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Tyran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아빠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곧바로 메이블을 따라가려 했던 엔리케는 르네즈미에게 붙잡혀 발이 묶이고 말았다.
“무, 무서워요, 공자. 같이 있어 주세요.”
“전하. 하지만-.”
“저긴 너무 위험해요. 지금도 계속 큰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갔다가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 우리는 황성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네? 하비에르 공자는 내 호위잖아요…….”
르네즈미가 울먹이며 엔리케에게 매달렸다. 엔리케는 대답하지 않고 서쪽을 응시했다.
‘공주 전하의 말씀이 옳아.’
엔리케의 호위 대상은 황제인 메이블이 아니라 랑가르드의 르네즈미 공주였다.
그러니 르네즈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곧바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굉음이 연신 들리는 저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서, 혹시라도 황제 폐하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닥칠까 봐.
“공자에게 명령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부디-.”
엔리케가 어쩔 수 없이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뭐지 이 빛은?!”
도주하던 사람들의 발길마저 붙잡을 정도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너무 밝아서 밤이 아니라 낮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빛.
‘폐하…….’
엔리케는 홀린 듯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비에르 공자!”
르네즈미가 애타게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엔리케가 서쪽으로 달리자 발을 동동 구르던 르네즈미도 그 뒤를 따랐다.
***
에르마노의 시장에 마법 재료가 풀리면서 황성 마법사들 또한 통신 마법구를 만들어 냈다.
각 기사단과 주요 부처에 비치된 통신 마법구에 빛이 들어왔다.
통신의 최종 목적지는 상황제의 집무실이었다. 연락을 먼저 받은 것은 구스타프였다.
“무슨 일입니까?”
[상황 폐하께 급하게 보고할 사안이 있습니다.]“먼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폐하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같은 집무실에 있는 이상 보고는 즉각적으로 에스테반의 귀에 들어갔다.
[축제 거리 서쪽에 자객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탓에 제국민들이 대피하는 중입니다.]“……축제 거리?”
에스테반은 즉각 반응했다. 축제 거리, 그곳에 메이블과 공주가 야시장 구경을 하기 위해 나들이를 나간 참이었다.
그는 보던 서류를 곧장 내팽개치고 구스타프에게 눈짓했다.
“더 자세히 말해 보십시오.”
[자경단에게 가장 먼저 들어온 보고로는 공터에 검은 기운이 넘실댄다고 하였습니다. 연신 큰 소리가 들려와 일대가 초토화되었다고도-.]“이리 내놔.”
구스타프에게서 통신구를 낚아챈 에스테반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정확한 위치를 보고해.”
[상황 폐하십니까?]“그래. 그리고 제1 기사단 전원 소집하여 축제 거리에 투입한다. 소집 명령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위치는 황실에서 매입한…….]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에스테반은 겉옷을 걸치며 곧장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어버버 하던 구스타프가 그 뒤를 따랐다.
“황제 폐하께서 무사히 빠져나오셨을 텐데, 왜 그러십니까?”
“너는 아직 내 딸을 모르는군.”
“예?”
“관심 없는 듯하지만 늘 주변을 살피는 세심한 아이다. 소동이 벌어졌는데 지나칠 리가 없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메이블은 불의든 소동이든 흐린 눈으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에스테반은 초조했다.
‘리산드로가 있으니 별일 없을 테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다.’
건물 밖을 나서던 에스테반은 마침 거짓 길드 조사 자료를 들고 오던 오스카와 마주쳤다.
“부황. 어디 가십니까?”
“보고는 나중에. 메이블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예?”
멍하게 되물은 오스카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보고서를 구스타프에게 건넸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부자는 서둘러 마구간으로 향했다.
***
“폐하!”
빛이 걷히기 무섭게 리산드로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에이단과 메이블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리산드로는 주저 없이 메이블을 안아 들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만두는 게 좋아.]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신수에 의해.
“……신수?!”
이마 중앙에 솟은 뿔. 그리고 황금빛의 털.
분명 리산드로가 아는 신수였지만 거대화한 모습은 그가 아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신수는 오로지 황제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리다니.
[지금 메이블을 함부로 건드리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 가해질 거다, 인간.]“그, 그래. 건드리지 않겠다.”
[떼잉, 버릇없게 반말이라니.]혀를 쯧쯧 찬 신수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메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고통에 가득 찬 얼굴을 눈에 담은 신수가 앞발을 들어 메이블의 이마를 짚었다.
환한 빛과 마법진이 이마에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놀랍게도 메이블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동화 단계가 생각보다 빠른데…….]메이블을 내려다보는 양이의 심경은 복잡했다.
그러는 사이에 엔리케와 르네즈미가 차례로 현장에 도착했다.
자객을 생포하러 갔던 기사들도 공터에 귀환했다.
“한 사람은 자결하였고, 이 자는 자결 직전 생포에 성공했습니다.”
발버둥 치는 자객을 보며 리산드로가 서늘하게 명령을 내렸다.
“허튼짓할지 모르니 그냥 기절시켜 버려라.”
“예!”
증인이 될 만한 인간 확보까지 끝난 후, 리산드로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엉망이로군.’
한 사람의 짓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들꽃까지 말려 죽일 정도로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없었다.
리산드로는 복잡한 얼굴로 에이단을 바라보았다.
사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사달이 날 줄은 알았지만, 불현듯 예기치 않게 찾아올 줄 몰랐으므로.
아무리 강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독이 될 뿐이다.
‘폐하께서 이별을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네.’
리산드로는 벌써부터 이어질 파란을 걱정했다.
***
에스테반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끝난 후였다.
우왕좌왕하는 호위 기사들과 보호받고 있는 르네즈미와 엔리케. 그리고 리산드로의 망토 위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메이블.
거대화를 푼 신수가 그 옆을 지키듯 앉아 있었다. 신수의 허락하에 메이블의 위치를 옮긴 리산드로가 복잡한 얼굴로 에스테반을 맞았다.
에스테반은 곧바로 메이블에게 향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에이단 또한 쓰러져 있다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메이블. 메이블!”
에스테반은 처절한 음성으로 딸을 품에 그러안은 채 애타게 불렀다. 메이블의 가는 팔이 힘없이 바닥으로 늘어졌다.
뒤늦게 도착한 오스카가 급하게 말에서 내린 후 달려왔다.
“부황. 메이블이…….”
오스카가 조심스레 메이블의 뺨을 매만졌다. 타인의 접촉에도 메이블은 미동도 없이 숨죽인 채 잠들어 있었다.
“리산드로 도노반.”
서릿발처럼 차가운 에스테반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렸다. 그는 메이블을 소중히 들어 안으며 리산드로를 돌아보았다.
“근신 명령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한 후 처분을 기다려라.”
“예, 폐하.”
“당장 환궁한다!”
***
에이단은 눈을 떴다. 어쩐지 나른한 기분이라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눈을 뜬 장소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옥인가?’
몇 년 전 처음 국경에서 생포되어 에르마노에 붙잡혀왔을 때 와본 적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처럼 양팔과 다리를 속박당한 상태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나마 침대 위에 있다는 것과 족쇄와 수갑의 종류였다.
‘그때보다 마정석 족쇄의 마력 순도가 높군.’
하지만 그래봤자 에이단이 조금만 힘을 쓰면 떨어져 나갈 속박이었다.
에이단은 기억의 끝을 더듬었다. 메이블을 호위하여 야시장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홀로 떨어진 후 자객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다가…….
‘결계가 깨어졌지.’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었다. 그는 이 불쾌한 감각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메이블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겪은 적 없지만, 이전에는 수도 없이 느낀 감각이었다.
폭주.
또다시 의지도 없이 살육을 행한 것인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지만 본능이 인간을 쫓아 도륙 냈을지도 모른다.
에이단이 자조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감옥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일어났네. 에이단. 몸은 좀 어때?”
안부를 묻는 내용과 다르게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웠다. 온기 없는 초록색 눈이 에이단의 모습을 훑었다.
“괜찮아 보이네. 혹시 네가 또 이성을 잃을까 봐 밖에서 기사들이 얼마나 떨고 있는지 알아? 뭐, 네가 알 리 없지.”
감옥을 둘러싼 감시 병력은 가히 전시 상태를 방불케 했다. 폭주 후 정신을 잃었기에 깨어나 다시 폭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에이단은 자신의 힘을 확인했다. 도대체 얼마나 날뛴 건지 몰라도 기운이 바닥난 상태였다. 잠을 자고 난 이후였는데도.
이 정도로 기운을 소모했다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리고도 남았다.
“오스카.”
“왜?”
“사상자는 얼마나 발생했지?”
“없어.”
“뭐?”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다고. 아, 딱 한 명 있다.”
“누구지?”
“메이블.”
쾅! 우드득-.
에이단이 저도 모르게 발버둥 치자 벽에 고정되어 있던 사슬이 뜯기다 못해 벽이 부서졌다. 뜯겨나간 벽에서 돌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다행히 완전히 속박이 끊어진 건 아니라 오스카는 못 본 척 넘겼다.
“걱정하지 마. 잠든 것뿐이니까. 폭주한 널 되돌리겠다고 달려들어서 접촉한 모양이야.”
“…….”
“그래서, 갑자기 왜 폭주한 건데?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잖아.”
“누군가 수작을 부렸다. 병 하나를 쳐냈더니 그 안에 들어 있던 기운이 달려들어 결계를 깼어.”
“베론이라고 짐작하고 있지?”
에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는 한숨을 내쉬며 철창에 등을 기댔다.
“우선 생포한 자객에게 정보를 털어내도록 고문 중이지만, 쉽진 않을 듯싶네.”
“……그렇군.”
“우선은 이곳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지금 부황께서 너를 치워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계시니까 얌전히 있는 편이 좋아.”
오스카의 말에 에이단은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지금이야 기운이 바닥난 상태지만 언제 회복되어 또다시 폭주할지 몰랐다. 에이단은 담담한 얼굴로 오스카에게 요청했다.
“내 몸은 독이 잘 듣지 않으니까, 치사량의 열 배를 주사해야 한다고 전해라.”
“……뭐?”
“이 정도는 마비가 되지 않으니까.”
오스카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속박만 한 줄 알았는데, 마비 독을 주사했을 줄이야.
더 어처구니없는 건 치사량 열 배의 마비 독을 주사하라는 에이단의 태도였다. 반항의 의지라고는 전혀 없지 않은가.
‘저게 무슨 데블린의 악마야?’
일부러 매섭게 굴었던 오스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러다 진짜 ‘에르마노의 천사’가 될까 봐 두려워졌다.
***
내가 깨어난 건 꼬박 하루가 지난 후였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얼굴 바로 앞에 있는 라리마의 얼굴이었다.
“꺄! 마담! 폐하께서 깨어나셨어요!”
“어머. 어서 상황 폐하께 알려야겠다!”
“라리마. 그렇게 소리 지르니까 폐하께서 놀라셨잖아! 자, 폐하. 목마르시죠? 먼저 물부터 드세요.”
나를 조심스레 일으킨 자비에가 물컵을 쥐여주었다. 꼴깍꼴깍, 나는 미지근한 물을 조금 삼킨 후 자비에에게 물었다.
“자비에. 에이단은 어떻게 됐어?”
“아, 그게…….”
“거짓말하면 미워.”
그러자 자비에는 머뭇거리는 태도 따위 집어치우고 사실만을 정확히 보고했다.
“아세라드 백작께서는 현재 폐하께 상해를 입히고 소동을 일으켰다는 죄로 지하 감옥에 수감 중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비에가 화들짝 놀라 내 표정을 살폈다.
“폐, 폐하. 왜 우세요?”
바로 전까지 에이단의 기억을 엿봐서일까. 지독한 외로움에 감화되어 아직도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앞의 기억들은 너무 잔인했다. 에이단은 줄곧 어딘가에 갇혀 있곤 했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기억에서의 소년은 분명 베론이었지.’
그는 에이단의 심장을 찔렀다.
오스카와 비슷한 나이일 거라 추측했던 에이단이 어떻게 소년이었던 베론과 마주 볼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외로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아빠가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이블? 왜 우느냐.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더냐?”
나는 곧바로 내 앞까지 걸어온 아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빠. 에이단을 풀어줘.”
“설마…… 그 녀석 때문에 우는 것이냐?”
아빠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그렇지만 에이단을 또 감옥에 가두는 건 너무 잔인한 짓이잖아.’
에이단이 자신의 의지로 폭주한 것도 아니었다. 분명 에이단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빠가 내 손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이번만큼은 네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구나.”
“……왜?”
“너무 위험한 인물이니까. 네 곁에 둘 수 없다.”
설득의 여지라고는 없는 완고한 얼굴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나를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고작 한 번의 소동으로 에이단을 가둬두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게다가 에이단은 제국의 귀족이니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됐다.
나는 눈물을 닦고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절대로 안 풀어줄 거라는 말이야?”
“그래.”
“그럼 나 이제 아빠랑 말 안 해.”
“……!”
나는 아빠와의 전쟁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