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00
〈 100화 〉 한 여름밤의 악몽(1)
* * *
깊은 밤이었다.
깊은 밤이었으나, 잠든 이는 없다. 교관들은 횃불을 든 채 숲을 순찰했다. 견습 기사들은 무기를 쥔 채 언제든지 실전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벌레들이 우는 소리.
까마귀들의 울음소리.
기사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견습 기사들은 자꾸만 목이 타 마른침을 삼키며 무기를 고쳐 쥐기를 반복했다.
몇 분 전, 적습이 있었다.
습격을 계획한 적은 인근 전장에서 패배하고 도망치는 마왕군 이었는데, 그들의 후퇴 경로에 견습 기사 훈련소가 끼어있는 탓이었다.
‘그러나, 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습격을 계획하던 마계의 병사들은 시체가 되어 어둠 속에 묻혔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숲을 노려보면 잘린 팔다리가 시야의 한구석에 잡히곤 한다.
두개골이 박살 난 스켈레톤.
바닥을 나뒹구는 팔다리.
나무에 대롱대롱 꽂혀있는 시체.
마치 맹수가 한바탕 날뛰고 간듯한 모습이다.
기사들은 괜스레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막사다. 조금 전 한 소년이 들어갔던 막사를 기사들은 곁눈질했다.
그렇다. 적습은 실패했다.
‘고작, 한 명의 소년에 의하여.’
핏물을 뒤집어쓴 채 마왕군을 도륙 내던 소년의 모습을 기사들은 떠올린다.
핏물로 엉겨 붙은 새하얀 백발, 도끼날에 낀 살점과 핏덩어리. 어둠 속에서도 흉흉하게 빛나던 붉은 눈동자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라크 반 그레이스.’
기사들은 자꾸만 소년의 이름을 곱씹었다.
*
막사로 부름을 받은 라크는 교관들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교관들은 처음에는 못 믿는 눈치였으나, 순찰을 하러 갔다 돌아온 교관이 보고한 것과 라크의 말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의심을 거두긴 했다지만, 그들은 떨떠름한 눈치다. 아직 학생 신분에 불과한 이가, 교관들조차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다.
라크의 전투를 눈앞에서 목격한 교관조차 얼이 빠진듯한 모습이다.
“···일단, 쉬고 있으십시오. 라크 공자님.”
교관들은 그 말을 남기고 막사 바깥으로 나갔다. 막사에 혼자 남은 라크는 짧게 숨을 뱉었다.
“후우······.”
가열(Heating)을 해제한 지는 조금 됐지만, 아직도 몸에 열이 남은 것만 같았다. 심장 박동이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신기한 느낌이다.”
라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깨달음은 갑작스러웠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왔다. 그때, 등허리를 타고 역류하던 서늘함을 라크는 떠올려봤다.
쭈뼛.
그것을 떠올린 순간, 등허리가 곤두서는듯한 감각과 함께 서늘함이 다시 찾아왔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깔끔해졌다.
“음.”
라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투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토록 원했던 것.’
본능 속에서 이성을 붙잡는 것.
‘이게 있다면, 벨노아를 이길 수 있다.’
라크는 뿌듯함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드러난 이빨이 반짝였다.
“···음?”
괜스레 기분이 들떠서 허리춤의 도끼를 매만지던 라크는 눈을 깜빡였다. 시야에 잡힌 것에 위화감이 든 까닭이다.
‘···왜 상처가 없지?’
라크는 자신의 팔뚝을 살폈다.
분명 창대에 스쳤던 것 같은데 작은 생채기도 없었다. 라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잿빛?’
팔뚝 위로 잿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짜인 마나가 라크의 육체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라크의 마나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정교하게 마나를 짜지 못한다.’
짐작 가는 곳이 없지는 않았다.
라크는 체험 학습을 떠나기 직전, 라니아 교수님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라크, 그 도끼 줘볼래?
예?
사지 멀쩡히 돌아오기는 해야 할 거 아냐. 거긴 비교적 안전하긴 할 테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전장이니까.
그리 말씀하시며 교수님은 도끼에 무언갈 새겨주셨다. 정황상, 그것이 이 마나 보호막인듯싶었다. 라크는 몸 위로 일렁이는 잿빛 마나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생각이 다 있으셨군.”
라크는 잠시나마 교수님을 의심한 자신을 책망했다.
‘교수님의 말만 따랐을 뿐인데, 정말로 감을 잡았다. 어떻게 하는지 깨달았다.’
놀라운 성과였다. 생각해보면, 교수님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조금 정도가 심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확실한 성장을 가져옴은 사실이다.
음, 하고 라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라니아 교수님이다.”
라니아에 대한 신앙심을 키워가는 라크였다.
2.
잿빛 마탑의 최상층.
차기 마탑주의 집무실.
“······.”
그곳에서 질레온은 차기 마탑주의 계획을 들었다. 늙은 원로인 그는 레스티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였다. 그럴 가치가 있는 말이었다.
“···이상입니다.”
레스티가 말을 마쳤을 때.
질레온은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손에 쥔 지팡이를 매만졌다.
오돌토돌한 감촉이 손가락에 걸린다.
얼마 전, 금이 갔던 부분을 매만지며 질레온은 숨을 내뱉었다. 내뱉은 숨은 한숨이었지만, 그것은 눈 앞의 소녀에 대한 비웃음이 아니다.
“그런가.”
질레온이 감았던 눈을 떴다.
“변했구나, 레스티 엘레노아.”
원로(??)로서가 아닌,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노인으로서 그는 말했다.
“몰라볼 만큼 변했어.”
소녀가 발음했던 말들은 날카롭다.
유약하고, 숨어다니던 소녀에게서 나올만한 단어들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할만한 계획도 아니었다.
찢고, 도려내고, 무너트리는 것.
그것을 발음하던 레스티는, 그녀 이전의 차기 마탑주였던 잿빛 마법사를 닮아 있었다. 질레온은 눈앞의 소녀에게서 잿빛 마법사의 편린을 보았다.
‘두 번째로군.’
아플리아에서 마주쳤던 교수에게서 느꼈던 그것을, 질레온은 지금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의견을 들려주시죠, 질레온 원로.”
“더 말할 것이 있겠나. 나는 자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하지. 협력 안 했다간 나까지 숙청당할 위기인데, 내게 선택권이 있겠나.”
질레온은 자신이 졌다는 듯, 양팔을 손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사실이 그랬다. 협력하거나, 숙청당하거나. 선택지는 그 둘 뿐이었으니까.
‘허무맹랑한 계획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계획이었다. 필요한 건 결단력이었지만, 눈앞의 소녀에게 결심이 부족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저 자료는 어디서 났는가?’
갑작스레 나올만한 자료는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마탑을 살피고, 원로들의 뒤를 캐고 다녀야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질레온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태까지의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면.’
자기 자신을 낮추고, 고개를 숙인 채로 유약함을 가장(??)했던 것이라면······.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질레온은 억측을 털어냈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을 속에 품은 채 눈앞의 소녀를 바라봤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질문 하나 해도 되겠나.”
레스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레온은 잠깐의 뜸을 들이곤 입을 열었다.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다만,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
그 질문에 레스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직육면체의 마도구를 손안에서 굴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레스티의 시선은 집무실의 한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역대 마탑주, 혹은 차기 마탑주들의 문양이 새겨진 벽면이다.
벽면에는 여러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그 끝에는 라니엘 반 트리아스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다음에 오게 될 자신의 문양을 레스티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정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날이 머지않았음을 레스티는 직감했다. 삼 년간의 머무름은 끝났다. 이제는 자신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차례였다.
3.
아플리아의 결계 수복이 완성을 앞두고 있다. 정상적인 학사 운영을 앞둔 마지막 주말을 학생들은 바삐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에도 기숙사에는 불이 켜져 있다.
밤이 깊었음에도, 학생들은 잠에 들지 못한다. 그들은 핏발이 선 눈으로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어지간한 과제는 전부 끝났다.
‘남은 과제는 한 과목뿐.’
마나의 거래학.
하나의 과목에 붙은 수업은 두 개다. 졸업생들에게서 악몽이라 불리는 로셀 교수의 수업과······.
‘깊고 두려운 악몽.’
새롭게 태어난 악몽인 라니아 교수의 수업이다.
‘더럽게 어려운 과목.’
마나의 거래학은 과목 자체가 어렵다.
수업의 난이도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거기까진. 딱 거기까진, 학생들도 불만을 품지 않는다.
수업이 어려운 것이야 노력하면 될 문제다.
문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노력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세상만사가 으레 그렇듯, 강요된 노력은 짜증을 동반한다.
‘과제.’
학생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도가 넘은 과제.’
테이블 위에 쌓인 과제는 능히 산과 바다를 이룰 지경이다. 회로 풀이 산맥과, 회로 해석 해안을 바라보며 학생들은 이를 악문다.
시험이 끝났음에도, 과제는 끝나질 않는다.
하나만 해도 속이 터지거늘, 사제(??)가 쌍으로 지랄이다. 학생들은 속으로 몇 번이고 두 교수의 이름을 곱씹는다.
···밤이면 밤마다 아플리아에는 악몽이 찾아온다.
과제라는 이름의 악몽이.
* * *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아플리아는 평소보다 활기차다.
으어어어···.
과제 다 했어···?
너는?
초주검이 된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활기차다고 말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짧지만 길었던 공사가 끝났다.
더욱 견고해진 결계와 함께 아플리아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고에 사건이 겹친 탓에, 학사 커리큘럼이 꼬인 마당이다. 평소보다 밀도 높은 스케쥴이 학생들을 반겼다.
오늘 수업은 좀 빠르게 진도를···.
팍팍 진도 나갈 테니 정신 차리고···.
수업이 밀린 교수들은 진도를 빠르게 나가기 시작한다. 빡빡하게 구성된 스케쥴에 따라 학생들은 보강을 나가고, 주문 실험을 몰아서 해치운다.
주문 연구실은 나날이 학생들로 붐빈다.
중앙 도서관에도 학생들로 가득하다.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학생들은 무심코 깨닫고 만다.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왔음을.
중간고사가 끝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금 시험기간에 근접함에 학생들은 한숨을 내쉰다.
“흥, 흐응.”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숨 소리와 달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거니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잿빛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렸다.
또각.
구두굽이 복도에 울린다.
경쾌한 소리를 끌며 그녀가 향하는 곳은 학사 게시판이다.
“어? 라니아 교수님?”
라니아 반 트리아스.
“여긴 왜···.”
“왜 왔겠습니까? 공지 붙이러 왔지.”
그녀는 학사 게시판 앞에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게시판에 공지를 붙였다.
“다들 한 번씩 확인하세요.”
그 말만을 남기고 그녀는 발걸음을 돌린다.
그녀가 떠난 자리로 학생들은 모여든다. 그리고, 게시판에 붙은 공지를 확인한다.
『마나의 거래학 기초 조별 과제 안내.』
『참고 서적 코드 : JF3KMGGH4G』
아카데미의 꽃, 조별 과제.
그것이 과제로 지친 학생들을 반기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