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정신부(定神符)
한립은 곧이어 발생한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는 아직 그가 모르는 것이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문 대인이 ‘칠귀서혼(七鬼噬魂)’이라 외치자 그의 몸에 꽂힌 일곱 개의 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칼자루에 새겨진 귀신머리들이 괴성을 지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는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했으며, 문 대인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다.
문 대인도 칼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는 화가 나는 지 투덜거렸다.
너무 낮고 빨라서 무슨 말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분명 좋은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문 대인이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발을 구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칼자루의 귀신머리 입으로 집어넣었다.
더욱 불가사이한 일은 귀신의 송곳니가 움직이더니 문 대인의 손가락을 깨물고는 놓지 않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물린 채 뭔지 모를 무엇인가를 흡입 당하는 문 대인의 몸이 또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일다경쯤 지나자 그 귀신머리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이어서 문 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모든 귀신머리에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물려주었는데, 이 모든 과정이 끝나서야 방금 전과 같이 구결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요동치거나 괴성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구결이 시작되자 동시에 핏빛 안구를 드러내고, 볼까지 찢어진 입을 통해 무엇인가를 허공에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촉수 하나하나가 미친 듯이 날뛰며 일곱 갈래의 검은 기운이 귀무의 위쪽에서 솟아올랐고, 그 검은 기운은 허공에서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정확히 귀신머리로 떨어졌다.
그러자 귀신머리들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그 검은 기운을 꿀떡꿀떡 삼켜댔다.
한립은 넋이 나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문 대인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모든 정황이 세세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귀신머리카락까지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런 이상한 현상들은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일단 저 괴이한 은색 칼과 칼자루의 귀신머리, 문 대인의 얼굴에서 넘실거리는 요사스런 검은 안개까지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립이 갖고 있던 모든 생각들을 뒤엎어 버렸다.
점차 문 대인의 얼굴을 뒤덮은 귀무가 얇아지고 또 옅어져 갔다. 얇은 검은 안개 사이로 문 대인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다시 드러나자 한립은 더욱 기겁하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일은 지금 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은 안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놀랍게도 서른 살 전후의 건강한 남성의 얼굴이었다.
익숙한 눈과 눈썹의 모양으로 보아 분명 여전히 문 대인임에는 분명했다. 순식간에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그 의연한 표정과 또렷한 눈빛 그리고 냉소를 머금은 입술은 누가 보아도 매력 넘치는 미남자의 모습이었다. 남성적인 원숙함이 물씬 풍기는 그의 자태는 어떤 여인이든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치명적으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 남아 있던 검은 기운은 남김없이 모두 귀신머리로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한립은 문득 이전에 문 대인이 간사한 기운에 노출되어 원신(元神)이 다쳐 노화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라 말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아마 그 사실에 대해서는 속이지 않은 듯 했다.
지금의 모습이 그의 진정한 얼굴인 것이다. 문 대인이 젊음을 되찾으면서 변한 것은 얼굴뿐이 아니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건강한 몸은 그의 일생 중 가장 최상의 상태로 보였다.
‘혼자서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서, 나를 왜 잡아 놓은 거지? ’
한립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며 생각했다. 한립이 머리를 굴려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문 대인은 검은 안개가 사라진 후에도 꼼짝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자신의 손을 들어 꼼꼼히 살폈는데 오래 전에 잃어버린 보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탱탱하고 광택이 나는 자신의 손을 한참 살피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르신. 제가 보아하니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신 듯 한데 이 제자는 더 이상 필요치 않으신 것 아닙니까? 이제 저를 놓아주시지요. 앞으로는 제가 전심전력으로 어르신을 모시겠습니다.”
한립은 아직까지도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조급해졌다. 분명 그냥 놔 줄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척하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 파악하고, 다음 계획을 세워볼 심산이었다.
“한립아, 넌 정말 비위를 맞추는 재주가 있구나. 허나 내가 정말 널 풀어줄 성 싶으냐?”
젊은 문 대인이 웃음을 지으니, 그 얼굴과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 했다.
예전의 메마르고 거친 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외모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미성(美聲)이었다.
“그래서 날 어찌 하려는 거요. 이제 그만 속 시원히 말해주시지요.”
“어찌 할까? 하하하!”
문 대인이 가늘고 긴 자신의 허리를 비틀며 기지개를 켜는데 활기가 넘쳐보였다.
한립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품에서 비단을 겹겹이 감싸 낸 작은 꾸러미를 꺼내들었다.
‘저 비단에 감싸 놓은 것은 또 뭐야? 설마 그 칼들처럼 또 괴상한 것은 아니겠지? ’
문 대인은 바로 비단을 풀어나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그 안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한립은 그것을 보고 약간 실망했으나, 그 와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대가 들고 있는 것이 평범한 종이로 보이더라도, 방금 벌어진 괴인한 현상들을 볼 때 엄청난 비밀이 있는 물건일 가능성이 높았다.
문 대인이 종이를 신중하게 펴니 겨우 손바닥만한 크기의 오래된 종이였다. 그 종이는 은빛으로 빛나며 괴상한 부호들이 쓰여 있는 것이었다. 그 부호는 형태가 독특했고, 한립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의 눈에 그 부호들이 들어오는 순간, 한립은 어떤 비밀스런 기운을 느꼈다. 심지어 몸 안의 장춘공의 기운조차 요동치기 시작했는데, 마치 이 부호에 의해 놀라 깨어난 것 같았다.
한립은 정신을 집중해서 그 문자 부호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아내고 싶었다.
글자들은 구불구불 꺾이고 비틀린 모양에 불과했지만, 배열과 전체의 모양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규칙이 존재했다.
아마 그 안에 심오한 무엇인가가 담겨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짧은 시간만으로는 그것을 판독하기란 불가능했다.
문 대인은 한립이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응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연민의 정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한립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한립아,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말거라. 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 생은 조금 일찍 마치고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 나거라! 네 몸은 내가 잘 써주겠다.”
“뭐라는 겁니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문 대인의 속삭임에 혼비백산하여 소리쳤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긴 했었지만 이런 것은 아니었다. 한립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에겐 아직 사용하지 못한 무기들이 있으니, 그것들만 꺼낼 수 있다면 혼란한 틈을 타 몸을 빼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철노, 그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라.”
안타깝게도 문 대인의 명령에 반항은 물거품이 되었다. 커다란 손이 그의 어깨를 다시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 대인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주술을 중얼거렸다. 주술이 계속되자 누런 종이가 나부끼기 시작했다.
종이에 쓰여진 은색 부호들도 역시 한 글자씩 천천히 빛을 발하며, 신비로운 광채를 뿜어냈다. 한립은 분명 모든 글자가 빛을 발하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마지막 글자에서 빛이 뿜어 나오자 문 대인은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특수한 술법(術法)을 행하자, 황색의 종이도 그의 손짓과 함께 허공에서 펄럭였다.
그의 입에서 ‘정(定)’이라는 글자가 튀어나왔고 그 울림은 엄청났다. 그와 동시에 황색의 종이가 한립의 이마 위로 날아와 붙었다.
종이가 한립의 이마가 닿는 순간 한립은 몸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눈꺼풀조차 마음대로 깜빡일 수 없었고, 온몸에도 감각이 없었다.
단지 두 눈과 귀만이 멀쩡했는데, 이마저도 남이 보고 듣는 것처럼 생소하기 그지없는 기분이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니 실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감각은 점혈을 당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했으나, 그때는 최소한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감각이라도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립은 황망했다. 이게 정말 끝인가 싶었다.
“조급해 말거라. 네 몸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문 대인이 한립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 말을 했다.
“네 심계가 깊으니 자유롭게 놔두어서는 나만 골치 아파지지 않겠느냐.”
문 대인이 팔을 뻗어 한립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 밖은 아직 한낮의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립이 문 대인의 방에 든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정말 짧은 시간에 불과 했던 것이다.
문 대인은 마치 물건을 나르듯이 그를 들고는 방 옆의 약재원을 지나, 어느 외곽의 석실에 다다랐다. 거한도 그 뒤를 따랐는데 문 대인의 그림자마냥 한발자국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철노,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살아있는 자가 접근하면 누구든 죽여라.”
문 대인은 다른 이들로 인해 자신의 대사가 망쳐질까 두려워, 피비린내 나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석실의 문이 열리자 문 대인은 자연스레 길을 찾아가며 문을 닫아버렸다.
석실이 닫히고 안에는 창문도 하나 없었기에, 분명 칠흑같이 어두우리라 예상했다.
허나 석실 안에는 각양각색의 호롱불과 양초들이 켜져 있어 백주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석실을 보고도 한립은 한 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이제 대수롭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석실 내에 그려진 크고 작은 괴이한 결계(結界)들이었다.
석실의 중앙에 위치한 이 결계는 종류를 알 수 없는 가루를 칠해서 다양한 도형들을 그려 놓은 것이었다. 가루의 정확한 성분이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결계의 주변부에는 몇 개의 청옥(靑玉)이 박혀 있었다. 그 옥석은 촛불을 받아 맑은 빛을 냈는데, 그 맑고 투명함이 흔히 구할 수 있는 보석류의 것이 아니었다.
한립이 옥석에 정신이 팔린 사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결계의 중앙으로 내던져 졌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바르게 누워 오직 천장만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수 없다니. 큰일이군.’
강제로 눕혀 진 한립은 더없이 마음이 불안했다.
‘훅! 훅! 훅!’
연이어 들리는 소리에 한립이 귀를 쫑긋하는데 바로 주변이 어두워졌다. 문 대인이 촛불을 꺼버린 것이었다.
“네가 말한 대로하면 정말 되는 것이야? 난 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잠시 후 들려온 문 대인의 목소리에 한립은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기엔 말투도 너무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 말고는 석실 내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결코 어떤 문제도 없을 겁니다. 제가 알려준 칠귀서혼(七鬼噬魂)의 대법이나 정신부(定神符)도 모두 진짜였지 않소.”
석실에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남자 같았는데, 겨우 스물 몇 살밖에는 안 될 듯 했다.
오늘 그가 겪은 기이한 일들은, 지난 몇 년간 그가 겪은 것보다 엄청난 것들이었다. 이제 와서 생소한 목소리가 하나 더 추가 된다 해도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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