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55
55. 휴도라는 이름으로
사삭, 사사사삭.
자홍색에 통통한 인삼 같은 모양.
평소에 양팔을 벌린 듯한 자세로 뛰어다니는 약삼은 짓눌린 채로도 계속 몸을 움직였다.
“무룩아! 잘했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고개를 돌린 무룩이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갖고 싶냥?”
“어? 어어.”
“츄르냥.”
“응?”
“내가 이것들 잡아주면 이따 츄르 주는 거냥?”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더 잡을 수 있어?”
“츄르를 주면 못 잡을 것도 없다냥.”
“줄게! 더 잡아줘!”
무룩이가 앞발을 들었고, 바둥거리던 약삼이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탁!
나는 팔을 늘여서 약삼을 낚아챘다. 딱 봤을 때도 그랬지만, 손아귀에 들어오는 게 씨알이 확실히 굵었다. 바둥거리는 힘도 상당했고. 손을 옮겨 줄기를 움켜쥐자 약삼은 곧 잠잠해졌다.
“더 잡아줄래?”
“츄르냥!”
“당연히 주지.”
“거래 성립이다냥!”
무룩이는 코를 벌름거리더니 가벼운 걸음걸이를 옮겼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냐아아아…….”
무룩이가 몸을 웅크렸다가 앞으로 확 튀어 나갔다.
턱!
이번에도 무룩이는 가볍게 앞발로 무언가를 잡았다. 이번에는 쇠삼이었다.
“이야! 대단하다 진짜!”
“내가 좀 대단하다냥.”
무룩이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또다시 몸을 틀었다. 그리고 지그재그로 바닥을 튕기듯 움직였다. 수풀 위로 빨간 무언가가 올라와 있었다. 빨간 포도가 아주 작아지고, 알갱이들이 길게 늘어지듯 맺혀 있는 모양새.
“설마……?”
내가 걸음을 서두르는 순간, 이리저리 흔들리던 열매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룩이가 잡은 것이었다.
“냥!”
무룩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들었는데, 입으로는 약삼의 몸통을 깨물고 있었다. 머리 쪽으로 길게 늘어진 초록빛 줄기와 작고 기다란 포도 같은 빨간 열매.
일반 약삼도 귀하지만, 열매를 맺은 약삼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특히 꽃이나 열매를 가지고 있는 약삼이 그렇다. 일반 약삼이 인삼이라면 꽃이나 열매를 가진 약삼은 산삼이다.
무룩이에게 건네받은 약삼을 들여다봤다. 몸통에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약삼은 줄기를 잡히지 않았음에도 움직임이 멎어가고 있었다. 열매를 맺은 약삼은 귀한 만큼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쉽게 죽어서 다루기가 어려웠다.
약삼은 죽는 순간 시들기 시작하기에 초 단위로 값이 내려간다. 당장 손질을 하고, 진공포장을 하면 그럭저럭 비싸게 팔 수는 있다. 하지만 돈 몇 푼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나는 약삼의 열매를 한입에 넣고는 앞니로 줄기를 뚝 끊었다.
“그걸 먹는 거냥? 냄새가 별로였다냥.”
무룩이는 질색이라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몸통이야 흔한 삼의 냄새였고, 줄기도 쓴맛이 나는 풀이었다. 열매는 침샘이 아릴 정도로 신맛이 강했다.
약삼에게 가장 귀한 것은 당연히 열매였다.
약삼 열매의 효능은 막강한 해독력.
몸에 쌓이는 온갖 독소들을 없애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까지도 완전한 해독제가 없는 복어독도 약삼의 열매만 있으면 괜찮다. 즙이 피부에 닿기만 해도 괴사 위험이 있는 붉은사슴뿔버섯에 중독돼도 약삼의 열매를 빠르게 섭취하면 나을 수 있다.
그만큼 완벽한 해독제 중 하나가 약삼의 열매다.
하지만 구하기도 힘들고, 진공포장이나 건조 등을 하면 효능이 떨어진다.
효능이 떨어진 것을 판매할 바에는 약발이 잘 받는 체질인 내가 먹는 게 낫다고 여겼다.
중독된 상태가 아니라 체감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졌겠지 뭐.
“냥!”
“응?”
“얼른 가자냥!”
“어딜?”
“또 잡아야 될 거 아니냥!”
“또?”
“냥! 하나 더 잡아야 한다냥! 츄르 네 개 먹을 거다냥!”
송로버섯을 찾을 때 훈련된 개나 돼지와 함께 나가는 다큐를 얼핏 본 적이 있다.
고양이랑 삼을 캐러, 아니, 잡으러 다니는 것은 세상에 나밖에 없겠지.
* * *
“뽥뽥!”
뒷산에서 만난 꼭꼭이가 오른쪽 날개를 들고 흔들었다. 지율이가 항상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고, 껴안는 것을 학습한 것으로 보였다.
“뽜아앍!”
꼭꼭이는 자신의 알을 하나 주고는 산으로 올라갔다. 조만간 컨테이너에 들를 듯했다.
“그래, 맛있는 거 준비해놓을게.”
나는 꼭꼭이의 목 뒤를 가볍게 쓰다듬은 뒤, 무룩이와 함께 산에서 내려왔다.
수확은 약삼 세 개와 쇠삼 하나 그리고 꼭꼭이의 알 하나.
컨테이너를 나서서 지금까지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제일 작은 약삼을 싸게 처분해도 수백만 원은 거뜬히 받는다. 그것도 경매를 거치지 않고 급매를 해도 그렇다.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가벼운 산책을 하는 동안 수천만 원을 번 셈이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딱히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눈만 끔벅거리며 컨테이너로 돌아왔다.
“빠아아아아!”
지율이는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앞에 나와 있었다. 휴도에서 우리는 마치 직접 연결돼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뭐야아?”
내가 자루에 들어 있는 약삼들과 쇠삼을 보이자 지율이는 고개를 뒤로 뺐다.
“맛없는 거.”
“그렇게 맛없었어?”
“응!”
“꿀 찍어 먹으면 먹을 만할걸?”
“그건 꿀이 맛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네.”
“안 먹을 거야!”
열매를 맺었던 약삼은 이미 죽어서 수분기가 조금 날아간 상태였다. 아직 효능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 내가 또 먹어도 좋겠지만, 이미 약삼의 효과는 잘 발휘되고 있어서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건 싹이 주자.”
“그래!”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물었다.
“싹이한테는 맛없는 거 주는 거야? 지율이는 맛있는 거 좋아하잖아.”
“아, 아, 아, 아니야아.”
“확실해?”
“싹이는 다 잘 먹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야.”
“그렇긴 하지.”
나는 약삼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맛은 없어도 몸에 좋은 거니까.”
“얼른 싹이 주자! 쑥쑥 자라라고!”
“그래. 그리고 육지로 가자.”
“신난다!”
* * *
“여기서 키워도 된다.”
싹이의 제안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돼?”
“되니까 말한 것이다.”
수레에 수북이 쌓인 허니포켓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허니포켓밭은 푸른 나비들과 팜독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허니포켓을 적당량만 가지고 왔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주기적으로 좀 더 많은 공급을 위해 텃밭에 좀 더 많은 양을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텃밭의 지력으로는 허니포켓밭에서 자라는 것만큼 크고 아름다운 허니포켓을 키워낼 수 없었다. 나비들이 꽃가루를 옮기고, 팜독들이 돌보는 역할도 컸다.
“하지만 건져가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절반 이상은 양분으로 써야 하니까.”
“상관없어. 엄청 많이 심을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다른 식물들도 여기에 심어도 된다는 거지?”
“먼저 상의만 한다면.”
“그거야 당연한 거고.”
허니포켓의 공급량 증가가 확실해졌다.
“아, 참. 이거.”
나는 열매를 먹은 약삼을 내밀었다.
“위에는 내가 먹었는데, 그만큼 크고 영양분이 가득한 거야.”
싹이는 바닥에서 뿌리들을 내밀어 약삼을 휘감아 가져갔다.
“흐음……!”
“왜? 마음에 들어?”
“나쁘지 않구나.”
“꽤 좋지 않아?”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듯하다.”
“도움? 무슨 도움?”
“무엇이겠느냐, 성장이지.”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바닥에서 튀어나와 있는 싹이의 뿌리 하나를 쓰다듬었다.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리듬감 있는 지율이의 목소리에 맞춰 싹이의 줄기 몇 가닥이 좌우로 꼬불거렸다.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지율이가 양팔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했고, 싹이의 꼬불거리는 줄기들도 계속 흔들거렸다.
항상 딱딱하게 구는 줄만 알았던 싹이도 지율이에게는 살갑게 맞춰주는 게 보기 좋았다.
탁.
뒤에서 무언가가 건드렸다. 싹이의 뿌리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싹이의 뿌리는 이곳저곳을 콕콕 가리키며 나도 춤을 추라고 했다.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나도 만세를 하고 양팔을 좌우로 흔들었다.
지율이는 더 신이 나서 활짝 웃으며 춤을 췄다.
“쑥쑥, 자라라, 쑥쑥, 자라라.”
***
강척 마리나항은 이제 동네처럼 느껴졌다.
우선 조민택을 만나기 위해 JMT 글로벌로 향할 예정이었다.
조민택이 준비해 둔 밴 트렁크 뒤에 수레를 세웠다.
때로는 가만히 쉬는 것보다 단순하고 가벼운 노동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온전히 생각에 집중하고, 생각들이 자연스레 길들을 트고 이어졌다.
스스로가 사색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빠아!”
행복한 사색의 멈춤.
“응?”
“나도 저거.”
지율이가 가리킨 것은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마스크를 한 남자아이였다. 정확히는 남자아이가 손에 쥐고 있는 다람쥐 얼굴 풍선. 헬륨가스로 차 있는 풍선이 둥실둥실 떠 있는 모습은 지율이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저거 갖고 싶어?”
“응!”
지율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처럼 뭔가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일이 드물었다. 아직까지 떼를 쓴 적도 없는 듯했고. 이렇게 착한 내 딸에게 풍선이야 수백 개도 더 사줄 수 있었다.
“그래, 콧수염 아저씨 만나러 가는 길에 사자.”
“응!”
풍선을 든 남자아이의 엄마는 잠시 슈퍼에 들렀다. 남자아이는 그 앞에서 기다렸다.
“빠아.”
“응?”
“풍선 어디서 파는지 물어보고 올게!”
“그래.”
지율이는 씩 웃어 보이고는 풍선을 든 남자아이에게로 달려갔다.
“안녕!”
지율이가 대뜸 인사를 건네자 남자아이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아앗!”
남자아이가 풍선을 놓쳤다.
헬륨가스로 가득 찬 풍선이 둥실 떠올랐다.
남자아이의 손은 허공을 수차례 휘저었다.
지율이도 폴작폴짝 뛰었지만 풍선에 닿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다닥!
나는 힘차게 도움닫기를 해서 뛰어올랐다. 붕 떠오른 나는 옆 건물 2층 창문으로 설거지를 하던 자취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허공에 떠 있는 풍선을 낚아채고는 착지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남자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여기.”
내가 풍선을 내밀었는데, 남자아이는 그대로 굳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빠아.”
지율이가 조심스레 불렀다.
“응?”
내가 쪼그려 앉자 지율이는 귓속말을 했다.
“힘은 숨겨야 되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치. 그렇게 말했었지. 그러는 게 맞기도 하고.”
“근데 왜 그랬어?”
나는 남자아이의 손에 풍선을 쥐여준 뒤, 지율이에게 속삭였다.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때는 도와줘야지.”
지율이는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쉿.”
지율이가 검지를 동그랗게 모은 입술 앞으로 가져가자 남자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또 봐!”
지율이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저기.”
남자아이가 풍선을 내밀었다.
“너 이거 가져.”
“진짜?”
“응.”
“고마워!”
지율이는 풍선을 받고는 함박웃음을 짓더니,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 이거 가져.”
알껍데기였다. 새끼손톱만큼 작았지만.
“이게 뭔데……?”
알껍데기를 받아든 남자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까까!”
지율이가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남자아이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진짜야! 먹어봐!”
남자아이는 손에 든 알껍데기 조각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지율이와 눈이 마주치자 입에 넣었다.
“윽?”
남자아이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몇 번 오물거렸지만, 씹을 수가 없는 듯했다.
“너무 딱딱해서 씹을 수가 없어.”
“진짜로 까까야.”
그때 슈퍼 문이 열리며 남자아이의 엄마가 나왔다.
“영진아, 뭐하니?”
깜짝 놀란 영진이는 알껍데기 조각을 꿀꺽 삼켰다. 먹을 수 없는 걸 먹은 느낌에 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듯했다.
“어, 엄마.”
“음?”
영진이 엄마는 지율이가 들고 있는 풍선을 보고는 바로 상황을 파악한 듯이 말했다.
“동생한테 선물로 준 거야?”
“어? 어어.”
“그렇게 사달라고 조르더니.”
영진이 엄마는 지율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유, 예쁘게 생겼네. 몇 살?”
지율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숫자는 배웠지만, 나이는 배운 적이 없었다.
지율이는 아직 첫 돌도 안 된 상태.
하지만 주민등록상 나이가 있었다.
“다섯 살이에요.”
내가 대신 말하자 영진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다섯 살이구나. 이름이 뭐야?”
“지율이요! 김지율이요!”
“지율이, 아휴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우리 영진이하고 친하게 지내.”
“네!”
“영진이도 인사해야지.”
영진이가 손을 흔들어 보였고, 지율이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또 봐!”
“응.”
영진이 엄마가 내게 고개를 꾸벅였고, 나도 고갯짓으로만 인사를 건넸다. 아무래도 부모들끼리의 만남 같은 것은 경험이 없어서 어색했다. 하지만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엄청 작은 크기이긴 해도 지율이의 알껍데기를 먹은 영진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빠아! 빠아!”
“응?”
지율이가 풍선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우리 돈 아꼈어!”
“어?”
“돈 아꼈어!”
“푸하하하하핫!”
‘미치겠다’는 말은 생략했다.
“그렇게까지 안 아껴도 돼.”
“그래도 아끼면 좋잖아.”
“그렇긴 하지.”
“콧수염 아저씨한테도 자랑해야지.”
“아니야, 안 그래도 돼.”
평생 아끼면서 살긴 했지만, 지율이가 생기고 나서는 그런 적 없는데. 어떻게 지율이가 돈을 아낀다는 말을 하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부녀 사이에는 뭐가 있어도 있는가 보다.
* * *
“하하하, 풍선 예쁘네.”
지율이를 보자마자 조민택이 건넨 인사였다.
“예쁘죠?”
“응.”
“공짜예요!”
“어? 그래?”
“네! 아빠가 구해준 풍선을 남자애한테 줬는데, 그 남자애가 저한테 줬어요!”
이렇게만 들으면 이해가 어려울 법도 한데 조민택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허허 웃었다.
“잘됐구나.”
“그쵸?”
“응. 쿠키 먹을래?”
“네! 우유도요!”
“이런, 오늘은 우유가 없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없어도 괜찮아?”
“괜찮아요. 그럴 때도 있죠.”
조민택은 또다시 허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주스는 있단다.”
“오! 나 주스 좋아해요!”
“그래? 무슨 맛 먹어봤어?”
지율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어린이맛……?”
내가 손을 크게 내저었다.
“아니지, 그게 아니지. 어린이맛이 아니라, 어린이용.”
얘기를 들은 지율이는 조민택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그렇대요.”
“허허허. 아저씨가 준비한 건 어린이용은 아니지만 유기농이야.”
“좋아요!”
“유기농이 뭔지 알아?”
“약을 쓰지 않은 거랬어요!”
“맞아, 더 안전하게 키운 거야. 사과당근 주스인데, 되게 맛있더라고.”
“아저씨도 좋아해요?”
“응. 엄청. 일주일에 두 번은 마셔.”
“그럼 삐삐보다는 아니에요.”
“음? 삐삐?”
“네. 삐삐는 맨날맨날 당근 먹어요.”
나는 하하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토끼를 키우거든요.”
“아아, 좋죠. 동물을 키우는 게 아이들 정서에 좋더라고요. 책임감도 키우는 듯하고.”
지율이는 잠시 자리에 앉아서 쿠키와 주스를 먹으며 동화책을 읽었다. 센스 있는 조민택이 따로 준비해 뒀다.
“어이쿠……!”
조민택은 내가 가져온 것들을 보자마자 얼굴을 밝혔다.
“이거 엄청나군요. 코키오의 알은 뭐, 이제 이 껍질만으로도 가치가 굉장합니다. 깎아서 보석으로 팔아도 되겠어요. 슈퍼 허니포켓도 양이 많군요?”
“예. 일단 경매에 올릴 것으로 백 송입니다.”
“백 송이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열 송이 더 챙겼습니다. 대표님 것으로요.”
“저를 위해……? 그렇게나……? 이거 제가 감격스러워서 원.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허니포켓의 공급량은 앞으로 주에 백 송이 이상 드릴 예정입니다.”
조민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매주요?”
“예.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그럴 예정입니다.”
“그게 가능하십니까?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을 듯합니다. 중간에 또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월말이나 월초에는 이백 송이 이상도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바가 없습니다.”
조민택은 얼굴에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말했다.
“이게 단순히 슈퍼 허니포켓을 알리는 일이 아닌 건 알고 계실 겁니다. 휴도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는 나의 눈치를 살짝 살피고는 말했다.
“솔직히,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덕분에 JMT 글로벌의 이름도 많이 알려졌고요. 전 세계에서 슈퍼 허니포켓을 다루는 곳은 저희밖에 없으니까요. 말 그대로 독점 아닙니까, 독점. 그러니 더 널리 알려질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다른 휴도산 물건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휴도는 이제 자체적인 인증마크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이 원산지라는 생각은 못 하고, 브랜드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사실 원산지야 좌표 확인을 시켜주고, 따로 인증까지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이렇게 되게 마련이지만요.”
“그 부분은 오히려 좋습니다. 어차피 평생 인증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보통은 특정 차원문에서만 나온다는 걸 자랑하기도 하는데, 반대도 있죠. 대표님께서는 또 독점을 유지하실 생각인 거잖습니까.”
“예, 뭐, 그렇죠.”
“아무튼 대박입니다.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습니다. 다들 휴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물건들을 기다립니다.”
나는 보자기로 싸인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보자기를 벗겨내자 투명한 수족관 같은 것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약삼 두 개와 쇠삼 하나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래서 오늘 새로 준비한 것들도 있죠.”
“아니, 이건……!”
“약삼이랑 쇠삼입니다. 아직 싱싱하죠.”
“허허……! 이거 참, 굉장한데요? 둘 다 먹으면 아주 기력이 폭발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아주, 예. 어마어마하겠습니다.”
“새로운 휴도산 물건이니 좋아하겠죠?”
“휴도산이 아니어도 줄을 설 퀄리티입니다. 휴도산 프리미엄이 붙을 테고요.”
조민택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못했다.
“대표님은 뵐 때마다 놀라게 하시네요. 이거 참, 굉장하다는 말밖에는…….”
“아직 놀라실 게 더 남아 있습니다.”
“예? 어떤…….”
아직 곰곰이가 찍은 슈퍼 허니포켓 광고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광고가 꽤 잘 나왔습니다.”
강척대병원.
하얀 가운에 하금테 안경을 쓴 의사는 검사결과들을 바라보며 수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 앞에는 영진이가 무덤덤하게 앉아 있었다. 그 뒤에 선 영진이 엄마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초조함을 짓누르려 했지만, 자꾸만 다리를 이리저리 꼬으며 불안함을 드러냈다.
“결과…… 가 어떤가요? 교수님?”
영진이 엄마가 묻자 의사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말했다.
“잠시만요?”
의사는 영진이를 이리저리 살피고는 물었다.
“숨 쉬는 건 어때? 안 불편해?”
“괜찮아요.”
“그래?”
“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영진이 엄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천식 흡입기를 한 번도 안 썼어요.”
의사는 영진이의 소매를 걷어 확인하고는 말했다.
“잠깐 옷 들어볼까?”
그리고 영진이의 복부와 등을 확인한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아토피도 싹 사라졌네?”
그제야 영진이 엄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 어머, 어머! 정말! 다 사라졌네?”
의사는 모니터에 떠 있는 피검사 결과를 가리켰다.
“지금 기존에 문제가 있던 수치들도 다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정밀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정말요? 그 말씀이 정말인가요?”
“그래도 검사는 해봐야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뇨, 아니에요. 이건 제게 감사하실 게 아닙니다. 그냥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밖에…….”
영진이는 미숙아로 태어나서 집 외에 가장 많이 머문 곳이 병원이었다. 올해 아홉 살이지만 초등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아니, 약했었다.
허약체질이었던 영진이는 감기조차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해졌다. 풍선을 선물로 주고 보답으로 받은 정체불명의 지나치게 딱딱한 과자 한 조각 덕분이었다.
영진이는 왠지 모르게 지율이가 건넸던 정체불명의 검은색 과자 조각을 떠올렸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그리고 다짐했다.
‘건강해지면 꼭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이미 건강해졌고,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영진이 본인이 깨닫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5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