는 듯했다.
“아빠가 열심히 했는데 안 먹을 거야?”
“알았어! 먹을게!”
그제야 지율이 보타이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물오물 씹더니 눈을 반짝였다.
“마시써!”
“그래?”
“응! 예쁜데 맛있네!”
지율이는 못 먹겠다는 말을 언제 했었냐는 듯이 잘 먹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렀다. 그렇다고 진짜 보고만 있지는 않았지만.
오붓한 아침식사를 하던 중, 지율이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집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들어 보였다.
“나비!”
머리카락이 M자로 들린 모양이 얼핏 나비 같았다.
“그렇네. 나비네.”
지율이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양손을 움직여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마치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하하하, 날아다니네.”
“응! 나중에는 갈매기 조나단처럼 날아다닐 거야.”
갈매기의 꿈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엇?”
지율이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빠, 무룩이랑 곰곰이 와.”
나는 감지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거리.
“그래?”
볼살이 올라오도록 웃고 있는 지율이가 바라보는 방향에 시선을 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룩이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음?”
곰곰이가 보이지 않았다.
“곰곰이는 어디…….”
그때 무룩이 뒤로 황금색의 무언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곰곰이다.”
지율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곰곰이는 무룩이보다도 작아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곰곰이는 단순히 몸집만 작아지거나, 아기곰이 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곰인형이 됐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