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50
〈 150화 〉 초인, 한낱 인간(5)
* * *
한 사람의 삶이 바스러지며 나는 소리는 끔찍했다. 메마른 웃음소리가 설원에 메아리쳤다. 그것은 꼭 무언가 찢어지며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드라카는 한동안 미친 듯이 웃었다.
그렇게 그가 얼마나 웃었을까.
뚝, 하고.
그 웃음소리는 갑작스레 그쳤다.
드라카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설원 위에 검게 찍힌 구정물을 허망이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옛날과 같은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목적도, 집념도 전부 잃었을 테니까.’
긍지는 부러졌다.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공허한 드라카의 눈동자를 흘겨보며 나는 침묵했다.
『계약은 성립됐다.』
별은 침묵하지 않았다.
별은 담담히 거래의 결과를 속삭인다. 나는 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다지 귀에 담아둘 만한 내용은 아니었고, 어차피 알고 있는 이야기였으니까. 나는 다만 눈앞의 초인을 보았다.
“···쯧.”
괜스레 나는 혀를 찼다.
죽어 마땅한 인물이고, 어찌 보면 업보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입안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자세히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본다.
어차피 내가 알릴 수 있는 사실은 한 줌에 불과하다. 카르디가 남긴 서고에서 얻은 지식의 태반을 나는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어중간하게, 돌려서 설명한다 한들······.’
검귀는 내 말을 듣지 않았을 테지.
숙원의 달성을 코앞에 둔 이들이 으레 그렇듯, 검귀의 눈은 이미 멀어 있었다.
‘예정된 비극을 향해 걸어갈 뿐인 삶.’
그 삶에 일말의 동정심이 들다가도··· 드라카의 행적을 회고하자면, 참으로 미묘한 감상이 든다. 한마디로 이렇다 정리할 수가 없다.
‘참 새삼스레······.’
세상살이가 본래 그렇다.
요 근래 모든 일이 깔끔히 처리되는 탓에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전장에선 이런 일이 허다했는데 말야.’
그곳에선 질척함이 기본이었다.
그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 비극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비극 속에 변절자가 된 이들을 내 손으로 묻었던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절대로.
「나는 잿빛 너와 같은 초인이 아니다.」
「한평생 노력해도 닿을 수 없다. 닿을 수 없기에, 우리는 소모품처럼 희생될 뿐이다. 다름 아닌 너희를 위해서! 너를, 너를 위해서 말이다!」
“······.”
「나도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대를 위해 희생되는 삶이 아닌, 내가 주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속이 얹힌 듯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또한 오래가진 않는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경험 속에서 사람은 마모되어가는 법이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입안이 쓰던, 머릿속이 복잡하던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계약.”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에 별빛이 답했다.
『명하라.』
계약에 따라 맺어진 종속이다.
자의식이 말살된 드라카는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이 된다. 어떠한 명령이던 드라카는 따를 것이다. 나는 명령을 내렸다.
“박탈.”
드라카의 몸이 실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남은 건···.’
칼트에게 연락을 하는 게 낫겠지.
당장 내가 기사단장 아저씨한테 드라카를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품속에서 서신을 꺼냈다.
「북부에서 검귀, 드라카와 조우.」
줄글을 써 내려가다 말고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칼트가 기겁하며 답장을 보내왔지만, 나는 그것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검귀를 보았다.
검의 초인, 그러니까 초인.
‘초인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이다.
인간을 초월했기에 그들은 초인이라 불린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해낸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초인 또한 인간이다.
별의 규칙에 얽매여 살아가는 한낱 인간.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라.’
쿤텔 아저씨가 남긴 한마디의 말.
한 줄의 문장에 담긴 의미를 나는 곱씹었다. 문장은 처음 보았을 때와는 조금 다른 맛이 났다.
2.
시간은 흐른다.
사건은 차츰차츰 해결되어간다.
북부의 전사들은 성기사들을 생포했다. 철벽이라 불리는 베를랑은 허망한 눈동자로 추기경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이내 북부의 전사들에게 협조했다.
“우리는 배교자요.”
“해선 안 될 금술을 시행하려 했소.”
“델로힘 교단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요.”
그들은 스스로를 배교자라 칭했다.
델로힘 교단과 전혀 연관되지 않은, 독단적 행동이라고 증언했으나··· 그 말을 믿는 이는 그 누구도 없다. 믿는 이는 없으나 델로힘 교단에선 그들을 영구히 제명했다.
‘꼬리를 잘랐다.’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한다.
세간에서 의혹의 눈길이 교단에게 향한다. 그들과의 연관성은 끝끝내 부정하며 교단은 북부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한다.
“지랄하고 앉았군.”
그러나, 에랴흘은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는 교단의 고위 사제들이 모인 테이블을 맨주먹으로 박살 내며 으름장을 놓았다.
“북부에는 광전사들이 살지. 그들은 오직 전투밖에 모른다. 그 광전사들은 내 통제하에 있지 않다. 그들이 교단을 습격해도 북부의 탓은 아니겠지?”
그가 턱짓한다.
“우연찮게도, 이곳에 한 명이 있군.”
열세 전사의 제 1석.
광란(??)의 베렉.
“이곳에서 베렉이 너희를 전부 죽인다 한들,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 내 말이 맞나?”
교단의 고위 사제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뭐, 배상금 정도야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에랴흘이 손가락을 까딱인다.
성큼, 베렉이 테이블로 다가온다. 새하얗게 질린 사제들이 황급히 조건을 덧붙인다. 그것을 흘겨보던 에랴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다시는 북부에 발을 들이지 마라.”
경고를 어긴다면.
“북부는 델로힘 교단과 전면전을 치를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아님을 알기에 고위 사제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델로힘 교단의 본토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어 갈 무렵이다.
「아니, 미치셨습니까? 선배님?」
“이게 씨팔, 못 하는 말이 없네. 너 미쳤니?”
북부에는 거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 *
“존경하는 선배님.”
「오냐.」
“저는 선배님을 무척 신뢰합니다. 선배님은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며 냉철한 마법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좀 그렇긴 하지.」
“······.”
「뭐 씨발아.」
“···그으, 아무튼 말입니다. 그런 제가 요즘 들어 한 가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말해 보아라.」
“사실 선배님께선 냉철하긴커녕 굉장히 감정적이시고, ‘일단 지르고 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무척이나 불경한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반성하렴.」
“그렇다면, 선배님.”
칼트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이 못난 후배가 의심을 거둘 수 있도록 상황을 보다 상세히 설명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흑색 마탑의 마력 회신을 경유하여, 북부에 있는 라니엘과 통화를 이어가는 칼트는 뒷목이 땅길 지경이었다. 며칠 전, 칼트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북부에서 검귀, 드라카와 조우.’
편지의 형식은 고상했다.
그러나 한 꺼풀 까보면··· 그곳에 자리 잡은 내용은 칼트에게 수십 일 치 야근을 안겨줄 내용이었다.
“대체 이번엔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너는 내가 뭐 맨날 사고만 치는 줄 아니?」
“통계적으로 보아도 두 분이 만나면 열에 아홉은 사건이 터집니다. 제가 부디 10%의 확률을 신뢰해도 되겠습니까, 선배님?”
「어······.」
“혹시 또 뭐 지형이라도 날려 먹은 건 아니시죠? 아니길 바랍니다. 저는 지도 수정 업무까지 맡고 싶진 않습니다. 정말로.”
통화를 이어가던 라니엘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드높게 솟은 쿠락트 산맥을 바라본다. 보다 정확히는, 잘려 나간 산등성이를.
‘음······.’
눈을 가늘게 떠야 보이는 흔적이다.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보인다’는 것부터가 문제긴 했으나··· 라니엘은 그것까지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음에 답했다.
「별로 티 안 나.」
“오, 제발.”
칼트는 식겁한다.
그는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라니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도대체 뭘 한 거냐고. 드라카는 또 어떻게 된 것이냐고.
“제발, 선배님 설명을···.”
그렇게 칼트가 질문 공세를 쏟아내고 있자니, 수화기 너머에서 피곤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말로 하긴 좀 힘든데.」
“···예?”
그 순간이다. 칼트의 직감이 요란스레 울렸다.
초인과 범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칼트는 조금이나마 초감각의 영역에 발을 담갔다. 그 초감각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칼트에게 경고한다.
‘다음 말을 잇게 해선 안 된다.’
칼트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이다.
그보다 한발 먼저 라니엘이 말했다.
「그냥 니가 와서 봐.」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편이 훨씬 편하겠다.」
칼트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칼트는 뚜,뚜,뚜 소리를 내는 마력 회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으, 으으으······.”
칼트가 제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을 흘렸다.
“선배님, 제발!”
뜻하지 않은 북부 출장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칼트의 비명은 라니엘에게 닿지 않는다.
곁에 있던 흑마탑주 예투알만이 불쌍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찰 뿐이었다. 예투알은 칼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조언했다.
“예로부터 상사는 ‘상식적인’ 인물을 두어야 하는 법일세. 자네가 고생이 많군. 참으로.”
칼트의 심금을 울리는 한 줄의 문장이었다.
3.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며칠간 라크는 몸을 회복하는 데 전념했다. 백색 마탑주가 기겁하며 라크에게 온갖 포션을 들이부었기에 회복까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라크는 방에 틀어박혀 지내야만 했다. 부러진 뼈가 붙을 때까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강한 경고 탓이었다.
“···으음.”
훈련할 시간에 훈련하지 못한다.
평소라면 그것에 불만을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라크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은 드넓게 펼쳐진 설원이다.
설원(雪?).
새하얗게 펼쳐진 설원에 찍힌 핏자국.
핏자국 위에 서 있는 어느 검사.
사박.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검사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다. 간결한 동작이다. 간결하기에 완벽한 동작이다. 단두대처럼 내려쳐진 칼끝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온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설산을 할퀴며 다가오는 검기.
그 검기를 바라보며 자신이 움직인다. 발이 앞으로 나가고 젖힌 팔이 도끼를 휘두른다. 그 움직임은 부드럽다. 어느 때보다 빠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움직임.’
찰나이지만, 육체의 한계를 넘어섰던 순간이다.
그 순간을 라크는 몇 번이고 떠올린다.
‘낯설다.’
낯선 감각이었기에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라크는 벽을 보았다.
자신과 검귀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오를 수 없을 만큼 높고, 부술 수 없을 만큼 견고한 벽. 그 벽을 향해 라크는 손을 뻗어 본다.
‘아직은 닿지 않는다.’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몹시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시적으로 벽에 닿았을 뿐이다. 당장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은.’
아직은 그렇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닿아야 하고, 언젠가는 부숴야 할 벽이다. 벽의 형태를 뇌리에 각인시키며 라크는 눈을 떴다.
“···그렇다면.”
라크는 멍하니 중얼거린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라크의 안에서는 의문이 커져만 간다. 그 의문을 라크는 소리 내 말했다.
“라니아 교수님은,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
아무리 눈치가 없는 라크라 한들,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드라카는 검의 초인이다. 검의 초인을 평범한 마법사가 이기리란 불가능하다.
‘···설마.’
한가지 추측이 뇌리를 스친다.
라크가 생각하기에 정답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 * *