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k Cheo-yong, the shaman Park Soo-yeon RAW novel - Chapter 19
19
박수무당 백처용 019화
지윤의 말을 듣자마자 백처용은 물론, 임희정까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팔에 닭살이 돋아났지만, 아무도 지윤이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는 못했다.
오로지 지윤만이 그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오고 있어요.”
“시,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묶어!”
“끄아아악!”
그 순간, 여민정 몸속에 있던 아이 귀신이 더욱 격렬히 움직였다. 지윤은 깜짝 놀라며, 자기도 모르게 여민정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빨리 묶어! 지윤아!”
임희정이 여민정의 다리를 묶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지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는, 여민정의 어머니가 와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몸에서는 떨어진 물은 땅을 적셨다가 금세 사라지고 있었다.
“민정아….”
여민정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는 지윤에게만 들렸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이라, 여민정을 해칠 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는 젖은 손을 뻗었다.
물에 퉁퉁 불고, 여기저기 살이 벗겨진 손. 그 손을 여민정의 머리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손은 여민정의 머리에 닿기 직전, 멈췄다.
“으악! 아줌마! 비켜! 비키라고!”
아이가 여민정의 몸속에서 반쯤 나온 채 소리쳤다.
여민정의 어머니는, 잠시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와 여민정을 한 번 번갈아 본 뒤.
“민정아…. 잘 있어….”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는,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 손은 여민정의 머리가 아닌, 아이의 머리에 닿았고,
“안 돼! 나갈 거야! 나갈 거라고!”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다시 여민정의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순간.
“됐다! 매듭지었어!”
임희정이 소리쳤다.
백처용은 꼭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꺼내든 부적을 금줄 사이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몸부림치던 여민정이 잠잠해졌다. 팔과 몸, 다리, 목까지. 아무렇게나 감은 새끼줄에서 빛이 한 차례 일었다가 사라졌다.
여민정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백처용과 임희정 모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임희정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백처용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지윤에게 다가갔다.
“여민정 씨 어머님은?”
“사라…졌어요.”
“그래….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아는 모양이군.”
“네?”
바라보는 지윤의 눈빛은, 백처용에게 무슨 뜻이냐 묻고 있었다.
백처용은 가만히 서 있는 여민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신이 둘이었던 건 맞지만… 하나는 물귀신이고, 하나는… 수호신이었던 모양이야.”
백처용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윤은 그게 대충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아까 자신이 보고 들은, 여민정의 어머니. 그 목소리. 그것은 결코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느낌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지윤의 물음에 백처용이 다시 여민정의 앞으로 걸어갔다.
“금줄과 부적을 이용해서, 귀신을 여민정 씨 몸에 묶어 놨으니까. 이제 없애야지.”
“없애요?”
“그래. 부적 안에 봉(封)하는 거야.”
“봉… 봉인?”
“그렇다고 보면 되지.”
백처용이 양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리고 천천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천풍(天風)은 무형체(無形體)나 유동(有動)이며, 경계(境界)는 불가시(不可視)이나 차처(此處)에 유재(有在)라.”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외우는 주문. 이것은 어느 경문에 있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백처용의 아버지. 아니, 그보다 더 위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저승사자의 주문이었다.
“동처(同處)에 거(居)하나, 상이율령(相異律令)으로 신상필벌(信賞必罰)하니. 여재처(汝在處)가 어디냐, 염라엄명(閻羅嚴命)이라. 기명(其命)을 삼독(三讀)하니,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저승사자가 세상의 흐름을 어지럽히는 악귀, 그 밖의 요괴, 혼령 등을 잡아갈 때 쓰는 주문이었다.
저승사자만이 사용하는 주문을 어찌 알게 됐는지, 그것이 사실인지조차 이제 누구도 모르지만. 오로지 백처용 한 사람을 통해, 세상에 이어지고 있는 주문이었다.
물론 이도 신력이 필요했으며, 귀신이나 요물을 없애는 것이 아닌, 봉인하는 것이었다.
백처용이 마주했던 손바닥 사이를 살짝 벌렸다. 그리고 다시,
짝.
소리 나게 부딪히며,
“죄혼(罪魂) 포박(捕縛)하여 급급압송(急急押送)하라.”
백처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적에서 빛이 일었다.
그 빛은 백처용뿐 아니라 임희정의 눈에도 보였다. 모두의 눈에 보이는 빛.
그러나 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오로지 지윤뿐이었다.
“안 돼! 싫어! 엄마! 아빠!”
여민정의 몸속에 있던 아이가 몸부림치며, 부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죄혼(罪魂) 포박(捕縛)하여 급급압송(急急押送)하라.”
백처용이 다시 한번 말하자, 그 아이는 완전히 부적 안으로 사라졌고,
“죄혼(罪魂) 포박(捕縛)하여… 급급압송(急急押送)하라.”
세 번째 말했을 때. 부적의 빛이 사라졌다.
서 있던 여민정이 그 자리에 쓰러졌고, 동시에, 백처용도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 * *
일요일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민정은 그 햇빛에 눈을 떴다.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나, 개운한 듯 기지개까지 켜며 여민정이 주위를 둘러봤다.
누워 있는 곳은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 위였다.
“분명히….”
여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려고 하는데, 어린아이 귀신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어서 여기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나가려는 것을 어머니 귀신이 막았고, 백처용과 함께 창고로 들어간 것까지.
그녀의 기억은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던 것에서 끊겨 있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백처용과 임희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민정아. 이제 괜찮아?”
“어…. 괜찮긴 한데….”
임희정의 물음에 여민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처용을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눈빛이었다.
백처용은 빙긋, 웃어 보였다.
“어머니께서 여민정 씨를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지켜주려 하다니.”
“예…?”
“여민정 씨에게 나가라고 한 건 이 펜션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물귀신이 여민정 씨를 노리니까. 떠나라고 말이죠.”
“그런….”
“그 아이랑 함께 사망하셨으니. 아이가 물귀신이 됐다는 사실도 아신 거겠죠. 제 생각이지만, 만약 어머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진작 그 아이가 여민정 씨를 노렸을 겁니다. 이 근처의 펜션 중 여기가 물과 가장 가깝지 않습니까?”
백처용이 설명해 주는 동안, 여민정의 눈은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고 이내, 눈물 한 방울이 여민정의 볼을 타고 떨어졌다.
“바보…. 제대로 말해주지…. 나는 괜히… 원망만 하고, 얼마나 욕을 했는데….”
여민정이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원래 귀신은 사람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악귀나 원혼도 아닌, 일반적인 귀신은 더더욱 그렇죠. 그런 모습으로나마 여민정 씨에게 형체를 보이고, 말까지 건넨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하아…. 엄마….”
“만약 어젯밤에 그 꼬마 귀신 말을 듣고, 펜션 밖으로 나가셨다면. 그대로 빙의돼 물로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꼬마 대신 이 강의 물귀신이 됐겠죠.”
백처용이 말하며 다시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꼬마 귀신은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앞으로 푹 주무십시오. 어머님께서도 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실 겁니다.”
백처용은 여민정 쪽으로 고개만 돌려 말한 뒤, 방문을 열고 나갔다.
“으흑…. 엄마….”
여민정의 흐느끼는 소리만, 방 안에서 작게 번졌다.
* * *
봉고차는 다시 서울로 달리는 중이었다.
역시 운전석에는 백처용이, 뒷자리에는 지윤과 임희정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아줌마가 물귀신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지윤이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분명 백처용은 창고 안에서 여민정에게, ‘어머니 귀신’은 해하려는 게 아니라는 투로 말했었다.
백처용은 피식 웃어 보였다.
“다, 내 능력이지.”
“아, 네. 그러세요.”
지윤이 비꼬는 듯 말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민정의 어머니에게 악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백처용은 꼬마 귀신에게 씌었고, 어떻게 생겼는지 봤다. 한 곳에 물귀신이 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없다고 봐도 된다.
즉, 둘 중 하나는 물귀신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처용이 물에 빠졌다가 다시 올라왔을 때, 여민정은 어머니 귀신에게 씌었었다.
물귀신이었다면, 곧장 강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민정은 귀신에 씐 채, 백처용의 목을 졸랐다. 그것도 죽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말이다.
그때 백처용은 여민정의 어머니에게 살의가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했었다.
“그 꼬마는 부적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렇지.”
“그 부적은 어쩔 거예요?”
“오 일간 제를 올려서 원혼을 달래고, 염라대왕에게 고해야지. 그러고 나서 태우면 저승사자들이 와서 데려갈 거다.”
“저, 저승사자….”
지윤은 저승사자라는 말에 약간 겁을 먹은 듯했다. 백처용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저승사자가 와도 너 없을 때 올 거니까.”
“아저씨는 저승사자 본 적 있어요?”
“흠…. 저승사자를 봤으면, 나는 지금 여기 없겠지?”
“그렇구나….”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데, 옆에 앉아 있던 임희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나는 괜히 따라왔어. 피곤해 죽겠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게 내가 오지 말랬잖아.”
백처용이 타박 놓았으나, 임희정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때 지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아저씨. 정산하셔야죠?”
“하아…. 가서 줄게. 가서.”
백처용이 인상을 팍 구기며 대답했다.
“아, 맞다. 너 돈 얼마 받았어?”
이어 임희정이 물어왔다. 백처용의 인상은 더욱 구겨졌다.
“아 왜. 너도 달라고?”
“뭐, 소개비라도 받을까, 생각하긴 했는데. 그건 됐고, 그냥 궁금해서. 설마 너, 내 친군데 덤터기 씌운 건 아니겠지?”
“팔백! 팔백만 원! 계좌이체로 받기로 했다! 됐냐!”
“뭐? 팔백만 원? 미쳤어?”
백처용의 말에 임희정이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백처용은 그런 임희정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당장 물귀신 쫓아내는 굿 비용만으로도 천만 원 이상 나올 것이다. 거기다 이박삼일 봐주며, 귀한 부적까지 썼다.
팔백만 원으로 누가 이렇게 해주겠는가.
“팔백만 원이면 거저야. 거저.”
“걔가 진짜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일 텐데.”
“이봐요…. 나도 뼈 빠지게 일해서 이 돈 받은 거거든.”
“그래. 뭐….”
임희정이 끄덕이다가 갑자기 손을 백처용 쪽으로 내밀었다.
백처용은 운전 중이라 힐끗, 그 손을 쳐다봤다.
“…뭐?”
백처용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임희정이 씩, 웃었다.
“수고비.”
“…아니, 안 받는다며….”
“안 받으려고 했는데, 팔백 소리 들으니까 또 좀 욕심이 나네. 나도 사람이라서 말이야.”
“하…. 내가 특별히 십만 원 준다. 됐지?”
“오케이!”
백처용의 말에 임희정이 신난 표정으로 소리치며 의자에 기대앉았다.
백처용은 그것을 보며, 지윤이 여기서 팔십만 원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면 임희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해봤다.
백처용이 그런 생각에 살짝 미소를 짓는데, 뒤에서 지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운전에 집중해요.”
“도와줄 거 아니면 좀 조용히 해라.”
세 사람이 탄 봉고차가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 * *
청수여고 인근 야산.
높지 않은 산이지만, 꽤 많은 동네 주민들이 그 야산을 찾았다.
이렇게 등산하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산 중턱쯤에 있는 작은 석불(石佛)이었다.
사람 허리 정도까지 오는 크기였는데, 인자한 표정의 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원래는 분명 없었으나, 누군가 가져다 놓은 듯 어느 순간 생긴 석불.
이제 석불 앞에는 못해도 대여섯 명씩 줄을 서 있었다.
“제발 이번에는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부처님. 비나이다.”
한 아주머니가 그 석불 앞에서 합장하며, 간절히 중얼거렸다.
이 석불이 유명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게 진짜 그렇게 용해요?”
소원을 비는 아주머니 뒤에 서 있던 할머니가, 자기 뒤에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뒷짐 진 채,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어떤 사람이 제발 자기 회사 안 망하게 해달라고 여기다 빌었더니, 다 망해가던 회사가 다시 번듯하게 일어났다는 말 못 들으셨수?”
“어이구. 그래요?”
“그뿐인가. 자식 대학 잘 가게 해달라 빌었더니, 서울대에 떡하니 붙고, 애 가지게 해달라고 하면 바로 임신하고. 진짜 부처님이 내려오신 거라니까. 저게.”
할아버지의 말에 물어봤던 할머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소원을 빌던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켰고, 할머니가 얼른 가서 합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