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01
201
변호인 강태훈 201화
55장 왕의 죽음
자그마치 1억 원이었다. 태훈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이 정도 돈을 받을 만큼 값어치를 했나?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죄송하지만,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노신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는 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때였다. 아마 태훈 같은 사람은 손에 꼽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 여사가 그를 신뢰하겠지.
“받아주십쇼. 저 이거 못 드리고 가면 회장님께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면서, 노신사는 다시 봉투를 내미는 태훈의 손에서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충분히 많은 일을 하셨지요. 강 변호사님 덕분에, 한 사람은 이제 가기 전 편안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오 회장님께 1억 원은 아주아주 작은 푼돈인 거 아시죠?”
그렇긴 하다. 오 여사에게 1억 원은 있든 없든, 크게 신경도 거슬리지 않는 돈일 것이다.
“정 그러시면, 어디 기부를 하시던가. 좋은 일에 쓰시든가 하십시오.”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노신사는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일체 없는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면서 그는 품속에 봉투를 집어넣었다. 범현과 함께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논의를 한 번 해봐야할 것 같았다.
유언장까지 건네받자, 노신사는 몸을 돌렸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축 쳐져 보이는 것은 태훈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오랫동안 보필했고, 아껴주었던 사람을 잃게 될 테니까.
* * *
재희의 표절 고소는 승소했다.
법원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딱 잘라 단정 지었다. 상대방은 항소를 하고 다음 재판을 준비하는 것 같기는 하다.
태훈은 상대방을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를 추가하여 고소하였고, 며칠이 지나 입질이 왔다.
처음에는 그렇게 딱 자르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던 상대방은 사정사정 애원하기 시작했다.
태훈은 일단 그 작가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뵙고 싶다고 말했다. 태훈이 의문을 품자 그녀는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했다.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은 후 차를 몰았다.
그가 도착한 곳은 원룸촌이었다.
원룸 건물에 들어온 태훈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 누구세요?
“한재희 씨 변호사, 강태훈이라고 합니다.”
문이 조금 열렸다. 그 사이로 고개를 조심스레 내미는 이가 있었다. 곧 문이 활짝 열리며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태훈의 눈살이 꿈틀거렸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표정관리를 못하는 태훈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멍멍!
그때 갈색 털을 가진 작은 푸들 한 마리가 뛰어와 태훈에게 짖었다.
“물진 않아요. 조금만 있으면 얌전해질 거예요.”
그녀는 태훈이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에게 대인기피증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턱.
즉 하관 부분이 뒤틀려 있었다. 또한 말할 때 입이 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입술은 일반 사람에 비해 퉁퉁 부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을 할 때는 어눌함도 보였다.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되기보다는, 아마도 성형수술의 부작용 때문인 것 같았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태훈을 이끌었고, 그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6평 남짓한 공간. 침대 하나, 작업용 컴퓨터에 노트북 하나, 책장, 작은 TV 하나, 냉장고 하나가 들어가 있으니 꽉 차 보일 정도로 좁은 집이었다.
집에서는 강아지의 배변 냄새도 난다. 그녀는 민망했던지 창가로 가 문을 활짝 열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기에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지만, 이 고약한 냄새보다는 나을 듯했다.
한참 짖어대던 푸들은 어느새 태훈의 앞에 앉아서 둥그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고 있었다.
“강아지가 예쁘네요.”
“칸쵸라고 해요.”
“아, 칸쵸.”
과자 이름이다. 태훈은 무안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캔으로 된 옥수수 수염차를 가져왔고, 좁은 방안 자그마한 밥상 앞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그녀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해요. 한 번만…… 선처 부탁드립니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건가요.”
일단 그녀의 형편은 형편이었고, 자신은 재희의 변호사로서 여기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의 의뢰인을 걸고넘어졌다.
그녀는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비록 기사에 ‘법원, 타임 표절 아니라고 판결하다’라고 나오기는 하였지만.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으며, 그동안 재희가 받은 정신적 피해를 생각한다면 괘씸했다.
상대는 돈 좀 뜯어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표절 소송.”
“흠…… 합의를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합의라면 얼마나…….”
“글쎄요. 한재희 씨의 이름값이 있으니까요.”
태훈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작가도 아닌, 한재희였다. 국내에서 손가락 다섯 개에 드는 작가.
그녀는 당장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잠깐 일어나더니 무릎을 꿇었다.
“변호사님. 한 번만 선처해주시면 안 되나요?”
“난감……하네요.”
태훈은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제발요…… 제가 다 잘못한 거 알아요. 말도 안 되는 걸로 소송 건 것도 알아요. 근데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이 필요했어요.”
“말도 안 되는 걸로…… 변호사를 애초에 찾아가보지도 않으셨군요. 뭐, 인터넷에서 떠도는 표절 의혹들이나 검색을 해서 소송할 결심을 하신 건가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면, 그쪽에서 되려 옛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여겼다.
무척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만큼 급박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자신이 무릎을 꿇고 울어도 태훈의 얼굴에 난감하단 기색만 떠오를 뿐 다른 말이 없자, 그녀는 답답했다.
물론 태훈이 자신을 이리 만든 것은 아니다. 한재희가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억울함 하나 알아주지 못하고, 자신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세상이 그녀는 원망스러웠다.
“도, 돈이 필요했다고요, 돈이.”
그녀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태훈으로서는 민망하고 난감한 게 당연지사였다. 좁은 원룸 안에서 여자가 울면서 무릎 꿇고 사정하고 있기에 태훈도 답답한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재희가 받은 피해를 생각한다면 쉽게 용서해줄 수도 없었다.
“소송하려고 했어요, 변호사 통해서 소송할 돈이 필요했다고요.”
“소송이요?”
결국 그녀의 입에서 급전이 필요했던 이유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서 자신의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졌다. 곧 그녀는 서랍에서 작은 사진첩을 꺼냈다.
“이 사진 좀 봐요, 그리고 지금 제 모습을 보라고요.”
그녀는 사진첩의 자신을 가리켰다.
태어날 때부터 그녀는 주걱턱이었다. 3급 부정교합.
그렇지만 지금처럼 망측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하관이 마비된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혹시 양악수술…… 부작용입니까?”
“네.”
“병원 측에서는요?”
“사전에 부작용에 관한 통지를 하였고, 제가 서명을 했기 때문에 보상해주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이게 말이 되나요? 사람을 이런 꼴로 만들어놓고!”
요즘 국내에서 양악수술에 관련한 수술 부작용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양악수술.
하악왜소증, 또는 주걱턱, 안면비대칭, 돌출입 등등이 있을 경우에 추천되는 수술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요즘의 양악수술은 기능적인 부분보다는 미적인 부분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 시술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양악수술은 뼈를 건드리는 위험한 수술이다. 턱뼈에는 신경계뿐만이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서 양악수술을 통해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어낸 사람들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양악수술을 받고 있었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 측에서는 재수술에 성공할지 그 여부도 불확실했고, 환자의 경우에도 재수술을 권유할 시에 겁을 먹는다.
이미 한 번 양악수술을 한 환자의 경우 수술 후 몇 개월간 그것이 얼마만큼 힘든지 알게 된다.
더군다나 앞의 여성의 경우는 양악수술을 한 번 함으로써 이미 부작용이 크게 발생한 사례였다. 어쩌면 두 번째 재수술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재수술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녀는 여성으로서 삶의 정체성을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 후반이었다. 직업은 로맨스 웹소설 작가.
재희와 추구하는 분야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작품 속 비슷한 클리셰로 걸고넘어진 경우였다.
그녀는 로맨스 웹소설 작가 중에서도 인지도 낮았다. 그러니 수익이 거의 나지 않은 편.
거기에 얼굴은 이처럼 망가졌다. 이제 한참 꾸미고 연애를 하며, 결혼을 준비할 그녀에게서는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빼앗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름다워질 자신의 얼굴을 생각하며 수술을 했건만, 돌아온 것은 더욱더 큰 부작용과 흉측한 안면마비라니.
“입술에 감각도 없어요.”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사정을 들어보니 안타깝긴 했다. 태훈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태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희 씨에게 의사를 물은 후, 번호를 알려드리던지 혹은 두 분이 만날 수 있게 주선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단순히 재희 씨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일로 해당 출판사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출판사 대표 역시 만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음…….”
대인기피증에 이런 몰골이라니, 혼자서 어디를 가는 것도 두려울 것이다. 차가 있는 태훈이었기에 그녀를 태운다면 곧장 갈 수 있기는 하다.
“잠시만요.”
태훈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었다.
처음에는 이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대충 사정을 말하고, 이 사람이 선처를 해달라고 빌고 있다고 전했다.
– 선처요? 당연히 용서를 빌어야죠! 어디 그 낯짝 좀 보고 싶네요!
이현지도 단단히 뿔이 났던 상황이었다. 자신의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을 표절이라고 걸고넘어지니 기분 상하지 않을 CEO가 어디 있겠는가.
재희에게도 전화를 걸자, 그녀는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있을 테니 방문하라고 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전화통화가 아닌 직접 만남을 주선하는 태훈에게 의아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 번 직접 봐야 할 것 같아. 변호사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상대방 사정이 워낙 딱하시거든.”
태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다.
재희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집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말했다.
“가도록 하죠.”
“네.”
그녀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그녀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군모를 눌러쓰고, 눈만 빼고 얼굴을 다 가릴 수 있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항상 그녀에게 외출은, 두려움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의 두려움.
그나마 마스크와 모자가 자신을 가려준다.
“칸쵸야, 누나 다녀올게.”
“끼이잉, 끼잉…….”
그녀가 문 앞에 서자 외출하려는 것을 안 갈색 푸들이 앉은 자세에서 낑낑거렸다. 그것은 그녀가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했다.
태훈은 그녀와 함께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